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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4조원 퍼부은 미국 참담한 실패
탈레반이 중국 위구르족 자극하면
국경 70㎞ 맞댄 중국과 충돌 우려
소련·미국 이어 ‘제국의 무덤’ 되나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이 예상 밖의 빠른 속도로 수도 카불을 함락했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계획을 발표한 지 불과 넉 달여 만이다. 지난 15일 수도 카불 체류 미국인들의 대피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친미 성향의 아슈라프 가니(72) 아프간 대통령은 ‘빛의 속도로’ 국외로 탈출했고 탈레반은 대통령궁을 접수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아프간 정부군에 투철한 직업정신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 한 나라의 정부군이 무장 게릴라 앞에서 이토록 허망하게 항복할 줄 몰랐다. 1975년 북베트남군 탱크가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의 대통령궁에 진격했을 때 부패하고 무능했던 친미 남베트남 군대가 아무런 저항 없이 투항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친미 권위주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렸을 당시 미국 CIA는 혁명 발발 나흘 전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이번에도 미국 대사관 인력이 카불에서 허둥대며 철수하는 모습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치욕적인 ‘사이공 헬기 탈출’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탈레반의 진격 속도와 아프간 정부의 붕괴 시점을 바이든 행정부가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어쨌든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간 전쟁과 함께 시작한 아프간 재건 정책은 미국의 굴욕적 실패로 끝났다. 20년간 1조 달러(약 1174조원) 이상을 쓰고 2300명이 넘는 미군이 사망했으나 아프간은 끝내 탈레반 손에 다시 넘어갔다.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는 아프간에 숨어있던 알카에다 우두머리 빈 라덴(1957~2011)의 신병 인도를 탈레반 정권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해 속전속결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부시 정부는 소규모 특수부대와 첨단 군사기술로 무장한 공군을 동원해 희생을 최소화하는 ‘과학전’을 펼쳤다. 문제는 미국이 탈레반 정권 축출 후 체계적인 전후 재건 프로그램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얼떨결에 공동 책임을 떠맡았다는 점이다. 재건 정책의 기본 목표는 국가 기능을 수행할 역량을 키우고 안정적이고 민주적 체제를 다지도록 돕는 것이었는데 주체가 불분명해진 것이다.

게다가 2005년부터 탈레반 반군 세력은 구식 소총과 사제폭탄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했으나 이에 맞설 미군 보병은 턱없이 부족했고 험준한 산악 지형에 첨단 군사과학은 무용지물이었다. 당시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시작한 상황이라 아프간에 대한 증파가 어려웠다. 2006년 이후 외국군을 상대로 한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가 늘어나자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은 새로운 아프간 정부에 치안권을 넘기기에 바빴다.

2004년 첫 민주 선거로 출범한 당시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는 카불 밖에서는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고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겨졌다. 미국도 탈레반 격퇴를 위해 취약한 카르자이 정부 대신 아프간의 요충지를 장악한 군벌에 의존했고 이들의 자금줄인 마약 밀매를 눈감아줬다. 결국 탈레반 반군도 어렵지 않게 마약 거래를 했고 탈레반 병사의 월급이 아프간 정부군 월급보다 4배나 더 많은 상황이 벌어졌다. 급여 차이만으로도 사기가 떨어진 정규군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당시 카르자이 정부의 엘리트는 국제원조금을 둘러싸고 부정부패 카르텔을 형성한 것으로 악명 높았다. 국가 역량 건설과 부패 척결이란 재건 목표는 애당초 이뤄지기 어려워 보였다.

2008년 이후 탈레반이 세력을 확장하며 아프간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자 2009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는 증파를 결단했다. 2011년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 사살에 성공한 이후 2014년 미국과 국제안보지원군은 공식적인 아프간 임무 종료를 선언했다. 아프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의 영향력이 커지자 2015년 철군 계획을 잠시 보류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자 중동정책의 혼란이 이어졌다. 트럼프 정부는 ‘중동에서 발 빼기’를 선언하며 이란 핵 합의의 독단적 파기, 편파적 친이스라엘 행보, 대 NATO 방위 분담금 증액 요구, 우방 쿠르드 배신과 급작스러운 미군 철수 발표를 강행했다. 지난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결국 2021년 5월에 철군하기로 약속했다.

