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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나라의 안보가 바로서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에 의한 ‘核 독점’(Nuclear Monopoly)이라는 사상 초유의 안보위기에 직면해있다. 국가안보의 둑이 터진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어떤 형태로 든 核으로 맞대응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국민은 북한 핵의 인질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사실이 공론화되어 정부가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이 1991년이다. 지난 26년간 6명의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해보겠다고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고, 우리는 7번째 대통령이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룰지를 지켜보는 중이다.

북한의 核 독점을 허용해서 국민들을 북핵의 볼모가 되도록 만든 오늘의 현실은 역대 정부의 정책실패, 전략실패가 자초한 뼈아픈 대가이다. 훗날 역사는 지난 한 세대 동안 대한민국이 추진했던 북핵정책과 대북전략을 건국 이후 최대의 정책실패이자 다시는 되풀이해선 안될 잘못된 정책유산으로 기록할 것이다. 우리 후손에게까지 짐으로 남겨진 북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안보가 바로서야 하며, 그 첫 발은 그 동안 북핵문제 해결에 관여했던 정부, 관료, 군 등 관련 집단의 총체적인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핵문제는 이미 우리 안보의 레드라인을 넘었다

지난 7월 북한의 연이은 ICBM 발사 성공으로 북핵문제가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이냐는 논란이 많았는데, 이는 북한이 공격하는데 장거리 미사일과 핵탄두 궤도재진입 기술이 필요한 미국에 해당하는 얘기다. 대한민국 안보의 관점에서 북핵위협은 이미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되었다. 적어도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2006년 북핵은 우리 안보의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위협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각오도 미비하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공격과 방어의 준비도 턱 없이 열악한 실정이다.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한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11월부터 매달 주민대피 훈련을 실시하겠다는 하와이의 사례와는 크게 대비되는 현실이다.

잘되는 나라일수록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원칙이 지켜진다. 선진국일수록 안보위기 앞에서는 정쟁을 중단하고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의 核 독점 시대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은 정쟁을 허용할 만큼 한가하지도 여유롭지도 못하다. 안보가 정쟁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초당적이고 범국가적인 국론결집과 국민통합이 절실히 필요하다.

안보가 정치화되어선 안 된다

안보의 정치화는 국가 보위와 국민 안위라는 관점에서 다뤄져야 할 국가안보 문제가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 취급되거나 對국민 보여주기식 전시성 행사의 소재로 활용될 때 발생한다. 특정 집단이 안보문제를 주도하는 경우 중요한 안보사안이 일부 이익집단의 전유물로 전락하면서 비밀주의, 제식구 감싸기, 무사안일주의, 복지부동 등 각종 폐단이 발생하게 된다. 외부의 적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치열하게 국익을 챙겨야 할 외교와 국방이 말만 앞세우며 對국민 면피성 보여주기식 內交와 內防에 치중할 때, 안보가 정치화되는 것이다.

안보의 정치화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습이자 폐단이다. SNS 시대에 우리 국민들은 안보에 종사하는 이익 집단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며 평가하고 있다. 국민은 정부와 관료, 군 등 이익집단이 조직이기주의가 아니라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성숙한 모습을,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묵묵하게 소임을 다하는 충직한 자세를 보여주기를 원한다.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서 정부가 잘하는 것은 격려하고 후원해주고 잘못된 부분은 건설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해서 국가안보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II. 북핵정책 실패를 반성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책실패에 대한 솔직한 認定 自省에서 다시 출발하자

