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국가와 국민·영토와 주권 및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군은 행동으로 그 존재를 입증한다. 여기서 행동이란 절대적으로 적을 제압하는 무력이다. 치명적인 무기체계 보유 정도가 그 나라의 무력을 대변한다.
대한민국은 강한 공군력으로 나라를 지켜 왔다. 전투기 전체가 450여 대이고, F-16과 F-15K 등 4세대 이상급의 첨단 전투기만도 260여 대에 이른다. 북한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F-35A 5세대 스텔스 전투기도 40대나 가지고 있고, 20대를 추가할 예정이다. 첨단 전투기 전력으로만 봐도 미국·러시아·중국·인도 다음이다. 일본·프랑스·영국 등도 전투기 전력은 우리에 못 미친다.
그런 만큼 적이 도발하면 공중을 장악함으로써 전장을 지배해야 한다. 아무리 AI가 바둑왕이 되고 고화질 영화 1편을 1초 안에 내려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도, 첨단 항공무기 체계 없이는 공중을 장악하지 못한다. 4.5세대 이상급의 전투기는 항공역학부터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이 융합돼야 완성된다. 결국 제작사가 ‘갑’이니 우리 돈 주고 사온 기체도 맘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이렇게 몸값 비싼 첨단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7개국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19일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이 날아오르면서 대한민국이 8번째 국가가 됐다.
전차 한 대 없이 적군에 국토를 유린당하고 전후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허덕이던 나라가 약 70년 만에 첨단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됐다. 그래서 KF-21의 비상은 그저 새로운 전투기가 등장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피땀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진 산업화 세대, 민주화와 함께 IT 강국을 끌어오던 현 중견세대, 그리고 톡톡 튀는 세계화의 감각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노력이 한 데 뭉쳐 첨단 전투기의 형태로 모인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KF-21의 초도비행 성공에 갈채를 보내되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랜딩기어도 접지 못하고 최대의 4분의 1에 불과한 속도로 첫 비행을 했을 뿐이다. 앞으로 4년간 모두 6대의 기체를 투입해 2200여 회를 날면서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그 능력과 한계를 확인할 것이다.
전투기가 잘 난다고 해서 끝낼 일이 아니다. 200㎞ 밖의 적기를 격추시킬 미티어(Meteor) 공대공 미사일부터 500㎞ 밖의 적 지휘부를 1m 오차로 정밀타격할 ‘천룡’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까지 새로운 무장들을 통합해야 한다. 1000여 개의 전자소자를 탑재해 육해공 구분 없이 여러 적 표적들을 촘촘히 탐지할 수 있는 AESA(능동전자주사식) 레이더나 주야 구분 없이 적기를 볼 수 있는 광학전자장비인 IRST(적외선탐지추적장치)와 EOTGP(전자광학표적추적장치)도 약속대로 성능이 나오게 통합해야 한다. 그렇게 KF-21이 완성돼 처음 인도될 시기가 2026년이다.
실전 배치가 끝도 아니다. KF-21은 추가 개발로 진짜 스텔스기가 돼야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 미래의 전투기 시장은 F-35 같은 5세대 스텔스기가 장악할 것이다. 게다가 5세대를 넘어 6세대 전투기의 개발이 거론되면서 유인이나 무인으로나 모두 싸울 수 있는 전투기도 구상 중이다. 그래서 KF-21의 비상은 미래에도 스스로 조국과 창공을 지키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 본 글은 7월 21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