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

2017년 첫 8개월 동안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 용어를 무려 106회 사용했다.1  미국 대선이 끝나자 구글(Google)에서 ‘가짜 뉴스’ 검색 수가 폭등했고,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았다.2  영국에서는 하원의원들이 가짜 뉴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1월에 시작한 조사는 6월이 되어서야 종결되었다.3  심지어 프란치스코 교황도 언론의 거짓 보도를 호분증 – 인분에 집착하는 편집증 – 에 비유하면서 이 이슈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4 

가짜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큰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서 생성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가짜뉴스는 민주적인 통치구조(democratic governance)의 본질적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대안적 팩트’가 난무하고 정신적이 문화가 충돌하는 이 시대에 가짜뉴스는 사람들의 편견을 악용하고 자유 언론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방치할 경우 가짜뉴스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가짜뉴스는 무엇인가?
가짜뉴스는 실제 언론 보도처럼 보이도록 가공하여 사실이 아니거나 잘못된 생각을 유도하는 정보로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거나, 여론을 움직이거나, 이익을 취하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다. 가짜뉴스는 활발하고 개방된 언론이 존재하는 자유 사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으로서, 중국이나 북한 등 언론이 정부의 선전 도구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에서 모든 뉴스는 정부가 생산하며 이견의 표명은 허용되지 않는다. 비교 대상이 되는 ‘진짜’ 뉴스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짜뉴스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시민들이 다수의 출처에서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고 어떤 뉴스를 소비할 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국가에서의 가짜뉴스를 논하고 있다.

가짜뉴스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짜뉴스의 역사는 건국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1777년,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작성했다는 편지들이 공개된 적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진심으로 이것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과연 전쟁에서 승리를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었다. 20년 후 워싱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정적들은 이 편지들을 인용하면서 그가 영국에 동조했다고 주장했다.5  물론 이 편지들은 모두 가짜였다. 아직도 편지의 출처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주장이 계속 확산되자 워싱턴은 어쩔 수 없이 임기 말년에 이 문서들이 자신과는 관련 없는 “완전한 위조”라고 발표했다.

2016년 대선은 상대적으로 점잖다고 여겨질 정도로 1828년의 대선후보 존 퀸시 아담스(John Quincy Adams)와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의 지지자들은 심한 거짓말과 인종차별적인 음해를 획책했다. 당시 신시내티 가제트(Cincinnati Gazette)는 “잭슨(Jackson)장군의 모친은 영국 군인들이 이 나라에 데리고 온 창녀였다! 후에 흑인 혼혈 남자와 결혼하여 여러 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중 하나가 잭슨 장군이다!!!”6  [원문에서 강조함] 잭슨 측에서는 애덤스가 주러시아 대사 시절 러시아 황제를 위해 미국 여성들을 상납한 포주였다고 주장했다.7 

미국의 남북전쟁 중에는 스스로를 ‘코퍼헤드’(Copperheads)라 칭하는 중서부 민주당원들이 링컨 행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에이브러햄 아프리카누스 I세. (Abraham Africanus I.) 최면 상태에서 실토한 그의 이중생활을 파헤치다” 등의 인종차별적인 제목으로 책자를 제작 배포했다. 이들은 노예 해방 선언이 공표된 이듬해인 1864년에는 “공화당은 미합중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바꿀 것인가? 그렇다.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국호는 무엇일까? 그것은 뉴아프리카(New Africa)다”라고 주장했다.8 

