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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듯하다. 김정남 암살 이후 지난 몇 주 동안 말레이시아-북한 관계는 악화될대로 악화되었다. 급기야 말레이시아가 선제적으로 주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를 추방하자, 북한도 주 평양 말레이시아 대사를 추방했다. 더 나아가 북한 내 말레이시아인들의 출국이 금지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말레이시아도 자국 내 북한 대사관 관계자 출국을 금지시켰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고 북한과의 무역 관계, 말레이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 등 북한 관련 문제 전반을 재고하겠다고 했다. 특히 자국민이 사실상 북한에 억류되었다는 점 때문에 말레이시아-북한 관계가 말레이시아 국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웃한 동남아 국가들도 북한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자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점에 대해서 안도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든 북한에 의한 유사한 사건이 자국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국가의 특성상 한번 사건이 발생하면 뒷수습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말레이시아가 겪고 있는 딜레마도 북한이라는 국가의 특성 때문이다. 자국 내 북한인과 외교관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의 양자 관계에서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다.

김정남 피살 이후 동남아와 북한 관계는 주로 말레이시아-북한 관계, 그리고 일부 주변 동남아 국가와 북한 관계에 주로 초점이 맞춰 있었다. 반면 잘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동남아 국가들의 지역협력체인 동남아국가연합 (아세안)과 북한의 관계다. 북한은 개별 국가를 넘어 아세안 차원에서도 나름 배려를 받아왔다. 아세안은 북한과 적극적으로 관여해 북한을 지역 다자무대에 끌어 들이려는 노력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000년 북한의 아세안안보포럼 (ASEAN Regional Forum) 가입이다. 아세안안보포럼은 북한이 참가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 다자협력체로 북한 가입 이후 매년 한국과 북한 사이 ARF 의장 성명에 자신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아세안은 북한과 같은 국가가 외부와 격리된 채 남아 있을 경우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한이 문제가 있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ARF와 같은 다자 무대로 끌어 들이는 관여 (engage)를 통해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세안의 이런 생각은 1997년 군부 독재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받고 있던 미얀마를 아세안에 가입시켰을 때 적용했던 논리다. 당시 아세안은 미얀마를 내버려 둘 경우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아세안 내로 끌어들이는 “건설적 개입” (constructive engagement)을 통해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 논리를 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미얀마를 아세안 회원국으로 받아 들였다.

미얀마가 아세안에 가입한지 13년 만인 2011년 미얀마에서 정치개혁이 시작되고 군부 독재가 종식되었다. 결론적으로 미얀마는 아세안이나 국제사회가 바랬던 방향으로 변화가 되었다. 아세안의 건설적 관여가 미얀마의 변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보는 관점에 따라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건설적 개입, 즉 군부독재 국가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이 미얀마의 변화를 가져오는 직접 원인은 아니지만 주요한 배경 중 하나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백 번 양보해도 건설적 개입이 미얀마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혹은 건설적 개입이 없었다면 미얀마의 변화가 더 빨리 왔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김정남 피살 사건의 수습을 놓고 말레이시아-북한, 동남아-북한의 관계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북한의 불법적 활동에 대해 동남아 개별 국가들이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미 몇몇 국가들은 나름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김정남 피살과 이후 벌어진 북한의 행동은 분명 동남아 주권 국가의 법을 어긴 일이고 국가 안보와 치안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도 동남아 국가들과 초국가적 범죄 분야, 테러리즘 분야에서 더 협력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반면 지역 다자 안보 협력에 북한을 참여시킨 아세안의 “건설적 관여” 논리가 잘못되었는가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 물론 아세안 차원에서도 북한과 관계에 좀 더 주의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아세안 차원에서 북한과 관여 정책을 전면 수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 바람직한 아세안/동남아 국가의 대 북한 접근법은 투 트랙 접근법이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북한의 불법 활동 감시 및 차단은 강화하되 아세안 차원에서 북한과의 관여 여지는 일정 부분 열어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얀마의 경우처럼 아세안의 관여가 후일 북한의 변화에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듯하다. 김정남 암살 이후 지난 몇 주 동안 말레이시아-북한 관계는 악화될대로 악화되었다. 급기야 말레이시아가 선제적으로 주 쿠알라룸푸르 북한대사를 추방하자, 북한도 주 평양 말레이시아 대사를 추방했다. 더 나아가 북한 내 말레이시아인들의 출국이 금지되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말레이시아도 자국 내 북한 대사관 관계자 출국을 금지시켰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고 북한과의 무역 관계, 말레이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 등 북한 관련 문제 전반을 재고하겠다고 했다. 특히 자국민이 사실상 북한에 억류되었다는 점 때문에 말레이시아-북한 관계가 말레이시아 국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웃한 동남아 국가들도 북한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자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점에 대해서 안도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든 북한에 의한 유사한 사건이 자국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국가의 특성상 한번 사건이 발생하면 뒷수습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말레이시아가 겪고 있는 딜레마도 북한이라는 국가의 특성 때문이다. 자국 내 북한인과 외교관 활동에 대한 모니터링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의 양자 관계에서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다.

