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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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2019년 6월 3일 한국과 미국은 한미연합사령부의 평택 이전에 합의했다.1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한국의 안보 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이전 관련 논란 이외에도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의 미래 역할에 대하여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유엔군사령부는 한국전쟁 초기 한국으로부터 확보한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한국전쟁에 대응했다. 그런데 1978년 11월 7일 창설된 한미연합사령부로 유엔군사령부가 가지고 있던 작전통제권이 이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엔군사령부 소속 인원 자체도 소수이기 때문에 유엔군사령부의 현재 기능 및 역할에 대하여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난 2019년 4월 27일부터 개방된 ‘고성 비무장지대(DMZ) 민간둘레길’의 민간인 통행을 유엔군사령부가 승인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유엔군사령부는 여전히 실제로 기능하고 있는 실체이다.2

유엔군사령부는 국제법적으로 이와 유사한 조직을 찾기 힘든 독특한 존재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창설되었음에도 유엔이 아닌 특정 국가, 즉 미국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운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관련 논란도 상당했지만 유엔군사령부가 무려 약 69년 간 실제로 기능해 온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유엔군사령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본 이슈브리프는 국제법적 분석을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의 기원에 대한 고찰부터 유엔군사령부의 미래 역할에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까지를 담고자 한다.

 

2. 유엔군사령부의 기원과 변천

(1)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창설

1950년 7월 7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Resolution)3 제84호는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된 국제법적 근거이다. 결의 제84호는 정확히 유엔군사령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단지 미국의 통제 하에 하나의 ‘통합군사령부’(unified command)를 만들고, 통합군사령부가 유엔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군사력 및 기타 원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을 뿐이다.4 물론 결의 제84호는 미국이 통합군사령관, 즉 유엔군사령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면서 미국의 리더십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5 그리고 북한에 대한 작전 시 유엔기(United Nations flag)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도 덧붙였다.6

(2) 일본에서 창설

유엔군사령부는 1950년 7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창설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 내내 유엔군사령부는 일본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전쟁 기간 중인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 내 유엔군사령부의 법적 지위에 대한 논란이 야기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체결 당시까지는(정확히는 발효 시까지는)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일본 내에 위치시키는 데에 별다른 법적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1951년 당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제1조(b)7에 의해 일본의 주권 회복이 예정되어 있던 이상 유엔군사령부의 일본 내 법적 지위는 불투명한 상태가 되었다.8 이는 외국 군대가 주권국가의 동의 없이 그 주권국가의 영토 내에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쿄에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주권을 회복하는 일본 내에서 법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법적) 조치가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체결된 당일인 1951년 9월 8일 미국과 일본은 ‘애치슨-요시다 교환각서’9에 서명했다. 애치슨-요시다 교환각서에는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발효 이후에도 일본이 유엔 안보리 결의 제84호와 관련이 있는 군대에 대한 일본 내 지원을 허락하고 그 지원을 용이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10 즉, 일본은 애치슨-요시다 교환각서에 따라 유엔군 활동과 관련 있는 군대가 일본 내에 주둔하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이는 유엔군사령부의 일본 내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애치슨-요시다 교환각서의 국제법적 지위는 ‘신사협정’ 또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 이는 애치슨-요시다 교환각서에 법적 구속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즉, 유엔군사령부의 일본 내 존재에 대하여 일본의 ‘정치적’ 동의가 있었을 뿐이며, 그 동의는 언제든지 철회될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1954년 2월 19일 ‘주일유엔군지위협정’(Agreement Regarding the Status of the United Nations Forces in Japan)이 체결되었다. 주일유엔군지위협정 제5조 제2항은 미일안보조약 하에서 미국에 제공된 시설물과 기지를 일본의 동의와 함께 유엔군도 사용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11 이는 유엔군사령부가 ‘주일미군’ 기지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구속력 있는 근거로 기능한다.

