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1,543 views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없었고, 미국은 완벽한 비핵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무거래(no deal)’로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좋은 만남이었다고 평가했지만 북한의 경제제재 해제 요구를 거부했다. 북한 비핵화가 진전을 이루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자칫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화할 수 있는 ‘나쁜 거래(bad deal)’를 막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에 실질적인 제재를 모두 해제해 주었다면,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인 미공개 농축우라늄시설이나 핵물질과 핵무기는 무엇으로 보상했어야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북한 비핵화는 영원히 불가능할 뻔했다. 회담이 결렬된 것은 아쉽지만 비핵화 기회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에서 우리의 국익과는 부합한 것이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은 핵협상에 관한 북한의 의도를 드러낸 진실의 순간이었다. 아직 북한은 핵무기를 내려 놓을 준비가 덜 된 것으로 보인다. 미북간의 커다란 입장차를 고려할 때 당분간 대화가 재개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과 북한이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인하는 성과도 남겼다. 이러한 실체적 진실에 기반한 현실적 해법을 강구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성급히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추진하기 보다는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해 한미공조를 튼튼히 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견해 차, 불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비핵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폼페오 국무장관 그리고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 등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미북 양측의 의견은 비핵화 개념에서부터 구체적인 방법까지 상당한 시각차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특정 이슈에서의 입장차가 아니라 근본적인 인식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과연 다음 단계의 비핵화 협상이 과연 가능할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비핵화 개념: 북한의 비핵화와 조선반도의 비핵화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례적으로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 개념이 미국의 그것과 다른 것 같다고 밝혔다. 비핵화의 대상 및 순서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 개념은 핵물질 생산 시설은 물론이고 핵무기 생산시설, 무기급 핵물질과 기폭장치, 그리고 운반수단인 미사일을 모두 없애는 것이다. 6자회담 ‘9.19 공동성명’ 제 1조에서 의무화 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비확산조약(NPT)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복귀’하는 비핵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 정의 하에서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은 물론이고 미공개 농축 우라늄 시설도 포기해야 하며, 나아가 무기급 핵물질, 기폭장치, 그리고 미사일까지도 모두 폐기해야 한다. 존 볼튼 미국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의 개념을 확대하여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으로 답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비핵화 개념은 미국의 그것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북한은 2016년 정부대변인 성명에서 밝힌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에서 협상에 임하고 있고, 사실상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는 것이며, 주한미군이 철수하기 전까지는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일일이 반박했던 리영호 외무상이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개념이 다르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비핵화 개념이 중요한 것은 비핵화의 대상이 되는 범위와 보상의 수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에서 협상을 하다 보면 북한의 핵개발은 불법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은 관계개선을 위해 제재를 당연히 해제해 주어야 한다. 동시에 핵군축 개념으로 협상을 하기 때문에 전략자산 배치는 물론이고 미국의 핵우산이 단계적으로 폐기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북한에 핵무기가 남아 있는데 한미동맹을 먼저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핵화 개념 이다. 그간 북한은 말로는 모호하게 ‘완전한 비핵화’를 말했지만 정작 정상회담 협상장에서 보인 태도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북한의 모습을 비핵화 의지 부재로 받아들인 것 같다.

영변 핵시설: 전부 또는 핵물질 생산 시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을 수용했다.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영변 지구 모든 핵 물질 생산 시설에 대한 영구적 폐기를 미국 전문가 입회 하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영변에 있는 플루토늄 시설과 농축우라늄 시설을 폐기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영변 농축우라늄 시설을 폐기할 것을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미국 과학자들 입회 하”라는 표현을 고려할 때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검증도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매우 전향적인 것이었고 지나친 상응조치를 기대하지 않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했다면 미국이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폼페오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폐기 대상과 관련하여 미국과 북한이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미국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핵물질 생산시설만 폐기하려 했으며, 그 밖의 시설은 폐기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변에 있는 핵물질 생산시설, 즉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그리고 원심분리기 관련 시설을 폐기하고 다른 시설은 그대로 놔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변에는 수소폭탄의 재료인 삼중수소(tritium)를 생산하는 시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데 이 같은 시설은 폐기대상에서 제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리용호 외무상 또한 폐기 대상으로 ‘영변에 있는 핵물질 생산시설’을 언급했기에 미측의 주장은 사실로 보인다. 물론 후에 최선희 부상이 영변 핵시설 전체라고 말을 바꾸었는데, 이는 리용호 외무상의 발언의 파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발언으로 보인다.

