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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정책에는 항상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가 따른다. 위기 시에 동맹국이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방기의 걱정이고, 동맹국의 일로 인해 원하지 않은 사안에 국력을 소모할 수 있다 것이 연루의 걱정이다. 특히 동맹국 간의 관계가 비대칭적일 때, 다시 말해 어느 한 나라에 의존하는 동맹이 형성될 경우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는 더욱 커진다. 어느 일방이 사안을 주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터키는 시리아에 있는 쿠르드족에 대한 폭격을 개시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시리아 내전에서 자기편이 되어준 쿠르드족을 보호하지 않고 철군을 결정했다.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려 미군의 인명 피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과도한 연루를 걱정했고, 그 결과로서 쿠르드족은 방기돼 버렸다.

쿠르드족 입장에서는 화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국의 선택이 전략적으로 잘못된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승부를 내기가 어려워졌다. 미국이 이라크의 생존과 관련해서 걱정했던 이슬람국가(IS) 문제도 정리가 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동맹국인 터키를 버리기 어렵다. 중동지역을 보호하거나 견제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터키 내 미군 기지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지구촌 반대편의 이 슬픈 상황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반도에서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우리 일이다. 물론 아직도 한·미동맹은 매우 견고해 보인다. 주한미군이 안정적으로 주둔하고 있고, 한·미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빛 샐 틈 없는 동맹이니 동북아 안보의 중심축이니 하는 멋진 말들이 재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와 우리 정부의 ‘북한우선주의’가 맞물려 적지 않은 이견이 만들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적 성향은 한·미동맹에 부담을 주고 있다. 미군이 쿠르드족을 버리고 철수할 수 있는 것처럼, 북한과의 잘못된 거래가 이루어질 경우 주한미군 철수도 예측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동맹을 돈 문제로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미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위축되고 있고,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압박은 동맹을 멍들게 하고 있다. 더욱 불편한 진실은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한국 국민의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동맹을 지지해 온 국민 사이에서도 이제는 한국이 독자적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미국도 눈여겨봐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상 핵 억제력이 없는 우리는 한·미동맹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우리의 국익을 위해 잘 관리된 동맹이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북한의 모호한 비핵화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미국과 대화를 주선했다. 그 결과 북한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도 핵을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협상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 자칫 북핵을 묵인하는 잘못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방위비 분담 협상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증액을 해서라도 다년 계약으로 묶었어야 했다. 하지만 1년 계약을 선택해서 또다시 동맹을 시험에 들게 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쿠르드족의 비극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쿠르드족과 다르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고, 비록 재래식 전력에 국한되지만 첨단 군사력을 갖춘 나라다. 미국으로서는 버리기 아까운 동맹 파트너다. 이러한 매력을 잘 활용해서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미국을 한반도에 안정적으로 묶어두어야 한다.

국익에 기반한 정책 조율도 강화해야 한다. 불법적인 핵 개발을 하고 있는 북한이 핵을 내려놓는 변화를 선택해야지 우리나 미국이 먼저 양보해서는 안 된다. 방위비 분담금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수준에서 부담하며,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닌 공동의 위협과 가치에서 동맹의 결속력을 재확인해야 한다. 70년 가까이 이어온 한·미동맹을 흔들리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첩경이다.

 

* 본 글은 10월 16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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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