대한민국이 지난 26년간 추진했던 북핵정책은 한반도에서 북한에 의한 核 독점을 허용하는 치명적인 전략적 실패를 초래했다. 1945년 지구상에 핵 시대가 열린 이래 적대 당사국 간에 어느 한쪽의 핵 보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사례는 한반도가 唯一無二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핵보유는 대한민국의 안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대표적인 정책실패의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나라를 참담한 안보상황으로 몰아넣은 사태에 대해서 지금까지 어떠한 정부조직이나 당국자도 책임을 통감한다며 나선 사례가 없다. 역대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하지 못한 북핵폐기를 해낼 수 있는 것처럼 의욕을 앞세우며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결국 김일성 3대 세습정권의 핵보유 의지와 능력을 과소 평가하고, 안이한 상황인식으로 대처하면서 오래된 레코드 판을 돌리 듯 구태를 반복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 국민들은‘북핵 능력이 별 것 아니다,’‘협상을 통해서 잘 해결되고 있다,’‘북핵이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았다’는 등 북한의 핵위협을 애써 평가절하 하는 말들에 익숙해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북핵 불용’이니‘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 수 없다’는 등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했을 뿐, 그 동안 정부, 관료, 군의 어느 누구도 국민 앞에 나서서 ‘지금까지의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거나 ‘북핵이 나라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등 솔직하게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사회가 북핵위협에 둔감하다는 외국의 지적에 대해 국민을 탓할 수 만도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진실을 호도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위협의 실상을 애써 평가절하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새겨야 할 교훈

교훈 1: 북한 정권은 당분간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북한 정권은 당분간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며, 김정은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다만 공포통치에 의존하는 김정은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확산될 것이며 이로 인한 지도부 교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김정은 유고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체제붕괴나 대규모 사회혼란과 같은 급격한 현상변경 보다는 김정은 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북한 정권이 등장하여 일정기간 안정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핵문제가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님을 뜻한다.

교훈 2: 지난 26년간 역대 한・미 정부가 추진한 북핵정책은 실패했다

1991년 9월 부시 대통령의 전술핵 감축 선언에 따른 주한미군 전술핵의 일방적 철수와 같은 해 11월 한국의 자체 핵무장 권한을 포기한 노태우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을 시작으로 4명의 미국 대통령과 6명의 한국 대통령이 추진했던 북핵정책은 모두 실패했다. 부시 행정부의 조건없는 전술핵 철수와 더불어 ‘비핵화 공동선언’의 단초가 된 노태우 정부의 일방적인 핵개발 포기가 북한으로 하여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거침없이 핵개발로 나아가게 만들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새겨야 한다.

교훈 3: 북한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북핵 완전폐기는 실현될 수 없다

북핵의 완전 폐기를 전제로 하는 큰 틀의 거래는 실현가능성이 없다. 핵을 생존과 동일시하는 3대 세습정권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으며, 설사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북한의 성실한 약속 이행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북한 정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훈 4: 북핵문제 해결의 관건은 북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핵과 생존을 동일시하는 북한 정권이 협상을 통해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 적어도 핵심 지도부를 제외한 광범위한 엘리트 계층과 북한 주민들이 핵을 포기하는 것이 갖고 있는 것 보다 더 낫다는 인식을 할 수 있을 만큼 북한 사회가 변화해야 만 북핵문제 해결의 기회의 창이 열릴 것이다.

교훈 5: 국가역량을 총동원한 장기 전략의 수립과 일관된 집행이 필요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우리의 생존에 대한 위협인 만큼 그 위협을 제거하는 데 있어 배제해야 할 옵션은 없다. 한국은 범정부차원에서‘死卽生, 生卽死’의 각오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없는 수단은 만들어서라도 치밀하고 집요하고 끈기 있게 북핵폐기에 집중해야 한다. 북핵폐기 노력은 단임 정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정부로 이어가며 국가생존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정파적 이해타산이나 이런 저런 구실을 들어 우리 스스로의 선택지를 좁히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III. 북핵 게임의 판을 바꿔야 한다

知彼知己 자세로 임하자

태생적으로 생존을 위해 외부의 위협을 필요로 하는 북한 정권의 속성을 감안할 때, 북한 지도부는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아니라 항상 조심하고 경계하면서 우리의 안보를 지켜야 할 관리의 대상이다. 상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올바른 전략 수립의 필요조건임에 입각해서 김정은 정권이 핵보유와 생존을 동일시한다는 사실을 대북전략의 기본요건으로 삼아야 한다. 핵을 가진 북한에게 굴복해서는 안되지만 김정은을 우리 앞에 굴복시키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북핵폐기 게임이 5년內 끝날 수 있는 단기전이 아니라 앞으로 10년, 20년, 30년 혹은 그 이상도 걸릴 수 있는 장기전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북한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면 해결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는 상대를 모르는 전략 부재의 소치일 뿐 아니라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고 국가안보를 해치는 유화정책의 산물로 비판 받을 것이다.