만일 영변에 있는 핵물질 생산시설만을 폐기하려 했다면 북한은 아주 교묘한 협상을 전개하려 했던 것이다. 북한이 공개하지 않은 농축우라늄 시설에서 핵물질을 생산하면 영변에 있는 기타 시설을 가동해서 수소폭탄을 계속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 포함 또는 불포함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결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북한이 영변 이외의 농축우라늄 시설에 대한 협상을 거부한 것을 들었다. 북한이 실질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자 그렇다면 미국도 영변 이외의 농축우라늄 시설 폐기를 받아내야겠다는 의견을 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당황해 하면서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을 중단했다. 아마도 영변만으로 실질적 제재를 해제해준다면 나중에 농축우라늄 시설 관련해서는 안보문제, 즉 한미동맹을 내주어야 함을 직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북한의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에 대해서는 많은 우려들이 제기되었다.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이나 관련 시설을 추적해 왔고, 일부는 언론에 흘러나오기도 했다. 작년 여름 뉴욕타임즈는 미국 정보당국 종사자의 언급을 빌어 강성 지역에 농축우라늄 관련 시설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어느 지역에 얼마만큼의 농축우라늄 시설이 존재하는 지 확인한 바 없고, 북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제재해제를 요구하면서도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근본적으로는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에서 협상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데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은 남겨두어야 한다. 제재해제에 이를 협상카드로 써 버리면 나중에 주한미군 철수에 사용할 카드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최선희 부상이 언급한 미국과 계산법이 달랐다는 표현은 바로 이 문제를 시사한 것으로 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유지 또는 실질적 해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북제재를 모두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표현임이 밝혀졌다. 폼페오 국무장관은 북한이 2016년 이후 결의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다섯 개 중 군사부분을 제외한 민간경제와 관련된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리용호 외무상의 발언도 이와 유사하다. 그는 영변 핵시설 포기의 대가로 2016년 이후 채택된 다섯 개의 대북제재 중 “민수, 인민경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을 해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비록 일부 제재 해제고 민간 부분에 해당하는 것만 해제해 달라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이 아파하는 모든 제재를 해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엔 대북제재의 제정과정을 보면 이러한 북한의 주장은 너무 지나쳤다. 북한은 영변 외에도 다른 지역에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놔둔 채 영변만으로 제재의 실질적인 부분을 모두 해제 받고자 한 것은, 값을 불러도 너무 터무니없게 부른 것이다. 왜 2016년 이후의 대북제재가 중요한지는 다음의 <표 1>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주요 내용

표_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주요 내용

현재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총 11개가 존재한다. 그 중에 다섯 개가 2016년 이전에 결의된 것이고 나머지 여섯 개는 그 이후에 결의된 것이다. 북한은 이 여섯 개 중 여행금지만을 규정한 안보리 결의 2356호를 제외한 나머지 제재 결의 다섯 개를 모두 해제해 달라고 한 것이다. 2016년 이전의 제재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물자나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안보리결의 2087호의 대량현금 유입 차단 정도만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내용일 뿐 북한에 별다른 고통을 주지 못했다. 그 결과 2016년 이후의 대북제재는 성격을 전혀 달리한다. 강노 높은 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자는 문제의식과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분노한 중국측의 동참으로 인해 북한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의 광물 수출 금지, 농수산물 수출 금지, 섬유제품 수출 금지, 해외 노동자 파견이 금지되었고, 북한과의 합작사업 및 신규투자가 금지되었다. 또한 북한 민간경제에 부담을 주기 위해 원유 및 정제유 수출량도 제한했다. 북한에게 핵무기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경제를 선택할 것인지 양자택일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단지 영변 핵시설만으로 이러한 제재를 사실상 해제해 달라고 주장했다. 민생과 관련한 일부 제재해제라는 말로 교묘하게 포장하지만 제재의 목적이 민간경제까지도 압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재의 핵심 내용이 다 포함되는 것이다. 이들 제재를 해제할 경우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그 결과 다음단계의 비핵화부터는 북한의 선의(善意)에 기대거나 아니면 한미동맹을 대가로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트럼프 대통령이 핵문제에 정통하지 않더라도 북한의 얄팍한 꼼수에 넘어갈 수준은 아니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협상과정 평가

김정은 위원장의 초조함과 트럼프 대통령의 노련함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의 최대 피해자는 김정은 위원장이다. 북한 관영언론을 통해 하노이 방문을 크게 홍보했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초조함을 드러냄으로써 협상가로서는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2월 27일 만찬 장에서는 물론이고 다음날 정상회담 회담장에서도 무언가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1분이라도 아깝다면서 회담에 임할 것을 촉구하는 모습은 이번 회담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절박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협상 측면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도 북한의 제안을 미국이 수용했다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가는 티켓을 얻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조급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낸 것은 실수였다.

