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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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란 핵협정(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탈퇴를 선언했고 8월 이란 제재를 복원했다. 2015년 주요 6개국(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과 이란이 어렵게 이룬 다자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8월 제재는 1단계로서 이란의 달러 매입, 귀금속∙광물 매매, 자동차∙비행기 부품 거래를 금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가 재개된 날 트위터에서 “이란과 사업하는 어느 누구도 미국과 사업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단계 제재부터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해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개인도 대상으로 삼고 있다.

11월에 시작되는 2단계 제재는 에너지와 금융 부문으로 확대되면서 이란산 원유∙석유제품, 리알화∙외환, 해운∙조선 관련 거래를 모두 금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에 진출한 유럽 회사들은 철수하기 시작했고 국제 유가가 들썩이고 있다. 이미 최악의 위기로 치달은 이란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란의 실세인 울라마-혁명수비대 강경 보수연합은 미국에게 거세게 항의하며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까지 성직자 체제 수호세력의 군사조직 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을 발판으로 역내 헤게모니를 확장해왔다. 그러나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예멘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넓혀가던 강경 보수연합은 일련의 팽창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보수연합의 국내 핵심 지지세력이 등을 돌리며 분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지방 보수층은 민생 파탄을 인재로 보며 대대적인 반체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란의 강경 보수연합은 국내 여론의 악화로 역내 헤게모니 강화가 아닌 체재 단속에 집중할 것이다. 미국에 대한 전쟁 불사 위협도 수사에 그칠 것이다. 대신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형성된 이란-중국-터키-카타르의 반미연합을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역내 영향력을 이어가려 할 것이다.

 

1.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파기: 국내 스캔들 돌파는 대외정책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을 “끔직하게 일방적인 합의”라고 표현했다. 이란의 핵개발 활동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뿐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란은 핵협정의 약속대로 우라늄 농축시설의 규모를 줄였고 IAEA의 사찰을 받아왔다. IAEA는 이란의 핵합의 준수를 확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핵협정 자체가 문제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핵협정 체결 이후에도 이란은 탄도 미사일 실험과 역내 테러지원을 계속하며 군사시설 사찰을 거부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미국은 핵협정의 만료 시한인 2025년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2015년 이란 핵협정은 오바마 행정부 시기 체결됐다.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을 내세운 오바마 행정부는 역사적인 핵합의를 통해 이란의 온건 개혁파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실세 울라마-혁명수비대 강경 보수연합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듯 했다. 핵합의 성사 후 치러진 첫 선거에서 로하니 대통령이 이끄는 온건 개혁파가 대도시에서 약진했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와 전문가의회 선거에서 보수연합 소속 정치 거물들은 대거 탈락했고 온건 개혁파 후보들이 최대 격전지인 테헤란을 석권했다. 도시 중산층과 청년, 여성 유권자가 제재 해제를 이뤄낸 온건 개혁파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찔렸다.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 격퇴전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아사드 독재정권의 거취가 아닌 ISIS 축출에 우선 순위를 두면서였다. 2017년 중반 시리아 내전에서 대치했던 나라들이 공동으로 ISIS를 압박하면서 아사드 정권의 내구성은 점차 강해졌다. ISIS 격퇴에 우선 순위를 둔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로 자국 민간인을 수 차례 공격해도 군사적 대응을 삼갔다. 이후 시리아 반군은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

결국 ISIS가 퇴각한 후 아사드 정권이 시리아 내전의 승자로 떠올랐다. 이란과 러시아의 도움이 컸다. 특히 이란 혁명수비대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출신 민병대를 전두지휘하며 전투현장을 지켰다. 이후 이웃 레바논, 이라크, 예멘으로 빠르게 진출해 영향력을 확산시키며 역내 질서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주도의 이란 핵협정 덕분에 이란 내 온건 개혁파가 힘을 얻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후 미국이 아사드 정권이 아닌 ISIS 축출을 선택하면서 이란의 강경 보수연합은 역내 헤게모니 확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2016년 파격적인 대선공약에서 이란 핵협정 탈퇴를 주장했다. 당선 이후 핵협정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갔다. 집착에 가까운 오바마 지우기의 방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와 동맹국의 반대가 거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협정 탈퇴를 강행한 것은 국내 스캔들 정국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였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게이트 의혹은 커져가고 성추문과 불법 선거자금 스캔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핵심 지지층 백인 복음주의자의 결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의회의 견제가 덜한 대외정책 분야는 대통령 개인 의지를 밀어붙이기에 수월하다. 5월에 단행한 이스라엘 주재 미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도 같은 맥락이다.

