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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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미국, 호주, 영국이 모여 출범시킨 ‘오커스(AUKUS)’의 파장이 지속되고 있다.1 AUKUS가 불러 일으킨 논란과 반응 중에 많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반응도 중요하다. AUKUS가 호주에 대한 핵추진 잠수함 지원을 통해 역내 중국의 활동, 무엇보다 해양에서 중국의 활동을 억제하고 차단하려는 의도라면 그 무대가 되는 남중국해 지역 동남아 국가들의 반응은 중요하다. 동남아 개별 국가에 따라 AUKUS에 대한 반응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AUKUS를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AUKUS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냈다. 필리핀은 반응을 나타내는 주체 별로 입장이 다소 엇갈린다. 베트남과 싱가포르가 다소 긍정적 반응을 내기는 했지만 이 역시 완전한 환영이라 보기는 어렵다. 싱가포르 내에서도 일부 비판적 목소리가 존재한다.

AUKUS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미온적 반응 혹은 비판적 반응의 원인은 무엇일까? 동남아 국가들의 AUKUS에 대한 반응 이면에는 미국의 동남아 정책에 대한 실망감과 호주에 대한 경계심이 자리잡고 있다. 비단 AUKUS뿐 아니라 최근 전략 상황, 즉 미국 정책에서 아세안의 소외와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 약화 등이 아세안 불만의 근본 원인이다. 이런 동남아의 반응은 한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함의도 있다.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 더욱이 한국은 미국, 호주의 인도-태평양(Indo-Pacific) 전략과 신남방정책 사이의 연계점을 찾으면서 동남아 방면에 대한 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의 미국과 호주 전략에 대한 인식은 한국의 대동남아 정책,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의 협력에 중요한 함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동남아 국가들의 AUKUS에 대한 반응

 
동남아 국가들에게 중국의 부상, 중국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은 AUKUS를 추진하는 미국, 호주,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중요한 문제다. 무엇보다 베트남, 필리핀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역내 주요 해양 국가들은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오랫동안 갈등을 빚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중국의 지원을 바라고 있지만 경제적 의존이 정치적 의존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역내 대국의 부상이 제시하는 지역 및 글로벌 질서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커서 중국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

이런 동남아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우려는 반대 급부로 미국의 관여를 필요로 한다. 경제적으로 대 중국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서 미국의 대동남아 경제적 관여가 중요하다.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안보다. 냉전이 끝난 직후 더 이상 미소 냉전이나 공산주의의 위협, 전통 안보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1990년대 초 동남아 국가들은 다자안보 협력을 추진했다. 그 후 중국이 부상하면서 다시 한번 미국의 지역에 대한 안보적 관여가 중요해졌다. 남중국해 문제와 같이 동남아 안보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미국뿐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뿐만 아니라 강대국의 동남아 지역에 대한 간섭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동남아 국가들은 복수(複數)의 선택지를 놓고 이들을 경쟁시키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

AUKUS에 포함된 호주와 영국도 동남아 국가들에게 위협적 국가들이 아니라 협력할 상대들이다. 호주는 동남아 지역에 가장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 중 하나로 오랫동안 동남아 국가들과 상호작용해왔다. 특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아세안확대국방장관회의(ASEAN Defence Ministers’ Meeting Plus, ADMM+) 등에서 오랫동안 협력해온 국가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 지역은 호주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에서도 호주에 인접한 남태평양 국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원조를 받은 지역이다. 영국 역시 지역 안보 문제에 처음 등장한 국가는 아니다. 영연방 국가인 영국, 호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는 5개국 방위협정(Five Powers Defence Arrangements, FPDA)을 통해 낮은 수준이지만 지속적으로 협력해온 경험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AUKUS를 구성하는 3개 국가 모두 동남아와 오랫동안 상호작용을 해온 국가들이고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UKUS 결성에 대한 동남아 전반의 반응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교부 성명서에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획득에 관해 우려를 표했다. 이 성명서는 “지역 내 지속되는 군비 증강과 힘의 투사에 대해서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하며 호주가 지역의 핵 비확산 관련 의무에 주의를 다할 것을 특히 강조한다고 했다. 그리고 호주도 서명한 아세안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 TAC)에 명시된 지역의 평화, 안정, 안보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주문했다.2 주미 인도네시아 대사를 지냈던 디노 파티 잘랄(Dino Patti Djalal)도 앵글로색슨 3개국의 움직임은 ‘외부 세력’이 지역 국가들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열망에 반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중국의 논리만 강화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지역 군비 증강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3

