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본 보고서는 전략분석실 김진우 박사 지도하에 작성되었습니다.

영국의 보수파 정치인 마이클 고브(Michael Gove)는 지난해 6월 3일 스카이뉴스(Sky News)와의 인터뷰에서 2016년도에 가장 기억될 만한 명언을 남겼다. 그는 “국민들은 전문가들에게 넌더리가 났다.”고 선언했다.1

고브는 단 열 개의 단어로 2016년의 이례적인 정치적 분위기의 핵심을 찔렀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국민’은 영국인들이고, 현안은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하는 국민투표였다. 투표 직전까지 전 세계의 정치·경제·안보 전문가들은 영국은 EU에 남을 것이고 반드시 남아야 한다고 했다. 영국의 EU 탈퇴 지지자였던 고브는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일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무시하고 현실 감각이 없는 글로벌 엘리트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방송 사회자에게 “당신은 엘리트 편이고, 나는 대중의 편이다.”라고 했다. 약 3주 후 투표가 실시됐고 영국 국민들은 EU 탈퇴를 선택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예비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승승장구하자 경제·외교 전문가들은 한편으로 그를 비난하고 폄하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의 경제 분석기관 EIU (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3월에 세계 경제의 10대 리스크 중 하나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꼽았고, 이는 세계 경제를 교란시키는 잠재 위험 요인으로서 지하드의 테러리즘에 버금가는 사건이라고 분석했다.2 미국 대선에서 모든 전문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 있게 클린턴의 압승을 점쳤다. 그러나 2016년 11월 8일, 미국인들은 영국인들이 그랬듯이 ‘전문가들에게 넌더리가 났다’고 선언을 했다. 그날 도널드 트럼프는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번 대선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었다. 이들보다 더 상이한 두 집단, 즉 엘리트와 대중의 대결이었다. 2016년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런 정치 대결 구도 양상이 더 분명해졌다. 다만 한 쪽은 보수, 다른 쪽은 진보 가치를 주창할 뿐이다. 진보와 보수, 이 두 단어는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념적 기원은 어디며, 더 중요하게, 집권하면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미국적 맥락에서 이 두 집단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왜 트럼프가 승리했는가?’라는 문제의 답을 얻으려면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는 양대 정당정치가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엘리트라는 명칭은 잘못되었다. 스스로 엘리트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두 부유층이나 특권층에 속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트들은 미국 정치의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의 주축을 이루며 신자유주의 사상을 표방하는 사람들이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버락 오바마(Barrack Obama) 등은 모두 엘리트층에 속한다. 이들은 소속 정당과 미국의 국제적 위상 덕분에 막강해진 이익 집단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국내 정치에 대한 입장 차이는 있어도 국제적으로는 모두 국제연맹에서 채택되고 얄타 회담(Yalta Conference)에서 성공적으로 이행되었던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다.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전개 과정에서 일부 불완전한 측면도 있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 인권, 민주주의, 글로벌화 등의 이념을 표방한다.

엘리트들의 반대편에는 정치적 비주류인 포퓰리스트들이 있다. 티파티(Tea Party), 월가 점령 세력(Occupy Wall Street), 도널드 트럼프,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등은 모두 포퓰리즘 찬성론자들이다. 개인적 특성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된 믿음으로 집결된다. 즉, 엘리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제도를 만들어 놓은 기득권층이며 너무 부패했다고 생각한다. 작은 정부, 큰 정부, 복지 증대, 복지 축소, 기업 규제, 기업 탈규제 등을 놓고는 입장이 엇갈려도 한 가지 점에서 이들의 생각은 일치한다. ‘주류 정치인들은 내 이익은 안중에 없다’는 믿음이다. 이들 중 내놓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대다수가 글로벌화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대해 비판적이다.