김정남 피살 이후 동남아와 북한 관계는 주로 말레이시아-북한 관계, 그리고 일부 주변 동남아 국가와 북한 관계에 주로 초점이 맞춰 있었다. 반면 잘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동남아 국가들의 지역협력체인 동남아국가연합 (아세안)과 북한의 관계다. 북한은 개별 국가를 넘어 아세안 차원에서도 나름 배려를 받아왔다. 아세안은 북한과 적극적으로 관여해 북한을 지역 다자무대에 끌어 들이려는 노력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000년 북한의 아세안안보포럼 (ASEAN Regional Forum) 가입이다. 아세안안보포럼은 북한이 참가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 다자협력체로 북한 가입 이후 매년 한국과 북한 사이 ARF 의장 성명에 자신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아세안은 북한과 같은 국가가 외부와 격리된 채 남아 있을 경우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북한이 문제가 있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ARF와 같은 다자 무대로 끌어 들이는 관여 (engage)를 통해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세안의 이런 생각은 1997년 군부 독재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받고 있던 미얀마를 아세안에 가입시켰을 때 적용했던 논리다. 당시 아세안은 미얀마를 내버려 둘 경우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아세안 내로 끌어들이는 “건설적 개입” (constructive engagement)을 통해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 논리를 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미얀마를 아세안 회원국으로 받아 들였다.

미얀마가 아세안에 가입한지 13년 만인 2011년 미얀마에서 정치개혁이 시작되고 군부 독재가 종식되었다. 결론적으로 미얀마는 아세안이나 국제사회가 바랬던 방향으로 변화가 되었다. 아세안의 건설적 관여가 미얀마의 변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보는 관점에 따라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건설적 개입, 즉 군부독재 국가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이 미얀마의 변화를 가져오는 직접 원인은 아니지만 주요한 배경 중 하나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백 번 양보해도 건설적 개입이 미얀마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혹은 건설적 개입이 없었다면 미얀마의 변화가 더 빨리 왔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김정남 피살 사건의 수습을 놓고 말레이시아-북한, 동남아-북한의 관계가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북한의 불법적 활동에 대해 동남아 개별 국가들이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미 몇몇 국가들은 나름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김정남 피살과 이후 벌어진 북한의 행동은 분명 동남아 주권 국가의 법을 어긴 일이고 국가 안보와 치안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도 동남아 국가들과 초국가적 범죄 분야, 테러리즘 분야에서 더 협력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반면 지역 다자 안보 협력에 북한을 참여시킨 아세안의 “건설적 관여” 논리가 잘못되었는가는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 물론 아세안 차원에서도 북한과 관계에 좀 더 주의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아세안 차원에서 북한과 관여 정책을 전면 수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 바람직한 아세안/동남아 국가의 대 북한 접근법은 투 트랙 접근법이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북한의 불법 활동 감시 및 차단은 강화하되 아세안 차원에서 북한과의 관여 여지는 일정 부분 열어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얀마의 경우처럼 아세안의 관여가 후일 북한의 변화에 일정 부분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