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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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극적으로 이루어진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1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꺼져가던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되살리는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다. 마치 트럼프 주연의 ‘리얼리티 쇼’처럼 진행된 정상회동 이벤트는 이제 실무회담으로 이어지며 북한 비핵화의 미래를 좌우할 운명의 순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간 북한은 핵능력을 손에 넣었고 미국을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는 북한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강력한 경제재재를 구축했다. 이제는 그간 쌓아올린 핵능력과 대북제재의 접점을 찾아가며 실질적 비핵화를 달성하는 협상을 해야 한다. 관건은 무엇을 주고받을지에 있다. 북한은 미국이 제재를 먼저 완화하길 희망하고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길 희망한다. 팽팽한 기싸움 속에서 다가올 실무 협상을 예단하기 어렵지만,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와 문제점을 살펴본 후 우리가 취해야 할 대응 방향을 검토한다.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 및 남북미 회동 평가

회동 성사 배경

지난 6월 30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국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트위터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나자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북한이 이를 수락하면서 판문점 회동이 성사되었다. 이로써 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하고 북한 땅을 밟았다. 사상 최초로 남북미 정상 3인이 함께 만난 자리이기도 했다. 정상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파격적 행보를 보였고 예상된 15분을 훨씬 웃도는 만남이었기에, 단순한 회동이라기보다는 정상회담에 가까웠다.

판문점 미북 회동이 이처럼 신속하게 성사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북미 정상 3인의 계산이 서로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재선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추가 미사일 도발을 막아야 할 입장에 놓여 있었다. 재선 직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게 되면 그동안 진행해 왔던 비핵화 협상 성과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동 제안 트윗을 올리기 전날 밤 민주당 대선주자 1차 TV토론은 약 181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시청 기록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깜짝 초청 트윗을 올리고 연달아 시진핑 주석과 미중 무역전쟁 휴전 합의를 내놓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다시 집중시켰다. 10여 년 간의 리얼리티 TV쇼 진행 경력자다운 행보였다.

<표 1> 판문점 정상회동의 배경

트럼프 행정부
김정은 정권 문재인 정부
• 북 미사일 도발 억제
• 민주당 경선 흥행
• 시진핑과의 정상회담
• 김정은 명예회복
• 트럼프 설득/현혹
• 핵보유 굳히기(정상국가화)
• 조연 자처
• 대화 진행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 할 처지에 있었다. 60시간이 넘는 열차 대장정을 감수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던 지난날의 실수를 만회하고 완전무결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신속히 복구해야 했다. 이런 그에게 판문점 회동은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회동은 김정은 위원장이 그동안 강조해 온 ‘톱다운(top-down)’ 방식, 즉 정상간 유대에 기초한 관계 개선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한 상황에서 정상회동에 임했던 것이라면, 이는 핵보유 굳히기와 정상국가화에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이벤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판문점 정상회동에서 조연을 자처했다. 6월 30일자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대화의 중심은 미국과 북한”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정상이 만나는 순간을 남측 자유의집에서 대기하며 조용히 지켜봤다. 북미 정상이 양자 회동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기도 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대화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정체된 비핵화 논의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상회동 결과

정상회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이견이 있다.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은 실무회담 재개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이 그동안 희망해 왔던 바였다. 하지만 북핵 문제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미북 정상들의 발언 중 비핵화라는 단어 자체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미북 정상간 대화 중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아마도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미국 측에 설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미북 정상 간 정치적 이해가 같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추후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서 방해자가 되거나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이번 회동은 잘 보여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핵보유국 및 지도자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라는 비전통적 대통령상이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사실 역시 재확인되었다. 이 같은 정치적 이해의 공유는 향후 당연히 추진되어야 할 북한 비핵화 협상이 그 의미가 변질된 핵군축 협상, 즉 북한의 핵보유 협상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도 동시에 보여주었다.

