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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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은 3월 22일(수), 제13회 <아산서평모임>을 개최했다. 주제도서는 노관범 교수(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기억의 역전: 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새로운 이해』(소명출판, 2016)이었다. 모임은 정수복 작가의 사회, 저자인 노 교수의 발제로 진행됐으며, 이행훈 교수(한림대 한림과학원), 유불란 박사(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가 지정 토론을 맡았다. 이날 모임에는 전상인 교수(서울대), 이종찬 교수(아주대), 이선민 기자(조선일보) 등 19명의 서평위원이 참석했다.
◈ 노관범 교수=“한국의 전근대와 근대 접속시켜야 ‘근대학’의 제국주의 극복 가능할 것”

노관범 교수는 『기억의 역전』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역사적 기억이 근대주의에 의해 전도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돌이키는 실천적 행위로서 ‘역전’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교 전통과 서양 근대’, 또는 ‘유교 전통 대 서양 근대’라는 단절적인 프레임, 근대주의에 의해 조장된 지적 분단 체제를 허물고 전환기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통합적인 이해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는 것이다.

노 교수에 따르면 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역사적 조건은 서양의 이식에 의한 급진적이고 단절적인 측면보다는 전통의 참여에 의한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측면에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이에 노 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전환기 사상사의 주요 의제인 ‘전통 중국과 조선사상사’ 내지 ‘근대 서양과 조선사상사’라는 낯익은 테마와 작별하고, ‘근대 중국과 조선사상사’, ‘도시 유교’ 등의 새로운 문제 의식을 도출한다. 노 교수는 “지금과 같이 ‘서양 근대’라는 허브에 의존해 한국사상사를 설명하는 ‘근대학’의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보편학으로서의 한국학을 말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조선후기 사상사 연구와 한국근대사상사 연구를 접속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행훈 교수=”한국 근대에 관한 일독법, 새로운 이해의 어려움”

이행훈 교수는 노 교수의 연구가 “한국 근대전환기에 대한 편향적 이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이해’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중일 삼국이 각기 다른 근대화 과정을 거쳤지만 한중, 한일을 넘어 동아시아로 시야를 확대해야 근대전환의 특징과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다만 이 교수는 노 교수가 신채호의 ‘아’ 개념을 재검토하며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저서에서 노 교수는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라는 전형성으로 신채호를 양분해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런데 이 교수에 따르면, “노 교수는 결론에서 ‘신채호의 ‘아’ 관념 형성이 1900년대 민족주의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탈민족주의적 해석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면서도 민족주의나 탈민족주의로 양분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전환기 사상사의 새로운 이해라는 시선,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규명한 결과가 과연 근대와 민족의 서사라는 담론의 자장 밖으로 우리를 데려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 유불란 박사=”근대주의에서 벗어나 되살려 낸 당대의 변화를 무엇으로 명명할까”

유불란 박사는 “서양-근대/비서양-전통의 이항 대립을 설정하고 근대적인 것을 검출하는 데 여념이 없었던 ‘근대주의’와 그것에 의해 편향된 ‘기억의 전도’를 지적한 노 교수의 문제 의식에는 십분 동의한다”면서도, “그가 근대주의적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되살려 낸 당대의 전환기적 양상, 그 시대적 변화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름의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데는 기존의 틀과 전형성을 부정하는 것 이상의 명시적인 밝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 박사는 노 교수가 ‘전환기의 실학은 근대의 제도 변동과 연결돼 외연 확장 및 내포의 변화를 겪으면서 ‘개념의 지역성’이 중층적으로 형성됐음을 지적’한 점에 주목했다. 노 교수는 ‘여기에서의 실학은 마침내 조선시대 실학 및 근대의 ‘실학’ 개념과도 구별되는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획득하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유 박사는 ‘이러한 ‘차이’에 대해, 이런 각각의 실학들을 묶어줄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것인지, 특히 노 교수가 근본적인 문제의식으로 전제한 우리의 근대에 비춰서는 어떻게 꿰어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는 사상사 연구 방법과 서술에 관한 문제, 중국과 일본까지 포괄하는 ‘동아시아 사상사’의 가능성, ‘실학’의 의미와 재정의를 둘러싼 쟁점, 자본주의 맹아와 근대화론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유학과 관련된 개성 지역의 역사와 특수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 제13회 <아산서평모임> 세부일정표, 발제문 및 토론문(첨부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