 

2. 이란 강경파의 핵심 지지층 분열: 국내 반체제 시위의 확산과 역내 팽창정책의 약화

온건파 이란 정부는 2015년 핵합의를 함께 이뤘던 5개국과 공조해 미국의 핵협정 탈퇴에 맞서겠다고 했다. 권력의 핵심 강경 보수연합은 더욱 거세게 반응했다.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전쟁 불사를 선언했다. 아랍 산유왕정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야만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 실제로 7월 말 예멘 내전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은 이란 인근 해협을 지나는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8월 중순 혁명수비대는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일대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며 신형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기도 했다. 곧 새 전투기를 선보이겠다고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란 강경파는 더 이상 군사행동이나 무력시위에 적극 기댈 수 없을 것이다. 작년 말부터 전국으로 확산된 반체제 시위를 강경 보수연합의 오랜 지지세력인 지방 보수층이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의 발생지도 여느 때와 달리 테헤란이 아닌 시아파 성지가 있는 마슈하드였다. 보수연합의 거점인 동북부 지역에서 보수색채가 가장 짙은 도시이다. 마슈하드에서 시작된 반체제 시위는 지방 소도시들로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시위는 물·전력 부족, 임금 체불, 리알화 가치 폭락과 물가 폭등에 대한 항의로 시작됐다. 8월 초 부활한 미국의 1단계 제재에 이어 11월 2단계 제재가 시작되면 이란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민생고 시위 역시 갈수록 확산될 수 밖에 없다.

시위대는 성직자 통치체제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무능을 경제 파탄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민생고를 체제 수호세력에 의한 인재로 보는 것이다. 시위대의 구호도 체제 자체를 겨냥하며 전례 없이 파격적이다. “독재자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이슬람 공화국에게 몰락을,” “트럼프가 아니라 이란 체제가 문제다,” “팔레비 시절이 그립다,” “이슬람은 아랍에게나 돌려줘라,” “시리아, 레바논, 가자 지구가 아닌 국내 민생을 챙겨라”며 최고종교지도자와 강경파를 직접 공격하고 있다.

실제로 혁명수비대가 ISIS 격퇴전,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에 깊숙이 개입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 동안 국내 경제는 피폐해졌다. 지난 7년간 시리아에 쓴 돈만 3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라마-혁명수비대 강경 보수연합은 재계의 큰손이다. 여러 종교재단은 민영은행 전체 지분의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혁명수비대가 운영하는 건설∙자재 회사들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종교단체란 이유로 세금면제 혜택도 받고 있다. 혁명수비대 소유의 숱한 회사들은 자립경제를 내세운 수입대체산업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서 2015년 이란 핵협정 체결 이후 활성화된 개혁개방과 민영화 정책을 격렬히 반대하기도 했다.

물론 3년전 역사적인 핵합의 이후 실질적인 변화가 기대에 못 미치자 시민들의 상실감은 분노로 폭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 소도시 보수층과 저소득층의 격한 여론은 최악의 경제 위기를 이슬람 공화국 시스템의 실패로 보고 있다. 대도시는 온건 개혁파를 지지하는 중산층과 젊은 세대, 여성 유권자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무대였다. 반면 지방 소도시는 지금껏 체제 지지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따라서 최근 지방 보수층이 보여주는 정치적 일탈과 분열상은 보수연합에게 커다란 충격이자 압박이다.

이란처럼 제한적이나마 선거가 실시되는 나라에서는 권력의 실세라 할지라도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최고종교지도자 하메네이와 강경파는 체제 수호와 권력 유지를 위해 유권자의 공익 확대를 고려해야만 한다. 강경 보수연합은 사탄의 제국 미국을 맹비난하며 사회정의 실현을 앞세우고 있다. 저항경제로의 복귀도 연일 강조한다. 핵합의를 성사시킨 온건 개혁파에게는 제재 부활에 대한 책임을 묻고 압박했다. 국가지도자운영위원회는 로하니 정부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고 혁명수비대 역시 온건 개혁파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4월 당국은 환율 단일화 정책을 강행해 이를 지키지 않은 사설 사업소들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으나 오히려 불안감이 급증하자 3개월 만에 취소했다. 7월 리알화 가치는 70% 이상 떨어졌고 기본 식료품 가격이 50% 이상 올랐으며 청년 실업이 40%에 달했다. 미국의 제재 복원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었다. 반체제 민생고 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자 7월 테헤란의 전통시장 바자르가 시위 통제의 일환으로 폐쇄됐다. 여름 내내 농촌을 강타한 극심한 가뭄으로 소도시 시위가 계속되자 당국은 시위를 진압하는 동시에 혁명수비대 인력을 긴급 투여해 노후 된 수로 시설을 정비했다. 결국 8월 초 미국의 제재가 부활하자 하메네이는 내부에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결탁한 경제사범이 있다며 엄벌을 지시했다. 외환 위기의 책임을 지고 중앙은행 총재가 경질됐고 고위 공무원과 은행 간부 60여명이 부패혐의로 체포됐다. 11월에 시작되는 미국의 2단계 제재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이란 경제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최근 이란 내 반체제 시위의 규모는 1979년 친미 권위주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이슬람혁명 이래 최대이다. 정의 실현과 저항경제의 구호로 불만을 달랠 수 있는 시기는 한참 지났다. 현재로선 강경 유혈진압의 비용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협상 제안을 수락하는 것 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강경 보수연합은 우선 체제 단속을 위해 파죽지세의 역내 팽창정책을 멈출 수 밖에 없다.