말레이시아의 반응도 마찬가지로 AUKUS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Ismail Sabri Yaakob) 말레이시아 총리는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호주 총리와 전화 통화 후 발표한 성명에서 AUKUS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 성명에서 이스마일 총리는 AUKUS가 지역에서 핵무기 경쟁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고, AUKUS로 인해 지역에서 강대국들이 더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말레이시아는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운용이 1982년 유엔해양법을 준수해야 하고, 남중국해를 포함하고 있는 동남아에서 핵무기 사용을 금지한 동남아비핵지대(Southeast Asia Nuclear Weapon Free Zone, SEANWFZ) 조약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4 한편, 히샤무딘 후세인(Hishammuddin Hussein) 말레이시아 국방장관은 의회 발언을 통해 중국 국방장관이 AUKUS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확인해 봐야겠다는 발언을 했다.5 AUKUS가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의 조치인 만큼 말레이시아 국방장관의 이런 발언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AUKUS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대변한다.

필리핀은 정부 차원에서 AUKUS에 서로 상반되는 입장이 나왔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분쟁에서 중국과 대립하고 있으며 동남아에서 가장 직접적 중국의 안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테르데(Rodrigo Duterte) 필리핀 대통령의 대외정책 노선은 중국과 미국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행보를 보여왔다. 두테르테는 AUKUS 결성 소식이 알려진 직후 AUKUS가 지역에서 군비 경쟁을 촉발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6 반면 테오도로 록신(Teodoro Locsion) 필리핀 외교장관은 동남아 지역에서 힘의 불균형을 언급하며 AUKUS가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 의사를 표했다.7 전자가 대통령 개인 의견인데 반해 후자는 외교부의 공식 성명인 만큼 필리핀 정부는 AUKUS에 대해 어느 정도 찬성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찬성과 환영의 입장을 밝힌 국가는 싱가포르와 베트남이다. 다만 이 국가들의 AUKUS에 대한 환영 입장은 일종의 조건이 있거나 좀 다른 각도에서 AUKUS를 보고 있다. 리셴룽(Lee Hsien Loong) 싱가포르 총리는 아세안-호주 정상회의 자리에서 AUKUS가 안정적이고 안전한 아시아-태평양(Asia-Pacific) 지역 건설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싱가포르는 아세안 중심성을 지지하고, 경제 통합을 심화시키며, 안정적인 아태 지역과 규칙기반 질서를 강화하는 새로운 지역 아키텍처를 환영한다”고 했다.8 그는 이 발언에서 AUKUS를 특정하지 않았고, 아세안 중심성에 대한 지지라는 조건을 붙였다. 이보다 며칠 앞서 비비안 발라크리쉬난(Vivian Balakrishnan)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호주의 아시아 소사이어티(Asia Society)가 주최한 포럼에서 싱가포르는 AUKUS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9

베트남은 필리핀과 함께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국가로,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력에 대해 균형을 맞추고, 중국을 견제하는 AUKUS에 대해 보다 긍정적 입장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더욱이 중국과 남중국해 분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고,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자기 주장 강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만한 해군력이 없는 베트남은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운용이 남중국해에서 세력균형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볼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은 외교부에서 공식적으로 AUKUS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10 다만, 베트남 정부는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서 “핵 에너지는 평화적인 목적으로 개발되고 쓰여야 하며, 사회경제 발전을 위해 이용되어야 하고 사람과 환경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미-호주 협력과 동남아 국가의 우려

 
앞에서 본 바처럼 AUKUS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반응은 복합적인 듯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은 우려하는 반면 베트남, 싱가포르 등은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인 듯 하지만 나름의 조건이 달려 있다. 필리핀에서는 이중적 반응이 나온다. 태국,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비교적 중국에 가깝다고 알려진 국가들은 공식적으로 AUKUS에 대해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외에는 2021년 의장국인 브루나이가 남는다. 브루나이 역시 아세안 의장국 지위를 의식해서인지 공식적 반응은 없다.

