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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었다. 우리나라는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 이듬해 시행했다. 탈북자와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으나 세계적 인권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포부도 컸다. 난민 신청자는 빠르게 증가해 지난해엔 5년 전보다 8배 늘어난 9942명에 달했다.

찾아가는 난민 정책을 활용하기도 했다. 2015년 태국의 미얀마 난민 캠프에 찾아가 재정착 난민 30여 명을 데려온 것이다. 시리아 출신 신청자의 경우 내전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1446명에게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지난 한 달간 난민법을 폐지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60만명 넘게 찬성했다. 예멘인 500여 명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하면서부터다. 테러리스트와 성폭력범에게 세금을 쓸 수 없다는 반대가 쏟아졌다. 일자리를 얻으러 거짓 신청을 한다는 의심도 퍼졌다. 이들이 단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근거 없는 이슬람 혐오 정서가 번져갔다.

혐오 주장의 내용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가 내세웠던 선전·선동과 매우 닮았다. ISIS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방을 통해 대대적인 모집 홍보전을 벌였다. 아랍어를 몰라 코란을 읽을 수도 없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90여 나라에서 충원된 ISIS 조직원들은 이교도, 시아파 무슬림, 같은 수니파지만 ISIS에 반대하는 무슬림을 상대로 극악무도한 테러를 벌였다. 무슬림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비판도 있다. 지난 20여 년간 3만명이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767명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가 발표한 세계 평균 인정률은 37%지만 우리의 실질 비율은 4% 남짓이다. 또한 심사 과정에서 신속성이 공정성보다 우선시된다고 한다. 난민 신청자들의 대기시설과 난민 심사에 회부되지 못해 소송을 제기한 이들의 송환실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고도 한다.

인권 선진국의 이상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난민 업무를 맡고 있는 인력의 절대적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전담 공무원 수가 39명에 불과하다니 꽤 심각하다. 그런 데다 난민법에서 정해놓은 심사 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한 탓에 선입국 후심사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 무비자 입국 불허 리스트에 시리아와 예멘을 급히 추가했으나 임시방편이다. 시리아에 이어 예멘 내전이 심화되면서 난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 이웃 나라가 550만명, 독일 스웨덴 등 유럽 국가가 100만명을 받아들였으나 수용 능력의 한계에 달했다. 인권 선진국을 내세운 한국으로 시리아와 예멘인들이 향하는 배경이다.

시리아와 예멘은 중동의 대표적인 독재국가였다.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혁명이 중동 전역을 휩쓸었고 시리아에서 내전이 시작됐다. 4년 후 예멘의 불안정도 내전으로 이어졌다. 두 내전은 정부군-반군-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3파전인 동시에 다른 국가들이 개입된 대리전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최근 시리아 내전에서 알아사드 세습 독재정권을 지원한 이란이 승전국으로 부상하자 예멘 내전에서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아랍 동맹국 간 대립이 격해지고 있다.

시리아인들은 알아사드 정권의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적 화학무기 공격과 ISIS의 세기말적 테러로 고향을 떠났다.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내전 기간 동안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은 200회가 넘는다. 알아사드 정권의 인권침해는 내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악명 높았다. 같은 세습 독재인 북한과 함께 시리아는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국가가 벌인 반인도범죄 행위 때문에 유엔인권조사위원회가 꾸려진 걸로 유명하다. 예멘인들은 내전 대치 세력의 박해는 물론 콜레라 창궐과 아사 위기를 피해 탈출하고 있다.

중동의 인도적 위기를 둘러싸고 우리에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어차피 분담해야 할 몫이 있다. 우리는 반ISIS 국제연합의 일원으로 참여했고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이라크, 리비아뿐만 아니라 터키, 레바논, 요르단 내 난민 캠프에 인도적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난민 수용도 마찬가지다. 우리 경제 규모와 국력에 따른 책임이며 난민협약조약국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다. 나아가 국익과도 연결된다. 우리에겐 한반도 의제에 대한 세계 여론의 지지와 윤리적 권위가 늘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정한 심사를 거친 난민의 수용은 선택 사항도, 제로섬 게임도 아니다.

* 본 글은 7월 17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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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