정상회담 결렬 이후 베트남과의 정상회담 일정을 최소화 한 것과 공개행사 중 간간히 나타난 힘없는 모습 역시 김정은 위원장의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 및 만찬 이외에는 호치민 묘를 예방했을 뿐 어떠한 대외행보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당초 일정보다 서둘러 베트남을 떠남으로써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베트남 국민들의 환호에 웃으며 답례하고 기념사진도 찍긴 했지만 어색한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거래의 달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주요 언론으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겪었다.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혹시 모를 나쁜 합의의 가능성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상황을 역전시켰다. 북한에게 제대로 된 비핵화 로드맵이 없다면 제재를 완화시켜 줄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 것이다. 나쁜 합의를 하지 않음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핵 실험과 미사일 실험과 같은 북한의 전략도발을 예방하면서도 북한에게 비핵화의 부담과 경제적 압박을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반전을 만들어 냈다. “빅딜(big deal)”이 담겨져 있다는 문서를 김정은에게 건넴으로써 김정은에게 숙제를 던졌다. 북한에게 핵보유와 경제적 번영 중 하나를 택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북한의 과욕과 전략적 실패

당초 하노이 정상회담에서는 소위 ‘작은 거래(small deal)’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발언 등을 유추해 볼 때 양측은 낮은 단계의 비핵화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았고 그 결과 미국도 제재 완화 보다는 연락사무소 설치나 종전선언, 그리고 인도적 지원만을 약속하는 거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더 내놓는다 해도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 정도를 요구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협상장에서 사인을 할 수도 있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고려할 때 낮은 단계의 거래를 약속하는 합의문 초안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정작 협상장에서 ‘큰 거래(big deal)’를 시도했다. 물론 제재를 해제 받아 경제성장 기반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당초의 준비와 예상을 뛰어 넘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리영호 외무상의 기자회견 발언을 보면 북한은 연락사무소나 종전선언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로지 경제제재 해제만을 언급하며 미국의 부당한 압박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의 요구는 과해도 너무 과했다. 아무리 조선반도의 비핵화 개념에 입각한 북한식 셈법이었다고 해도 누구도 받을 수 없는 제안을 한 것은 협상 전술상 커다란 실수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무리수를 두었을까? 첫째, 대북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경제상화 악화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기에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만으로는 이를 회복시키기가 어렵다고 보았을 것이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의 개인적 조급증도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북한이 요구했던 제재가 해제되었다면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 그간 추진해 온 핵보유 전략이 마침내 그 열매를 맺게 될 상황이 도래하자 김정은 위원장이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셋째, 실무진의 잘못된 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경직된 체제다. 김정은 위원장이 특정 이슈에 대해 지시를 내릴 경우 이를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번 협상에서도 김혁철 등 실무진이 협상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찌되었던 북한의 과한 욕심과 실패한 전략으로 인해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탑다운 방식의 한계

이번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소위 ‘탑다운(top down)’ 방식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북한은 작년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을 강조하고 정상간의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탑다운 방식의 협상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하노이에서 발생한 외교 참사는 북한이 추진해 온 탑다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실무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거래가 가능한 수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놓아야 하는데 이러한 사전 준비 없이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파국이 발생할 경우 그 후유증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북한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전부터 탑다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방식을 고집했던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공략해서 전략적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이다. 지난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처럼 실무진의 논의를 최소화 하고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었다면 북한으로서는 더 없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북한의 의도를 트럼프 대통령이 역이용해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그대로 갚아 버린 것이다. 팁다운 방식은 잘 될 경우에는 정상간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장점이다. 반면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정상간 불신이 싹트게 될 것이므로 실무선에서 이를 회복하기가 어렵다.

종합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한국 국익의 관점에선 비난할 수가 없다. 만일 이번 정상회담에서 영변만으로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를 모두 해제해 버렸다면 북한은 핵보유의 길로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의도를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장에서 나오는 선택을 한 것이고 그 결과 북한 비핵화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정보력과 국내정치

트럼프 대통령은 미공개 농축우라늄 시설을 언급하며 북한에 대해 관련 시설을 언급했음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 도중 ‘북한을 인치(inch)’ 단위로 들여다 보고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간 정보당국이 파악해온 관련 시설의 위치 등을 적시한 것 같고 이에 김정은 위원장이 당황해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사찰 문제에 관한 질문받고 미국은 북한 핵시설을 사찰할 준비가 잘 되어 있음도 강조했다. 미국 정보 당국에서 북한 핵시설에 대해 철저한 추적을 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정보력은 일견 불가능하게 보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끄는 실질적인 힘이 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의회 청문회에 참석하여 트럼프 대통령을 인종차별주의자, 협잡군, 사기꾼 등으로 부르며 성 스캔들과 러시아 스캔들의 관련 내용을 증언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실황중계는 미국 전역으로 방송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보다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같은 복잡한 국내정치적 환경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정치적으로 보다 여유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더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보다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된 합의를 가지고 돌아왔을 경우 더욱 큰 비난을 받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상실하게 될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과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는 대 반전은 이러한 국내정치적 상황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북미대화 전망

합의 불발로 인한 김정은 위원장의 충격은 큰 것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꾸어 온 핵보유국의 꿈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선중앙TV나 노동신문을 통해 정상회담을 이례적으로 홍보한 김정은 위원장은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이들 매체는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고 계속 홍보하겠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주변에는 이번 출장에 동행한 수많은 수행단원들이 있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고 김정은 위원장도 이를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수령절대주의를 택하고 있는 북한 체제를 고려할 때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리 없다. 아마도 정상회담에 관여한 일부 인사들의 신상에 변화가 예상된다.