그러나 좀 더 시각을 확장해서 AUKUS로 대표되는 미국 주도의 대 중국 견제를 포함한 지역의 전략 상황 전개에 대해 동남아 국가들은 우려가 크다. 먼저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동남아 국가들과 긍정적 관여를 확대하기 보다는 일본, 인도, 호주 등 4자 안보협력(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호주와 AUKUS를 추진하는 등 동남아 국가들의 기대와 다르게 움직이는데 대한 우려가 있다. 두번째로 AUKUS의 당사국인 호주가 핵추진 잠수함을 획득한다는 것은 기존 동남아 국가와 호주 사이 미묘한 관계를 고려할 때 아세안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세번째로 미-중 경쟁 속에서 오바마 행정부를 거쳐, 트럼프,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로 오면서 드러나는 미국의 전략, 그리고 그에 맞서는 중국의 생각이 점차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간다는 우려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 동남아 정책에 대한 우려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기대는 이전 트럼프 행정부와 비교할 때 잘 드러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특히 아시아 정책은 동남아 국가들 눈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동남아 방면에 대한 관여는 최소화된 반면, 미-중 경쟁의 격화로 인해 동남아 국가들은 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더욱이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대동남아 관여정책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한 피봇(Pivot) 정책의 핵심으로 냉전 이후 미국의 정책 중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가장 환영할 만한 정책이었다.11 미국과 동남아 국가 양자 관계가 강화되고, 아세안 주도의 지역 다자협력체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환태평양경제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등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누르기 위한 미국의 시도도 있었고 동남아 국가들도 이에 동참했다. 이런 오바마 행정부를 경험한 직후 맞이한 트럼프 행정부 정책은 동남아 국가 입장에서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되었다. 동맹과 파트너십에 대한 강조,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강조는 이런 기대를 부풀렸다. 동남아 국가들은 미-중 경쟁에서 지정학, 지경학적으로 핵심인 동남아에 대한 미국의 성의 있는 접근을 기대했다.12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기대는 2021년 초 발표된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의 설문조사 결과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2020년 말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가시화된 상태에서 진행된 이 설문조사는 2021년 미국의 대동남아 관여가 증가 혹은 감소할 것인가 물었다. 응답자의 68.6%는 2021년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동남아 관여가 증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시기인 2019년 13.3%, 2020년 9.9%와 크게 대조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2020년 34.9%에 비해 2021년 55.4%로 크게 증가했다.13

2021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이런 동남아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기대는 충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와 동남아 국가의 고위급 교류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 미국 부통령이 8월 동남아를 순방하기는 했지만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방문하는데 그쳤다. 이마저도 동맹국가인 필리핀, 태국, 그리고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브루나이를 건너 뛴 방문이었고,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 직전 로이드 오스틴(Lloyd Austin) 미국 국방장관의 동남아 순방도 싱가포르, 베트남, 필리핀에 한정되었다.14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거의 유일하게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전략에 관한 공식문서로 기능하고 있는 잠정국가안보전략지침(Interim National Security Strategic Guidance)도 싱가포르와 베트남 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아세안에 대한 강조나 동남아 지역 내 동맹국에 대한 강조는 찾아볼 수 없다.