(3) 1957년 서울로 이전

유엔군사령부는 1957년 7월 1일 도쿄로부터 서울로 이전했다. 그런데 이는 심각한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만약 일본 내에 유엔군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주일유엔군지위협정 제25조12에 따라 주일유엔군지위협정 자체가 종료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유엔군이 일본으로부터 철수한다면 이는 유엔군사령부가 더 이상 주일미군 기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본 내에 ‘유엔군후방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Rear)13가 창설되었다. 유엔군후방사령부는 주일유엔군지위협정의 종료를 방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는 서울에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여전히 주일미군 기지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4) 1975년 채택된 두 개의 유엔 총회 결의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3대 통일 원칙을 천명했다. 그런데 남북 간 대화의 시작을 알린 남북공동성명 이후 오히려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1975년 6월 27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는 1953년 정전협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합의’(arrangements)의 탄생을 전제로 1976년 1월 1일부로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가 표현되어 있었다.14 미국은 정전협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목적 그 자체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으나 반드시 유엔군사령부의 존속을 전제로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피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는 경우 북한과 중국의 사전 동의를 전제로 한국과 함께 유엔군사령부를 대체하여 정전협정을 이행할 새로운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의사도 밝혔다.15

그런데 미국이 1975년 6월 27일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는 1974년 12월 17일 유엔 총회 결의 제3333호에 의해 채택된 내용에 대하여 미국이 동의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유엔 총회 결의 제3333호 역시 1953년 정전협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합의의 탄생을 전제로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는 문제에 대하여 안보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었다.16

미국은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편지를 보낸 이후 되도록 유엔군을 노출시키지 않는 조치를 취했다. 예를 들어, 1975년 8월 25일부터 더 이상 (1953년 정전협정 이행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시설을 제외하고) 한국 내 군사시설에 유엔기를 게양하지 않았다.17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 총회는 1975년 11월 18일 두 개의 결의를 채택했다. 바로 유엔 총회 결의 제3390호(A)와 결의 제3390호(B)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결의가 뉘앙스는 다르나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자 하는 방향 자체는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유엔 총회 결의 제3390호(A)는 1975년 6월 27일자 미국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1953년 정전협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합의의 탄생을 전제로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반면에,18 결의 제3390호(B)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는 물론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점도 언급하고 있다.19 유엔 총회 결의 제3390호(B)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공산권 국가들의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이나 결의 제3390호(A) 역시 그 방점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에 있었다. 이는 1975년 채택된 두 개의 유엔 총회 결의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단언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5)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공식적으로 유엔군사령부의 기능 또는 역할에 변화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것처럼 유엔군사령관이 보유하고 있던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령관에게로 이전되었다. 유엔군사령부의 기능 또는 역할이 1953년 정전협정 관련 임무로만 축소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엔군사령부의 기능 또는 역할 축소가 실질적인 문제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이는 (주한미군사령관인) 한미연합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도 겸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20

 

3. 유엔군사령부의 임무

(1) 1953년 정전협정과 유엔군사령부의 임무

유엔군사령부의 1953년 정전협정 관련 임무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임무가 유엔군사령부의 핵심적인 기능 또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특히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군사령관은 일방당사자로 서명했다.

정전협정 제2조 제17항은 “본 정전협정의 조항과 규정을 준수하며 집행하는 책임은 본 정전협정에 조인한 자와 그의 후임 사령관에게 속한다. 적대 쌍방 사령관들은 각각 그들의 지휘 하에 있는 군대 내에서 일체의 필요한 조치와 방법을 취함으로써 그 모든 소속 부대 및 인원이 본 정전협정의 전체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을 보장한다. 적대 쌍방 사령관들은 상호 적극 협력하여 군사정전위원회 및 중립국 감독위원회와 적극 협력함으로써 본 정전협정 전체 규정의 문구와 정신을 준수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유엔군사령관(그리고 유엔군사령부)에게 정전협정 준수 및 이행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2019년 4월 27일부터 개방된 ‘고성 DMZ 민간둘레길’의 민간인 통행을 유엔군사령부가 승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53년 8월 30일 마크 클라크 당시 유엔군사령관이 동해와 서해에 각각 북방한계선(NLL)을 선포한 것도 1953년 정전협정 관련 임무 중 하나를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을 설정하고 DMZ를 창설하기는 했으나, ‘해상’ 군사분계선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군사령부는 NLL을 선포하고 NLL까지만 해군의 초계활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즉, 유엔군사령부가 양측 군사력의 분리라는 정전협정 체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NLL을 선포한 것이다.

