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칼럼

“(동맹에 기반한) 몇몇 국가의 안보가 아니라 모두의 안보가 중요하다”, “아시아 국가들은 일대일로(一帶一路) 등을 전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AIIB에 영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이 가입하는 것을 볼 때 이는 매우 성공적이다. 중국처럼 개발을 통해 지역 발전 격차가 줄면 테러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경제력만으로 중국이 지역의 리더가 될 수는 없다. 정치적 기제(political instrument)가 필요한데 중국은 이미 CICA를 통해서 이를 잘 만들었고 아시아 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발언들은 필자가 2015년 5월 25~26 양일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 1차 CICA(Conference on Interaction and Confidence Building Measures in Asia) 비정부기구포럼에 참여했을 때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 왼쪽 사진)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에후드 바락(Ehud Barak) 전 이스라엘 총리, 야사르 야키스(Yasar Yakis) 전 터키 외교장관 등이 한 발언이다. 회의는 중국에 대한 찬사 일색이었다. 해외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중국과 자국, 혹은 중국과 자기 지역간의 협력이 성공하고 있다는 점과 미래의 방향을 언급했다. 중국 참가자들도 찬사에 답하듯 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CICA 비정부기구 포럼은 시진핑 주석이 2014년 CICA 회의에서 제안했다. 이처럼 시주석의 역점사업이다 보니 중국 정부가 공을 들여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가자 면면도 화려하다. 현 중국 정협 주석단의 한 명인 유젱셩(Yu Zhengsheng)이 기조연설에서 시진핑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들을 포함해 전 국가수반급 참가자가 4명(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 이스라엘, 파키스탄), 전 외교장관 4명(캄보디아, 이란, 키르기스탄, 터키)이 초청을 받고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회의에서 아시아의 발전과 안보, 전후 세계 질서, 아시아 금융의 미래, 중국의 일대일로 제안, 에너지 안보, 반테러리즘, 아시아 정체성을 위한 NGO의 역할, 신뢰구축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 등을 논했다. 지역적으론 CICA가 태동한 중앙아시아, 중동과 서남아 국가가 핵심 참가국이었다. 동남아와 동북아시아 참가자는 많지 않았다. 특히 한국, 일본 참가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시 주석은 2014년 CICA 회의에서 “몇몇 국가의 안보를 위해 다른 국가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미국의 대 아시아 군사동맹 체제는 냉전의 유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들에 의한 아시아 안보 문제 해결’을 의미하는 신아시아 안보 아키텍처(New Asia Security Architecture)를 주장했다. 이 새로운 구상의 핵심은 ‘공동, 포괄, 협력, 그리고 지속가능한 안보(common, comprehensive, cooperative and sustainable security)’로 제시되었다. 2차 대전 후 미국이 쓴 아시아의 안보 질서를 아시아의 손으로 새롭게 써야 한다는 것이 시 주석의 주장이었다.

시 주석이 비판했던 미국에 의한 전후 아시아 질서, 군사동맹의 문제는 흔히 허브-스포크 체제로 묘사된다. 미국이 중심에서 허브 역할을 하며, 미국과 군사 동맹 관계를 맺은 아시아 국가들이 스포크의 자리를 차지한다. 미국의 군사력이 안보를 보장하는 체제이다.

그런데 미국을 비판해 온 중국이 정작 이번 포럼에서 드러낸 모습은 미국 따라하기 같았다. 중국과 해외 참가국 사이에 오간 논의는 중국판 허브-스포크 시스템(Chinese Type of Hub and Spoke System)을 연상시켰다. 모든 협력 분야에서 참가국 대표들은 자국과 중국의 양자 협력, 한발 더 나가 자신의 지역(중앙아, 중동, 서남아 등)과 중국의 양자적 협력을 언급했다.

중국측 참가자들 가운데도 중국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구성원으로 참가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자협력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해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참가국 사이의 양자적 협력을 주로 언급했다. 상대국가 대부분은 중국으로부터 유∙무형의 지원을 기대하는 개발도상국들이다.

중국의 서진(西進)이 탄력을 받으며 아시아의 정치, 안보, 경제 시스템이 재편되고 아시아에 중국식 허브-스포크 시스템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거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일종의 허브가 되고 있다. 회원국들은 중국에게서 다양한 지원을 얻기 위해 ‘협력’을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스포크 국가’가 되고 있다. 이렇게 중국이 중심에 서고 중앙아∙중동∙서남아 국가 등 중국 서쪽 나라들이 양자적으로 연결된 허브-스포크 시스템이 등장한다.

물론 미국의 허브-스포크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 시스템이 냉전 시기 ‘군사동맹’적 성격을 반영하고 있지만 중국식 허브-스포크 시스템은 탈 냉전기 다양한 ‘비전통 안보 주제, 경제협력, 사회문화 교류’를 연결의 매개로 사용한다.

중국식 허브-스포크 시스템에서 AIIB는 자금줄이다. AIIB는 CICA에 참여하는 개발도상국가 혹은 중국식 허브-스포크 시스템의 스포크 국가들의 인프라 개발에 희소식이다. 중국이 주창하는 일대일로는 중국이라는 허브로부터 출발해 아시아 개발 도상국인 스포크 국가들을 이어주는 상상의 길과 고리가 된다. 결국 중국 시스템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달라도 메커니즘은 미국과 다를 바가 없다.

중국이 미국 중심의 허브와 아시아의 스포크 시스템을 복제한다고 해서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은 다음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먼저 중국이 제안한 ‘다자주의’에 기초한 아시아 신안보 아키텍처, 아시아 국가들에 의한 아시아 안보는 어떤 특정 국가가 허브가 되는 기형적 다자주의가 돼선 안 된다.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평등하게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다자주의가 돼야 한다. 중국이 우월한 지위가 아닌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 회원국으로 참여할 때 중국이 비판하는 기존 질서와 차별화 되는 질서가 가능할 것이다.

두 번째로 중국이 자신만의 허브-스포크 시스템을 아시아에 구축하려 한다면 기대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는 경제적 자원을 스포크 국가에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 많은 책임이 따른다. 허브로서 중국은 스포크 국가들이 따라 배우고 싶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 스포크 국가들에게 올바른 ‘규범’을 제시해야 한다. 스포크 국가들로부터 규범적 정당성을 인정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중국이 의도했건 안 했건 중국 서쪽에 중국식 허브-스포크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 중국이 아시아 지역을 위해서 기꺼이 지역 공공재(common goods)를 공급한다면 찬성한다. 현재의 중국 경제력 등을 볼 때 오히려 환영할만하다. 다만 허브가 되고자 하는 중국에게 스포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뿐만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고 싶을 뿐이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