국무부 차원의 대동남아 관여 또한 미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토니 블링컨(Anth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과 동남아 국가 외교장관 간의 만남이 부족했다. 2021년 5월 화상으로 열릴 계획이었던 미-아세안 외교장관 회의는 블링컨 장관이 중동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접속하려다 기술적 문제로 무산됐다. 아세안 10개국 외교장관은 40여 분 동안 빈 모니터만 보다 발길을 돌렸다.15 동남아 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많은 아세안 국가의 대사 자리가 바이든 행정부 출범 1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고 있다. 아세안 대표부를 포함한 11개 자리 중 절반 이상인 6개 자리가 바이든 행정부 이전에 임명된 자리들이다. 거기에 추가로 주 인도네시아 미국 대사인 성 킴(Sung Kim)을 겸직으로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해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을 당혹스럽게 했다.16

 

<표 1>. 동남아 지역 미국 공관장 목록 (2021년 11월 현재)
이재현_표1
 

이렇게 동남아 지역에 대한 관여가 불충분했던 미국이 중국과의 전략 경쟁, 지역의 안보 태세 강화를 위해 들고 나온 대안은 미국, 호주, 영국 3국이 지역 안보 문제를 위해 협력하고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는 AUKUS였다. 이런 미국의 전략에 대해 동남아 국가들이 받을 수 있는 인상은 더 이상 미국이 전략적으로 동남아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남중국해 등 지역 해양 안보 및 전략 문제에 있어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의 신뢰할 만한 상대나 협력 대상이 아니고 호주, 그리고 Quad를 함께 구성하는 일본이나 인도처럼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군사력을 갖춘 국가들만 미국의 안보 협력 내지는 전략적 협력 대상이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의 긍정적 관여를 기대했던 동남아 국가들 눈에 미국의 현재까지의 정책은 단순한 무관심을 넘어 오히려 동남아 국가들이 바라지 않는 방향의 군사적 관여로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와 호주의 불편한 관계
 
미국의 군사적 관여만큼이나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 불만스러운 사항은 호주의 무게감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2020년 “국방전략 계획”(2020 Defence Strategic Update) 이후 호주는 계속 국가 안보와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며 국방력 증강을 위한 시도를 해왔다.17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남아와 호주는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아세안 국가들은 호주로부터 많은 공적 원조를 받고 있다. 지역 다자협력에서도 동남아 국가와 호주는 ARF, EAS, ADMM+ 등 많은 다자협력에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제, 원조, 다자협력 파트너십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호주와 동남아 국가 사이 불편하고 미묘한 관계를 숨기고 있다. 앵글로색슨 국가인 호주가 군사력을 강화해 동남아 국가들을 압도할 만한 핵추진 잠수함으로 무장하고 동남아 국가의 영해의 일부인 남중국해의 해상 안보를 미국을 대신해 책임지는 미래 모습은 동남아 국가의 자존심에 상처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 내 호주의 영향력 강화는 역사적으로 동남아 국가와 호주가 겪었던 매우 불편한 관계를 상기시킨다. 동남아 국가들은 이런 과거의 불편한 관계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1990년대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Mahathir bin Mohamad) 말레이시아 총리와 폴 키팅(Paul Keating) 호주 총리 사이 언쟁은 유명하다. 마하티르 총리는 1993년 아태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를 보이콧했다. APEC의 경제 자유화 추진이 작은 국가들의 경제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APEC을 주도하고 있던 키팅 호주 총리는 마하티르를 ‘고집불통(recalcitrant)’이라고 불렀고 이로 인해 말레이시아와 호주 사이 외교 마찰이 빚어졌다. 결국 키팅 총리가 마하티르 총리에게 사과를 하는 것으로 이 에피소드가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양국 사이 앙금은 남았다.18 마하티르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호주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한 예로 2005년 EAS가 출범했을 당시 마하티르는 EAS를 ‘East Asia Australasia Summit’이라고 비꼬면서 호주와 뉴질랜드의 참석을 비판했다.19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더 복잡하다.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입장에서 호주의 가장 중대한 국가 안보 위협으로 인식됐다.20 이런 위협 인식은 호주가 비동맹-공산주의에 경도됐다고 판단한 수카르노(Sukarno) 정부 시기에 강했다. 반공정부인 수하르토(Suharto) 정부가 수립된 1966년 이후 양자 관계가 다소 개선됐다. 호주는 1975년 인도네시아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동티모르를 무력으로 합병했을 때 이를 가장 먼저 승인한 국가다. 반면 1999년 동티모르에서 독립의 열기가 높았을 당시 호주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 독립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호주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독립 세력이 충돌할 때 질서 유지를 위해 가장 먼저 군대를 파견한 국가다.21 이를 놓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엄청난 반 호주 감정이 일어나기도 했다. 2014년에는 호주 정부기관이 당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핸드폰을 도청했다는 논란이 일어 양국 관계가 경색되기도 했다.22