한편 미북 직접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축소되며 통미봉남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판문점 회동 성사과정에서 미측이 먼저 정상회동을 제안하고 북측이 이를 수락한 다음, 한국이 장소 제공에 협조하기로 했다. 사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때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동행하며 김정은 위원장을 소개하는 형식을 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적인 모습으로 나서길 원해서 한국 측 희망사항은 무산되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자유의 집’ 안에서 조우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회동이 진행되길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자유의 집’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형식이 내용을 반영하는 외교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국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중심적 외교를 펼치며 동시에 북한이 의도적으로 한국을 배제하면서 통미봉남의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남북미의 손익 계산은 형식적으로는 ‘윈-윈-윈’으로 비춰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언론의 주목을 충분히 확보했고, 북한의 도발 예방 및 실무협상 재개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김정은 정권의 경우, 이번 회동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명예가 회복되었고, 미국 측에게 새로운 셈법의 가능성을 충분히 어필했으며, 보통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편 북미 대화의 중재자라는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이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정치적 취약성을 드러냈고, 김정은 정권은 트윗에 답을 해야 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임을 노출했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는 말로는 운전자나 중재자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심적 역할에서 소외되고 있음이 드러난 아쉬운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판문점 회동이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갖는 실제 함의에 대해 보다 면밀한 고찰이 요구된다.

<표 2> 판문점 정상회동의 손익 분석

당사자 이익 손실
트럼프 정부 • 언론 주목 확보
• 북한 도발 예방
• 실무협상 확보
• (도발 예방 관련) 정치적 약점 노출,
도발에 인질화
• 비핵화 목표 희석
김정은 정권 • 김정은 명예회복
• 미 새로운 셈법 가능성
• 불량국가 이미지 탈피
• (트윗에 답변) 대내적 조급성 노출
• 경제상황 악화 추정
문재인 정부 • 중재자 이미지 • 실질적 영향력 한계 노정

 

실무회담을 통한 비핵화 협상 전망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의 함의

이번 미북 정상회동은 비핵화 협상과 관련하여 어떤 함의를 갖는가?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당분간 미국 국내정치 요인이 비핵화 협상을 좌우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판문점 정상회동에서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북한 문제를 계속 활용할 전망이다. 자신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았고, 그 덕에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는 아전인수격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발신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도 한두 차례 더 추진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만나지 못했던 김정은 위원장을 자신은 만났으며, 한반도 상황을 충분히 관리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 행보의 방점은 북한의 도발 방지에 있다. 비핵화 협상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성과가 있는 듯 비춰지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입장이다. 현재 실무협상이 즉시 재개될 것으로 보이나, 만약 올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 실무협상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면 새로운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금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막고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관건은 북한의 행보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요청에도 발 빠르게 반응한 것은 다시 한 번 단계적 비핵화로 미국을 견인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일본 언론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2 판문점 정상회동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대화는 하노이 회담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며 영변 핵시설만으로 제재완화를 얻어내려 했고 트럼프 행정부는 영변 플러스 알파를 다시 한 번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북측으로 돌아가는 김정은 위원장의 미소에서 나름대로 다음 협상에 대한 계산이 선 것으로 전망된다.

화려했던 정상회동 이벤트와 달리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성과는 없었다. 동시에 각 당사자들이 자신의 입장변화보다는 상대가 먼저 변화하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당장 실무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타협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변화를 거부하는 사이 미국이 먼저 정상회동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북한보다는 미국이 더 급해 보이고 또 양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결과 만일 미국이 빠른 합의를 원한다면 새로운 타협 국면에서 북한의 의지가 관철된, 포괄적 합의 없는 단계적 비핵화 해법을 수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가정은 이번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으로부터의 논리적 추론이고, 따라서 미국의 입장 변화가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 이후 미국 내 여론 동향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 이후 미국 내 정책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핵 동결에 관한 담론이 확산중이다. 무엇보다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언급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북한 핵능력 동결과 미국의 연락사무소 개설과 인도적 지원 교환 카드’로 인해 그간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미국 내 비확산스쿨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판문점 미북 정상회동과 북핵 동결카드와 관련한 주요 입장은 둘로 나뉜다. 먼저 회의론이다. 주로 북한 문제를 다뤄온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장되고 있다. 판문점 정상회동은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했고, 북한 비핵화에는 본질적으로 기여한 바 없다는 인식이다. 에반스 리비어(Evans Revere) 전 국무부 동아태부차관보, 박정(Pak Jung) Brookings 한국석좌, 수미테리(Sue Mi Terry) CSIS 연구원, 데이빗 맥스웰(David Maxwell) 민주주의 수호재단 연구원 등이 이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동결 거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전임자들에 비해 더욱 진전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선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수용 가능성이 있는 거래이고, △북한의 핵보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수용가능성도 있는 거래다. 다만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핵보유가 고착화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쁜 거래’로 우려하고 있다.