수세적 대응에서 벗어나자

북한의 선제 핵개발로 형성된 불리한 안보구도를 타파하고 더 이상 북한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수를 두면 대응하는 식의 수세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가 쓸 카드를 만들고 우리에게 유리하게 판을 짜서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선수를 치면 우리는 그 뒤를 쫓아가고 끌려다니는 형국이었는데, 이제 우리가 수를 두고 북한이 끌려오게 만들어 우리가 주도권을 쥐는 새 판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26년간 실패한 북핵정책의 토대가 되었던 다음과 같은 헛된 기대와 잘못된 논리는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 <헛된 기대>: “미국이 핵을 철수하고 한국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모범을 보이면 북한도 핵개발의 명분을 잃고 핵을 포기할 것이다”
  • <잘못된 논리>: “한국이 핵을 개발하거나 전술핵을 도입하면 북한의 핵개발을 정당화·기정사실화하고, 한반도 비핵화의 명분을 잃게 되며, 북한에 핵포기를 압박하기도 어렵게 된다.”

대한민국의 핵 카드를 활용하자

우리가 가진 핵 카드는 두 가지 인데, 그 하나는 주한미군 전술핵의 재배치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잠정적으로 NPT에서 탈퇴하고 자체 핵무장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의 핵확장억지 약속이 선언적 차원의 제스처에 머물지 않고 실체가 있는 조치로서 현실에 구현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재배치된 전술핵은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한반도에 형성된 전략적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균형추이자‘核 對 核’의 구도를 통한 안정된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향후 북한과의 핵군축 협상에 쓰일 수 있는 유용한 자산이다. 만약 미국이 우리의 전술핵 재배치 요구를 거부할 경우 한국은 북핵폐기시 재가입을 전제로 NPT 제X조에서 허용한 대로 조약에서 잠정적으로 탈퇴하고 자체적인 핵개발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개발한 핵은 북한과 핵군축협상을 통해 폐기하고 다시 비핵국으로 NPT에 복귀하겠다고 분명하게 밝히면 국제사회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은 자연동결 될 것이며 雙中斷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美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동결될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P5 국가들의 보유 핵탄두 수가 각각 300여개 남짓이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각 100여개의 핵탄두를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보유할 핵탄두와 탄도미사일은 美 본토 타격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소규모의 전략핵무기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비핵국인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전술핵무기일 것이다. 따라서 조만간 북한의 핵능력은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정권이 무한정 핵과 미사일 개발을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보다 더 큰 관리의 문제가 있다. 북한과 같은 좁은 땅에서 핵과 미사일을 안전하게 배치·관리하는 데는 규모의 한계가 따른다. 더 많은 핵탄두를 가질수록 통제가 어려워지고 그 만큼 김정은 정권은 내부의 반대세력에 의한 핵탈취 또는 핵유출 가능성을 우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스스로 동결하게 될 문제를 우리가 조급하게 나설 이유가 없으며 상대가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주는 식의 우를 범할 필요도 없다.

최근 중국과 우리 사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소위 ‘雙中斷’(북한의 핵·미사일 시험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 방안은 북한의 선제 핵개발로 형성된 불리한 안보구도에 굴복하는 패배적인 발상으로서 북한의 核 독점에 백기를 드는 또 하나의 안보참사가 될 것이다. 세계 군비통제 역사상 일방의 핵전력과 다른 일방의 재래식 전력을 상호 감축한 전례도 없다. ‘재래식 對 재래식, ‘핵 對 핵’의 구도를 정립해야 만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을 대가로 미국이 일정한 보상을 하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핵 탑재 ICBM을 마지막 레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트럼프 정부와 이런 사실을 최대한 활용해서 반대급부를 얻어내려는 김정은 정권의 이해가 맞아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한민국은 미국이 북핵 동결에 합의하기 전에 전술핵을 재배치해서 북한이 보유할 핵에 맞대응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 없는 동결 합의는 한국은 물론 동맹의 입장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敗着이 될 것이다.

