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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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972년부터 전 세계 민주주의 변화를 추적해 온 프리덤 하우스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5년간 민주주의가 정착된 25여 개국에서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이스라엘, 인도,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 국가에서는 인종 차별주의, 폐쇄적 민족주의,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됐고 표현의 자유, 법치, 정부의 기능이 훼손됐다. 20세기 후반 제3의 민주화 물결 이후 보편적 정치 체제로 각광받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는 포퓰리즘으로 대중을 선동해 자국 민주주의를 약화시킨 대표적 정치 지도자로 꼽힌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개인의 국내 정치적 이익 극대화와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제도의 문제가 심각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뇌물수수·배임·사기 혐의로 기소됐지만, 안보를 책임질 결단력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야권연대와 연정을 구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국가’, 인도는 힌두 민족주의 선동과 무슬림 탄압으로 프리덤 하우스의 세계 자유지수가 2020년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선진 민주주의의 위기는 국제질서 혼란으로 이어졌다. 민주주의 후퇴로 인해 국내 정치 이해관계가 대외정책 결정을 좌우했고, 외교정책이 지지층 결속에 이용되면서 동맹체제는 느슨해졌다. 인권·다자주의·동맹의 가치와 세계주의는 점차 약화됐고, 지역과 국제질서는 흔들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거래식 동맹관, 신고립주의에 따른 미국발 변화와 이에 속수무책인 유럽의 무능은 동맹·우방국의 혼란과 일탈을 부추겼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약화시켰다. 인도는 자국 민주주의 쇠퇴로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에 대항할 민주주의 균형추의 자질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약화는 그 틈새를 공략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으로 이어지며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약화되자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의 회색지대에 머물던 러시아, 터키, 이집트, 필리핀의 선거 권위주의 체제는 확실한 권위주의로 빠르게 퇴행했다.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확산되고 있는 국수주의와 반세계주의를 적극 이용했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무슬림 억압과 홍콩 민주 시위대 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더 이상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신뢰도는 하락했고, 자유주의 질서가 균열을 보이자 분쟁의 취약한 고리인 중동의 역내 질서가 흔들렸다.

이 리포트는 민주주의 위기와 국제질서 혼란이 언제, 어디서, 어떤 양상을 띠며 나타났는지를 추적했다. 먼저 1장은 서구 민주주의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짚어보고,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미래를 전망했다. 필자는 2000년대 이후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정치 양극화, 포퓰리즘의 확산으로 향후에도 상당 기간 그 구조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팬데믹이라는 예기치 않은 도전에 직면한 민주주의가 현재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혼란의 관계를 살펴본 2장은 이에 대한 가설을 다양한 자료를 이용해 점검했다. 서구 민주주의 위기가 미국 주도 자유주의 국제질서 혼란을 야기했다는 인과관계 대신에 민주주의 위기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혼란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사이의 관계를 원인과 결과로 단순화하기에는 다양한 수준의 많은 변수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를 기초로 오히려 경제 위기, 사회 불평등, 비(非)서구 국가의 부상 등을 초래한 자유주의 국제질서 약화가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3장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인의 민주주의 인식 변화를 2차 자료 분석을 통해 살펴봤다. 한국이 권위주의 독재에서 벗어나 절차 민주주의를 성취한지 30년 이상이 됐지만, 한국인의 민주주의 인식이 유동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민주주의 지수를 바탕으로 한국이 민주주의 정치 환경을 잘 갖춘 것으로 평가했지만, 한국인의 민주주의 인식은 조사시기에 따라 널뛰기했다. 필자는 이를 근거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음으로 4장은 민주주의가 정착됐던 국가들 가운데 최근 두드러진 민주주의 하락을 기록한 이스라엘과 인도의 사례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스라엘과 인도 민주주의 위기는 포퓰리스트 최고 권력자와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의 결속에서 기인한 것으로 진단됐다. 또 극우 민족주의가 확산될 수 있는 갈등적 국내 정치 환경도 다른 요인으로 꼽혔다. 필자는 극우 민족주의를 악용하는 정치인과 기득권 세력의 연합이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과 인도에서 민주주의의 퇴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5장은 글로벌 민주주의 위기가 중동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추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이란 핵협정 탈퇴, 2020년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암살 등은 분쟁 취약지역인 중동을 더 큰 혼란에 빠뜨렸다. 유럽에서는 이민, 난민 문제가 정치 쟁점이 되면서 방치된 중동의 불안정은 더 심화됐다. 필자는 민주주의 국가가 중동에서 동맹·우방국으로의 매력을 잃으면서 전통적 친미 국가인 터키, 카타르가 권위주의 국가인 이란, 러시아, 중국과 가까워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목차

 
■ 들어가며
 
■ 흔들리는 서구 민주주의: 문제와 전망 / 변영학
 
■ 서구 민주주의 위기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혼란 / 한인택
 
■ 세계 민주주의 변화 속 한국인의 민주주의 인식 / 강충구
 
■ 위기의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과 인도에 드리워진 포퓰리즘의 그림자 / 성일광
 
■ 글로벌 민주주의 위기와 중동 지역질서 불안정 / 장지향
 
■ 나가며 

 

저자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변영학
대구카톨릭대학교 교수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성일광
서강대학교 유로-메나문명연구소 연구원

강충구
아산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본 보고서의 내용은 연구원의 공식 입장이 아닌 저자들의 견해입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강충구
강충구

연구부문

강충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정책소통지수 개발" 연구에 참여했고, 연구 관심분야는 양적연구방법, 조사설계, 통계자료 분석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