과거 협상 전례에 비춰볼 때, 섣부른 핵 동결 수용은 김정은 위원장이 노리는 북한의 핵 보유 인정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 일부 제재 완화만 가능하게 하는 섣부른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를 유지해야 하고, 북한이 이에 관한 포괄적 합의에 수용할 때까지 경제재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중 일부는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완전한 비핵화 거래를 원하는지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평화주의자로 비춰지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다음으로 동결수용론이다. 주로 비확산 문제를 다루어 온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장되고 있다. 로버트 아인혼(Robert Einhorn)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 게리 세이모어(Gary Samore)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제임스 클래퍼(James Clapper) 전 미 정보국 국장, 조엘 위트(Joel S. Wit) 스팀슨센터 선임위원 등이 이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동결 거래는 일종의 중간 단계 개념이다. 북한의 ‘영변 및 비밀 핵시설’ 동결과 대북 제재를 맞교환하는 중간 단계 합의안로서 의미가 있다. 즉, 장기적 목표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를 것이기에,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일괄 폐기하지 못해도, 협상 초기 단계에서 핵동결은 좋은 협상 대안이라는 것이다.

동결 거래의 내용으로는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서야 하며 미공개 핵시설도 동결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결 단계에서 핵 신고서를 받아야 하며, 북한은 우라늄 및 플루토늄 생산 장소와 생산량, 이어 핵무기 생산 내역, 마지막으로 핵무기 숫자 및 위치를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과거 북한측 관계자가 ‘핵 프로그램 동결, 감축, 폐기’의 3단계 해법을 제시한 적이 있으므로 북측도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제는 제재 완화여부인데, 과연 이러한 북한의 핵 동결에 어느 정도 제재를 완화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전문가는 적고 동시에 일부는 제재를 완화하지 않고 동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을 고려할 때 트럼프 행정부가 동결 거래로 방향을 선회한다 해도 미국 전문가 서클 내에서의 여론은 반으로 갈릴 가능성이 있다. 불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북핵 문제에 관한 인식은 미국이나 동맹국들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는 관점 외에도 국제 비확산체제를 관리해야 한다는 시각인식도 존재하기에 북한 핵문제를 위협의 문제로 바라보는 우리와는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향후 실무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 전망

미북간 비핵화 실무협상은 예정된 대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구체적 합의의 도출은 더디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미북간 입장차에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협상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미국이나 북한 모두 자신의 입장을 양보하지 않고 보다 유리한 협상을 전개하려 들기에 쉽게 타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협상 당사자인 미북 양측은 속도감 있게 협상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적어도 내년 11월까지는 북한의 추가적 도발을 막고 현상 유지를 해야 하기에 보다 여유로운 시간표를 갖고자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늘 서두르지 않겠다(no rush, no hurry)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미국의 셈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위협하지 않고, 비확산 체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으면 족하기 때문이다.

북한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합의를 하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미국을 압박하는 것이 낫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시간 경과는 핵 보유를 공고화하고 핵 활동 동결 시까지 핵능력을 증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장 경제문제가 가장 큰 관건이지만 시진핑 주석의 방북과 북중 정상회담 등으로 어느 정도 여력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과의 중간단계 협상이 이루어질 경우 일정부분 제재 완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에, 입장을 먼저 바꾸기보다는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버티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관건은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는가인데,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가도에서 북한이 방해자로 등장하는 것을 막으려는 미국이 얼마나 공세적인 입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실무협상 진행 과정에서 만족하지 못한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같은 공세적 행보를 취하려 들 경우, 미국은 북한을 대화 국면에 묶어두기 위해 미측이 ‘당근’을 제시할 수 있다.

