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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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정의용 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2차 대북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9월18일~20일의 평양 남북ㆍ정상회담에 합의하는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첫 번째) 임기 내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 특사단 방북은 교착국면에 들어선 미ㆍ북간의 핵협상뿐만 아니라 향후의 남북관계에도 더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국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트윗을 통해 이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한 바 있다.1 그러나 몇 마디의 수사를 제외하면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가시적인 이행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보장은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며, 상당부분의 과제가 제3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유보되었다. 물론, 특사단이 김정은 면담을 통해 전달하게 될 대미 메시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이 메시지가 미ㆍ북간 또 한 번의 극적 타결을 불러올 가능성은 남아있다. 다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평양과 워싱턴의 근본적 이견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접근방식 역시 기존과는 달라져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1. 특사단 방북, 성과와 한계

 

방북후 귀환한 정의용 특사단장이 9월 6일 아침의 언론 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이번 특사단 방문을 통해 다수의 현안들이 합의ㆍ협의되거나 확인되었다.  (1) 9월 18일~20일간 평양에서의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2)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이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 확인, (3)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활동 지속에 대한 공감대, (4) 정상회담 이전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등 남북한 간의 주요 협의ㆍ합의 내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의용 특사단장은 기자단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북한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으며, “종전선언=주한미군 철수의 주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가 아니라는 점도 전달하였다.2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1기 임기 내 비홱화를 완료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향후 비핵화의 일정을 잡는데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번 특사단 방북은 무엇보다도 8월 23일(미국 현지시각)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무산된 이후 미ㆍ북간의 비핵화 협상에 이상기류가 감지되던 시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6월 12일의 싱가포르 미ㆍ북 정상회담 이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되는 비핵화 과정이 7~8월에 들어 동력이 약화되는 듯한 징후가 나타나고, 이것이 남북한 관계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증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남북한 관계와 비핵화가 상호 연계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우회적인 불만을 표출하였던 것이 특사단 방북 이전까지의 현실이었다. 실제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견인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 미국 측은 이 두 가지가 연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3

이러한 점에서 2차 대북특사단의 방북결과는 남북한 관계 발전과 미ㆍ북 관계 개선,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의 先순환 모멘텀을 살리는 불씨가 된 것은 분명하다. 미국 역시 특사단 방북 이전에 이루어진 트럼프 대통령과 문대통령간의 전화 통화에서 긍정적 결과를 기대한 바 있고, 2차 특사단의 언론 브리핑에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특사단의 미국 방북시 전달할 대미 메시지 역시 더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 이전까지 강도 높게 주장하던 ‘조기 종전선언’이 대화 핵심내용으로 강조되지 않은 것 역시 우리 입장에서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는 6월 이후 평양이 자신들의 모라토리엄 이행(핵/미사일 실험 중단, 관련 시설 폐쇄)을 강조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한ㆍ미의 조치로서 ‘종전선언’을 강조해왔던 기존의 입장에서 다소 물러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이  선제적인 추가 비핵화 조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핵 리스트 신고와 종전선언을 교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평양에서 개최될 3차 남북정상회담은 이러한 점에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남북관계 발전을 허심탄회하고 심도 깊게 논의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최소한 공개된 내용만을 중심으로 할 때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점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정의용 단장이 언론 브리핑에서 밝힌 바와 같이, 특사단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방미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정 안보실장-볼튼 국가안보보좌관 간의 전화 통화를 통한 방북 결과 설명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당장 미국을 획기적으로 움직일 만한 카드를 평양이 내놓지 않았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9월 7일(미국 시간)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의 ‘친서’가 곧 전달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변수가 남아 있기는 하다.4 즉, 친서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특사단 방북에서 전해지지 않은 전혀 새로운 약속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라면 이것이 왜 2차 특사단 방북시 우리를 통해 전달되는 형태가 아니고 다른 채널을 통해서였는가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5 결국 한국을 배제한 소통이 아니라면 실제 친서에 담긴 내용은 의전적이고 평이한 것으로, 북한이 먼저 자신의 선의를 강조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 이전(한국시간 9월 7일) 판문점에서 UN사와 북한간의 한국전쟁 유해 공동발굴 및 송환 협의(판문점 장성급 회담)가 있었는데, 이 루트를 통해 친서가 전달되었을 경우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6