중장기 전략적 사고에 입각하여 국가역량을 총체적으로 활용하자

북한 핵문제는 남북관계, 외교, 군사, 과학기술, 정보, 국내정치 등 국정의 다양한 분야가 중첩되고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 성격이 복합적이고 중첩적인 만큼 중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이 요구된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문화, 과학기술, 정보 등 국력의 제반 요소를 총동원하여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틀 속에서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최고통수권자의 상시적인 관심과 관리가 가능한 틀 속에서 북핵폐기와 남북관계 및 통일을 어우르는 중장기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이러한 큰 체계 하에서 세부 정책사안들을 유기적으로 다뤄나가야 한다.

국가시스템을 북핵 대응 체제로 개편하자

북한이 핵을 보유한 이상 정부의 일차적 책무는 강력한 대북 억지력을 구축해서 대한민국 땅에서 북한 핵이 사용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만에 하나 북한 핵이 터졌을 경우를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도 억지력 강화 못지 않게 중요한 정부의 핵심 책무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가시스템을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

분단 이후 지금까지 우리 정부와 군은 북한의 재래식 남침이나 군사도발에 대응하는 체제를 유지해왔다. 정부와 군의 조직과 대비태세, 대국민 교육, 재난대응 시스템에서 북한 핵에 공격받는 상황은 거의 배제되어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북한의 핵이 터졌을 경우를 상정하고 기존의 대응시스템을 대폭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북한의 SLBM 위협에 맞서 핵잠수함 개발에 예산을 쓰겠다는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외면하고 먼 산 쳐다보는 격과 다를 바 없다.

북핵에 관련된 국가역량을 총결집하고 국가안보실을 재편하자

정부 각 부처와 유관기관에 산재해있는 북핵 대비 역량을 한 곳으로 결집하고 남북관계 및 통일 문제와 긴밀하게 연동해서 대응할 수 있도록 국가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전담하는 기관을 구성하여 정부 곳곳에 흩어져있는 북핵 관련 역량을 결집하고 남북관계 및 통일문제와 연계하여 대통령이 상시적으로 직접 챙길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국가안보실을 북핵문제, 남북관계, 대북통일전략, 중장기 대외전략을 주요 업무로 하는 ‘국가전략실’로 개편하거나, 국가안보실內 1, 2 차장의 역할을 조정해서 1차장은 북핵 대비와 국가전략 담당으로 2차장은 당면현안에 대한 정책의 조정・관리 담당으로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압박을 강화하고 맞춤형 수출입통제제도를 창설하여 북한을 고립시키자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할 때까지 김정은 정권을 사실상 국제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수준의 강력하고 촘촘한 압박을 가해서 김정은의 병진노선을 좌절시켜야 한다. 과거 인종차별 정책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었던 남아공과 유사하게 북한정권을 정치·경제·외교·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국제문제임을 감안하여 한국이 주도적으로 국제사회를 규합해서 대북 맞춤형 수출입통제제도를 창설해야 한다. 과거 냉전시대에 서방진영이 공산권 국가들을 상대로 민감한 기술과 물자의 수출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었던‘대공산권수출통제체제’ (COCOM)와 유사하게 북한만을 목표로 한 별도의 수출통제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북한의 핵을 포함한 WMD와 미사일 기술의 외부 확산과 재래식 무기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서 북한으로부터 관련 기술과 물자 및 무기의 수입을 통제하는 수입통제 제도를 추가해야 한다. 결국 북한을 상대로 한 수출입을 전방위적으로 규제하는‘대북 수출입통제체제’를 구축해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재래식 무기 현대화 기반을 와해시켜야 한다.

