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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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올해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에 불참했다. 이번 불참은 단순히 미국의 재정문제 누적에 따라 행정부 기능 일부 정지 등 순수한 국내 적 문제로 인한 불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좀 더 확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정상회의와 외교는 실질 논의 내용(sub- stance) 뿐만 아니라 형식과 참여(presence)가 똑같이 중요하다. 미국 대통령의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은 상징적 중요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주목 받는 사항이다. EAS 참여국, 특히 동남아 국가들의 관점에서 이번 불참은 미국의 아시아 피정책이 지금까지 보여 준 일관되지 못한 모습들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최근 미국이 아시아 피정책과 관련 하여 단호한 모습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중국은 다시 동남아 방면에서 미국의 아시아 피 이전의 입지를 회복해가고 있다. 그 결과로 미국의 아시아 피정책이 많이 약화되었거나 아니면 더 이상 미국의 아시아 피정책은 적어도 동남아 지역에서는 의 미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 아시아 피정책은 특히 동남아 방면에서 지금 매우 중요한 고비(critical juncture)를 맞고 있다. 비단 동남아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은 동북아 지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미국에 대한 신뢰에 손상을 줄 수 있다. 또한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피봇과 중국의 부상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위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바마 2기와 케리 국무장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기는 미국의 아시아 피정책에 대한 의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의문의 핵심에는 새로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존 케리(John Kerry)가 있었다. 미국 외교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수장이 케리로 바뀌면서 그가 상대적으로 아시아를 잘 알지 못하고 중동 지역 문제에 보다 관심이 많다는 관측들이 나왔다. 더불어 조심스럽게 미국의 대 아시아 피정책이 2기에서도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다. 의회 청문회에서 케리 장관은“(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군사적 투입 증가가 그렇게 중요 한지 아직 확신이 없다 …… (장관 취임 후)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아시아 피봇에 대해 약간 유보적 입장을 취한 바 있다. 또한 취임 세달 만에 중동 지역을 세 번 방문하는 등 아시아 지역보다는 중동 지역과 접촉면 확장에 주력했다.1

미국의 아시아 피정책에 대한 의문은 케리 현 국무장관과 전임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이 비교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오바마가 취임 초기 태평양 대통령을 선언하고 적극적 다자주의를 천명하면서 어느 정도 아시아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예상되기는 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를 행동에 옮긴 사람은 다름 아닌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었다. 클린턴은 이전에 국무장관들이 잘 참석하지 않았던 아세안 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아가 남중국해 문 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면서 아시아 지역에 대한 군사적 관여를 촉발했다. 또한 그의 임 기 중에 동남아 국가들이 오랫동안 요구했던 동남아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TAC)에 서명을 하면서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제도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기반을 놓았다. 결국 2011년 미국은 러시아와 함께 EAS에 가입 신청을 했고, 2012년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EAS에 참여하였다.

클린턴 전 장관의 아시아 중시를 가장 함축적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은 2011년 Foreign Policy에 기고한“미국의 태평양 세기(America’s Pacific Century)”라는 글이다. 여기서 클린턴 장관은“미국의 다음 10년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외교적, 경제적, 전략적, 그리고 다른 모든 방면에서) 확고하게 투자를 증진시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2

클린턴 전임 국무장관의 적극적 대 아시아 행보에 비추어 볼 때, 케리 국무장관의 대 아시아 정책이나 행보가 클린턴 장관을 넘어설 정도로 강력하지 않을 경우 쉽게 미국의 대 아시아 피정책은 그 동력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케리 국무장관의 개인적 배경이나 그의 관심사와 크게 관계없이 미국의 대 아시아 피정책은 부상한 중국에 대한 견제, 그리고 이미 지난 오바마 1기에 시작한 정책의 연속이란 측면에서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오바마 2기 출범 이후 제기된 아시아 피봇의 약화 혹은 중단 가능성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부인해왔다. 무엇보다도 오바마 대통령이 국내 경제문제로 참석하지 못한 2013년 APEC에서도 케리 국무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흔들 수 있는 것은 아 무것도 없다.”면서 미국의 아시아 피정책을 재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3

