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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 한·일 간 갈등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이 위축되나 싶더니, 전례 없던 중·러의 연합초계비행이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에서 감행되고 러시아 조기경보기의 영공 침범이 자행됐다. 세계 10위권의 중견국마저 우습게 보는 강대국의 만행이 놀랍지만, 그간 우리는 안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정찰기의 영공 침범은 고의성과 불법성이 인정되는 명백한 ‘평화 파괴 행위’다. 첫 침범 때 우리 공군의 대응이 있었음에도 다시 침범했기에 고의이며, 영공 침범 이유가 군사훈련이므로 국제법 위반이다. 군사적 목적이 없는 단순 비행이 아닌 군사훈련은 유해통항(有害通航)으로, 접수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러시아의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영공 침범의 더 큰 문제점은 그 의도다. 군사훈련의 목적은 두 가지다. 자국의 군사 역량을 점검, 개선 사항을 식별하는 것과 상대방의 대비태세를 파악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한국과 주한미군, 일본과 주일미군의 움직임을 정찰자산을 통해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낮은 단계의 군사적 목적에 불과하다.

높은 단계의 정치적 목적은 ‘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역내 전략 구도에서 찾아야 한다. 한·미·일 안보 협력에 균열 조짐이 보이니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다. 미국은 이란 문제로 머리가 복잡하고, 한·일은 강제징용과 경제 제재 문제로 서로 싸우니 한 번 찔러 본 것이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의 행보를 보면 그들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한·일을 방문한 때에 정면도전한 공세적 행보에서 국제관계의 냉정함에 한여름에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러시아가 일본이 아닌 한국을 택한 것은 그만큼 우리를 얕잡아 본 것이다. 한·미·일 협력의 연결고리 중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다. 경제력도 약하고 군사력도 열세다. 지정학적으로도 대륙에 있어 완충공간이 제한되고 조기경보 또한 어렵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우리의 ‘안보 하려는 노력’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 시간을 끌면서 억지 주장을 펴는데도 우리 정부는 현실을 외면한다. 탄도미사일에 입 다물고 북한의 목선 정박귀순에는 눈 가리려 하더니, 이젠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이름도 북한 눈치를 보느라 바꾼다. 한·미·일 협력의 근간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압박 카드로 활용하며 이를 깰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부당한 압박에 굴복하며 밝힌 ‘사드(THAAD)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가입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이 3국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3불(不) 입장은 우리의 안보 주권을 포기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오죽하면 허버트 맥매스터 당시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이 그 영역에서 주권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겠는가.

이러한 태도로는 우리의 안보를 지킬 수 없다. 아무리 잘살고 군사력을 키워도 그 상위에 있는 정치적 판단이 흔들리면 무용지물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영공 침범 사건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생존 전략을 제시해 준다. 그것은 확고한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을 통해 누구도 우리를 넘볼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 중국과 러시아도 억제할 수 있고 일본도 가둬 둘 수 있다.

 

* 본 글은 7월 24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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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