이때 미국의 ‘당근’이 개성공단이든 재제완화든 북한의 경제적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 된다면, 향후 협상은 북핵 폐기로 전개되기보다는 북한 핵보유를 고착화 시켜주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핵을 계속 보유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을 만날 수 있고 미북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고, 나아가 경제제재도 부분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왜 핵무기를 내려놓겠는가. 핵을 내려놓을 경우 오히려 자신들의 전략적 위상이 낮아질 것을 잘 아는 북한이 핵폐기를 수용할 가능성은 더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한편 미북간 실무협상 추진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시켜 나갈 것이고 미국도 한국 정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이번 주 베를린에서 예정된 한미 북핵협상 실무책임자들의 회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북이 직접 접촉하는 사이에 한국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운전자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지만 미북대화는 물론이고 남북대화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계속해서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북 실무협상에서 한국의 이익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동시에 한국 사회 내에서 북핵문제를 둘러싼 남남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 없이 자칫 그간 20여 년 간 유지해 온 북핵 폐기 노력이 실패로 귀결될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

지금까지 미국은 빅딜을 추진하며 북한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판문점 정상회동 이후에도 공식적인 입장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향후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로는 동결딜(freeze deal), 스몰딜(small deal), 빅딜(big deal)의 3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거래로 가는 과정에서 시간만 지연되는 노딜(no deal)의 가능성도 여전하지만, 거래에서 양측이 교환할 내용이 아니므로 생략한다. 미북간 핵심 쟁점인 포괄적 합의를 북한이 수용할 경우 동결딜이나 스몰딜도 그 일부로 포함될 수 있기에, 이글에서 언급하는 동결딜이나 스몰딜은 포괄적 합의가 없는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시나리오임을 밝혀둔다. 먼저 이 세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3> 향후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

동결딜 스몰딜 빅딜
배경 • 북한의 비협조
• 미국 국내정치
• 미국 여론 수용성(비확산스쿨)
• 북한의 비협조
• 미국 국내정치
• 트 행정부 수용성
(하노이: 영변 ± @)
• 북한의 협조
내용 • 북한: 핵 동결
(핵물질/핵무기 생산)
• 미국: 관계 개선,
(A) 인도지원/제재 유지
(B) 제재 부분 완화
• IAEA: 모니터링
(해당시설, 낮은 수준)
 
단계적 협상 → 비핵화
실현 가능성 제한
• 북한: 영변 일부 폐쇄
(핵물질 생산시설)
• 미국: 관계 개선,제재 부분 완화
• 미국/IAEA 모니터링
(해당시설, 높은 수준)
 
단계적 협상 → 비핵화
실현 가능성 제한
• 북한: 포괄적 합의
(비핵화 최종상태 로드맵에 합의)
• 미국: 관계 개선, 제재 단계적 완화
평화체제 포함
• 동시적/병행적 이행
• 미국/IAEA 모니터링
(전체시설, 높은 수준)
문제점 • (B)의 경우 북한 핵보유 고착화 우려 • 제재 완화 규모에 따라 핵보유 고착화 우려 • 없음
실현
가능성
• 북한 (B) 선호
• 트 행정부 (A) 선호
• 미 비확산계 선호
 
연구진 평가 ⇒ 중간
• 북한 선호
• 트 행정부 비선호
 
연구진 평가 ⇒ 중간
• 북한 반대
• 트 행정부 선호
 
연구진 평가 ⇒ 낮음

동결딜은 북한이 끝내 미국이 요구하는 포괄적 합의에 동의해주지 않고, 역으로 미국이 양보를 하라고 버티기를 시도할 때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안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과 같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선가도에 훼방꾼으로 등장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거래가 고려될 수 있다. 특히 미국 내 일정부분 존재하는 비확산스쿨을 활용해서 여론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동결딜의 경우 북한은 핵활동을 동결해야 한다. 영변 및 영변 이외의 핵물질 생산시설과 기타 시설의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미사일 생산시설과 핵무기 생산시설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또한 이들 시설에 대해 동결과 관련한 모니터링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관련 시설의 신고, 가동중단, 모니터링이라는 세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때 모니터링 수준은 북한의 핵활동 내역을 파악하는 전면적인 검증이 아니라 단지 시설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는 수준의 단순 모니터링이 될 것이다.