 

 2. 3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해결하여야 과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2차 특사단 방북을 통해 적지 않은 과제들이 해결되기보다는 3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월되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우리의 입장에서는 『판문점선언』을 구체화해 나갈 기회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전요인 역시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가 중점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 로드맵 도출

4월 27일의 『판문점선언』, 6월 12일의 싱가포르 미ㆍ북 정상회담과 합의문은 2017년 동안 한반도 위기설이 주기적으로 제기되었던 상황과 비교하면 분명히 획기적인 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전은 어떠한 면에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해석상의 갈등소지를 수면 하에 묻어둠으로써 가능했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능력 포기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동시에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한 가운데에서 전개되는 위협 감소 협상”으로도 읽힐 수 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이러한 양자 해석이 가능한 입장을 줄곧 유지해 왔다. 이번 2차 특사단 방북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유감스럽게도, 특사단 방북 사실을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이나 우리 특사단의 브리핑 내용 어디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핵능력 포기 의지는 명시적으로 표명되지 않았고,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7

특사단 방북 브리핑 결과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종전선언’이 반드시 주한미군의 철수를 의미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었다고 한다. 그러나 9월 6일의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무력충돌과 군사적 위협,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상황”을 ‘조선반도의 비핵화’로 규정지어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한ㆍ미동맹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동시에 북한은 비핵화 선행조치를 했음에도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의 종전선언 합의를 촉구하는 것임과 동시에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로드맵을 수용하지 않고 북한의 핵능력 하나씩 떼어 협상하고 보상받는 소위 살라미식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의 피력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핵 리스트의 신고 및 검증이 지나치게 북한에게 불리한 방향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년 상반기 미ㆍ북 협상 분위기가 조성될 당시 당초 미국 측이 기대한 수준은 핵 리스트 신고 이외에도 핵물질/핵무기의 반출까지가 포함된 것이고, 미국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부분 문턱을 낮추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 모두 기존에 하지 않았던 조치들을 이제 취하여 나가야 한다. 북한이 현재 준수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모라토리엄이나 핵시설 일부 폐기는 이미 과거에도 시행된 바가 있는 것들이다. 마찬가지도 한ㆍ미 연합훈련의 유예나 전략자산의 중단 역시 북한 태도에 따라 실현된 적이 있었다. 핵 리스트 신고는 북한이 기존 행태를 넘어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닌, 행동으로 보인다는 상징성 면에서 우리로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치이다.

모든 선의(善意)는 조치를 통해 외연화될 때 의미를 지닌다. 2차례에 걸친 특사단 방북이나 미ㆍ북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여러 차례 간접적으로 전달되었다. 이제는 이것이 명시된 문서나 육성, 혹은 외형적인 정책ㆍ조치로 가시화(可視化)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모라토리움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10개월 동안 북한의 핵ㆍ미사일 실험이 없었고, 무엇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공개적인 방법으로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결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많은 의심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동창리 엔진실험장 폐쇄(이것을 모라토리움이 아닌 동결조치까지로 보더라도)는 그동안 위성사진이나 관계자 전언 등을 통해 ‘추정’되었을 뿐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일단 북한이 모라토리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동결 조치를 이행하는 한편,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로드맵을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 나름의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2. ‘조기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에 대한 분명한 입장 개진