(2) 2018년 평양공동선언 및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와 유엔군사령부

2018년 남북 간에 합의된 ‘평양공동선언’ 및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의 내용 중 유엔군사령부의 권한 및 책임 내에 있는 내용이 상당수 있다. 일단 1953년 정전협정 제1조 제9항 및 제10항이 유엔군사령관의 권한 및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전협정 제1조 제9항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된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로부터 특별히 허가를 얻어 들어가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떤 군인이나 민간인도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것이 허가되지 않는다.”라고 언급하며, 제1조 제10항은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이남의 부분에 있어서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유엔군사령관이 책임진다.”고 규정한다.

1953년 정전협정 제1조 제9항 및 제10항은 유엔군사령부가 DMZ 내 군사분계선 이남에 관한 한 통항 문제 등에 대한 통제 권한 및 관할권을 가지고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이 철도 또는 도로를 연결하고자 해도 DMZ 내 군사분계선 이남에 관한 한 유엔군사령부의 승인이 필요하며,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 따라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하고자 해도 DMZ 내 군사분계선 이남에 관한 한 유엔군사령부의 승인 또는 동의가 필요하다.

평양공동선언 및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가 발표된 이후 2018년 10월 16일 남북 그리고 유엔군사령부로 구성된 ‘3자 협의체’가 가동되었다.21 3자 협의체는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를 논의했다. 이는 북한조차 1953년 정전협정이 유엔군사령부에게 부여하고 있는 권한 및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즉,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이 유지됨에 따라 DMZ가 존재하는 한 그 기능 또는 역할이 분명한 실체인 것이다.

 

4.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 체결 이후 유엔군사령부의 역할 진화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 체결 이후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당연시하는 논의가 여기저기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문제는 국제법적 차원에서 보다 정교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1)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 체결만으로는 해체되지 않는 유엔군사령부22

종전선언은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 즉, 종전선언이 이루어진다 해도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법 문서는 여전히 1953년 정전협정밖에 없다. 이는 정전협정 관련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여전히 존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종전선언은 유엔군사령부의 법적 지위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는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에 의하면 유엔 안보리 결의 제84호 채택의 전제인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한 ‘평화의 파괴’(breach of the peace)가 평화협정 체결로 인해 회복되며, 따라서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는 평화의 회복에 대한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 제84호 전문이 언급하고 있는 평화의 회복은 평화협정 체결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유엔 안보리 자신이 (한반도에서의) 평화의 회복을 확인하는 또 다른 결의를 채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유엔 안보리 결의 제84호와 평화협정은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국제법 문서가 아니므로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 제84호가 언급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의 회복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만약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평화의 회복을 확인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 유엔군사령부는 북한 또는 중국의 정치적 공세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는 데 있어 법적 장애물에 부딪치지 않을 것이다.

(2) 전적으로 미국의 의사에 달려 있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23

유엔군사령부를 유엔 헌장 제29조24에 언급되어 있는 유엔 안보리의 ‘보조기관’(subsidiary organ)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의견이 나누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가 유엔 안보리의 보조기관으로 간주되든 그렇지 않든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의 의사에 달려 있을 뿐이다. 즉, 유엔군사령부가 유엔 안보리의 보조기관인지 여부는 실익이 없는 논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유엔군사령부를 유엔 안보리의 보조기관으로 간주한다 해도 미국이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한 이후 유엔 안보리에 ‘사후’ 보고만 하면 된다는 견해가 있다.25 이 견해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결정짓는 요소는 오로지 미국의 정책결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유엔군사령부가 유엔 안보리의 보조기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에 보낸 1994년 6월 24일자 편지에 “… 유엔군사령부 해체는 어떤 유엔 기관의 책임에 속하지 않고 미국 정부의 권한 내에 있는 문제이다.”26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여부는 당연히 미국의 권한 내에 있을 뿐이다.

(3) 미국에 의한 유엔군사령부의 역할 진화

가.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Revitalization) 프로그램

일단 유엔군사령부의 운용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재활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동안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겸임하던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에 2018년 8월 30일 마크 질레트 미국 육군 소장이 임명되었다.  즉,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은 물론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2018년 8월 30일부터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과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은 다른 인물로 임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의 분리가 가시화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에 앞서 2018년 7월 30일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웨인 에어 캐나다 육군 중장이 취임했다. 미국 출신이 아닌 최초의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이 임명된 것이다. 즉, 유엔군사령부가 주한미군사령부로부터의 분리를 넘어 실질적인 ‘다국적군’화를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웨인 에어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이을 다음 부사령관으로도 미국 출신이 아닌 스튜어트 마이어 호주 해군 소장이 임명되었다.