그러나 이런 말로 하는 재확인과 다르게 케리 장관 취임 이후 중동 정세는 중동 문제로 인해서 미국의 아시아 피봇이 약화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 되었다. 오바마 1기의 대 아시아 피정책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의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실제로 전쟁 종료가 선언되면서 크게 힘을 얻었다. 다시 말해 이 지역 에 투입되었던 군사력과 재원이 아시아 지역으로 재투입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오바마2기는 이 전쟁과 별도로‘아랍의 봄’이 가져온 결과들이 그리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는 새로운 변수에 직면하게 되었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장기화 되면서 아사 드 정권에 의한 민간인 공격, 무엇보다 민간인에 대한 화학무기 사용은 국제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런 상황을 종료하기 위해서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카드 를 검토한 바 있다. 또한 이집트에서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 것도 미국의 대 중동 관심을 강화시키고, 아시아 피정책에 대한 의지를 약화시키는 강력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4

물론 미국이 시리아와 이집트에 직접 개입한 바는 없으므로 자원의 분산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관심의 분산이라 는 측면에서 중동 상황은 아시아 피정책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5

일반적으로 미국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이 과거부터 아시아 보다는 중동에 큰 관심을 두어왔음을 상기하면 중동에서 약간의 상황 변화도 쉽게 이 엘리트들의 아시아에 대한 관 심을 잠식할 수 있다. 결국 미국 정부와 케리 국무장관이 아시아 피봇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 의지가 그대로 정책으로 투입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더욱이 케리가 중동에 보다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과 중동 지역 상황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미국의 아시아 피봇에 대한 의문은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중국과 남중국해 문제

미국의 아시아 피봇을 평가할 때 미국 변수뿐만 아니라 반대편에 서 있는 중국이 또 다른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은 두 가지 큰 축을 가지고 진행되어 왔다.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파트너십(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이라는 자유 무역 논의가 주가 되어 왔다. 안보 차원에서는 역시 피봇의 핵심에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이 있다. 2009년 이후 남중국해에서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아세안 일부 국가들이 마찰을 일으키는 틈을 타서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외치며 군사적으로 동 남아 국가들과 관여를 강화해왔다.

적어도 2000년대 중반까지 중국은 동남아 방면으로 비교적 효과적인 전략을 펼쳐왔다. 한때 중국은 동남아 지역에 공산주의를 수출하려는 의도를 가진 안보 위협으로 인식되 었다. 냉전기간을 지배하던 이런 인식은 냉전이 끝나고 중국이 전략적으로 동남아 국가 들에 접근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1990년대 중국은 ARF 등 다양한 지역 다자 무대 에서 동남아 국가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했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시에 중국 경제는 동남아 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을 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동남아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우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침 빠르게 성장 하던 중국 경제는 동남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인식되었다. 중국은 더 나아가 2000년대 아세안과 FTA를 추진하는 동시에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여 동남아 후진국 중심으로 철도, 도로, 항만,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데 큰 지원을 했다. 이런 중국의 노력은 아세안 국가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주장해온 아세안 연계성 (ASEAN Connectivity) 증진 노력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동남아에서 중국의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00년대 후반 중국의 자기주장 강화, 특히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 격화로 인해서 동남아 국가들은 갑작스럽고 눈에 보이는 안보 위협을 중국 으로부터 느끼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클린턴 국무장관은 ARF 등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적극 제기하며 동남아 국가들과의 군사협력을 촉진시켰다. 동남아 방면에서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은 이런 동남아 국가들의 현재적인 안보 불안에 대한 하나의 대책으로, 더 나아가 글로벌 차원의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 대한 효과적 균형 전략으로 인식되어 환영을 받았다.