물론,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되어 핵심 협상채널로 삼고 있는 것이 미국인만큼, 남북 정상회담에서 로드맵 자체를 이끌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내어놓을 준비가 되었다는 인상을 대외적으로(특히 미국 측에 대해) 확인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3차 정상회담이 비핵화의 획기적 분수령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ㆍ북 협상의 징검다리 역할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과의 협의ㆍ합의를 통해 북한이 기존의 ‘미ㆍ북 핵군축 회담’ 논리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원하는 ‘종전선언’이 유용한 카드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미국으로부터 조기 종전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도 이제 분명한 ‘전략적 결단’을 가시화(可視化)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설득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종전선언’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한 ‘미ㆍ북 핵군축 회담’의 논리로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비록 김정은 위원장이 특사단을 면담한 자리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로동신문』은 8월 18일자 논평을 통해 조기 종전선언을 재삼 주장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8 즉, 조기 종전선언 주장은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한ㆍ미의 신뢰를 담보하는 상징적 조치로 주장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북한의 ‘조기 종전선언’ 요구가 단순한 ‘신뢰’의 관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종전선언’의 조기 합의를 주장한 것은 금년 4월 17일의 『판문점 선언』에서 이 분야가 언급된 이후 6월 12일의 미ㆍ북 정상회담이 끝나면서부터였다. 즉, ‘종전선언’이 북한이 그렇게 집착하던 기존의 카드는 아니었다는 점이며, 북한의 태도 변화가 무엇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9

기존 미ㆍ소 간의 핵군축 사례를 고려할 때, 대치한 쌍방이 군비통제 및 군축을 시작하는 출발점은 상호 ‘대등성’이다. 즉, 양자가 ‘핵무기 보유국’으로 동등한 자세에서 핵전략 감축을 시도하자는 것이 ‘핵군축 회담’의 논리이다. 북한이 그동안 CVID를 지속적으로 거부해온 것 역시 이러한 고려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등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불가역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으며, 기존의 무기체계는 폐기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언제든지 핵무기 재생산이 가능한 태세는 유지하겠다는 이야기다. 북한 외무상 리용호가 8월 이란 방문 시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이 가능하다.10 따라서, 이러한 북한의 자세가 남북이 합의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종전선언’의 시기는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이 선언이 북한의 조기 비핵화 조치, 즉 위에서 언급된 핵 리스트 신고와 연계될 수 있는가이다. 이에 대한 평양의 결단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 입장에서는 미ㆍ북이 거의 동시에 움직이는 안을 제의해 볼 수 있다. 이 중 고려 가능한 한 방법은 ‘목표시한’(target time)을 설정하는 것이다. 가령, 11월까지 북한이 핵 리스트를 신고하고, 이와 크게 시차가 나지 않는 시점인 12월초ㆍ중순 종전선언을 추진하자고 하는 제의이다. 핵 리스트는 사찰과 검증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이 경우 최초 사찰/검증 일정은 2019년 초반까지로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종전선언 이전에 사찰/검증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의 의지에 따라 이 일정은 더욱 당겨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조기’가 아니라 신속한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는 전제조건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 미국을 종전선언 협의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3. 남북 교류ㆍ협력과 한반도 비핵화의 선순환 관계에 대한 비전 마련

이와 함께, 남북 도로ㆍ철도 연결을 포함한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 그리고 정치ㆍ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구체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그리고 미ㆍ북 관계개선)와 어떻게 先순환 관계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미국 등 주변국이 공감하거나 합의하기 힘든 남북 경제협력의 비전은 자칫 남북한 관계 발전과 비핵화 쟁점의 분리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차피 북한의 입장에서 대북 제재의 해제, 체제안전보장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는 미국이다. 결국, 남북협력이 비핵화를 위해 긴요하며, 이를 위해서 때로는 대북제재 역시 탄력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워싱턴에게 주지 못 하는 한 남북 관계 발전을 둘러싼 한ㆍ미의 시각차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직은 남북한 간에도 해빙이 이루어진 시기가 여전히 짧다는 점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모든 것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점은, 남북 경제협력과 긴장완화에 거는 북한의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 그리고 이 기대는 과거와 같은 한ㆍ미/국제 공조의 이완이나 배타적인 ‘민족공조’가 아니고 북한 자체의 긍정적 변화를 반영한다는 것 등이 남북 간의 합의에서 우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국제적인 의무이행과 남북관계 발전을 동시에 추구해 나간다는 원칙의 표명을 고려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의 협력과 평화가 지역질서의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이 가능한 비전이 발표되어야 한다. 이것이 있어야 우리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관련 구상에 있어 주변국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협력을 발휘할 수 있다.

 

3. 어떻게 평양 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인가?