문제는 보상이다. 미국이 관계개선이나 인도적 지원만으로 북한의 핵활동 동결을 이끌어 낸다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의 추가적인 비핵화 행동을 이끌어 낼 협상 수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동결딜의 경우에도 제재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핵 관련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해 주는 일은 북한이 원하지 않는 부분이다. 또 가동을 중단하는 것도 경제적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북한은 제재 완화 없이 동결딜을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일 제재 완화가 없는 동결딜이라면 북한은 모든 핵활동을 신고하지 않고 영변에 있는 원자로나 농축우라늄시설만으로 대상으로 하고, 비핵화 협상의 본질인 미공개 해시설과 핵물질과 핵무기를 보호하며 시간을 보냄으로써 핵보유를 굳히려 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동결딜에 제재 완화가 보상으로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때 협상이 북한 중심으로 진행되고 완전한 북한 비핵화는 이루어지지 어려울 것이다. 제재가 완화되면 완화된 만큼 경제적 이익이 뒷받침 되고, 동시에 남아 있는 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행을 통제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북한은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의 폐기로 가기 보다는 동결을 지속하면서 미국의 추가적인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물론 합의가 이루어질 때에는 단계적 비핵화를 이어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협상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동결딜은 보상 여부에 따라서 비핵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반대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스몰딜의 경우는 하노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고 이에 상당하는 제재 완화를 얻어내는 것이다. 미북 관계 개선이나 인도적 지원 문제 역시 동시적이고 병행적인 조치로서 협상에 포함될 것이다. 그럼에도 협상의 핵심은 제재 완화가 될 전망이다. 제재만 완화되면 북한은 저임금의 숙련공을 보유한 경쟁력 있는 개발도상국이 될 수 있다. 외부의 커다란 지원도 필요 없다. 따라서 명분이야 어떻게 제시하든 북한이 노리는 것은 제재 완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처음에는 영변에 있는 핵물질 생산시설을 이야기 했고, 나중에는 영변 전체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영변 플러스 알파를 언급했다. 따라서 실무협상을 통해 스몰딜이 이루어질 경우 그 출발점은 영변이 될 것이다. 영변의 일부 시설이라면 영변 마이너스 알파가 될 것이고, 영변과 다른 시설이 함께 포함된다면 영변 플러스 알파가 될 것이다.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의 시설이 대상이 될지는 미국의 보상 규모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2016년 이후 다섯 가지 제재를 풀어줄 것을 요청하며 사실상의 제재 완화를 추진했다. 만일 영변 마이너스 알파의 경우 일부 제재 완화를 요구할 것이고, 영변 플러스 알파로 가면 하노이에서처럼 2016년 이후 다섯 가지 제재를 해제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문제는 영변 마이너스 알파이던 플러스 알파이던 북한의 핵 역량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물질과 핵무기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는 점이다.

한편, 스몰딜의 경우 북한이 폐기하기로 약속한 시설에 대한 강도 높은 신고 검증이 이루어지게 된다. 동결딜의 경우 단지 가동을 하지 않는 것을 모니터링 하지만, 스몰딜의 경우 관련 핵시설의 폐기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폐기 이전에 철저한 검증 과정을 통해 어떠한 핵 활동이 있었고, 그 결과 어느 정도의 핵물질이 생산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의심 가는 시설을 방문해서 검증할 수 있는 임의 사찰(challenge inspection)과 및 자유로운 시료 채취(sampling)가 가능하도록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역시 쉽지 않은 협상 과정이 될 것이다.