최근 이런 안보 차원의 미국의 대 아시아, 대 동남아 피봇이 중국에 의해서 흔들리는 상 황이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입장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가 쉽게 해결될 사항은 아니며, 군사력으로도 중국을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남중국해 문제의 최선의 해결책은 당분간 조용한 관리임을 알고 있다.6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양자적 영유권 문제 해결을 주장하지만, 이 주장이 그리 현실적인 대안이 아님은 알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동남아 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경제성장이나 국제 관계에서 중국 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중국과 동남아 관계가 남중국해 문제로 인해 악화되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중국은 최근 1년 넘게 동남아 국가에 대한 관여를 다시 강화하면서 남중국해 문 제를 관리하는 데 꽤나 신경을 쓰고 있다. 2013년 초 대만과 필리핀 간의 남중국해에서 충돌을 제외하고 중국과 동남아 국가 간 남중국해에서 심각한 충돌상황이 노출되고 있지 않다. 중국은 2013년 3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고 왕이(Wang Yi) 외교장관이 취임하면 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왕이 장관은 3월과 4월 미얀마와 필리핀을 제외한 동남아 8개국을 모두 순방했다. 4월에 개최된 19차 중-아세안고위급 협의회(China-ASEAN Senior Officials Consultation)에서는 2013년 하반기에 아세 안과 COC(Code of Conduct in the South China Sea)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선 언한 바 있다. 또한 9월 14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첫 번째 COC 관련 공식 협의회에서는 2013~2014년에 걸쳐 DOC(Declaration on the Conduct of Parties in the South China Sea) 이행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것과 함께 COC를 도출하기 위한 전문가 그룹을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 이 회의는 2014년 태국에서 다시 개최될 예정이다. 그간 COC에 관해서 공식적으로 논의하자는 아세안 국가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던 중국이 COC를 포함한 남중국해 분쟁 관리에 관해서 협의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국 입장 에서 남중국해 분쟁을 조용히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런 중국의 태도가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에 의미하는 바는 제법 크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대 동남아 군사적 관여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었던 남중국해 문제가 잦아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현존하는 위협이 어느 정도 관리가 된다면 동남아 국가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군사적 관여를 크게 환영할만한 유인은 줄어든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동남아를 크게 위협하지 않을 때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적극적으로 군사적 협력을 할 동남아 국가는 많지 않다. 이런 시나리오가 의미하는 바는 미국의 대 동남아 군사적 관여 의도가 강력하다 할지라도 남 중국해 분쟁이 잘 관리된다면 피정책의 청중(audience)인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의 군 사적 관여에 적극적으로 호응할 유인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분명 이런 식의 전개는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이 약화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관점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이 EAS 참여를 공식화하기 이전부터 미국이 EAS에 참여할 의사가 있을 때 어떤 형태로 미국을 참여시킬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해왔다. 가장 간단한 것은 기존 EAS의 멤버로 미국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매년 정상 회의에 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EAS의 정식 멤버 보다는 아세안+8의 형태나 EAS+2의 형태를 고민했다. 즉, 미국이 포함되는 회의체를 기존의 EAS나 다른 지역협 력체와 분리, 미국은 격년 혹은 3년에 한번 참여하는 두 가지 트랙을 가져감으로써 미국이 회의에 불참하는 데 따른 상징적 부담을 줄이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7 그러나 결국 미국의 대 아시아 피정책이 본격화 되면서 미국은 기존 회의체에 부가적으로 추가 되는 형태가 아니라 EAS의 정식 회원으로 포함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 정상회의에 꾸준히 참여할 수 있을 것 인가, 그럴만한 의지가 미국에게 있는가라는 점이 동남아 국가들의 관심 혹은 우려 사항 이었다는 점이다. EAS에 미국이 포함되었지만, 국내 사정이나 다른 사정에 의해서 자주 불참 할 경우 아세안이 주도하는 EAS의 중요성을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점이 그런 염려의 핵심에 있다. 자주 불참을 할 경우 차라리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EAS가 아세안 입장에서 는 보다 바람직한 것이다. 이미 동남아 국가들은 부시 정부 시절 미국의 국무장관이 ARF 에 참여하지 않는 등 미국의 대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이 일관되지 않다는 사실과 이런 비일관성이 미국에 대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각종 안보, 경제협력을 주도하는 아세안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경험한 바 있다.8

