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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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연구원은 7월 24일(수), 제27회 <아산서평모임>을 개최했다. 주제 도서는 김명구 박사(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의 『한국 기독교사 1: 1945년까지』(예영커뮤니케이션, 2018)었다. 이번 모임은 정수복 작가의 사회, 저자 김명구 박사의 발제로 진행됐으며, 신복룡 교수(건국대학교)와 박종현 박사(한국교회사학연구원)가 지정 토론을 맡았다. 이날 모임에는 김홍우 교수(서울대학교), 유걸 건축가(아이아크), 윤정로(KAIST), 최종고 교수(서울대학교) 등 서평 위원 20여명이 참석했다.

◈ 김명구 박사 “19세기 영미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본 역사서이자 신앙고백서”

김명구 박사는 “기독교 복음이 한국에 들어와서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현상화 되었는지를 19세기 영미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싶었다”며 집필 동기를 밝혔다. 저자는 연구를 통해 “기독교가 한국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쳤고, 어떤 그룹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적을 남겼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세계를 움직였던 ‘1907년 영적대각성 운동’이 한국의 독립과 연결되었다”며,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복음이 개인의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통전적 구원, 즉 대한민국 구원으로 확장되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 방식에 주목했는데, “그들은 조선의 근대화 진행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 의료와 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와 교육은 한국에 기존의 인간관을 극복하게 하고 근대 이데올로기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의식화시켰고 대한민국 헌법 1조와도 연결되었지만, 영적 영역이 기대만큼 확대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영적대각성 운동을 통해 회심 체험을 한 이후, 미신, 게으름, 부패의 문제 등 한국 교인들의 생활 태도와 윤리의식이 바뀌었다”며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 복음이 개인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한국 구원으로 확장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고 했다.

◈ 박종현 박사 “기존 역사 서술과의 토론과 대화가 필요”

박종현 박사는 한국 개신교사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학의 본질과 방법을 논의하고 기존의서술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새로운 역사 서술은 1차 사료와 발굴을 통하여 과거의 사건과 역사적 인간 존재에 접근하며, 2차 문서들을 통하여 과거를 인식했던 기존의 역사가들과 대화하며 사건을 다양하게 인식하고, 한 단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더 나아가 인식을 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박사는 보완이 필요한 부분들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로 ‘통계자료의 필요성’을 들며, “기존 사건을 재구성하는 형태를 벗어나 인문학적 사실을 과학적 인식으로 보완하기 위해서는 통계자료를 제시함으로써 인문과 사회과학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통계자료의 사용과 기법을 보여주는 한 예로 미국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의 『미국 종교 시장에서의 승자와 패자』, 『기독교의 발흥』과 같은 저술을 들었다. 이어서 그는 “한국 개신교사의 통사적 사술은 이제 개인이 쓸 수 있는 범위를 넘었기 때문에 개신교사 전체를 통사로서 기술하려면 미국과 유럽의 예처럼 공동작업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며, “개인 저술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연구 그룹의 토론 필요성”을 제기했다.

◈ 신복룡 교수 “종교는 민족주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신복룡 명예교수는 “종교인은 호교론과 외삽법 사이에서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던졌고, “이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감리교사를 보면서 호교론적 시각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고 하며 서평을 시작했다. 우선 신 교수는 저서의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하며, “저자는 개신교의 전래를 1835년이라고 보지만, 1816년 바실 홀(Basil Hall, 1788-1844)이 백령도와 고군산열도에 성경을 최초로 전수했고, 1832년 카를 귀츨라프(Karl Gützlaff, 1803-1851)가 태안반도에서 중국 성서로 포교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신 교수는 책 8쪽에 나온 “한국교회가 독립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과연 한국교회사는 이런 말을 부담 없이 할 수 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민족은 둥지와 같고 교회는 알과 같은데 둥지가 무너지는데 한국기독교는 알만 무사하기를 바란 것은 아닌가”라며, “한국 교회가 친일 행각을 고백하거나 참회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신 교수는 책 434쪽에 나온 “한국교회에서는 지식인들이 더 많은 죄를 지었다”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 “한국교회사는 3∙1운동에 대한 찬양에 매몰되어 있지만, 이 책은 이제까지 외면해온 한국기독교의 음지, 곧 친일 문제에 대한 뼈아픈 고백록이다”라며, 그런 점에서 훌륭한 글이라고 평했다.

자유토론

발제 및 지정토론 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김홍우 명예교수(서울대)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의미보다는 한 가지 정확한 의미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하나의 주장을 주입하려는 경향이 있어 불편할 때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여러 목소리를 들어야하고 또 들리게 해야한다”며, 우리 사회에서도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서로 협업하는 지혜와 그 가능성을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선민 선임기자(조선일보)는 “1907년에 평양에서 나타났던 두 흐름, ‘영적대각성 운동’과 ‘서북개신교 민족주의’가 서로 비정치와 정치 사이에서 갈등 내지는 긴장했지만 1919년 3∙1운동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에 대해 평소에 궁금했다”며 질문을 던졌다. 이어서 이 기자는 “목차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1907년과 1919년 사이에 일어난 두 흐름 사이의 역동적인 과정들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제27회 <아산서평모임> 세부일정표, 발제문 및 토론문 (첨부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