포괄적 합의가 없는 단계적 비핵화의 경우 다음 단계의 비핵화 의무가 확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협상의 진행 여부는 북한의 판단에 달려 있다. 만일 어떠한 형태로든 제재가 완화된다면 북한의 경제상황은 더욱 좋아진다. 북한 경제에 실질적 압박이 약화된 이후이기에 다음 단계 비핵화 조치를 지연하거나 거부함으로써 핵을 보유하려 들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동결딜과 마찬가지로 스몰딜의 경우에도 북한 비핵화가 불확실해 지는 문제점이 여전히 남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국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빅딜, 즉 포괄적 합의를 강조하고 있다. 하노이 까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어느 정도 믿어보자는 접근을 해 왔지만 북한의 제안을 들어보고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점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북한 비핵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북한 비핵화의 개념과 최종상태, 그리고 로드맵을 먼저 합의하는 빅딜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 비핵화와 한미동맹 해체를 연계시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2016년 7월 6일 정부대변인 성명으로 제시한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동맹이 해체되어야 자신들이 비핵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핵화를 한다 해도 검증의 위험이 남아 있는데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동맹을 해체할 수 없다. 동북아의 험난한 정세를 고려해도 미국과의 동맹 유지는 한국의 미래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 개념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비핵국가로서) 핵확산방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에 다시 가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핵화의 최종상태는 비핵화 개념이 이루어진 최종상태를 의미한다. 협상의 결과로서 북한은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갖지 아니하고 비핵국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핵군축 협상을 하고자 한다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이러한 최종상태의 수용이다. 북한이 이미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받아들인 적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핵실험도 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보며, 이미 핵보유를 선언한 마당에 비핵화의 최종상태를 수용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비핵화 로드맵의 경우 비핵화 최종상태로 가는 과정과 시간에 대한 합의를 말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영변 핵시설과 영변 이외의 핵시설을 폐기해야 하고, 기존에 보유한 핵물질과 미사일을 포함한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북제재의 단계적 완화나 경제적 보상, 북미관계 개선, 그리고 평화협정을 제공하면 된다. 이렇게 보면 4단계의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 일부에서는 핵무기 이외에도 생화학 무기를 포함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현실적 필요성은 인정하나 이는 별도의 협상을 통해 폐기하고 핵문제는 핵문제에 집중해서 풀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보유한 핵지식이나 핵인력의 해체 문제를 포함하는 여부도 쟁점이 될 수 있으나, 우선적으로는 앞의 네 단계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에 핵시설과 핵물질이 없으면, 핵개발을 하는 데 새로운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에 이는 핵개발 잠재력의 문제가 되며, 한국이나 일본도 핵개발 잠재력은 존재하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핵시설과 핵물질, 그리고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 집중하는 로드맵이 바람직하다.

빅딜과 같은 포괄적 합의 방식의 비핵화는 가장 확실한 비핵화 방법이다. 합의한 대로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면 된다. 문제는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핵을 보유하는 협상을 하려는 의도, 만일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가정해도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포괄적 합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빅딜 방식의 합의는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책 건의

핵 없는 북한은 외부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은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다. 핵없이는 존립하기 어려운 김정은 체제의 모순 역시 북한이 비핵화를 수용하는 데 커다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북한은 계속해서 핵을 일부라도 보유하는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끝내 비핵화 조치를 거부하며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한다면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폐기에서 북핵 관리로 입장을 선회하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빅딜에서 동결딜이나 스몰딜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동결딜이나 스몰딜의 경우 북한 비핵화가 아닌 북한 핵보유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발빠른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혹시라도 우리의 안보이익이 미북간의 거래로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철저한 ‘북핵 폐기’ 원칙 견지 및 한미공조 강화

한국 정부는 북한의 ‘불완전한 비핵화 협상’ 시도에 대한 의심을 버려선 안 된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정치적 입장을 역이용하고 있다. 향후 단계적 비핵화를 강하게 주장하며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시도를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비핵평화’의 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정책 방향을 ‘대화를 위한 대화도 좋다’는 입장에서 ‘비핵평화를 위한 대화’로 수정해야 한다. 대화를 위한 대화의 경우, 북한의 핵보유를 방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로드맵은 일관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동결입구 비핵화 출구’에서 ‘일괄타결’로 그리고 다시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라는 굿 이너프 딜로 바뀌었다. 더 이상 비핵화 로드맵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북핵 폐기 원칙을 계속해서 견지하면서 ‘포괄적 합의의 단계적 이행’을 추진해야 한다.

미북 대화에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북한의 반대로 인해 한국이 미북대화에서 한 발 떨어져 있게 될 경우, 우리 국익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한미공조를 강화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협상의 현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대선기간이라는 국내정치적 상황에 쫓겨 동결딜이나 스몰딜을 수용하지 않도록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국이 ‘북핵 폐기’ 원칙을 지속적으로 견지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당사자(주인) 의식 견지

한국 정부는 대외정책에 주인의식을 갖고 협상당사자로서 북한의 통미봉남 시도를 차단해야 한다. 협상에서는 물러남 없이 당당히 우리의 이익을 주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핵화 협상의 핵심 내용과 관련하여 한국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비핵화 과정과 연동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가 속도조절을 주도해야 한다. 조건 없이 북한의 말만 따르는 것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하고 북한에 끌려가는 것일 뿐이다.