이런 일관성 문제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9 미국의 대 동남아 관여, 특히 안보 차원의 관여 가 일관된 확신을 동남아 국가들에게 주지 못한다면, 동남아 국가들의 입장에서 미국이 라는 변수는 또 하나의 불확실성일 수밖에 없다. 동남아가 가지고 있던 긴급한 안보 현 안인 남중국해 문제가 지금 중국이 추진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관리된다고 가정한다면, 신뢰를 주지 못하는 미국의 군사적 관여는 아세안 국가에게 오히려 부담이 된다. 불확실 하고 신뢰를 주지 못하는 미국과 안보 협력은 그 반대편에 놓인 중국으로부터 역풍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일관되지 않고, 확신을 주지 못하는 피봇, 군사적 관여는 동남아 국가들에게 전략적 불확실성과 부담만을 안겨줄 수 있다.

동남아의 입장에서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중국의 남중국해 문 제 관리 의지는 미국의 대 동남아 군사적 피봇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수 차례 동남아 국가들에게 미국의 아시아 피봇이 지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남아 국가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동남아 국가들은 냉전이 종료되면서 신속히 철수한 미국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 현재로는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이라는 명백한 안보 위협으로 인해서 미국의 피봇, 특히 군사적 피봇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앞서 언급한 바처럼 언제든 변화될 수 있고 일부 그런 변화의 조짐도 나타 나고 있다.

보다 장기적으로 만약 남중국해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안보 불안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 면, 그 다음에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서 가지게 되는 질문이 중요하다. 미국이 군 사적 관여를 유지할 것이라고 동남아 국가들에게 수 차례 재확인 했을 때 동남아 국가 들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경제문제로 인해 과연 군사적 관여의 지속이 가능할까라는 의문 이 많았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만약 남중국해 문제가 어느 정도 관리되고 긴급한 안보 위협이 사라졌을 때 지속적인 경제성장 문제가 다시 등 장할 것이다. 특히 동남아의 개발도상국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 국이 현재의 경제력으로 동남아 국가들이 바라는 투자, 원조, 경제협력의 요구를 맞출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등장할 수 있다. 지리적 거리로 보나 지경학적 조건으로 보나 이런 동남아 개도국의 요구에 적어도 지금으로써는 미국 보다 중국이 답을 주기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동남아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의 대 아시아 피봇, 특히 대 동남아 피봇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불리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다.

결론

이번 2013년 EAS에 오바마 대통령이 불참한 것은 미국의 국내 경제 문제 때문이다. 누적된 재정적자와 의회의 압박으로 인해 연방정부가 재정지출을 할 수 없고, 그 결과로 연방정부의 기능이 일부 마비된 상황에서 행정부 운영을 책임진 대통령의 해외 출장은 충분히 유보될 만하다. 표면적으로 이번 회의 불참은 매우 간단하고 이해할만한 사안이다.10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을 EAS에 포함할 때 고민했던 미국의 일관된 참여문제, 오바마 2기 대 피정책에 대한 의문, 그리고 중국이 최근 동남아 방면으로 취하고 있는 유화적 정책들을 모두 함께 고려해 볼 때 이번 불참은 그 의미가 크게 증폭될 수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피정책이 약화되는 것은 미-중 간 경쟁에서 최근 2~3년간 미국 우위인 듯했던 분위기의 역전을 의미한다. 미국의 피봇에 위기를 느낀 중국이 전열을 정 비하고 새롭게 동남아에 접근하고 있는 사이 미국의 피봇은 점점 일관되지 못하고, 행동 보다는 말에 그친 정책이란 인식이 확산되는 듯하다.

