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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양국이 교환한 군사비밀을 제3국에 유출하지 말자는 합의인데, 일각에서는 마치 어마어마한 협상카드인 양 착각하고 있다. 막상 파기하고 나면 동 협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미국만 화를 낼 상황인데도 일본을 아프게 하는 협상카드로 잘못 알고 있다. 정말 모르는 것인지 외교적 감각이 떨어진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한미일 협력을 악화시키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동 협정은 양국 간 군사정보 교류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크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의 기반이 된다. 정보의 원활한 소통이 없이는 3국간 실시간 안보협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독도 인근에는 중러의 군용기가 넘나들었다. 러시아 정찰기는 영공마저 침범했다. 기다렸다는 듯 북한은 신형 잠수함을 공개하고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대구경방사포를 쏘아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구조적 변화의 징후라는 점이다. 앞으로 중·러는 더욱 거세게 미국에 도전하며 약한 고리인 한국을 공략할 것이다. 북한 역시 우리를 위협하며 미국과 핵 폐기가 아닌 ‘핵 보유’ 협상을 하려 들 것이다. 우리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과 잠재적 위험이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우리가 이러한 안보 도전을 혼자서 극복해 낼 수 있는가.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러에 대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 우리가 힘이 남아도는데 참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그간 함께 해 온 미국이나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실제로 한미일 안보협력은 우리에게 평화와 번영의 기회를 가져다 준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자연스레 확인할 수 있다.

동북아 역사는 40년 마다 요동치며 정세의 지형을 바꿔왔다. 1860년대 미국의 남북전쟁과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있었다. 그 동력을 바탕으로 1900년대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국 침탈이 있었다. 1940년대 일본은 미국에 도전하다 패했고 군대를 못 갖는 반쪽 국가가 되었다. 우리는 독립했지만 북의 남침으로 전쟁을 치렀고, 냉전 덕분에 미국의 동맹국이 되며 도약기를 맞았다. 1980년대 말 냉전이 끝나고 미국 초강대국 시대가 열렸다. 우리는 중러와 관계를 개선하며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제 2020년대를 앞두고 또 다시 격랑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날 때 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유동적임을 보여준다. 어느 세대의 올바른 선택은 나라를 번영케 했고 잘못된 선택은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미·일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 개방을 택해 선진문물을 수용했고, 도전을 택해 개척과 무역으로 국부를 키웠다. 남북전쟁은 지역과 흑백 통합의 기반이 되었고, 메이지유신 역시 번(藩)으로 나뉜 일본을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의 성장도 같았다. 미국 제도를 수용한 개방성, 세계로 진출한 도전정신, 그리고 ‘잘살아보자’는 마음 하나로 뭉친 통합이 있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와 청구권 협정도 같은 이유에서 추진한 일이었다. 일본의 침탈로 인해 겪은 헤아릴 수 없는 분노와 아픔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대한민국의 성공 역사는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미·일과 함께 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우리를 제외하며 부당한 경제적 압박을 가해오고 있기 때문에 한미일 안보 협력이 불필요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과의 갈등은 과거 역사에 기인한 문제다. 현재와 미래의 구조적 갈등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가치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당장의 경제적 압박도 강제징용의 해법만 찾으면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은 법적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하지만 청구권협정이라는 조약이 있는 이상 외교적 해법도 준비했어야 했다. 작년에 풀었으면 한일 관련 기업들의 출자로 끝났을 일이다. 이젠 정부가 돈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풀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푸는 것이 유리하다. 일본이 별로 아파하지도 않을 한일 정보보호협정 파기로 한미일 안보협력을 깨고 한미관계까지 악화시키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일 뿐이다.

 

* 본 글은 8월 12일자 디지털타임스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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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