 

특사단 방북에서 여전히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대미 메시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 김정은의 ‘친서’가 비핵화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남북정상회담 이후 미ㆍ북 관계의 진전이나 비핵화의 동력 강화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평양의 메시지를 워싱턴이 긍정적으로 평가할 경우 앞서 밝히 바와 같이, 남북 정상회담과 UN총회에서의 한ㆍ미 정상간 만남 이후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다시 현실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애당초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된 “연내 종전선언” 역시 무리 없이 구현될 것이다. 반면, 미국이 이 메시지를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평가할 경우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처리되어야 할 과제는 더욱 늘어나는 셈이다.

우리에게 전반적인 여건은 그리 불리하지 않다. 9월 9일 정권창건 70주년을 맞아 거행된 열병식에서 북한은 2월과는 달리 ICBM 등 미국을 자극할 만한 무기체계를 선보이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연설도, 실시간 중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11 미ㆍ북간 협상이 교착상태를 보이는 현 시점에서도 가능한 한 미국을 자극하지는 않겠다는, 아니 최소한 먼저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북한의 고민 역시 일부 드러났다. 열병식은 결국 북한이 재래무기에도 선택과 집중을 해왔으며, 한국의 『국방개혁』에 대한 대응방향을 고심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는 북한이 한정된 자원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제재가 지속되는 한 딜레마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12

이는 3차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더욱 자신 있고 당당한 자세로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고 견인해 가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ㆍ미공조와 주변국 공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13 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확인된 지금, 우리로서는 단순히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넘어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판을 다시 정비한다는 자세로 대북/대외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 우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라는 목표 하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정립하는 한편 북한과 주변국에 각인시켜 나가야 한다. 그 역할이 ‘중재’이든 ‘주도’이든 간에 구체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하여 한국이 지닌 구상과 대안은 무엇인지를 보다 명시적으로 표명하고 주변국을 설득해야 한다. 특사단 방북을 통해 남북은 공동연락사무소를 3차 정상회담 전에 개설하기로 합의하였다. 만약 이것이 미국과 사전 조율이 되지 않은 사항이라면 향후 한ㆍ미간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독자적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한ㆍ미공조 강화를 통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설사 남북한 그리고 한ㆍ미간에 견해차가 있으면 그 차이점 역시 묻어두고 피하려하기 보다는 솔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차이점이 확인되어야 그에 대한 조정방안 역시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주변국 외교도 더욱 다변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의(善意)로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주변국들은 우리의 의도를 언제든 이기적이고 자기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펼 수도 있다. 이것은 한반도 비핵화에 결코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신뢰 및 외교적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 역시 대북정책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한 의문에 답을 주는 방향으로 대미, 대주변국 외교가 전개되어야 한다.

① 과연 대북정책 목표와 관련하여 미국, 중국 등과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존재하는가? 과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해석은 일치하는가?
② 북한이 나름 성의를 보였다고 판단할 경우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근거에 대한 관련국들의 시각은 일치하는가?
③ 앞으로도 평양이 비핵화와 관련하여 미온적 행보를 지속할 경우 당근과 채찍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고 있는가?