뿐만 아니라 존 하워드(John Howard) 호주 총리는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호주를 둘러싼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02년 테러와의 전쟁에서 테러 의심 국가에 대한 미국의 선제 공격이 명시된 ‘부시 독트린(Bush Doctrine)’이 나온 후 하워드 호주 총리 아태 지역에서 테러리스트 움직임을 막기 위해 호주 역시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자위적 선제공격(pre-emptive self-defence)’이라고 불린 이 원칙은 사실상 호주가 테러리스트를 방지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특히 무슬림이 많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고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23

 
아세안 중심성 약화에 대한 우려
 
궁극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은 AUKUS 뿐만 아니라 일련의 미국 주도의 대 중국 견제, 미-중 강대국 경쟁이란 전략 상황 전개가 결국 ‘아세안 중심성’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세안 중심성은 아세안을 중심으로 지역의 다자협력이 펼쳐지고 그 안에 ‘아세안의 방식(ASEAN Way)’이 관철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질적으로 아세안 중심성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이 지역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이는 아세안 국가들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 중심성이란 개념이 아세안을 둘러싼 강대국에 의해 인지되고 인정을 받는 것은 아세안이 약소국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국제관계에서 의미 있는 행위자라는 것을 대외적 공인을 받는 의미가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 아세안이 주도적으로 만든 ARF, 아세안+3(한국, 중국, 일본), EAS 등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지역 주요 국가가 포함된 다자협력체가 아세안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의미도 된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공세적으로 나오고, 이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피봇 정책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미-중 전략 경쟁 시작 이후 아세안 중심성은 지속적으로 도전을 받아왔다. 중국은 이미 2010년대 초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를 선포하고 아세안 중심성이 적용되는 범위를 넘어선 더 큰 지역에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들고 있다. 2000년대 아세안 중심성이 관철된 지역 다자협력에 적극적이었던 중국은 일대일로 이후 아세안+3, EAS 등 아세안 중심의 다자협력에 이전과 같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아세안 중심성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세안 중심성이 관철된 지역 다자협력에 이전에 비해 덜 관심을 갖게 되면 이 다자협력 제도의 중요성도 떨어지고 덩달아 아세안 중심성도 약화된다.

이런 패턴은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도 나타난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인도-태평양, Quad, 그리고 AUKUS까지 지속적으로 아세안 중심성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인도-태평양의 경우 아세안이 지리적, 지정학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한 가운데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인태 지역의 피봇 역할을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또한 인태 지역 개념은 군사, 안보 문제에 치중된 개념도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아세안은 아세안의 인태 전략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SEAN Outlook on the Indo-Pacific, AOIP)’을 발표하며 인태 지역이란 개념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했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인태 전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본, 호주, 인도와 미국을 묶는 Quad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Quad를 부활시키고 여기에 안보, 군사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미국, 호주, 영국의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안보, 군사협력이 등장했다.

적어도 Quad 이후 미국의 전략에서 아세안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인태 전략이 소수의 군사적, 경제적 능력이 되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아세안은 판단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 중에서는 경제적 능력이 되거나(싱가포르), 중국과 첨예한 대립을 하는 국가(베트남) 만이 미국의 전략적 협력 대상이 되고 있다. 전통적 동맹 국가도, 아세안 대표인 의장국도 설 자리가 없다. 아세안이 배제된 채 미국과 몇몇 국가들의 연합이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아가 중국과 전략적 대결을 통해 지역 질서를 쓰는 상황은 아세안 중심성의 형해화를 의미한다. 아세안 중심성의 약화는 아세안이라는 기구를 통해 동남아 국가들이 가지는 힘의 약화, 아세안이라는 협력체 자체의 약화, 그리고 개별 국가들의 대 강대국 레버리지 약화 등 전략적 함의가 큰 부수적 결과를 동반한다.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대인태 전략에 주는 함의