19세기 말에 이르러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와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에 의해 ‘황색 언론(yellow journalism)’이 등장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소유하는 언론 매체의 힘을 이용해 여론을 형성하고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면서 이 과정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황당한 이야기들이 신문의 앞면을 장식하였고, 이를 통해 스페인-미국 전쟁을 비롯한 정치적 의제를 추진했다. 1898년 2월, 허스트는 미국 전함 메인(USS Maine)호의 침몰을 맹목적인 애국주의적 논조로 보도함으로써 전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결국 전쟁 쪽으로 여론을 몰아 갔다. 허스트의 뉴욕저널(New York Journal)은 “메인호의 침몰 – 이는 적의 소행이다”라고 선포했다. 사실은 아직도 침몰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20세기 후반에는 라디오 토크쇼의 폭발적인 인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뉴스와 사설의 경계가 흐려졌다. 사람들이 소화해내기 벅찰 만큼의 많은 뉴스와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정보의 양이 크게 늘자 사람들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하고, 나아가 선택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뉴스 버블(bubble)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재확인해주는 뉴스만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일종의 진공상태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 버블 안의 뉴스가 다 허위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 양극화와 불신의 기원인 것만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버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래스(David Foster Wallace)가 2005년에 예견한 것처럼 “사람들은 집단 사상을 추종하듯 믿고 싶은 바를 재확인해주는 편파적인 뉴스만 골라 듣고 있기 때문에, 어떤 뉴스를 들어야 하는지, 무엇이 진실이고 왜곡인지 구별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9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가?
과거에 비해 지금은 가짜뉴스가 더 널리 확산되고 더 많은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세 가지 요인 – 즉, 가짜뉴스의 엄청난 생산량, 소셜미디어, 그리고 전문가에 대한 신뢰의 상실 – 에 기인한다.

30억 명이 넘는 인터넷 사용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온갖 견해와 비판이 뒤섞여 나온다. 또한, 인류 역사상 일반 대중에게 이렇게 많은 양의 정보가 주어진 적이 없었으며, 기만을 목적으로 한 정보의 비중이 이렇게 큰 적도 없었다. 수준미달의 과학 저널에서는 부실한 연구의 결과들이 마치 팩트인 것처럼 발표되고 있다. 자격도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을 단순히 반복하는 것으로 또는 사람의 두려움을 자극하여 수 천 명의 팔로워를 끌어들인다. 정부들은 댓글부대를 동원하여 국가에 이익이 되는 논리를 만들어 내고, 왜곡하고, 지지한다.

2015년, 뉴욕타임즈는 ‘트롤부대’(troll army)를 동원하여 인터넷 게시판에 러시아를 지지하는 정치 선전을 올리는 대대적이고 조직적인 시도들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였다.10  이들 트롤부대는 어느 수준 이상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일반 러시아 국민들로 이루어졌다. 신문의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한 후 이들은 정해진 주제에 대한 글을 써서 인터넷 웹사이트나 채팅 방에 올린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온라인 이름을 쓰기 때문에, 마치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정부를 칭송하는 글을 읽고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동안에는 정부나 정당과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글을 쓰면서 가짜뉴스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타임즈(Times)는 조지아(Georgia)의 티블리시에 사는 어떤 남성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는 집에 앉아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가짜뉴스를 작성해서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리는 사람이었다. 이 남성이 쓴 글 중 하나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멕시코 측에서 국경을 폐쇄할 것이라는 황당한 내용이었는데, 2016년 5월에서 7월까지 페이스북에서 트래픽 양으로 3위를 기록했다. 이 남성은 자신이 혼란을 야기하거나 특정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동기는 돈을 버는 것이다.”라고 했다. 구글의 광고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웹사이트 방문자로 올린 수입은 월 6,000 달러였다고 한다.11 

이런 이야기들이 넓은 독자층에게 읽힐 수 있는 것은 소셜미디어 덕분이다. 트위터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제일 간단한 플랫폼이다. 보도의 공정성을 결정하는 것은 글쓴이의 전문성 수준이 아니라 팔로워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몇 천명의 팔로워만 있고 약간의 지명도만 있으면 헛소문과 음모론도 사실처럼 들리게 마련이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팔로워를 살 수 있다. 20달러 미만으로 팔로워이자 포스트를 자동으로 리트윗(retweet)해주는 봇(bot, 자율동작계정) 1,000개를 살 수 있다.12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대단하게 비춰질 것이다. 천 번이나 공유된 트윗이라면 당연히 사실이 아니겠는가?

