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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 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 공약을 확인”하였고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북한은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과 일본 순방이 종료되기 직전 3발의 미사일을 발사했고, 한미 해상 연합훈련 직후인 6월 초 8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핵 협박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북한은 핵 능력을 고도화하기만 하면 핵무기가 없는 한국에 대해 핵 협박을 가하더라도 미국이 ‘핵 대 핵’ 원칙을 적용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는 듯하다. 북한의 오판이 자신의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북한의 핵 협박을 차단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한반도 안보 상황은 냉전시대의 유럽과 유사하다. 1950년대말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를 통해 서유럽은 물론 미국 본토에 대해 핵미사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위협하자, 유럽 국가들은 심각한 안보 불안에 빠졌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7000개가 넘는 다양한 전술핵무기를 유럽에 배치했고, 유럽 국가들은 핵무기가 미국의 자산인 동시에 유럽의 무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도 유럽에는 150개가 넘는 미국 전술 핵무기가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직도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의 배치에는 소극적인데, 유럽에서는 되고 한반도에서는 안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기 직전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쵸프 대통령 간의 합의로 소련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CIS 국가에 배치했던 1만 개의 전술 핵무기를 철수했고, 미국은 한국에 있던 수백 개의 전술 핵을 포함해 서태평양에 있던 6000여 개의 전술 핵무기를 철수했는데,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이 된 오늘에는 이 중 일부만이라도 다시 반입해야 한다.

한반도 역외에서 핵을 사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군사적으로 대응 시간 면에서 약점을 지니고 있다. 미 본토의 전략 무기를 동원할 경우 미사일은 30분, 전략폭격기는 10시간이나 걸린다. 괌이나 오키나와 같은 한반도 주변 지역의 전략폭격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2~3시간이 필요하고, 서태평양에 전개된 20여 척의 핵잠수함을 이용하여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방법도 10분 이상이 걸린다. 이런 대안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 전술 핵무기가 있으면 북한의 핵 공격 의도가 탐지될 경우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면 북한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이다. 유럽의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도 미국이 소련의 SS-20에 맞서 퍼싱-2 미사일을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하면 전술핵이라는 카드로 북한을 압박하여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 전술 핵무기의 한반도 배치는 가능성이 낮은 대안으로 취급되었는데, 전술핵 배치에 대한 미국 내 여론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6월 초 아산정책연구원과 주한미국대사관이 공동 개최한 ‘한미 수교, 140주년을 넘어’ 심포지엄에서 헤리티지 재단의 애드윈 퓰러 박사를 포함한 참석자들은 한미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분명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는 전술 핵 배치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2021년에는 주한 미군 사령관과 나토군 총사령관을 지낸 스캐퍼로티 장군도 한국, 호주, 일본이 참가하는 아시아판 핵기획그룹(NPG)을 창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21년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의 여론조사에서는 한국민의 56%, 2022년 아산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59%가 전술핵무기 배치를 찬성했고, 70.2%는 자체 핵무기 개발을 지지했다. 자체 핵무기 개발은 전술핵 배치보다 정치적으로 더 어렵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지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북핵 위협에 대한 확실한 대응책을 바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 관계 정상화를 대북 정책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였는데, 전술핵 배치를 통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어 북한의 잘못된 확신을 바로잡는 것이 남북 관계 정상화와 북한 비핵화의 첫걸음이다.

 

* 본 글은 6월 21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