 
AUKUS의 등장으로 요약되는 최근 지역의 전략적 상황 전개는 미국, 호주, 그리고 아세안, 3자 간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 현재 미국과 동남아 국가 관계, 그리고 호주와 동남아 국가가 가진 역사적 관계를 고려할 때 AUKUS의 등장이 그리 반갑지 만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비단 AUKUS 자체뿐만 아니라 AUKUS로 요약되는 미국의 인태 지역에 대한 전략과 전반적인 상황 변화가 그리 아세안에 유리하지 않다.

이런 미묘한 상황 변화가 한국의 대외정책에 주는 함의도 크다. 한국 입장에서 동남아 국가가 AUKUS에 보이는 반응은 신남방정책, 한-호 관계, 한-미 관계뿐만 아니라 넓게는 한국의 지역 정책에 일정한 함의를 가진다. 먼저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 호주의 인태 전략을 연계한 협력에 AUKUS가 어떤 함의를 갖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태 전략은 이미 2019년부터 아세안 방면에 대한 서로의 전략을 조율하고 있다.24 더욱이 2021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공동의 가치에 기초한 인태 지역으로 확장하는데 뜻을 같이했다.25 2021년에는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호주의 인태 전략 사이 협력도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26] 이런 상황에서 한-미, 한-호 사이 아세안 방면에 대한 협력과 AUKUS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반응은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AUKUS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불편한 반응, 이를 추진하는 호주, 미국과 한국이 손을 잡고 동남아 방면에 협력하는 문제는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는 사안이다.

인태 전략과 신남방정책 사이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아세안과 인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의 협력이 한국의 대아세안 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인지 아니면 아세안을 도구로 한미동맹 혹은 한-호 양자 관계 강화를 위한 것인지 명확히 할 시점이다. 전자의 경우 AUKUS가 동남아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면 인태 전략과 신남방정책 사이 협력에 AUKUS의 전략적 함의가 끼어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후자라면 굳이 불편하게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의 협력이라는 우회로를 택할 필요가 없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중 전선에 전적으로 동참하면 될 일이다.

신남방정책 이전부터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은 비교적 서로 긴장이 없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 국가라는 점이 미-중 사이에서 중간자적 입장, 헤징(hedging) 전략을 취하는 동남아 국가들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외정책이 미-중 사이에서 일정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처럼 위협적이지 않으며 전략적으로 숨은 의도가 없다는 점 등이 한국과 아세안 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공헌해왔다. 한국이 여전히 아세안 국가들을 중시한다면 이런 한국의 장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한국의 이익에 아세안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사이 협력이라는 미국, 호주와의 약속도 중요하다. 아세안과 협력 강화라는 신남방정책 본연의 목적과 한미, 한호 사이 협력이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한미, 한호 사이 신남방정책과 인태 전략 사이 협력에 관한 기존 합의 내용들은 중국에 대한 견제나 전통 안보가 아닌 비전통 안보 협력, 인간 안보 협력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에는 실질적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여기서 한국이 지금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한국이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디지털 분야(아세안의 디지털 전환을 통한 경제 회복, 사이버 안보, 데이터 안전 문제), 보건(백신과 방역 역량, 보건 역량 강화), 해양 이슈 중에서도 불법 어업 관련 이슈(불법 어업 대처에 관한 경험 공유, 아세안 국가 역량 강화 및 국제법적 협력) 등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 분야에서 협력은 일차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에게 실질 이익을 가져다 준다. 동시에 기술, 안보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미국과 호주의 전략적 고려에도 들어 맞는 주제다. 이런 분야들을 한국이 선점해 주도적으로 협력을 이끄는 방안이 최적의 전략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