남북관계를 정상화 시킨다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 및 교섭 관행을 정상화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대화 재개 이후 북한 수뇌부에서 여러 차례 한국 정부에 대해 부적절한 언급을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북한에게 한 마디 제대로 못하고 협상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관행이다.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는 대북정책을 당당히 전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에 있어 부적절한 발언을 한 북한 고위인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인 주인의식 발현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북한 인권이 향상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대북 인도적 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북한의 실질적 변화가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불편하고 어려워도 할 말은 하는 남북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북핵 대비 군사역량 강화 

북한이 핵보유 지위를 굳힐 경우에 대비해서 한국 정부는 군사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한미동맹 및 독자적 군사역량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다시 연합군사훈련을 복원해야 한다. 미국과의 확장억제 논의도 작년 대화 재개 이후 수면 아래로 숨어들었는데,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이를 다시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 전술핵 공유 문제를 포함한 광범위한 확장억제 강화 노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군의 첨단 정밀타격 능력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향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바꿀 것에 대비하여 독자적 군사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이 핵위협이나 핵공갈을 가해와도 흔들림 없는 대비태세를 구현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핵능력 준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당장은 비핵국가로서 입장을 강화해야 하지만, 혹시라도 부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우리에게도 ‘플랜 B’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상황을 반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첨부: 최근 미국 학자들의 발언 동향>

학자 발언 내용 출처
Robert Einhorn
 
前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
• 북한의 ‘영변 및 비밀 핵시설’ 동결과 대북 제재를 맞교환하는 중간 단계 합의안을 제시해야 함.
 
•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서되, 모든 대량 살상무기 폐기의 전 단계인 중간 단계에서 핵 합의가 이뤄져야 함.
[2019.06.25. VOA코리아 인터뷰]
https://www.voakorea.com/a/4972137.html
Sue Mi Terry
 
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위원
• 김정은 위원장은 과도기적 딜 및 부분적 제재 해제 정도만 확보할 수 있는 조치를 미측에 제시할 것.
 
• 북한의 입장에서 이는 나쁘지 않은 딜. 북한의 핵보유를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자들에 비해 더 진전된 성과를 거두었다고 선전할 수 있게 하기 때문.
[2019.06.30. 뉴욕타임즈 보도]
https://www.nytimes.com/2019/06/30/world/asia/trump-kim-north-korea-negotiations.html
Richard Haass
 
미국외교협회(CFR)회장
•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완전한 비핵화 딜을 원하는지는 의문. 유권자들에게 평화주의자로 비춰지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수도 있음.
 
• 트럼프 대통령이 감소되었다고 주장하는 전쟁의 위협은 애초에 트럼프 정부가 먼저 시작한 것임.
[2019.06.30. 뉴욕타임즈 보도]
https://www.nytimes.com/2019/06/30/world/asia/trump-kim-north-korea-negotiations.html
Adam Mount
 
미국과학자연맹 (FAS)
선임위원
•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보다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우정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듯한 발언을 수차례 함.
 
• 판문점 북미 회동은 겉만 화려하고 실속 없는 행사에 불과.
 
• 북한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주요 합의가 뒤따를 가능성이 낮기 때문
[2019.06.30. 뉴욕타임즈 보도]
https://www.nytimes.com/2019/06/30/world/asia/trump-kim-north-korea-negotiations.html
Van Jackson
 
前 미 국방부 한국 담당자
•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동을 비핵화보다는 개인적 친분을 쌓기 위한 기회로 인식하고 있음.
 
• 이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2019.06.30. 뉴욕타임즈 보도]
https://www.nytimes.com/2019/06/30/world/asia/trump-kim-north-korea-negotiations.html
Joel S. Wit
 
스팀슨센터
선임위원
•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일괄 폐기하지 못하더라도, 최종 비핵화에 이르는 길이 합의문에 반영된다면 미국은 이를 수용해야 함.
 
• 북한도 자신들이 원하는 포괄적 제재 해제가 어렵다는 점을 수용해야 함.
 
