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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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말년에
위안부 보상 서명

마루야마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

정은경 연구원 jek@asaninst.org, 권은율 RA

 

“일본의 파시즘은 8.15로 붕괴됐지만 일본의 파시즘 운동이 장래에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일본에서 반동적 내셔널리즘이 전쟁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다시 나타날 것이 확실하다.”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1914~1996)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상은 지난 7월 24(목)-25일(금) 양일에 걸쳐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인문연구센터 주최로 연구원내에서 개최된 ‘마루야마 마사오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의 4세션에서 거론된 내용이다.

이번 행사는 ‘일본 유학과 근대성’, ‘에도 시대 유학과 일본 사상’, ‘근대 일본과 한국 인식’, ‘시민, 정치와 민주주의’ 등 총 4개 세션으로 진행됐다.

제4세션 토론자로 참가한 국민대학교 이종은 교수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생전 발언들을 언급하며 전날 제1세션 발표자 호세이대학 와타나베 히로시 교수의 “마루야마는 모든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말에 뜻을 같이했다. 같은 세션 발표자 도쿄대학 가루베 다다시도 “마루야마는 20세기 이후 대중사회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 점을 일찍 포착했다”며 마루야마의 혜안을 평가했다. 양일간의 발표 및 토론은 과거 마루야마 마사오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한일 갈등의 핵심 현안에 마루야마의 사상이 던지는 시사점에 주목했다.

스기타 아쯔시 교수는 마루야마 마사오가 지적한 ‘무책임의 체계’가 현대 일본 사회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스기타 교수는 “마루야마는 「군국지배자의 정신형태(1949)」에서 누가 결정하는지 알 수 없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결정 과정이 전전(戰前)의 군사체계를 지탱하고 있었다고 설명해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전후 일본은 군사적 발전을 봉인함으로써 이 같은 무책임의 체계로부터 멀어진 듯 보였다”며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의 원자력 공급이 무책임 체계 하에 이루어졌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마루야마는 무책임 체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스기타 교수는 말했다. 교수는 또 “1990년 대 이후 지나친 다원성이 일본 정당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자 마루야마는 임기 중에는 정권 여당의 기한이 정해진 독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현대에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한시적이라 해도 독재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이종은 교수는 “아베 정권이 여러 단계를 거쳐 글라이히샬퉁(획일화 정책)을 성립시킨 히틀러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행보가 지속될 경우 지식인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하면서 마루야마의 말들을 인용했다. 마루야마는 “(지식인은) 전도된 세상에서 찰리 채플린처럼 미친 사람이 되더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지식인들을 권력층으로 보면 이단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간주될 수 있다”며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무질서보다 질서가 더 나은 것이지만 무엇을 위한 질서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회 전체의 복지를 위한 것일 때에만 질서에 복종해야 한다”고도 했다. 가루베 교수에 따르면 마루야마는 말년에 한국 종군 위안부 여성들에게 일본 정부가 공적인 보상을 해야 된다는 서명운동에 두 번 참여한 바 있다.

마루야마는 지식인의 노력뿐 아니라 일반 민중들도 ‘현실주의’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스기타 아쯔시 교수는 “마루야마는 「‘현실’주의의 함정(1952)」에서 사람들이 ‘현실’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기정사실에 굴복함을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마루야마는 특히 ‘당대 지배권력이 선택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현실이고 그 외의 논의는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을 문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박홍규 교수는 그러나 “마루야마 교수가 일본주의와 특수주의에 대해 끝까지 경계를 유지했는지는 의문”이라며 “고도 성장기에는 오히려 그런 시대를 향유했다”고 비판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1986)」는 일본주의에 침윤된 상태에서 나온 글”이라고도 덧붙였다. 나고야 대학교 강동국 교수는 “마루야마가 종군위안부가 보편적 인권 침해라고 말하면서도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사과는 서양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아베 총리의 언행과 이에 동조하는 일본인의 모습에서 일본주의의 그림자를 느낀다”며 “여기에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임도 있을지 모른다”고 마루야마의 한계를 언급했다.

(※학술대회에 발표된 논문의 양이 방대해 내용은 별첨 파일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