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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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지난 2009년 북한의 임진강 상류 황강 댐 무단 방류로 6명이 사망했던 사건이 아직 기억 속에 생생함에도 2020년 여름 폭우가 발생하자 북한은 또 다시 우리 관계 당국에 아무런 통보 없이 황강 댐 수문을 일부 개방해 물을 무단으로 방류했다.1 이와 같은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8월 25일 통일부는 ‘남북 관계가 복원됐을 때’라는 전제 하에 남북 간 인도적 교류 및 협력 방안 중 하나로 “(임진강과 북한강 등) 공유하천 유역의 재난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상호 호혜적인 방향으로 공동 관리하겠다”고 언급했다.2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이므로 임진강과 북한강 등을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남북이 임진강과 북한강 등의 물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하천을 남북 간 ‘공유하천’이라 정의하는 것은 별다른 반론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국제하천 또는 공유하천의 이용과 관련하여 수자원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예상된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도 국제하천의 이용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분쟁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에티오피아가 건설하고 있는 ‘그랜드 르네상스 댐’(Grand Renaissance Dam)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간 수자원 분쟁이다.

본 이슈브리프는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간 수자원 분쟁을 개관한 후 국제법적 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 문제에 대한 한국의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다.

 

2.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간 수자원 분쟁 개관

(1) 에티오피아가 건설하고 있는 그랜드 르네상스 댐

에티오피아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2011년부터 나일 강 상류에 ‘그랜드 르네상스 댐’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나일 강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는 이집트는 이와 같은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건설 및 운용에 대하여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집트가 수자원을 이용하는 데 그랜드 르네상스 댐이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건설로 인한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간 수자원 분쟁 양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프리카에서 길이가 가장 긴 나일 강의 지리적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길이가 약 6,650km에 이르는 나일 강은 이집트 문명을 꽃피웠던 이집트를 포함하여 에티오피아, 수단 등 모두 11개국과 관계가 있는 대표적인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라 할 수 있다.

그랜드 르네상스 댐과 관련이 있는 나일 강의 상류는 크게 둘로 구분된다. 바로 ‘백나일’(White Nile)과 ‘청나일’(Blue Nile)이다. 백나일은 우간다에서 발원하고, 청나일은 에티오피아에서 발원하고 있다. 그리고 백나일과 청나일은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Khartoum)에서 합류하여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로 흐른다.

백나일과 청나일 중 청나일이 우기(雨期) 동안 나일 강의 유량 중 약 80% 이상을 공급하게 된다는 점에서 청나일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바로 이 청나일에 에티오피아가 그랜드 르네상스 댐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에 이 댐의 건설은 나일 강의 유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규모도 상당하다. 2020년 현재 약 70%가 넘는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수면면적(surface area)은 최대 약 1,874㎢에 달하게 되는데, 이 면적은 서울 면적의 약 세 배에 해당한다. 이러한 규모의 댐에는 물을 채우는 데만 해도 빨라야 3년은 걸릴 것이라 예상된다.3 그리고 2020년 우기가 시작되면서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이 댐에 벌써 물이 채워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4 이와 관련하여 에티오피아 수자원장관도 2020년 7월 “댐 건설과 물을 채우는 것은 같이 가는 것”이라고 확인했다.5

에티오피아는 수력발전을 통해 만성적인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그랜드 르네상스 댐을 건설하고 있다. 이는 에티오피아가 이집트와의 분쟁까지 감수하고 있는 이유이다. 더구나 이 댐의 건설을 통해 에티오피아가 전력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은 물론 인근 국가들로 잉여전력을 수출까지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6

(2) 이집트의 대응 및 입장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나일 강을 대표하는 국가는 ‘이집트’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이집트는 나일 강 없이 생존하기 어렵다. 나일 강으로부터 식수부터 산업용수까지 모든 것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7 이집트로 흐르는 나일 강의 유량이 감소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집트의 농작물 수확량 감소, 수자원 단가 상승 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이집트는 나일 강의 유량이 2%만 감소해도 약 100만명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8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건설이 시작되던 2011년 이집트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나고 정국이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따라서 그 당시 이집트는 에티오피아의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건설을 저지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할 상황에 있지 않았다. 압델 파타 알시시 대통령이 권좌에 오른 2014년이 되어서야 나일 강 문제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을 뿐이다.9

결국 상당한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집트는 2015년 에티오피아 및 수단과 함께 “Agreement on Declaration of Principles between the Arab Republic of Egypt, 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 and the Republic of the Sudan on the Grand Ethiopian Renaissance Dam Project”(이하,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라 불리는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 이 합의의 법적 성격이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인지 아니면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합의인지는 다소 모호하다. 다만 이집트가 2020년 현재 에티오피아 및 수단과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 체결을 통해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운용 문제를 규율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는 정치적 합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는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건설 및 운용이 어떤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명백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는 총 10개의 원칙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원칙은 두 가지이다. 바로 ‘유의미한 손해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Principle Not to Cause Significant Harm)과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Principle of Equitable and Reasonable Utilization)이다. 두 가지 원칙 모두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의 이용을 규율하는 국제법상 원칙을 표현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와 그 이후 계속되고 있는 3국 간 교섭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여론 자체는 상당 부분 호도되어 있다. 즉, 이집트 정부 자체도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준공 및 운용이 하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이집트 언론 또는 여론은 에티오피아에 대한 ‘무력사용’ 가능성을 빈번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10