매우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텍사스주의 오스틴시에 사는 35세의 에릭 터커(Eric Tucker)의 트윗을 분석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일 다음날인 11월 9일에 있었던 반(反)트럼프 시위대 옆에 주차된 버스들을 찍은 사진 세 장을 올렸는데 그 때만해도 그는 단 40명의 팔로워만 있었다.13  그는 버스의 소유자(회의를 개최하던 소프트웨어회사)를 확인도 하지 않고, 시위 규모를 키우기 위해 돈 주고 산 시위자들을 싣고 온 버스라고 생각했다. 트윗 내용은 “오스틴에 모인 반(反)트럼프 시위대는 겉보기와 달리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않다. 여기 그들을 실어 나른 버스들이 있다. #fakeprotests #trump2016 #austin.” 이었다. 며칠 안으로 버스 사진은 트위터에서 16,000번, 페이스북에서 350,000번 공유되었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수많은 가짜뉴스 기사가 씌어졌으며, 급기야 미국의 대통령 당선자도 이 사건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터커는 자신의 오류를 깨닫자, 문제의 트윗을 삭제한 후 “사실이 아님(FALSE)”이라는 글자를 박아서 다시 포스팅을 했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도, 새로 올린 트윗은 29번 밖에 공유되지 않았다. 정정 글이 퍼져나가지 못한 현상은 가짜뉴스가 사람들의 입맛에 더 당긴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실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스캔들인 것이다.

가짜뉴스를 전달하는 가장 큰 매체는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의 뉴스 피드(News Feed)기능은 전 세계 어느 검색엔진보다 더 많은 독자를 뉴스 사이트들로 보낸다. 사용자가 피드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거나 피드의 기사에 대해 ‘좋아요(like)’를 누를 때마다 이는 알고리즘에 입력되어 향후 이 사용자에게는 어떤 스토리를 부각시켜야 하는가를 알려준다.14  그러나 전통적인 언론 편집자와는 달리, 뉴스 피드는 진짜와 가짜 내용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만 ‘뷰(view)’가 가장 많이 올라간 글에 초점을 맞춘다. 한 분석에 의하면, 2016년 미국대선 직전까지 주류 언론매체에 실린 내용보다 페이스북의 가짜뉴스 내용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훨씬 활발했다고 한다.15  대선 전에는 가짜뉴스 시장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기사들이 지배적이었다. 가장 많은 반향을 일으킨 가짜뉴스는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를 선언하여 충격” 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글은 960,000개의 공유, 반응 및 댓글이 따랐다. 대선 후에는 트럼프를 반대하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좌파로부터 시작되어 퍼져나갔다. 오큐파이 민주당(Occupy Democrats) 등의 집단은 수백만의 팔로워를 바탕으로 당파적인 페이스북을 운영하였는데, 이 페이스북에는 진짜 및 가짜뉴스를 함께 게재하여 사실과 허구(fact and fiction) 간의 경계를 흐림으로써 트럼프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화를 돋우었다.16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매체를 통해 미심쩍은 정보가 하루 24시간 유포되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는 그냥 관심을 꺼버리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정치인의 연설을 멋대로 해석한 기사를 읽는 대신, 연설문을 직접 읽고 스스로 판단하면 되지 않는가? 기후 변화에 대한 어떤 정치인의 견해에 맹목적으로 동의하는 대신, 기후 변화 과학자가 쓴 논문을 읽으면 되지 않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들이 전문가들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다는 것이 문제다. 2008년도 금융위기 이후 우파나 좌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금융위기와 불평등한 글로벌화를 초래한 경제학자, 정치인, 과학자 및 시민사회 지도자들의 지혜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여타 선진국에서는 국수주의적 또는 전통주의적 정책을 주창하는 대안적 후보들이 득세하였다. 이들은 글로벌 체제의 결함을 부각시키고 이에 대한 처방책을 제시하여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푸틴에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민주선거로 국가 정상이 된 이런 대안적 후보들은 과학, 글로벌화 및 자유주의적인 국제질서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의론을 제기한다. 이들은 기존의 질서를 만들고 운영해온 엘리트 층에 대한 비판을 공공 담론의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엘리트 층과 우수한 정책 입안을 위해 필요한 전문가들을 혼돈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잘못된 불신만 심어주었다.

