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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9일 그리스는 이탈리아와 ‘이오니아해’(Ionian Sea)에서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을 체결했다. 이오니아해가 동(東)지중해와 다소 떨어져 위치하고 있음에도 이번 그리스와 이탈리아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도 터키에 대한 압박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번 호에서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을 둘러싼 국제법적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미 지난 1977년 5월 24일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이오니아해에서의 ‘대륙붕’의 경계획정 협정을 체결했다. 1977년 당시는 국제사회에 배타적 경제수역 개념이 소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대륙붕에서의 천연자원 탐사 및 개발에 국가들의 관심이 좀 더 집중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일단 대륙붕의 경계획정 협정만 체결했던 것이다.

1977년 그리스와 이탈리아 간 대륙붕의 경계획정 협정은 양국 간 협상을 통해 이오니아해 내에서 16개의 포인트들을 도출했고, 이들을 연결하여 경계선을 그렸다. 1977년 협정상 경계선이 정확히 양국 간 중간선(등거리선)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간선을 기초로 최소한의 변형만이 존재했다. (사실 그리스가 1977년 협정 체결에 성공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다소 양보한 측면이 발견된다.) 더구나 1977년 협정은 오로지 16개의 포인트들만 도출함으로 1번 포인트 북쪽과 16번 포인트 남쪽에 존재하는 알바니아, 몰타, 리비아 등 인근 연안국들의 해양 권원 또한 존중하고자 했다.

그리스는 이와 같은 1977년 협정상 (대륙붕의) 경계선을 (배타적 경제수역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상부수역의 경계선으로도 활용하고자 했다. 특히 이러한 그리스의 의도는 2013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리스는 터키와 해양경계획정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어려운 과제로 생각한 반면에 이탈리아와 해양경계획정을 수행하는 것은 그나마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는 이탈리아를 이용해, 즉 이탈리아와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을 체결함으로 터키를 압박하고자 하는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사실 그리스가 이탈리아와 1977년 양국 간 대륙붕의 경계획정 협정을 체결한 이유도 바로 터키와의 분쟁 때문이었다. 1970년대 그리스는 터키와 격렬한 분쟁을 겪는 과정에서 그리스가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우호적인 국가라는 ‘국가 이미지’를 위해 ‘조약’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체결한 것이 바로 1977년 협정이었다. 즉, 이탈리아는 (그리스의 양보를 전제로) 그리스의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활용되었다.

이오니아해를 대상으로 체결된 2020년 그리스와 이탈리아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의 특징 중 하나는 이 조약이 6해리에 이르는 영해를 가진 그리스와 12해리에 이르는 영해를 가진 이탈리아 간 조약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가 이탈리아와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을 체결한 상황에서 굳이 그리스 자신만 계속해서 6해리 영해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발생시킨다. 영해에는 주권이 미치기 때문에 그리스가 이탈리아에 비해 손해를 감수하면서 (이탈리아의 12해리 영해에 비해) 6해리나 좁은 영해를 가질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이탈리아와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 체결을 기다렸다는 듯이 2020년 8월 그리스 총리가 직접 그리스 의회에서 이오니아해에서 6해리 영해를 12해리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유엔해양법협약 제3조가 “모든 국가는 이 협약에 따라 결정된 기선으로부터 12해리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영해의 폭을 설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유엔해양법협약을 포함하여 국제법이 12해리 영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가 자신의 영해를 6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가 관련 국제법에 따라 자신의 영해를 6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하는 것은 터키에게는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가 이오니아해에서는 물론 ‘에게해’에서도 영해를 6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할 수 있다는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지중해 그리고 에게해에서 섬들을 거의 확보하지 못한 터키 입장에서 만약 그리스가 에게해에서도 자신의 영해를 6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하게 되면 이는 에게해가 사실상 그리스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는 이탈리아와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 체결 이후 논리적으로 이오니아해에서의 영해의 폭을 6해리에서 12해리로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터키에 대하여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1977년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는 2020년에도 이탈리아와의 조약 체결을 통해 터키와의 분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는 그리스와 이집트 간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도 체결했다. 그리스는 이를 통해 동지중해에서 ‘직접적으로’ 터키를 압박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협정 체결 이후 이오니아해에서의 (그리스의) 영해의 폭 확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에게해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영해의 폭이 확장될 수도 있다는 것을 레버리지로 터키를 압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그리스의 국제법을 이용한 압박에 대하여 터키가 적절한 탈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말해, 터키가 그리스와의 무력 충돌을 감수하고자 하지 않는 한 터키는 언젠가는 그리스와의 협상 테이블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법을 통해 전면적으로 터키를 압박하고 있는 그리스의 행보를 통해 분쟁 상황에서 무력 사용 그 자체보다 국제법이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본 글은 2020년 11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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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