지난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트럼프 뒤집기’ 정책이 진행됐지만 ‘중동 떠나기’ 기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프간과 이라크 참전으로 인한 피로감과 여론 악화,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중동 의존도 감소로 인해 중국 견제가 우선순위로 부상했다. 공화당 정부가 시작한 아프간 전쟁이었으나 동맹과 인권·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미국의 귀환을 외치는 민주당 정부에서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 사태가 벌어졌고 미국의 20년 아프간 정책은 뼈아픈 실패로 마감했다.

아프간은 캅카스·베트남과 더불어 ‘제국의 무덤’으로 불린다. 대영제국은 아프간을 보호국으로 만들었지만 엄청난 희생을 치렀고, 미국에 앞서 소련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아프간의 사회주의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약 10년간 천문학적 비용과 병력을 잃은 뒤 패퇴했고 이후 내리막길을 달리더니 결국 소련이 해체됐다.

그 배후에는 이웃 무슬림 국가에서 건너와 사회주의 무신론자에 대항해 싸웠던 이슬람 전사들(무자헤딘)이 있었다. 당시 미국은 공산주의 봉쇄 차원에서 아프간 내부의 급진 이슬람 저항 세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슬람 성전(지하드)을 자국이 아닌 곳에서 행하는 국제 지하디스트 1세대가 탄생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시민 혁명을 통해 친미 권위주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운 이란을 이라크가 침공하자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을 지원했다.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무자헤딘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고, 배신감을 느낀 무자헤딘은 미국을 향한 복수를 준비했다. 냉전이 끝나자 사회주의 진영 대신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이 국제질서를 위협하며 급부상했고, 미국은 재빠르게 이들을 향한 봉쇄 정책을 펼쳤다. 무자헤딘은 더욱 급진적인 알카에다로 변신해 지하디스트 2세대를 이끌었고 여러 무슬림 국가에서 젊은이들을 충원했다. 알카에다는 더럽혀지지 않은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고 무슬림 영토에서 서구와 비이슬람 잔재를 없애기 위해 미국 본토에서 9·11 테러를 감행했고 탈레반은 이를 지지했다.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중 잣대와 정권 교체로 인한 일관성 없는 정책이 결국 알카에다와 탈레반이라는 괴물을 키운 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진영의 패권국 미국은 공산주의를 봉쇄하기 위해 제3세계에 유능하고 민주적 국가 재건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주의 운동을 막는 데 더 뛰어난 독재 정권을 지원하고 자국의 이익에 기반해 원조를 제공했다. 이처럼 원칙 없는 미국의 대외정책은 중동에서 무슬림 대중의 반미 감정과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확산을 부추겼다.

미국에 이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도 탈레반의 재집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탈레반 정권의 존재 자체만으로 아프간과 70㎞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신장 자치구의 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을 자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탈레반 2인자(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톈진으로 초대해 신장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과의 단절을 촉구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통한 아프간 재건 사업과 경제 지원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중국은 정권을 차지한 탈레반이 아프간을 하루빨리 안정적으로 통제하길 바란다. 하지만 미국의 부재와 힘의 공백으로 인한 탈레반의 일방적 독주가 내심 당혹스러울 것이다. 영국과 소련에 이은 미국의 전례를 목도한 중국은 아프간에서 장기전의 늪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이슬람 급진주의의 확산이 존재 이유인 탈레반은 신장 위구르에서 자행되는 중국 정부의 무슬림 탄압에 침묵할 수 없을 것이다. 향후 탈레반 정권이 중국에 커다란 안보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과 탈레반의 갈등이 빚어지면 미군이 철군하면서 아프간 정부군에 남긴 수많은 미제 무기는 미국이 의도했는지는 몰라도 여차하면 중국을 겨냥하는 탈레반의 비수가 될 수도 있다.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귀환이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의 가장 민감한 화약고에 새로운 전략적 충돌의 불씨를 심은 셈이다.

 
* 본 글은 08월 18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