 

 IV. 한·미가 북핵정책의 첫 단추를 다시 끼워 새로 출발하자

대한민국 차원에서 비핵화 공동선언의 무효화를 선언해야 한다

1991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은‘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선언’을 통해 핵무기의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과 재처리·농축시설의 보유를 금지한다면서 스스로 핵무장 권한을 포기하였다. 당시 이 선언은 과학기술계의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상명하달식 결정이었고 많은 전문가들이 그 배경에 의구심을 가졌었다. 이 선언을 토대로 같은 해 12월 31일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재처리·농축시설 보유 금지와 더불어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이 서명도 하기 전에 위반한 사생아와 같은 문건이다. 재처리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한 공동선언에 합의하던 당시 북한은 이미 영변에서 이 시설을 가동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한 상태였다. 북한에게 철저하게 기만을 당한 한국 정부가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의 위반으로 무효화되었다는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비굴한 태도를 취하는 동안 북한은 국가의 최고이익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NPT에서 공개적으로 탈퇴하고 핵개발에 성공했다.

역대 정부와 당국자들은 상대가 서명도 하기 전에 위반한 문건에 대해 무효화되었다는 입장도 밝히지도 못한 채, 마치 비핵화 체면에 걸린 듯이 비핵화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태도를 취했다. 국제조약에서는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서 조약 체결 당시와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경우 조약당사국은 조약에서 탈퇴할 권한을 갖는다. 비핵화 공동선언의 경우 상대의 집요한 위반으로 이미 휴지조각이 된지 오래되었다. 이런 문건에 대해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 표명을 못한다면 ‘정말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차원에서 북핵정책의 잘못된 첫 단추를 새로 끼우기 위해서는 국회가 나서서 그 동안 우리의 핵 카드 구사를 가로막은 족쇄였던 비핵화 공동선언이 북한의 위반으로 오래 전에 무효화되었음을 확인하고, 정부에 대해서 앞으로 이 선언을 일체 거론하지 말도록 결의해야 한다. 이렇게 비핵화 공동선언에 대한 입장 정리를 명확히 해야만 전술핵 재배치나 우리의 자체 핵무장 추진이 가능해진다.

한·미 동맹 차원에서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 해야 한다

1991년 9월 전세계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를 감축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선언은 한반도 현장에서 미국의 대북 확장핵억지 공약을 뒷받침하던 귀중한 자산을 일방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핵심적인 제어장치를 치워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바로 북한이 보는 앞에서 도발할 경우 핵으로 응징하겠다는 보복 의지를 뒷받침하던 물리적 실체가 사라짐으로써 한반도는‘핵의 진공상태’(Nuclear Vacuum)가 되었고, 북한이 집요한 핵개발로 이 틈을 선점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이 한반도 역외에 배치한 전략핵무기는 바로 코앞의 남한 땅에 버티고 있는 전술핵무기에 비해 위협의 체감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술핵 철수로 미국 핵자산의 지리적 근접성이 떨어지는 만큼 미국의 對韓 핵억지공약의 신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17년 7월에 단행한 두 차례 ICBM 실험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가진 김정은 정권은 앞으로 핵으로 美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탑재 ICBM과 SLBM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핵으로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완비한 상태에서 미국과 담판을 지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미국의 개입을 차단한 후 한반도에서 남한을 정치·군사적으로 압도하고 그 여세를 몰아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것이 김정은 정권의 핵전략이 추구하는 목표라고 판단된다. 결국 핵은 북한의 김씨 세습정권에게 있어서 남한 적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절대무기’(Absolute Weapons)인 셈이다.

북한에 의한 핵 독점은 남한이 북한 핵의 인질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남한이 일방적으로 핵의 공포에 노출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당면한 국가안보의 취약성을 극복하고 남북한 사이에 ‘안정된 공포의 균형’(Stable Balance of Terror)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미 양국은 비상한 각오로 결단력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동맹차원에서 북핵정책의 첫 단추를 다시 끼우는 길은 미국의 전술핵탄두를 재배치해서 한반도에서 공포의 균형을 안정되게 구축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손에 쥐고 있는 한 안정된 공포의 균형은 양국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덜 나쁜 정책대안이다.

* 본 글은 9월 4일 ‘국회 핵 포럼 제 6차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객원연구위원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