• 과거 북한측 관계자가 ‘핵 프로그램 동결, 감축, 폐기’의 3단계 해법을 제시한 적 있음. 단계적 대안으로서 핵 동결 방안은 긍정적으로 보임.
[2019.07.01. 뉴욕타임즈 기고문]
https://www.nytimes.com/2019/07/01/opinion/north-korea.html
Jung H. Pak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위원
• 미북은 먼저 비핵화의 정의부터 합의해야 함. 확실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북한이 중간 딜에서 이탈할 여지를 차단할 수 있음. [2019.07.01. 뉴욕타임즈 보도]
https://www.nytimes.com/2019/07/01/us/politics/trump-bolton-north-korea.html
James Clapper
 
前 미 정보국
국장
• 북한의 현재 핵 보유 상황을 수용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
 
• 일단 협상 초기 단계에서 핵동결을 고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 장기적 목표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수 있겠지만, 이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임.
[2019.07.01. CNN 보도]
https://edition.cnn.com/2019/07/01/politics/north-korea-nuclear-freeze-trump-administration/index.html
Joseph R. DeTrani
 
前 6자회담
차석대표
• 트럼프 행정부의 궁극적 목적은 싱가포르 공동선언에 따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 핵 동결은 비핵화 목표를 위한 과정에 불과할 뿐 최종 목표는 아님.
 
• 비핵화를 위해 핵물질 생산 및 무기화 중단, 핵무기 프로그램의 중단이 있어야 하며, 핵무기 및 핵시설 해체 과정이 요구됨.
[2019.07.03. VOA코리아 보도]
https://www.voakorea.com/a/4983945.html
Mark Fitzpatrick
 
前 미 국무부
차관보
•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핵 동결을 최종 목표로 보는 인사는 아무도 없을 것.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엄청난 항복.
 
• 미국의 최종 목표인 비핵화를 위해 북한의 핵 동결은 좋은 출발점. 동결을 시작으로 핵 프로그램을 감축하고 핵 시설 폐쇄와 검증 단계가 뒤따라야 함.
[2019.07.03. VOA코리아 보도]
https://www.voakorea.com/a/4983945.html
Olli Heinonen
 
前 국제원자력기구 (IAEA)
사무차장
• 비핵화 일괄타결은 현실적으로 어려움. 우선 핵 동결을 추진해도 됨.
 
• 동결 단계에서 핵 신고서를 받아야 함. 핵 신고는 패키지로 이뤄질 수 있으며, 우선 우라늄 및 플루토늄 생산 장소와 생산량, 이어 핵무기 생산 내역, 마지막으로 핵무기 숫자 및 위치를 신고해야 함.
[2019.07.03. VOA코리아 보도]
https://www.voakorea.com/a/4983945.html
Robert A. Manning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위원
• 핵 동결은 미북 외교 재개의 시작점. 트럼프 정부는 핵 동결을 시작으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킬 것.
 
• 미북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었던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부 아니면 전무’식 접근법을 택했기 때문. 따라서 핵 동결에서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접근법.
 
• 하지만 동결은 검증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 과거 6자 회담이 실패한 이유는 북한이 검증을 거부했기 때문. 검증 없이는 북한의 핵 동결 여부를 확인할 수 없음.
[2019.07.03. VOA코리아 보도]
https://www.voakorea.com/a/4983945.html
David Maxwell
 
민주주의수호재단 (FDD)
선임위원
• 제네바 기본합의와 6자회담 합의에서 북한은 한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
 
• 이러한 전례에 비춰볼 때, 섣부른 핵 동결 수용은 김정은 위원장이 노리는 북한의 핵 보유 인정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 일부 제재 완화만 가능하게 하는 섣부른 조치.
[2019.07.04. VOA코리아 보도]
https://www.voakorea.com/a/4985574.html
Gary Samore
 
前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 핵 동결은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 과정으로서 현실적인 대안.
 
• 동결 조건으로 미국이 제시하는 요구 사항들을 김정은 위원장이 수용할지는 회의적.
 
• 단순히 종전 선언 등의 정치적 체제보장 약속만이 아닌, 개성공단 재개, 남북 경협 등 보다 큰 제재 완화 요구가 있어야 북한이 핵 동결을 수용할 것임.
[2019.07.04. VOA코리아 보도]
https://www.voakorea.com/a/4985574.html
Michael E. O’Hanlon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위원
• 미북 협상의 중간 단계로서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을 추진할 필요가 있음.
 
• 핵 동결은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위한 중간 단계로서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대안.
 
• 물론 핵 동결 합의 이후에도 제재가 유지되고, 핵 검증이 제대로 작동해야 함.
[2019.07.04. VOA코리아 보도]
https://www.voakorea.com/a/4985574.html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류아현
류아현

연구원

류아현은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법학과에서 국제법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국제법 전공으로 법학석사학위(LL.M.)을 취득하였다. 관심 연구분야는 안보협력, 남북관계, 국제공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