오늘날 소셜미디어에서는 누구든지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또한 어떤 블로그 포스트, 영상물 또는 밈(meme)이라도 순식간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 있고, 주제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이 채팅방에서 또는 댓글 공간에서 토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견해가 전문가의 분석만큼이나 옳다고 결정했다. 이제는 경험, 학위, 지적 양심으로 사람들의 믿음을 사지 못한다. 대신 사람들은 기존의 믿음을 재확인해 주는 사람을 믿는다. “당신은 나와 생각이 같으니까 믿을 수 있다”라는 주장이 양극화를 초래하고 가짜뉴스에 양분을 준다. 우리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바꾸는 것보다는 그 생각이 옳음을 확인 받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누구나 견해를 갖고 이를 표현할 권리가 있지만, 정책의 수립이나 이슈의 공론화 과정에서는 반드시 전문가가 필요하다. 자유롭고 건강한 사회에서는 전문성과 교육이 중시되어야 한다.

 

향후 전개 방향은?
가짜뉴스 문제를 둘러싼 상황은 좀 더 나빠진 다음에야 좋아질 것이다. 기술이 향상되면 가짜뉴스 사이트들은 글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가짜 영상이나 녹음 파일도 쉽게 조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생성적 적대 신경망(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이하 GAN)으로 알려진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하면 이전에 “학습”한 유사 데이터를 편집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17  예를 들어, GAN은 고양이의 형상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진짜 고양이처럼 보이는 가짜 고양이 이미지를 생성하게 된다.”18  이 기술은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있지만, 미래에는 허위 기사를 ‘뒷받침’하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 뿐 아니다. 가짜뉴스를 제작하는 비용은 적지만, 대응하는 비용은 크다. 게다가 첨단기술의 사회적 역학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위조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공유하는 내용은 단순이 어떤 이슈에 대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정치 단체나 명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동질성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선동적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정보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 팔로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소집단에 속하면 여기에서 이탈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19  친구나 아는 사람이 가짜뉴스를 유포했다고 밝히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게 했을 경우 대의를 저버린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미국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어떤 집단에 대한 의리는 객관성이나 심지어 사실성보다 더 큰 가치를 갖는다. 이 때문에 온건한 중도파들을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반대편은 단지 뭘 모르는 집단이 아니라 사악한 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병적인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도 오히려 그 믿음을 더욱 굳힌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진실의 본질이나 진실을 확보하는 수단에 대한 합의를 못하게 되면 민주주의의 초석이 허물어진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아직 견제와 균형의 제도가 견고하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종말적인 시나리오는 전개될 개연성은 낮다.

그러나 가짜뉴스는 미국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실로 가짜뉴스는 안정된 민주주의의 뿌리와 전통이 없는 나라에서 더 위험할 수 있다. 2016년 12월,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파키스탄에게 핵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가짜뉴스를 읽은 파키스탄의 카와자 무하메드 아시프(Khawaja Muhammed Asif) 국방장관은 이스라엘을 향해 양국 간의 핵전쟁을 위협하는 트위터 메시지를 보냈다.20  혼란스런 상황은 곧 진정되었지만, 잠재적인 위협은 자명했다. 이제 가짜뉴스는 아무리 한시적이라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가짜뉴스가 더 정교해지면 진위 여부가 판명되기 전까지 각국은 극심한 혼란과 군사 충돌 사태까지 겪을 수 있다.

2017년 8월의 케냐 대통령 선거도 단적인 예다. 선거일 전까지의 기간에 현직 대통령인 우루 케냐타(Uhuru Kenyatta)를 지지하는 기획된 가짜 이야기들이 인터넷에 뜨기 시작했다. 이 가짜뉴스 기사들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속속 등장했다. 국민들의 평균 연령이 젊고 소셜미디어가 발달된 케냐이기에 이런 근거 없는 이야기는 그만큼 파급효과가 컸다. 어떤 케냐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짜뉴스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새로운 형태로, 더 정교하게 바뀌었을 뿐이다. 20여년 전에는 가짜뉴스가 나이로비 외곽에서 유인물 형태로 배포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셜미디어의 시대이기 때문에 정보가 정말 빨리 전달된다. 정보를 받는 속도도 더 빨라졌지만, 동시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것도 더 빨라졌다.”21 

