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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러제재 동참 요구에
미온적 태도 보인 중동국가들
시리아내전 떠올렸기 때문
 
중동정책 자주 바꾼 미국보다
한배타면 의리지킨 푸틴 선호
 
올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많은 나라가 이를 규탄하며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 그런데 중동 국가들은 중립 태도를 취했다. 미 동맹국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미국이 요청한 대러 제재 참여와 원유 증산을 거절했다. 유엔 안보리 비상임 UAE는 러시아 규탄 결의안 표결서 기권했다. 이스라엘과 터키도 대러 제재에 나서지 않고 대화를 강조했다.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는 러시아 비판을 자제하고 밀 가격 상승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동 시민들은 7년 전 시리아내전에서 러시아가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했을 때와 사뭇 다른 국제사회의 이중잣대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가 만행을 저질렀을 당시 즉각 응징했더라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금처럼 기고만장하지 못했을 거라며 혀를 차기도 한다.

푸틴 대통령은 2015년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기고 매달리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돕고자 시리아내전 개입을 결정했다. 러시아는 반군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공습했고 전투병, 용병, 무기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유엔 안보리가 제출한 아사드 정권의 인권유린 및 화학무기 사용 진상조사 결의안 12건 모두를 반대하며 후원국을 감쌌다. 10차례 넘는 평화협상에서도 아사드 세습 독재정권의 복귀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지지부진했던 유엔 주도의 협상과 달리 러시아가 이끈 협상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아 헌법위원회 설립에 동의했고 이란과 터키가 적극 참여했다.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의 운명을 좌우하자 국경을 접하는 이스라엘과 터키가 대러 관계에 공을 들였다. 시리아에는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공격을 위해 국경을 넘나들고 북동부 자치 지역의 쿠르드계 민병대가 터키군과 싸우고 있다.

반면 시리아 반군을 돕던 미국과 우방국들은 시리아 난민 위기, ISIS 격퇴, 쿠르드계 지원, 이란 핵합의 추진 문제를 둘러싼 국내 여론의 압박에 시달렸고 결국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유보했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정부는 탈중동 정책 준비의 일환으로 이란 핵합의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동맹국인 사우디, UAE, 이스라엘을 배제해 이들의 배신감을 부추겼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자유주의 가치를 흔들자 미국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이후 조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파기한 이란 핵합의 복원과 중국 견제를 위한 ‘중동 떠나기’를 선언했다. 동맹국들은 또 위기감을 느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사우디를 세계의 ‘왕따’로 불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북한을 칭하던 용어였다. 미 중앙정보국이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카슈끄지의 살해 배후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왕세자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한 바이든 대통령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사우디 왕세자는 자신이 이뤄낸 개혁을 부각했으나 어필하지 못했다. 왕세자는 여성 운전과 축구장 입장, 남녀 혼석, 영화 상영과 콘서트를 허용하고 권력을 남용하던 종교경찰을 없앴으며 부패한 왕자들은 처벌하고 이스라엘과 협력을 다졌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의 지원 아래 사우디, UAE,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위협해 온 예멘 후티 반군을 테러 조직 명단에서 제외하고 중국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UAE에 F-35 전투기 판매를 꺼렸다.

대부분 권위주의 체제에 속하는 중동 국가들에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널뛰는 미국보다 푸틴 대통령의 개인 의지가 모든 걸 결정하는 러시아가 정권 수호를 위해 더 안정적인 파트너다. 중동 리더들은 민주주의를 모르는 수준 이하 ‘왕따’라며 혐오의 눈길을 보내는 바이든 대통령보다 아버지처럼 의지하는 아사드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한 푸틴 대통령에게 의리남 이미지를 떠올린다. 중동에서 펼쳐지는 푸틴과 바이든의 대결이 흥미진진하다.

 
* 본 글은 5월 25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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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