나. 유엔군사령부의 독자적 역할 강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결정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되지 않는 이상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강제할 그 어떤 국제법 문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문제는 미국의 정책결정 문제에 해당할 뿐이다. 이러한 법적 현실에서 미국이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난 2019년 6월 3일 한국과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으로 반환된 이후 임명될 ‘미래연합군사령관’으로 (합참의장을 겸직하지 않는) 한국군 대장을 임명하는 문제에 합의했다.27 이는 장래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만 겸직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 프로그램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가 아닌 ‘강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연이어 미국 출신이 아닌 제3국 장성이 임명된 것은 주한미군사령부 또는 한미연합사령부로부터 유엔군사령부가 독자적 생존 또는 역할 모색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전조이다.

국제법적으로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에는 별다른 걸림돌이 없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조차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는 법적 문서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적 장애물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유엔군사령부를 재활성화한 이후 그 기능 또는 역할을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미국 주도 하에 1953년 정전협정이 부여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의 권한은 최대한 행사되리라 예상된다. 특히 남북이 교류를 확대하고자 하는 이상 유엔군사령부가 가진 권한은 상당한 권한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측 2km에 이르는 DMZ에 대한 통제 권한 및 관할권은 유엔군사령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엔군사령부의 승인 없이 남북이 철도 또는 도로를 연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1953년 정전협정 체제 내에서도 유엔군사령부는 사실상 ‘평화유지활동’에 해당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다국적군화된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유엔군사령부는 소수로 구성된 형해화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유지에 있어 주요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4) 유엔군사령부의 역할 진화 과정에서 한국의 참여

이와 같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유지에 있어 유엔군사령부가 주요 행위자가 된다면 한국은 미래연합군사령부 이외에 재활성화된 유엔군사령부에 어떻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재 유엔군사령부 내에서 한국의 역할은 미미하다. 이는 한국이 유엔군사령부를 형해화된 조직으로만 판단하고 유엔군사령부 내로 한국군을 진출시키는 데 있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는 이상 장래 한국 출신 미래연합군사령관과 미국 출신 유엔군사령관 사이에 긴밀한 협조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협조가 아닌 방관 또는 갈등으로 이어진다면 한국의 안보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유지는 위협받게 된다.

따라서 한국도 유엔군사령부 재활성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동안 유엔군사령부 내에서 한국군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안보의 두 축이 미래연합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로 재편되는 이 시점에서도 유엔군사령부 내 한국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군사령부 내 한국의 역할로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을 한국 출신이 맡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과 실제 현실은 다르다. 무엇보다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문제에 관한 한 사실상 유일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을 향하여 한국이 유엔군사령부 내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증명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여의 예로는 한국이 그 어떤 국가보다도 유엔군사령부가 필요로 하는 인적 또는 물적 자원을 빨리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하고 유엔군사령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수 있는 최적의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이런 차원에서 국제법적으로 한국이 유엔군사령부를 지원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준비로는 1954년 주일유엔군지위협정과 같은 ‘주한유엔군지위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기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군화된 유엔군사령부를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 별도로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을 파견한 국가들과 다자조약을 체결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이 유엔이 아닌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을 파견한 국가들과 ‘주한유엔군지위협정’이라는 다자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이유는 유엔 안보리 결의 제84호에 의해 유엔군사령부의 운용은 (유엔이 아닌) 미국 주도 하에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주일유엔군지위협정도 일본과 (유엔이 아닌)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을 파견한 국가들 간에 체결되었다.

 

5. 나가며

지금까지 유엔군사령부는 형해화된 조직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따라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지난 2019년 2월 8일 웨인 에어 유엔군사령부 부사령관은 오히려 유엔군사령부의 독자적 역할이 강화되고 있으며 근무 요원의 숫자도 늘릴 것이라는 취지로 언론 인터뷰를 했다.28 이는 유엔군사령부가 한국 안보의 한 축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한국은 유엔군사령부 내 한국의 역할 증대 또는 위상 강화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한국이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을 파견한 국가들과 ‘주한유엔군지위협정’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유엔군사령부 소속 주요 보직자가 동시에 주한미군사령부 소속인 이상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지위협정을 통해 한국 안보에 대한 국제법적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에 별다른 걸림돌이 없었다.