북한으로서는 과연 탑다운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지, 그리고 이미 진심이 탄로난 상황에서 미국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협상 방식이나 협상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동시에 협상팀의 조정도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급박한 경제상황은 김정은 위원장이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아마도 일정한 시간 이후 대화를 재개하려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입장은 좀 더 여유롭다. 무엇보다 나쁜 합의를 거부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전통적으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지지해 온 공화당 지지층이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 거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한 대북제재가 나름 작동을 하며 북한 경제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미국은 보다 여유를 가지고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을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나름대로의 대응 방식을 다시 가동할 것이다. 핵물질과 핵무기가 계속 만들어 지고 있음을 부각시키고 혹시라도 핵무기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징후들을 흘릴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 내부에 핵 확산을 우려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름 북한 경제가 버틸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개념과 로드맵을 전향적으로 제시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이는 북한의 핵전략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입장을 바꿔 ‘북한의 비핵화 개념’을 받아들이거나 빅딜이 아닌 스몰딜을 추진하며 영변 핵시설과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교환하려 든다면 미북 대화는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대화의 재개가 바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빨라야 하반기 정도에 실무협상이 재개될 전망이다.

 

정책 건의

무의미한 중재보다는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

미북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는 다시 한 번 중재자의 역할을 다짐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가동의 의지를 밝히고 있으며, 대화를 조기에 재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입장을 바꿔 새로운 합의를 이뤄내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자칫 북한이 새로운 협상 전략을 구상하기도 전에 한국만 나서서 서두르다가는 이도 저도 안되는 난처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미북간 대화를 연계하는 일은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위장된 것이었다.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을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갖는 북한을 미국에게 다시 연결시켜주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일이다. 이 경우 미국으로부터도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중재역할에 앞서서 해야 할 일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견인하는 일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든 특사를 파견해서든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촉진·확인하고 전반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준비해야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미공조의 복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견인하는 과정에서 한미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협상전략을 파악하고 한국의 역할을 확인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원하는 것만 보려 해서는 안 되고 있는 그대로를 보며 공동의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특히 북한에 대한 제재해제 이야기를 먼저 꺼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거부하고 있는 이상 제재해제 문제를 이야기 할 경우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지고 정책공조는 물 건너 갈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과거 북한산 석탄 반입과 같이 한국 기업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 사례가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유사 사례를 계속해서 추적해 왔을 것이고, 필요시 이를 언론 등에 유출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악화될 경우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한미공조는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한국의 역할과 공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더라도 협상장에서 물러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평가해야 하며, 한국이 어떻게 북한을 설득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미동맹 차원에서의 대비태세 강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협상 장기화에 대비한 튼튼한 대비태세 구축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나타난 북한의 태도는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끝내 이를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대와 달리 북한의 저항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스스로도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고. 정상회담이후 최선희 부상도 새로운 길의 가능성은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길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겠지만 북한이 당분간 협상장에 나오지 않고 핵능력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문제는 지금과 같이 북한을 대화로 견인하기 위해 연합군사훈련의 규모를 줄이고 확장억제의 논의를 사실상 뒤로 미루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북한을 대화에 묶어두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하고 명칭을 변경하는 일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북한의 증강되는 핵능력을 지속적으로 억제해야 할 임무가 한미동맹에 주어져 있다. 띠라서 현재와 같은 훈련부족 상황을 장기간 지속해서는 안 된다. 만일 북한이 대화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내년부터라도 보다 증강된 연합군사훈련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훈련을 안하는 군대가 강군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지만 적정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더불어 훈련을 복원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확장억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상 돈이 많이 들어가는 전략자산 전개는 반대할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를 고려할 때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이 없는 상황에서 전략자산을 먼저 전개할 이유도 없다. 다만 북한의 증강되는 핵능력을 고려하여 확장억제 개념과 구체적 공조 방안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나토의 핵공유 정책과 같이 한국군의 플랫폼에 미군 전술핵무기를 장착시킬 수 있게 하고 유사시 전술핵 사용을 한국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철저한 대비태세 유지는 북한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협상력을 제고시켜 준다. 대화에 집착하는 단순한 평화공세만이 아닌 평화와 억제를 동시에 가져가는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