미국은 냉전 종료 직후 필리핀 미군기지 철수를 시작으로 동남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군 사적 존재감을 크게 줄여왔다.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더 이상 큰 비용이 드는 관여를 지속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자발적 탈관여(voluntary dis engagement)를 한 것이다. 2000년대 말에 즈음하여 시작된 미국의 재관여(re-engagement) 혹은 미국의 대 동남아 피봇은 여러 가지 정황이 맞아 들어간다면 강제된 탈 관여(forced dis-engagement)로 끝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시점에서 동남아 국가들이 가진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의문부호는 한국에게도 유사하 게 적용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행동보다는 선언과 말 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부상하는 중국이 가져오는 잠재적 안보 위협과 미국의 피정책에 대한 의구심 내지 불확실성이 동남아 국가들과 한국을 유사한 전략적 상황에 처하게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새로 신설된 한-아세안 안보대화에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가진 전략적 고민을 투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일본에 앞서 한국은 아세안과 안보협의 채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에 대해서 아세안이 어느 정도 전략 적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불확실성을 더해가는 미국의 피정책이 똑같이 한국과 아세안에 전략적 변수가 되는 상황에서 공통의 안보-전략적 이해를 위해 한국과 아세안이 협력할 수 있는 장과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이런 기회를 살려 한국과 아세안 사이에 상호 이익을 위한 전략적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 다 필요하다.

  • 1

    Howard LaFranchi. 2013.“US pivot to Asia: Is John Kerry retooling it?”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20. February.

  • 2

    Hillary Clinton. 2011.“America’s Pacific Century,”in Foreign Policy, (Available at http://www.foreignpolicy.com/articles/2011/10/11/americas_pacific_century).

  • 3

    Charlie Campbell. 2013.“At APEC, Obama’s Replacement files U.S. Flag as Best He Can”Time. 7 October.

  • 4

    중동 사태에 관해서는 Jang Ji-Hyang and Peter Lee. 2013.“Middle East Q&A: Egypt’s 2013 Coup and the Demise of Democracy”Issue Brief 61. Asa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와 Jang Ji-Hyang and Peter Lee. 2013.“Middle East Q&A: Intervening in Syria and Lessons for North Korea”Issue Brief 69. Asan Institute for Policy Studies를 참고.

  • 5

    Michael Auslin은 시리아 사례가“오바마 대통령이 (중동과 아시아라는) 두 개의 약속과 공약을 지키려고”너무 무리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이로 인해 친구와 경쟁자를 모두 잃어버릴지 모르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Michael Auslin. 2013.“Obama Pivots to Syria from Asia” Wall Street Journal 2 September.

  • 6

    이재현. 2012.“남중국해 분쟁의 이해와 향후 전망”국립외교원 주요국제문제분석. 2012-32.

  • 7

    K. Kesavapany. 2010.“ASEAN+8–A recipe for a new regional architecture”article posted in East Asia Forum 8 May.

  • 8

    Sheldon W. Simon. 2005.“U.S.-Southeast Asia: Misses and Hits”Comparative Connections Vol. 7, No. 3.

  • 9

    이미 동남아 쪽 전문가들로부터 오바마의 이번 정상회의 불참에 대해서 회의 참석 자체에 관한 일관성,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즉각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Rodolfo C. Severino. 2013.“How will Obama’s no-show be remembered?” article posted on East Asia Forum 7 October 와 Elina Noor. 2013. “Of Symbols and Substance” PacNet #76. 9 October.

  • 10

    오히려 미국 내 비판은 더 통렬하다. Ralph Cossa는 오바마 대통령의 APEC, EAS 불참과 관련, “우리가 집안단속을 잘 하지 못해”서 이 회의들에 불참했다는 점은 “미국의 쇠락이란 이미지를 더욱 강화 시킨다.” 라고 비판하고 있다. Ralph A. Cossa. 2013.“Pogo was Right!”PacNet #74. 4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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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