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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민주 당원의 편향성 악화 
선동 정치 영향력 확대 불가피 
‘카르트 블랑슈’ 땐 한·일 파국

2020년 11월 3일 실시되는 미국 대선은 미국 정체성은 물론 국제질서의 운명이 달린 역사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2016년 대선 결과는 단순한 실수나 우연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줄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정책은 지속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지켜 왔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며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안이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당연히 변화가 있겠지만 그 폭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또 다른 차원의 불확실성이다.

최근 워싱턴의 한 친구는 “트럼프처럼 정치 폭력과 외부 세력의 선거 간섭을 조장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비하하는 대통령이 있었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다”고 했다. 런던대 정치학자인 브라이언 클라스 교수는 작년 여름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역대 대통령 중 트럼프와 유사한 인물로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을 꼽았다. 이기적인 백인우월주의자로 알려져 있고, 탄핵 안이 상원에서 1표 차로 부결된 덕분에 살아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볼티모어 시와 일부 민주당 유색인종 하원의원들을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함으로써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비판한 인물은 고(故) 존 매케인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미국 가치를 지키지 못한 인물”로 규정했다. 보수 평론가인 조지 윌에 따르면, 트럼프가 말하는 ‘위대한 미국’은 사상과 가치를 상실한 이단 종교와 같으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곧 트럼프 이기주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대한 미국은 활발한 경제와 낮은 실업률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2016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전성기를 20세기 초와 1940~1950년대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왕성한 경제를 자랑하고 있을 때이지만,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2020년 대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연장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인지를 가르는 계기가 될 듯하지만, 미국의 정체성과 가치의 측면에서 더욱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민주당 대선 예비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은 “지금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은 트럼프가 아니라 그동안 미국이 잘못 가고 있던 것의 최종적이고 극단적인 증상”이라고 했다. 워런 상원의원이 말하는 미국의 핵심 문제는 진정한 가치관을 상실한 정부와 사회를 의미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이 바뀐다 하더라도 트럼프 현상은 방향만 바꾼 형태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올해 초 갤럽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인 대다수는 여전히 자신을 중도 보수적 성향으로 여기지만, 지난 30년간 그 비율은 급격히 축소됐다. 각 정당 소속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보수와 진보 비율 차이가 벌어지며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는 추세다. 공화당 소속 유권자 중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보수로 생각하고, 민주당 소속 유권자 중에서 자신을 진보로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급속히 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 현상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는 상황과 병행해서 나타난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3월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약 17%의 미국인만이 연방정부를 신뢰하고 있다. 2001년(60%)이나 1960년(70∼80%)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이처럼 급속히 감소하면, 기존 정치 시스템을 통한 합리적인 담론과 논쟁의 여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인적 편향이 정치적 견해를 더 많이 지배하고 대립과 선동가의 영향력도 증가하게 된다.

2020년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엔 아직 이르다. 경제는 다소 좋아 보이지만 지난 중간선거에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의료보험, 이민, 총기규제, 기후변화와 세금 그리고 외교·안보에 대해 보다 현실적이고 탁월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승리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 후보를 창출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동북아 정책 변화는 상당했고 대북정책 선회 또한 급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두 번이나 가진 뒤 판문점 회동까지 했다. 북한 비핵화는 멀어지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관계 개선에 치중하고 있어 한·미 동맹에 많은 변화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재나 관여에는 관심 없이 자국 이익만 추구하니 한·일 관계는 회복 불능 사태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이런 자세를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백지 위임)’로 받아들이며 제 갈 길로 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인지 여부도 내년 대선 결과에 달려 있다.

 

* 본 글은 8월 7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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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James Kim
J. James Kim

지역연구센터

J. James Kim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Columbia University 국제대학원 겸임 강사이다. Cornell University에서 노사관계 학사와 석사학위를 마치고 Columbia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California State Polytechnic University, Pomona의 조교수(2008-12)와 랜드연구소의 Summer 연구원(2003-2004)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연구 분야는 비교민주주의 제도, 무역, 방법론, 공공정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