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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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은 3월 28일(수), 제19회 <아산서평모임>을 개최했다. 주제도서는 전진성 교수(부산교육대학교)의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천년의 상상, 2015)였다. 모임은 정수복 작가의 사회, 저자인 전진성 교수의 발제로 진행됐으며, 김기봉 교수(경기대학교), 김백영 교수(광운대학교)가 지정 토론을 맡았다. 이날 모임에는 서현 교수(한양대학교), 이선민 기자(조선일보), 김성호 교수(연세대학교) 등 서평위원 20여명이 참석했다.

◈ 전진성 교수 = “건축물과 도시경관을 가능케 했던 이데올로기와 인식틀, 그리고 그것이 현실 속에서 빚어내는 ‘불협화음’”

전진성 교수는 “이 책이 다루는 대상은 하나로 엮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세 도시 베를린, 도쿄, 서울”이라며, “베를린과 도쿄는 ‘위로부터의 근대화’를 이룩한 후발 제국의 수도라는 공통점을 지닌 데 반해, 도쿄와 서울은 오랜 역사적 인연을 지닌 동일 문화권 안의 제국-식민지 관계였다”고 설명한다. 전 교수는 “이 책은 건축과 도시계획을 물리적 혹은 예술적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담론적 형성체로 취급한 도시문화사 서술”이라고 밝혔다. 즉, “베를린-도쿄-서울을 횡단해온 건축과 도시경관은 모더니티라는 특수한 담론 질서가 어떻게 보편적 진리로 관철되고 또 어떻게 물질적 현실과 유리되는지에 대한 증언”이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건축사적 차원으로 볼 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한 기억과 그것의 공간적 재현 간의 불협화음에 주목한 것”이라며, “담론 형성체로서의 베를린, 도쿄, 서울은 늘 상상과 현실 간에 괴리를 빚었고 그 괴리는 새로운 담론의 촉매제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도시의 정체성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며 동일한 건축물도 최초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기억의 장소로 변모된다는 점이 이 책의 기본적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 김기봉 교수 = “기억의 ‘공간 구속성’을 발굴하는 고고학적 작업을 통해 식민지근대성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

김기봉 교수는 이 책의 탁월한 업적은 “기억의 ‘공간 구속성’을 발굴하는 고고학적 작업을 통해 식민지근대성의 구조를 드러냈다는 점에 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며 지정 토론을 이어갔다. 첫 째는, “아테네-베를린-도쿄-서울로 이어지는 ‘수도의 계보학’을 전통의 상실로부터 초래되는 근대의 병리학으로 보는 관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질문”이라며, “아테네와 베를린의 관계를 고대의 부활로 지칭되는 르네상스를 프로이센 식으로 재현한 것으로 보면 왜 안되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베를린을 ‘슈프레 강가의 아테네’로 만든 대표적 건축물이 5개의 박물관이 모여 있는 ‘박물관 섬(Museumsinsel)’”이라며, “일련의 문화적 변용을 전진성 교수가 했던 것처럼 모더니티의 환(등)상으로 비판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김 교수는 “베를린-도쿄-서울로 이어지는 근대의 이식을 환(등)상이 아닌 번역의 연속성으로 해석하면 왜 안 되는가”라며, “전 교수는 번역을 서로 모순되는 2가지 계기가 중첩되는 과정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한 문화공동체와 다른 문화공동체 사이에는 통약불가능성이 존재하는데, 번역은 소위 ‘원본’과 번역된 것 사이에 엄연한 위계관계로 성립된다는 것”이라며, “번역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통약불가능성이 위계질서로 변환되는가, 아니면 문화 사이의 통약불가능성 때문에 번역은 모방이 아닌 창조의 계기가 되는가” 묻는다. 김 교수는 “드 세르토의 말대로, 읽기란 기본적으로 ‘소비적 생산’을 하는 과정이며, 이로부터 생겨나는 ‘창조적 오독’이 전 교수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헤테로토피아’의 세상이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 김백영 교수 = “개인 연구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광대한 스케일의 지적 횡단의 실천을 통해 학제간 경계와 통념의 장벽을 돌파한 책”

김백영 교수는 “전반적으로 국가/학제간 경계를 오가는 지점에서 번득이는 저자의 재치와 통찰력이 가장 흥미롭게 읽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루는 분야가 방대한 만큼, 독자가 주안점을 둔 영역/시각에 따라 무수히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어지는 문제들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크게 4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흥미로운 토론 지점들을 이끌어냈다. “왜 베를린-도쿄-서울인가?”의 첫 번째 질문에서는, “핵심적인 것은 저자가 고안해낸 이 흥미진진한 지적 여정/이정표가 과연 얼마나 논리적 필연성이나 이론적 타당성을 지닌 것인가라는 질문”이라며, “이 여정의 최종 목적지가 서울이라면, 그 여정의 필수적 경유지로서 식민지 대만이나 만주국의 도시와 건축이 그다지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큰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문화사/계보학’적 접근 혹은 ‘텍토닉’ 환원론이 지닌 강점과 약점”에 관해서는 “‘무기론’, ‘건축사/건축비평이라는 전술’, ‘전략론’, ‘문화사’라는 근거지에 대하여”의 네 가지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세 번째, “일본은 과연 ‘아시아의 프로이센’인가?”라고 물으며, “좀 더 세밀하고 입체적인 분석을 생략한다면 과잉단순화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건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서울/경성이라는 파란만장한 역사도시의 독특성을 얼마나 잘 이해/설명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건축사로 대체된 정치(권력)사로, 그 결과 사회사/도시사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 자유토론

발제 및 지정토론 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발제자 전진성 교수는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냈다. 식민지 근대화의 맥락에서 주어진 도시의 건물에 대한 질문, 이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정치적 함의 등에 대한 논의 등 다양한 관점에서 흥미로운 토론 지점들이 제시되었다.

※ 제19회 <아산서평모임> 세부일정표, 발제문 및 토론문 (첨부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