그런데 이집트 정부가 이와 같이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준공 및 운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전제 하에 문제는 2020년 우기가 시작되고 이 댐에 물이 채워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3국 간 교섭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11 이런 상황을 놓고 미국은 3국 간 교섭이 성과를 내도록 특별히 에티오피아를 압박하기 위해 에티오피아에 대한 원조를 유예하고자 한다는 언질까지 했다.12

이집트는 2020년 현재 에티오피아 및 수단과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 체결을 통해 그랜드 르네상스 댐에 물을 채우는 문제를 포함하여 이 댐의 운용이 규율되기를 희망한다. 특히 이집트는 이 조약 내에 분쟁해결 절차가 포함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 ‘유의미한’(significant)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도 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13 결국 오늘 현재 이집트의 입장은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의 (법적 구속력 있는 문서를 통한) ‘구체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1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위치, 출처: River Nile map from Wikipedia, CC BY-SA 3.0 (댐 표기 추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iver_Nile_map.svg]

 

3.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의 이용을 규율하는 국제법

(1) 영토주권을 강조했던 고전적 이론: Harmon Doctrine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의 이용을 규율하기 위해 제시된 고전적 이론 중 가장 대표적인 이론은 ‘Harmon Doctrine’이다. 19세기 후반 미국 농장주들은 미국과 멕시코 간 국제하천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영토 내에 위치하고 있는) 리오그란데의 수로 방향을 전환했고, 이로 인해 멕시코로 유입되는 리오그란데의 유량이 감소했다. 멕시코는 미국에 문제를 제기했고, 1895년 12월 12일 미국 법무장관인 Judson Harmon은 국제법의 근본 원칙은 모든 국가가 자국 영토 내에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는 것이라 전제하면서 미국이 리오그란데의 수로 방향을 전환하여 멕시코로 유입되는 리오그란데의 유량이 감소한 것에 대하여 국제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언급했다.14 이를 바로 ‘Harmon Doctrine’이라 지칭한다.

Harmon Doctrine은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의 상류국이 하류국을 고려하지 않고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15 만약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건설 및 운용을 놓고 에티오피아가 나일 강의 ‘상류국’으로서 자국의 주권 행사만 강조하고자 한다면 그 표현이 어떠하든지 간에 Harmon Doctrine을 지지하는 잘못된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2)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Equitable and Reasonable Utilization) 원칙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은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의 ‘배분’ 또는 ‘할당’을 규율하고자 하는 개념이다.16 이 개념은 어떤 특정 하안국(Watercourse State), 특히 상류국의 (절대적인) 주권 행사가 아닌 하안국’들’이 그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발전했다. 따라서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은 ‘공유주권’(shared sovereignty)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17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조약은 1997년 채택되어 2014년 발효된 ‘국제수로의 비항행적 사용의 법(法)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Law of the Non-navigational Uses of International Watercourses: 이하, ‘1997년 협약’)이다. 1997년 협약 제5조 제1항은 “하안국은 자신의 영토에서 국제수로를 형평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용해야 한다. …”고 규정하면서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을 명백히 언급한다. 이어서 1997년 협약 제6조 제1항은 이와 같은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을 달성하기 위해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를 열거한다. 예를 들어, 지리적 요소, 사회적 및 경제적 필요, 수로에 의존하고 있는 인구, 일방 하안국의 수자원 이용이 타방 하안국에 미치는 영향 등이 열거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 역시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에티오피아와 이집트가 최소한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을 나일 강의 이용과 관련하여 그 전제로 삼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인지 여부는 지리적 요소, 사회적 및 경제적 필요, 수로에 의존하고 있는 인구, 일방 하안국의 수자원 이용이 타방 하안국에 미치는 영향 등 모두를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하므로 아직까지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양국 간 수자원 분쟁은 이러한 요소 모두를 적절히 고려한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양국은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을 선언적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3) 유의미한 손해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

1997년 협약은 물론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도 유의미한 손해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유의미한 손해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보다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이 더 ‘우선적인’ 원칙이라는 주장이 있어 왔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상류국의 수자원 이용이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과 양립하기만 한다면 상류국이 하류국에 손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하류국은 유의미한 손해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 좀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18 쉽게 말해, 에티오피아는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에 그러나 이집트는 유의미한 손해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 방점을 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997년 협약 제7조 제2항은 “다른 하안국에 유의미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그러한 손해를 발생시킨 하안국은 … 제5조와 제6조를 적절히 고려하여 … 그러한 손해를 제거하거나 경감하도록 …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내용은 유의미한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한다. 다만 그러한 경우 유의미한 손해를 발생시킨 하안국, 예를 들어 상류국은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다했을 때에만 자신의 행동이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19 이는 에티오피아가 그랜드 르네상스 댐을 건설하고 운용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이집트의 우려가 국제법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상류국의 의무

1997년 협약 제28조 제2항 및 제3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2. 하안국은 지체 없이 이용 가능한 가장 신속한 수단을 통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국가(들) 그리고 권한 있는 국제기구(들)에게 자신의 영토 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비상사태를 통보해야 한다.