 

3. 이란 국내 정치의 변화에 따른 중동 역학관계 변화: 이란중국터키카타르의 반미연합 결성과 뒤에서 지원하는 이란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제재 복원 직후 유엔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회원국에게 이란 핵협정 유지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이란 내 인도적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과 EU는 이란에게 유럽 대기업의 철수로 인한 손실 보상을 약속했다. 또한 이란과 거래를 이어가는 유럽 중소기업에 대해선 적극적인 지원 보장을 발표했다.

2015년 핵협정 체결 이후 이란에 진출한 20여 유럽 대기업은 줄지어 사업을 포기하고 있다. 미국 제재의 ‘세컨더리 보이콧’ 규정에 따라 이들 기업의 미국 내 계좌 동결과 미국 금융시스템에 접근 불가라는 피해 때문이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은 20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 국영석유회사의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 개발 사업을 포기했다. 프랑스 에어버스사도 이란과 맺은 제트 항공기 100대 판매 계약을 취소했다. 독일의 경우 자동차 기업 다임러, 전기전자 기업 지멘스에 이어 국영철도회사 도이체반, 통신사 도이체 텔레콤도 이란 철수를 결정했다.

이미 미국과 무역전쟁 중인 중국과 터키는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을 비난했다. 카타르는 미국과 관계 악화로 경제 위기에 처한 터키를 돕겠다고 나섰다. 이란 원유 수출량의 1/4이상을 수입하는 중국은 이란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국영석유회사 CNPC는 프랑스 기업 토탈이 포기한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 개발 사업의 50% 지분을 바로 사들였다. 이로써 중국은 세계 최대로 알려진 이란 가스전 개발 지분의 80% 이상을 확보하게 됐다. 2011년 미국과 국제사회가 고강도 이란 제재를 시작했을 때에도 중국은 값싼 이란산 원유와 이란 내 개발 사업권을 독점했다. 이번 제재에선 실리뿐만 아니라 다자 합의 지지라는 명분까지도 챙기게 됐다.

터키는 이란산 천연가스 수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터키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겨냥한 쿠데타의 배후로 재미 종교학자 귤렌(Fethullah Gülen)을 지목했으나 미국은 증거 불충분으로 소환을 거부했다. 올해 8월 미국은 터키에 억류 중인 미국인 목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터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2배 올렸다. 브런슨(Andrew Brunson)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인 복음주의 교단 소속이며 터키 쿠데타 발발 후 체포 구금됐다. 미국의 관세폭탄으로 리라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터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강등했다.

카타르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한 터키를 위해 150억 달러 규모의 직접 투자와 양국 간의 스와프 협정을 발표했다. 천연가스, 금융,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협력도 강화하겠다며 두 나라의 우의를 과시했다. 셰이크 타밈 카타르 군주는 아랍 산유 왕정들이 집단적으로 추구해온 전통적 친서방 노선에서 벗어나 이란, 터키와 밀착행보를 보여왔다. ISIS 격퇴전과 시리아 내전을 거치며 이란의 헤게모니가 부상한 시기와 맞물린다. 개인권력 집중체제를 공고히 해온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역시 비자유주의 외교 노선으로 선회해 이란, 러시아, 중국과 부쩍 가까워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미국의 이란 압박, 이란 내 반체제 시위 확산, 이란-중국-터키-카타르 연대 강화를 주시하고 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헤게모니 강화를 최대의 안보 위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이란이 승전국으로 부상하자 수니파 아랍 산유왕정들의 위기감은 증폭했다. 예멘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간의 대립이 더욱 격해지는 까닭이다. 5월 레바논 총선에서 이란 강경파의 지원을 받는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승리했다는 점도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에겐 불안 요소이다. 이스라엘 역시 이란의 시리아 내 군사기지 건설을 비롯한 영향력 확대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편 시아파 다수국가 이라크는 수니-시아-미국 갈등에서 균형을 찾는 중이다. 이라크는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지만 이웃 이란과 활발한 교역을 해오고 있다. 최근 이란 강경파의 영향력이 이라크 국내 정치 안으로 빠르게 확산되자 시민들은 독자적인 리더십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5월 총선에서 제 3의 인물인 시아파 성직자 알사드르(Muqtada al-Sadr)가 부상한 것은 이러한 민심의 반영이다. 라이벌 정파들 사이에서도 이라크 내부 권력지형이 외부 갈등구도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합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 부활과 함께 중국, 터키, 카타르에 크게 기대고 있다. 경제적 이유는 물론 역내 영향력 관리 때문이다. 이란의 강경 보수연합은 전례 없는 규모의 반체제 시위가 이어지면서 집안 단속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정치의 변화로 인해 대외정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다행히 중국-터키-카타르의 반미연합이 결성되면서 이란은 이들 연대를 후원하는 방식으로나마 지금껏 공들인 역내 헤게모니 확장정책을 관리하고자 한다.