8월 8일 케냐타는 140만 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케냐의 대법원은 선거‘부정’ 을 이유로 당선을 무효화했다. 가짜뉴스가 유권자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갖는지 계량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그랬듯이 케냐에서도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가짜뉴스와 당선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가짜뉴스가 물의를 일으켰다. 2017년의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박근혜 지지자들 사이에서 가짜뉴스가 대량 유포되었다. 가상의 매체들이 작성한 뉴스들은 박대통령에 대한 혐의가 좌파의 음모라는 것을 증거를 제시했다. 당시 주로 사용된 매체는 국민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는 메시지 앱인 카카오톡이었다. 뉴스의 내용에는 트럼프가 탄핵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주장, 중국에서 6만명의 교환학생을 동원해서 시위에 가담시켰다는 주장, 그리고 북한이 이 모든 사태를 기획했다는 주장 등이 포함되었다.22  당시 이런 가짜뉴스 그룹에 가입한 사람들은 하루에 최대 1,000개의 메시지를 받아보았다.23  종국에는 한국의 국민들과 제도가 이 문제를 극복했다. 그러나, 정부와 주류 언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가짜뉴스는 계속 위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정면대응

가짜뉴스는 이대로 방치할 경우 계속 확산되고 그 영향력도 증대될 것이다. 가짜뉴스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은 논란의 여지가 많고, 민주주의 정부와 독재 정권을 구분하는 자유 언론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루머와 허위 기사를 유포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면, 민간기업과 개인들이 허위 정보에 맞서 싸울 책임이 있다.

기술은 가짜뉴스의 매개체이자 해결책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및 구글에서 사용하는 알고리즘 덕분에 봇(bot)과 트롤부대(troll army)들이 결과를 왜곡시키고 가짜 스토리를 받쳐줄 수 있다. 구글의 광고서비스 덕분에 가짜뉴스 사이트들은 거짓말로 수익을 올린다. 검색 엔진의 결과는 황당한 기사 제목과 충격적 사진으로 구성된 클릭-미끼(click-bait) 문화를 조장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은 가짜뉴스의 폐해를 염두에 두고 수정하는 것이 가능하고,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이대로 놔두면 사용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고, 이 기업들의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 잠식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페이스북과 구글은 사용자들이 가짜뉴스 사이트를 회사에 신고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를 도입했다.24 

그러나 가짜뉴스의 확산을 IT업체들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자유로운 사회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견지하는 생각과 공유하는 정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북한과 같은 나라의 주민은 이런 책임에 대한 부담이 없다. 그들에게 유일한 뉴스 공급자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무지와 통치자에 대한 굴복이 체제 존립의 전제조건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 자유 민주 국가의 시민들은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자유는 더 큰 책임을 수반한다. 자유 사회의 구성원들은 반드시 자신들이 소비하는 뉴스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사고할 책임이 있다. 자유 민주 체제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 즉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변별력에 의존한다. 이를 위해 고학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현안들에 대한 깊은 이해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 능력과 그 능력을 사용할 의지는 필요하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교실에서 시작된다. 모든 고등학교에서 논리와 합리적 사고의 기초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 올해 초 워싱턴대학에서 두 명의 교수가 이러한 능력을 가르치기 위해 10주짜리 강의를 개설했다. 강의 제목은 “거짓말의 판독 (Calling Bullshit)”이였고, 강의 목적은 “거짓말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서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거짓을 규명하고, 통찰하고, 효과적인 분석과 논리로 이를 타파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었다.25  이 강좌에서는 비(非)진실(untruths)이 어떤 식으로 정치, 언론, 과학 분야에서 통용되는지 분석하고, 가짜뉴스와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거짓말’들을 포착하는 간단한 방법 몇 가지를 가르쳤다. 모든 중등교육기관은 이러한 기술의 습득을 교육 목표로 도입해야 한다. 사실 이런 강의가 개설되었다는 것 자체가 현 교육 체제는 현대생활의 복잡성을 위해 학생들을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여기서 두 교수들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했다: 의심 없이 그대로 수용하면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에 대한 방책이 없다. 믿을 만한 뉴스 매체나 유명 과학 저널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자유 언론도 복합적이다. 기사에 결함이 있거나, 여론을 호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때로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유 언론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의 정치 선전보다는 장점이 많다. 자유 민주 체제에서 모든 뉴스가 가짜인 것은 아니다. 때로 정치적 성향이 있어도 오랜 경험으로 평판을 쌓은 주류 언론매체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정직하고 정확한 보도를 하다면 독립 기자, 블로거 및 칼럼니스트들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도 있고 남들이 놓친 사실을 알려줄 수도 있다고 본다. 결국 해결책은 제공되는 정보의 양적으로 제한이 아니라, 책임 있는 정보의 소비하고 공유다. 의심하는 것은 설사 그 대상이 전문가들이라도 건강한 것이다. 하지만 신념(belief)보다는 사실(fact)이 더 큰 가치를 가질 때 자유로운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