3. 자신의 영토 내에 그 기원을 두고 비상사태가 발생한 경우 그 하안국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가(들) 그리고 적절한 경우 권한 있는 국제기구(들)와 협력하여 비상사태의 유해한 효과를 방지하고 경감하며 제거하기 위한 상황이 필요로 하는 모든 실행 가능한 조치를 즉시 취해야 한다.”

자신의 영토 내에서 ‘비상사태’(emergency), 예를 들어 홍수 등이 발생하여 하류국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경우 상류국은 하류국에 그 비상사태를 통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비상사태의 유해한 효과를 방지하고 경감하며 제거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실행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따라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발생한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는 이러한 통보 의무 또는 비상사태의 유해한 효과를 방지하고 경감하며 제거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실행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 등과 양립하지 않는다고 보인다.

물론 북한이 1997년 협약 당사국이 아니므로 북한이 1997년 협약 제28조를 직접적으로 위반했다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997년 협약 제28조에 언급된 내용 중 특히 통보 의무는 국가(들)가 자신의 관할권 또는 통제 내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다른 국가(들) 또는 국가관할권 한계를 넘는 지역의 환경에 손해를 야기하지 않을 것을 보장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원칙의 적용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원칙은 이미 1941년 Trail Smelter 사건20에서 중재재판소가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 또는 그 (다른) 국가 내의 사람 또는 재산에 침해를 야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토를 사용하거나 그러한 사용을 허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내용21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북한의 국가성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북한이 자신의 (주권이 아닌) ‘관할권’ 내의 활동, 즉 황강 댐 무단 방류를 통해 자신의 관할권 한계를 넘는 지역인 한국에 손해를 야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북한이 국제(관습)법상 주요 원칙을 위반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림2
[황강댐의 위치,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60706051700060]

 

4.  나가며: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책

에티오피아와 이집트 간 수자원 분쟁이 위에서 언급한 2015년 3국 간 원칙 선언 합의로 해결되지 않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현재 이집트는 에티오피아 그리고 수단과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그랜드 르네상스 댐의 운용을 규율하고자 한다. 특히 이집트는 이 조약 내에 분쟁해결 절차, 이집트에 유의미한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 등이 포함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합의로는 수자원 분쟁을 해결하기 쉽지 않고 현실적으로 상류국이 하류국에 비해 우월적인 위치를 점하고 때문이다.

2009년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로 인해 인명사고가 발생한 이후 (비록 2009년 10월 남북이 임진강 수해방지 관련 실무회담에서 황강 댐 방류 시 사전 통보 문제에 합의하기는 했으나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한국 내에서도 북한과 ‘임진강의 공동 이용에 관한 합의서’ 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22 그러나 이러한 합의서가 체결된다 하더라도 이 합의서의 법적 구속력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법적 구속력 여부를 떠나 어떤 합의서가 체결된다 하더라도 북한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대응책 중 하나를 모색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 문제를 규율할 수 있는 국제적 ‘체제’(regime), 특히 동아시아적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황강 댐 무단 방류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 등으로 회부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국제사법재판소로의 회부에 대한) 북한의 동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의 체결을 통해 압록강, 두만강 등 국경하천과 묶어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 그리고 공유하천까지 포괄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수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집트가 에티오피아와의 분쟁을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조약이 포함시킬 수 있는 실효성이 담보된 분쟁해결 절차 그리고 유의미한 손해의 발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제도적 보장만으로도 국제하천 또는 국제수로의 이용은 상당한 안전판을 마련하게 된다. 동아시아에 이러한 제도적 보장을 구축하자는 말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적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조약 내에 댐 건설과 같은 북한에 대한 지원 문제를 포함한다면 북한도 이러한 조약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를 규율하기 위해 ‘법적 구속력’을 명시한 남북 간 합의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법적 구속력이 명시된다 하여 북한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철저히 방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법적 구속력을 명시한 남북 간 합의서는 중재재판소 등 분쟁해결 절차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의 북한의 통보 의무 등을 명시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 없이 단순히 형평하고 합리적인 이용 원칙 또는 유의미한 손해를 발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 등을 열거하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한 합의서 체결로 귀결될 뿐이다. 다만 한국 정부 입장에서 (댐 건설과 같은 지원 문제를 약속하지 않는 한) 북한이 법적 구속력을 명시한 남북 간 합의서를 체결하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국제수로를 규율하는 동아시아적 체제 구축 또는 분쟁해결 절차를 명시한 법적 구속력 있는 남북 간 합의서 체결로도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 재발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체제 구축 또는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서 도출은 북한의 황강 댐 무단 방류 재발을 ‘국제위법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후 협상 등에서 한국이 우월적인 지위에 설 수 있는 대응책이라 판단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