하지만 유엔군사령부가 다국적군화를 추진하고 있는 이상 한국이 선제적으로 ‘주한유엔군지위협정’ 체결과 같이 유엔군사령부에 한국이 상당한 정도로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유엔군사령부가 미국의 의사에 따라 존속할 수 있는 이상 유엔군사령부의 존속을 대비할 법적 또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유엔군사령부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및 유지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기능 또는 역할도 진화 가능성이 상당하다. 1953년 정전협정 관련 임무 이외에도 만약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평화협정 내용에 평화협정 준수 감독 및 분쟁발생 시 사실조사 등 유엔군사령부의 새로운 기능 또는 역할이 포함될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유엔군사령부가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국 정부의 유엔군사령부 관련 정책이 조속히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19/06/379821/.
  • 2. https://www.yna.co.kr/view/AKR20190423161452504?input=1195m.
  • 3. 유엔 안보리 결의는 유엔 헌장 제25조에 따라 기본적으로 유엔 회원국들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이 있다.
  • 4. S/Res/84 (1950), para. 3.
  • 5. Ibid., para. 4.
  • 6. Ibid., para. 5.
  • 7. “The Allied Powers recognize the full sovereignty of the Japanese people over Japan and its territorial waters.”
  • 8.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28일 일본의 주권은 회복되었다.
  • 9. Notes Exchanged between Prime Minister Yoshida and Secretary of State Acheson at the Time of the Signing of the Security Treaty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ttp://worldjpn.grips.ac.jp/documents/texts/docs/19510908.T3E.html.
  • 10. “As we know, armed aggression has occurred in Korea, against which the United Nations and its members are taking action.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unified command of the United Nations under the United States pursuant to Security Council Resolution of July 7, 1950, and the General Assembly … has called upon all States and authorities to lend every assistance to the United Nations action and to refrain from giving any assistance to the aggressor. With the approval of SCAP, Japan has been and now is rendering important assistance to the United Nations action in the form of facilities and services made available to the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the Armed Forces of which are participating in the United Nations action. Since the future is unsettled and it may unhappily be that the occasion for facilities and services in Japan in support of United Nations action will continue or recur, I would appreciate confirmation, on behalf of your Government, that if and when the forces of a member or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are engaged in any United Nations action in the Far East after the Treaty of Peace comes into force, Japan will permit and facilitate the support in and about Japan, by the member or members, of the forces engaged in such United Nations action; …”
  • 11. “The United Nations forces may, with the agreement of the Government of Japan through the Joint Board, use those facilities and areas the use of which is provided to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under the Security Treaty between Japan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 12. “This Agreement and agreed revisions thereof shall terminate on the date by which all the United Nations forces shall be withdrawn from Japan in accordance with the provisions of Article XXIV.”
  • 13. 2019년 6월 현재 유엔군후방사령부는 일본 요코타공군기지에 위치하고 있다.
  • 14. Report of the Security Council (1975-1976), Official Records: Thirty-first Session, Supplement No. 2 (A/31/2), para. 537.
  • 15. Ibid.
  • 16. A/Res/3333 (XXIX), para. 2.
  • 17. Supra note 14, para. 538.
  • 18. A/Res/3390(A) (XXX), para. 3.
  • 19. A/Res/3390(B) (XXX), paras. 1-2.
  • 20. 박휘락 ∙ 김병기, “한미연합사령부 해체가 유엔군사령부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제안”, 『신아세아』, 제19권 제3호 (2012), 85면.
  • 21. http://news1.kr/articles/?3451181.
  • 22. 이기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 『아산 국제법 인포커스 2018』 (Asan Report), 45-46면 참조.
  • 23. 이기범,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관한 국제법적 검토”, 『아산 국제법 인포커스 2018』 (Asan Report), 46-48면 참조.
  • 24. “The Security Council may establish such subsidiary organs as it deems necessary for the performance of its functions.”
  • 25. 제성호, 『한반도 안보와 국제법』 (서울: 한국국방연구원, 2010), 393면.
  • 26. “… [T]he dissolution of the unified command does not fall within the responsibility of any United Nations organ but is a matter within the competence of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 27. https://www.yna.co.kr/view/AKR20190603102051504?input=1195m.
  • 2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08/20190208003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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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