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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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한국학연구센터는 3월 11일(수), 제1회 <아산서평모임>을 개최했다. <아산서평모임>은 사회과학과 인문학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학계가 출간한 책을 함께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학제 간 소통의 장(場)을 마련하기 위한 모임이다.

제1회 모임의 주제도서는 서현 교수(한양대학교 건축학부)의 『빨간 도시: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효형출판, 2014)이었다. 정수복 작가가 사회를 맡아 저자 서현 교수가 발표를, 김성도(고려대학교 언어학과)∙전상인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가 지정 토론을 맡았다. 아산정책연구원 1층 갤러리에서 진행된 이날 모임에는 김비환(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 이근관(서울대학교 법학과), 한경구(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등 30명이 모였다.

 

◈ 서현 교수=”지식, 권력, 공간”

– 중세시대부터 공간의 배타성을 통해 지식 권력 드러내
– ‘열린 지식, 열린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담론은 19세기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

서현 교수는 중세와 근대 유럽에 설립된 여러 도서관을 소개하며 도서관에 담긴 정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발표했다. 서 교수는 조선 정조 시기 ‘궁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잡은 규장각’과 ‘소속 구성원임을 밝혀야 입장할 수 있는 오늘날의 대학 도서관’을 예로 들며 “이는 공간의 배타성을 통해 지식 권력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통해 여전히 도서관은 배타적 권력 공간임을 알 수 있다”면서 “도서관의 외관을 고대 신전처럼 짓거나 그리스, 로마 신들을 조각해 화려하고 웅장하게 장식하는 데서도 권력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경향은 19세기 말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 교수는 “이 시기 건축가들은 도서관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열린 책들’의 모습을 주제로 설계된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예로 들며 “이 건물에 담긴 정치적 의미는 바로 공화국이 가진 지식은 전 인류의 유산이며 이것은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고, 그 ‘열려 있음’이 건축적 형식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전상인 교수= “한국 공간정책, 공간산업, 공간연구의 민낯”

– 건축계 내부의 각성 시급, 인문학∙사회학과의 연계 필요
– 무조건적 아파트 비판은 비합리적, 긍정적 측면 함께 논의해야

첫 번째 지정 토론자 전상인 교수는 “『빨간 도시』가 지적하는 건축계 내부 고발의 필요성과 한국의 건축 교육 비판에 깊이 공감한다”며 “무엇보다 건축 분야에서 건축공학 패권주의를 반성하고, 건축인문학∙건축사회학의 토양을 가꾸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일본에는 건축미학, 건축인문학의 뿌리가 튼튼하다. 일본에서 세계적인 건축 상 수상자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바로 그런 기반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건축과 교수들은 꼭 중소기업 사장 같다”며 “건축과는 학부생을 아르바이트생, 석사과정 학생을 직원, 박사과정 학생을 임원으로 두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하는 대신 돈이 되는 용역 프로젝트만 반복하는 공장과 비슷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전 교수는 많은 건축가들의 ‘아파트 때리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아파트를 무조건 비판하기 이전에 최소한 압축 개발시대의 아파트가 갖는 경제적 합리성은 인정해야 한다”면서 “아파트는 현관문만 걸어 잠그면 세상과 떨어져 살 수 있고, 다시 문을 열고 나가면 이웃과 만날 수 있는 자유로운 개폐식 삶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아파트의 긍정성을 현실적 측면에서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번째 지정 토론자인 김성도 교수는 “일 만 년쯤 뒤 미래의 고고학자들이 아파트를 발견한다면 이를 주거 공간이 아니라 집단 무덤으로 여길 것”이라며 “아파트의 현실적인 장점은 인정하지만 한국과 같은 폐쇄적이고 대단지 중심의 아파트 문화는 정상적인 국가라면 만들지 못할 완전한 기형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 김성도 교수=”『빨간 도시』에 대한 비판적 성찰, 한국의 공간비평 담론 수립을 위하여”

– 뜬금없는 키치 문화 넘쳐나는 한국의 도시, 그러나 무조건적 유럽 예찬은 경계해야
– 국가 관료 주도의 공간 조성 프로젝트, 때로 국세 낭비하는 문화적 참사로 이어져

김성도 교수는 “대한민국 공간을 ‘가면 무도회’로 비유한 서현 교수에 동의한다”며 “진정성도 없고 조잡한 건축 요소들이 조화되지 못한 채 나라 곳곳에 널려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서 교수의 유럽 도시 예찬을 경계하면서 “오늘날 유럽의 지식인들 역시 ‘예쁜 세트장처럼 변해 버린 도시’에 진정성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동대문 DDP 플라자와 광주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을 대표적인 ‘문화적 참사’로 지적했다. 큰 돈을 들여 건축물을 세우긴 했지만 정작 그 안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는 결국 건축과 공간에 무지한 국가 관료의 주도 하에 일어난 참사”라며 “한국의 지식인들이 ‘공간의 공공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건축 담론을 형성하는 데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자유 토론에서 논의된 내용 중 흥미로운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왜 ‘빨간’ 도시인가?

서현 교수=”1963년부터 1988년 사이에 진행된 서울의 도시화는 전례가 없을 정도다. 나는 88년, 즉 서울의 도시화가 이루어진 후 태어난 첫 세대를 새로운 세대로 보았다. 이 새로운 세대는 정치적 성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 선배 세대와 달리 2002년 월드컵을 통해 폭발적으로 데뷔했다고 봤는데 그러한 폭발성이 빨간색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국 사회의 도시사를 이야기 할 때 빨간색이 상징하는 바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제목을 빨간 도시라고 했다.”

 

◈ 아름다운 도시란 어떤 도시인가?

서현 교수=”가장 공정한 사회가 만든 도시가 가장 아름다운 도시다. 공정한 룰이 없는 도시 그리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 대우받는 도시는 아무리 멋있는 건물이 많다고 해도 아름다운 도시가 될 수 없다.”

※ 제1회 <아산서평모임> 세부일정표, 발제자료 및 토론문 (첨부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