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고문

264 views

이스라엘에서는 올해 4월과 9월 두 차례 총선이 치러졌고 내년 3월 세 번째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보수와 중도 모두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일어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11월엔 검찰이 베냐민 네타냐후 현직 총리를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 현직 총리의 기소 역시 역사상 처음이다.

내년 선거에서도 승자를 가리기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민 여론이 안보 우선주의와 법질서 수호로 극명하게 분열됐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회의 양극화에는 중도·진보 진영의 쇠락이란 배경이 있다. 특히 진보의 상징이자 총리를 5명이나 배출한 노동당은 빠르게 추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협정 체결이 계기였다. 1993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은 `영토와 평화를 맞바꿔 두 국가로 공존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 서안과 가자지구 땅을 내준 후 이스라엘 내 평화협정에 대한 지지는 급락했다. 평화협정 체결 1년 전 선거에서 44석을 얻은 노동당은 점점 의석을 잃어 올해 6석 확보에 그쳤다.

평화협정이 체결됐으나 막상 현실은 한껏 높아진 시민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영토 상실의 박탈감이 실망과 분노로 변해갔다. 결국 1996년 총선에서 네타냐후 리쿠드당 대표가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 시몬 페레스 노동당 대표를 제치고 총리에 당선됐다. 이어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슬로 평화협정의 최종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2차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가 일어나 자살테러가 폭증하자 이스라엘 사회는 더욱 보수화되어 갔다. 악순환이 시작됐다.

13년 넘게 집권한 역대 최장수 총리 네타냐후는 극우 민족주의와 안보 포퓰리즘을 효과적으로 선동했다. 지난 2년간 이스라엘 민주주의는 퇴보했다. 2018년 의회에서 7표 차로 통과된 유대민족국가법 때문이다.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다수 지지에 따른 정당성 확보의 주장은 대의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오류이다. 민주주의는 소수 의견을 존중해 함께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급진 이슬람주의 조직 하마스와 이란 혁명수비대의 도발도 네타냐후 총리의 안보 포퓰리즘을 부추겼다. 올해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이란 군사시설,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와 레바논 헤즈볼라의 무기고, 가자지구 하마스의 거점지를 공격했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인 정착촌의 대규모 신축 계획도 발표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34호의 위반이었다. 네타냐후 총리와 각별한 친분을 뽐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호와 497호의 위반이었다.

4월 총선 두 달 전 검찰은 미리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혐의 기소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투표장에서 유권자 절반이 보수 정당을 택했다.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를 부패 정치인이 아닌 유대민족국가를 수호하는 국가 재건자로 본다.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출신 베니 간츠가 야권연합을 조직해 대항마로 나섰다. 간츠 대표는 강직한 군인정신을 앞세워 우유부단한 중도 이미지를 벗었다. 유대인 정착촌에 반대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아닌 미국 민주당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내년 3차 총선에서 보수층 가운데 온건성향 유권자의 이탈만이 현재의 교착상태를 깨뜨릴 수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에 반대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지지한다. 온건 보수 유권자가 법치주의를 위해 중도파 지지로 돌아설 때 혼돈의 민주주의는 회복될 수 있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기 온건 보수 유권자는 이 같은 결단을 내리지 않았고 나치의 부상이란 비극이 바로 이어졌다.

 

* 본 글은 12월 31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