즉, 우리의 외교나 대외정책 행보는 현대보다 더욱 다변화되고 바빠져야 한다. 이런 노력이 제대로 안 보이는 가운데에서 남북한 관계 위주로 상황을 돌파하려 할 경우, 워싱턴 뿐만 아니라 베이징으로부터도 제대로 된 협력을 얻기 어려워짐을 유념해야 한다. 남북한 관계 위주로만 주변국 축을 돌파하려는 시도가 그래도 가능한 경우는 북한도 그렇게 남북한 관계 일변도의 대외정책을 펼 때인데, 현재까지 북한은 오히려 발 빠른 주변국 외교를 남북한 관계에서의 카드로 활용해 왔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국내적 합의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한반도 평화 및 비핵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Top-down” 방식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중요한 관련 정보는 공유되어야 하고, 주기적인 여론의 수렴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오류에 빠지기 쉬우며, 대북정책과 관련된 국내의 논란을 확산시키게 된다. 기존의 방침 대비 성과에 대한 가감 없는 평가 및 검토 역시 필요하며, 만약 실현이 되지 않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따라야 한다.14 이러한 노력들이 있어야 광범위한 국내적 공감대 하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진행할 수 있으며, 남북한 간의 합의도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그에 대해 변함없는 신뢰를 표명했다는 정의용 특사단장의 브리핑 내용을 전해 듣고 “우리는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We will get it done together)이라고 트윗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https://twitter.com/realDonaldTrump/status/1037656324010663937 참조.
  • 2. 이 내용들의 보다 자세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연합뉴스』, 2018년 9월 6일자를 참고하기 바람. 정의용 단장의 전언(傳言)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또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동창리 엔진시험장 해체 등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그의 비핵화 의지에 의문을 품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 3. 미국의 8.15 경축사에 대한 반응은 VOA와의 서면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내용은  https://www.voanews.com/a/us-south-korea-rift-grows-on-how-to-denuclearize-north-korea/4542184.html 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미국측은 특사단 방북 이후에도 동일한 입장을 유지하였다.  https://www.voakorea.com/a/4560894.html 참조.
  • 4. https://www.reuters.com/article/us-northkorea-southkorea-trump/trump-expecting-positive-letter-from-north-koreas-kim-jong-un-soon-idUSKCN1LN270
  • 5.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의 역할에 대해 미국과 북한이 모두 큰 기대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별도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 6. 이 친서의 내용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유해 송환에 담겨진 북한의 선의(善意)를 강조하는 한편, 북한이 이만큼 성의를 보였으니 미국이 이제는 움직일 차례라는 메시지일 가능성이 크다. 이걸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인 차원과 상황관리 면에서 또 다른 진전이라고 포장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술을 강화하고 나왔다는 의미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일단 ‘민족공조’에 입각하여 국제제재를 우회/훼손할 수 있는 교류협력까지를 포함한 남북관계 발전을 지향하자는 것이고, 미국에 대해서는 실질적 비핵화 이외의 상징성은 제공할 테니까, 미국이 선제 양보를 하라는 강청(强請)의 성격이다.
  • 7. 『조선중앙통신』, 2018년 9월 6일자.
  • 8. 북한은 동 논평에서 “한갖 한갓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 마저 채택 못하게 방해하는 데 우리가 무슨 믿음과 담보로 조미관계의 전도를 낙관할 수 있는가”라고 미국의 미온적 태도를 비판한 바 있다. 『로동신문』, 2018년 8월 18일자.
  • 9. 북한은 한반도 평화의 최대 장애요인으로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즉 한ㆍ미 동맹, 주한미군, 연합훈련 등을 거론해 왔으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조ㆍ미 평화협정』, 미ㆍ북 양자간의 협정을 평화체제 수립을 필수적 요소로 주장해 왔다. 실제로, 2017년 중에도 북한은 ‘종전선언’ 보다는 북ㆍ미간 평화협정 추진에 더 무게를 둔 입장을 취한 바 있다. 단순히 정치적 상징성에 무게를 둔다면 한국과 미국에 대한 신뢰가 그리 깊지 않을 북한의 입장에서도 이에 지나치게 중점을 둘 이유가 없다.
  • 10. 이에 대해서는 아래 Financial Times의 기사 내용을 참고할 것.
    https://www.ft.com/content/0733c85e-9c4f-11e8-9702-5946bae86e6d.
  • 11. 『연합뉴스』, 2018년 9월 9일자.
  • 12. 재래전력의 건설은 군부의 전형적인 corporate interests에 속한다. 즉, 김정은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조합적 이익을 보장하면서 “통제하고는 있으되 여전히 못 믿을” 군부와 공생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남북 화해ㆍ협력과 경제발전은 북한도 뿌리치기 힘든 매력일 것이다.
  • 13. 이러한 점에서 2차 특사단 방북후 신속하게 그 결과를 중국 및 일본과 공유한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 14. 『판문점선언』 이후 조기 개설된다던 북한 국무위원회-청와대 간 핫라인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만약 이것이 상시 가동된다면 ‘특사’ 파견의 이유 자체가 없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

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