 

4.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 이후 중동 정세 변화에 따른 우리의 경제외교안보 전망

이란에 진출한 유럽, 일본 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 기업 역시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에 따른 타격을 받고 있다. 6월 이란은 자금조달 문제를 들어 대림산업이 수주한 이스파한 정유공장 시설개선 공사계약을 해지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한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 생산시설 확장공사, SK건설이 수주한 타브리즈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도 멈춘 상태이다. 포스코는 제철소 건설을 포기하고 현지 사무소를 닫았다. 한국가스공사 수주의 대형 프로젝트가 무산됐고 한국전력공사의 현지 지사도 철수했다. 11월 2단계 제재가 시작되면 2500여 중소기업의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할 것이다.

우리는 2012년 이란 제재 당시처럼 미국에 예외국 인정과 원화결제계좌 사용을 신청해놓았지만 전망은 어둡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제재 복원을 강행한 만큼 제재 효과에 대한 압박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9월 초 일본의 예외국 인정 신청에 거절통보를 보냈고 일본은 이란산 원유 수입의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우리는 이란산 원유 수입의 규모를 작년 13%에서 올해 7월 10% 이하로 줄였고 8월에는 0으로 떨어뜨렸다.

대체 수입선으로 미국산 원유가 떠오르고 있다. 11월 우리의 미국산 원유 수입 규모는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와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잠시 맞아떨어진 탓이다. 중국과 인도에 이어 3번째로 이란산 원유를 많이 수입해온 우리는 미국의 이란 제재 정국을 피해가기 어렵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중국을 대체할 경제협력 파트너와 수출선을 찾아야 한다. 다만 우리 정유시설은 미국산보다 이란산 초경질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미국산 원유 수입의 증가는 그만큼 정제 비용이 따른다.

우리와 이란 사이의 원화결제계좌가 동결되면 우리 기업의 수출∙공사 대금 지급이 전면 중단된다. 그나마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제재 불이행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낮아서 이란과 사업을 지속할 유연성이 조금 높다고 한다. 중소기업에겐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차단이라는 처벌이 바로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이란 제재 시기의 경험에 비춰보면 중소기업들 역시 미국의 제재 동참 압박과 무관용 원칙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번에도 이란 거래처 대부분을 잃게 될 것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에 따른 중동 정세의 변화 속 우리의 외교안보 전망은 경제 부문보다는 조금 밝다. 이란의 강경 보수연합이 국내 지지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대외 팽창정책의 속도를 줄인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 국제사회는 그간 이란 혁명수비대와 북한 정권 사이의 핵기술 협력을 우려해왔다.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 지구 내 친이란 강경세력 역시 북한과 활발한 무기거래를 해온 걸로 유명하다. 이란 강경 보수연합은 당분간 유권자와 여론, 체제 단속에 신경 써야 하는 만큼 북한과의 거래나 헤게모니 확장정책을 자제할 것이다. 미국을 굳이 자극할 필요도 없다.

물론 중국이 주도하고 이란이 지원하는 반미연대에 터키와 카타르까지 가세해 결속을 다지는 것은 우려된다. 북한이 의지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북한의 비핵화 스케줄이 더욱 독단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개발협력과 무기거래 파트너들을 잃고 있다. 이란 강경파가 대외활동을 자제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핵협정 탈퇴와 대이란 고강도 압박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란 내 압도적 여론은 이란 당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 강경 보수연합이 성직자 통치체제 수호를 위해 역내 무력팽창에 제동을 걸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