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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로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국민의 안보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오는 8월 예정이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과 해병대 야외기동훈련(KMEP) 등 연합훈련은 물론 한국군 단독의 태극연습도 중단됐다. 이런 추세라면 오는 10월 실시 예정인 연합 해군 기동훈련과 11∼12월로 예정된 공군 기동훈련도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태의 배경에는 북한이 느끼는 안보 위협이 해소돼야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이 체제 위협 때문에 핵을 개발했다는 이 논리는 ‘핵 개발은 외부의 위협에 대한 억제 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2004년 11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북한이 체제 위협 요인으로 지목한 군사훈련을 중단함으로써 핵 보유 동기를 없애고 비핵화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핵 포기를 미끼로 한·미 동맹을 와해시키려는 북한의 집요한 ‘비핵화 전략’에 말려드는 패착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안전 보장 요구를 하나둘 들어주다 보면 한·미 동맹은 결국 해체 절차를 밟게 될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핵 개발 포기를 미끼로 한·미 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추진해 왔다.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란 이름으로 시작된 이 전략은 이후 한반도 비핵화, 적대정책 해소, 체제 보장, 안전 보장 등을 구실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진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일방적으로 양보하면서 북한의 요구를 들어줬다. 1991년 한국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한 것은 물론 1993년 미·북 고위급회담 이후 모든 합의에 핵을 포함한 무력으로 북한을 위협하거나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았다.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안전 보장을 약속하는 서신을 보냈고, 트럼프는 김정은 정권의 보장은 물론 한국식 경제개발 지원 의사도 밝혔다.

적대국의 핵무력을 없애기 위해 재래식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지구상에 핵무기가 출현한 이래 전례가 없는 일이다. 북한의 가시적인 핵 폐기 움직임도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훈련 중단은 설상가상이다. 한·미가 지난 28년간 추진해온 비핵화 외교가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가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북한의 핵 독점 시대에 사는 한국의 경우 재래식 전력이라도 시급하게 강화해야 할 형편이다. 핵이 폐기된다고 해서 북한의 대남 위협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군대가 평시에 훈련하는 것은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과 같은데, 훈련하지 않는 군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전쟁놀이(war game)’라면서 도발적이고 값비싼 훈련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미군 통수권자가 한·미 훈련을 도발적인 게임으로 묘사한 것은 그동안 훈련에 종사해 온 양국 군인들에 대한 모욕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한국을 지키기 위한 방어훈련이며, 해마다 북한을 포함한 여러 나라를 초청해서 방어훈련임을 입증해 왔다.

물론 현 사태를 동맹 해체의 징조로 보는 건 시기상조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의지를 미국의 관료 집단이 좌절시켰듯이, 미국을 움직이는 건전한 시스템이 작동할 것으로 믿는다. 정부는 트럼프 개인의 상궤를 벗어난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안보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06월 26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객원연구위원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