 

결언

민주국가에서 진실과 지식은 존중되어야 하며 존중되는 것이 옳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전 세계 인류의 집단 지식이 바로 손끝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자원을 비판적 사고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편견을 재확인하는데 쓰고 있다. 트럼프가 가짜뉴스에 대해 106회 트윗한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를 통해 그가 트롤, 아마추어 블로거, 음모론자, 그리고 노골적인 거짓을 유포하는 악의적 정부들과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인 주류 언론은 하나로 뒤섞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유례없는 사태로서, 독재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전문가와 자유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트럼프가 ‘가짜’라고 폄하한 언론매체에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지키는 언론인들이 많다. 물론 그들도 때로는 실수를 한다. 트럼프의 말처럼 “많은 언론인들은 정직하고 위대하다. 그러나 일부는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솎아내야 한다.”26 

24시간 보도되는 뉴스의 세계에서 속도전쟁을 하다 보면 주류 매체의 언론인들도 간혹 실수를 할 수 있다. 또 편집국장을 만족시키거나 특정한 의제를 추진하기 위해 편향된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어트랜틱(The Atlantic)의 데이비드 그래이햄(David Graham)은 이를 ‘허술한 뉴스’(Sloppy News)라고 표현한다.27  허술한 뉴스란 정보 출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경우, 일부 사실만 보도하고 나머지는 묻어버리는 경우, 그리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만을 위해서 기사를 쓰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허술함과 거짓됨은 분명 다르다. 허술한 것은 고칠 수 있다. 존경 받는 언론매체라면 보도의 사실여부를 재확인하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정정 보도를 하면 된다. 주류 매체만 뉴스를 보도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뉴스 어디까지나 정확해야 하고, 믿을 만한 정보원으로부터 취재한 것이라야 하고, 대중에게 보도하기 전에 검증되어야 한다. 이것이 주류 언론 매체들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고 대부분이 이 원칙을 지킨다. 트럼프대통령의 주장과 상관없이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와 지하 방에 앉아서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블로거는 분명 다르다. 전자는 완벽하지 못하다면 후자는 완벽하게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논리와 비판적 분석을 포기하고 듣고 싶은 거짓말과 음모를 택함으로써 집단 사고의 유혹에 빠질 것인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징후가 있기는 하다. 퓨(Pew)센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78%는 “믿을 수 있고 확실한” 정보를 찾기 위해 공공도서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28  18~35세의 밀레니엄세대 중에는 이 비중이 87%나 되었다.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짜뉴스에 대한 논쟁은 가라앉을 지 모른다. 그러나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다. 같은 연구에 의하면 성인의 61%는 믿을 만한 정보를 찾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 좀 더 낳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과는 ‘거짓말의 판독’(Calling Bullshit) 같은 강의의 필요성과 고전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차세대가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의 존속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본 보고서는 전략분석실 김진우 박사 지도하에 작성되었습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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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Forney
Ben Forney

전략분석실

벤 포니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원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영문학 학사, 서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관심분야는 북한∙동아시아 정치, 한미 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