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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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2010년대 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질서 재편은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주요국 간 경쟁과 각축 그리고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대응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을 하나의 주제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의 세계를 ‘新냉전(New Cold War)’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 ‘대격변(Turbulence)’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전통 안보에 대한 관심 외에도 기후변화, 감염병, 공급망 안정 등 ‘신흥안보(Emerging Security)’,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 분야 이슈들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10여 년 이상 지켜보고 있는 국제질서는 다양한 특징이 어우러져 나타나고 있고, 그 미래를 전망하고 예측하는 일도 그만큼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각에서 현대 국제관계를 바라보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주요국(dominant power)이 자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 유지 혹은 새로운 질서 구축, 권위 있는 국제적 조정장치의 부재, 그리고 많은 국가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선택의 문제 등 일 것입니다. 이 특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설명하는 일은 지구촌의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그 방향과 속성을 쉽게 가늠하기가 힘든 국제질서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2015년부터 “아산 국제정세전망” 보고서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를 설정해왔습니다. 전략적 불신(2015), 뉴노멀(2016), 리셋(2017), 非자유주의 국제질서(2018), 한국의 선택(2019), 新지정학(2020), 혼돈의 시대(2021), 재건(2022), 복합경쟁(2023), 연대결성(2024)이 지금까지 연구원이 다루었던 주제들입니다. 이 주제들은 서로 다른 키워드를 내세웠지만,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모습과 그 함축성, 그리고 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 국가와 지역 차원 전략을 입체적이고 종합적 시각에서 살펴보려는 고심을 담고 있습니다.

2025년 주제로 선정된 ‘리뉴얼(Renewal)’도 이러한 고려를 반영한 것입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은 모두 자기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활발한 연대결성(Coalition Building) 작업을 진행해왔고, 이는 기존 양자 및 다자관계 이외에도 QUAD, AUKUS, BRICS 등 다양한 다자 및 小다자 협력관계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됐습니다. 또 주요국의 이익 각축은 각 지역 내 행위자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대만해협 긴장이라는 갈등과 분쟁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주요국은 서로 간의 견제와 각축이 세계적 전쟁이라는 사태로 비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정선에서 타협을 모색했는데, 2023년 11월의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에서의 합의는 그 대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2024년을 돌아보면 어떤 주요국도 이로부터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걸로 평가됩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유리한 전황을 이끌지 못했고, 중동 지역에서는 전통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으며, 중국 및 러시아 등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유리한 전세를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혐오는 더 강해졌습니다. 중국 역시 대만의 독립 주장에 계속 고심하고 있고, 새 국제질서의 대안 세력으로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전통적인 우호세력인 북한과의 관계도 원만치만은 않았습니다. BRICS를 활용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자신의 지원자로 끌어들이려 한 중국과 러시아의 시도 역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2025년을 맞아 주요국은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모두 경쟁적으로 새 전략과 정책을 통해 분위기를 바꿔가려 할 것입니다.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구호를 다시 내세울 것이고, 중국 역시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구사하여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 약화를 꾀하고 그 공백을 노릴 것입니다. 러시아도 2024년부터 계속된 북러 밀착을 바탕으로 다극적 국제질서 속에서 중요한 한 축이 되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주요국 및 여타 국가의 행태 및 상호작용을 한마디로 축약한 것이 바로 ‘리뉴얼’이라는 단어입니다.

2025년 전략 정세는 다양한 의문과 고민을 우리에게 제기합니다. 우리나라가 위치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도 수많은 전략적 계산이 서로 뒤얽히거나 충돌할 것이며, 이로 인해 다양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동맹관계에서 ‘거래’를 강조할 미국, 한미일 안보협력의 ‘약한 고리’인 우리를 공략하려는 중국, 북러 밀착을 우리에 대한 핵 위협 강화와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의 지분 강화로 활용하려는 북한과 러시아 등이 맞물려 우리의 안보 여건은 더 복잡하게 변해갈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2025년 국제정세를 전망하고, 그 속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한 통찰력을 가지고 이에 대응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기 위한 연구원 차원에서의 노력의 집약입니다. 이 보고서가 2025년 한반도 및 지역 그리고 국제질서에 대한 분석을 활성화하는 값진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끝으로 보고서 발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연구원 내부 및 외부의 저자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윤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