냉전이 종식된 후 글로벌화는 양상이 바뀌었다. 당초에는 사람, 상품, 사상의 자유로운 이동의 촉진이 목적이었으나 다보스(Davos) 및 브뤼셀(Brussels)의 회의장에서는 ‘글로벌리즘(Globalism)’이라는 글로벌화의 이념적 요소가 탄생했다. 자유로운 이동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었고, 최종 목표는 전 세계적 규범, 법률 및 관습을 통합한 단일체제가 되었다. 서양의 신자유주의를 토대로 한 초국적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각국 정부는 권력을 체제에 이양하게 되는 것이다. 클린턴이 추진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 부시가 추진한 중동의 민주화, 그리고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상 등은 모두 나름대로 글로벌리즘 의제에 속한다.

그러다가 2008년에 금융 위기가 닥쳤다. 뉴욕시의 몇몇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촉발된 이 사태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미국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글로벌화와 자유무역이 약속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기업인들이 납세자들의 돈으로 위기를 모면하자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제도적 변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선거운동 책임자이자 현 백악관 수석 전략가인 스티브 배넌(Stephen “Steve” Bannon)은 “포퓰리스트의 반란은 2008년 금융 위기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3 국민들은 지도자들의 합법성에 대하여 반발할 뿐만 아니라 강하고 독립적인 국가정부를 대체할 초국적 질서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일반 미국인들은 글로벌화의 결과로 미국은 개도국과의 경쟁에 노출되었고, 임금 상승은 멈추었고, 생활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한편, 미국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위해 매년 수십억 달러의 세수를 쏟아 부었고 미국 국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경기 침체가 심화하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지도자와 국가의 미래에 대하여 절망하기 시작했다.

J. D. 반스(J. D. Vance)는 그의 저서 《힐빌리 엘레지(Hillbilly Elegy)》에서 조국에 대한 믿음을 상실할 때 느끼는 절박감과 좌절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한 문화로서 우리에게는 영웅이 없다. 사람들은 미국의 사회조직으로부터 괴리된 느낌이다. 우리는 승산도 없는 듯한 전쟁, 대부분 다른 나라 출신인 병사들이 치르는 전쟁을 두 개나 지속하고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안정적 임금’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의 기본 약속도 지켜지지 않는 경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4 진보 성향의 하버드 법대 출신 흑인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보수 성향의 백인 노동자층에게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전통적 미국사회가 앞으로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과는 점점 거리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그들의 절망은 분노로 바뀌었고, 이들 ‘전통주의자’들은 기존 질서에 대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에게는 공화당도 현실감 없는 민주당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생각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서 풀뿌리운동이 점화되었고 티파티(Tea Party)가 탄생하였다.

주류 정치인들은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티파티를 주변적 운동으로 일축했다. 월가를 점령했던 세력처럼 잠시 불붙었다가 곧 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전문가로 자처하는 학자들과 싱크탱크들은 먼발치에서 티파티 운동을 분석하면서도 참여자들의 진정한 불만에 대해 이해하려 는 노력하지 않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로 좌파 성향의 엘리트들이 이끄는 주요 언론 매체들이 오바마 집권기간 동안 더욱 좌로 이동한 것이다. 그러자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들과 정치 성향이 맞는 뉴스 매체를 찾아 나섰다. 우파 및 좌파 매체들 모두 상대편의 논리는 듣지도 않으려 했고, 24시간 보도되는 뉴스에서 나오는 단편적인 정보에만 집중했다. 양측 모두 자가당착적 쏠림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이 말해 주듯이 엘리트층과 주요 언론 매체들은 포퓰리스트 운동 저변에 깔린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개인적 정보 보호막 안으로 후퇴하였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신은 증폭되었다. 우파는 좌파 매체들의 보도를 부패한 엘리트주의라고 믿었고, 좌파는 폭스뉴스(Fox News) 시청자들을 보수골통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포퓰리스트들은 정치권에서 하는 어떤 말도 믿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밴스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이것은 건강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흔히 있는, 정부 정책을 불신하는 자유주의자(libertarian)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기본 체제에 대한 깊은 회의론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시각이 점점 주류가 되고 있다.’5 또한 의도적인 허위보도, 즉 가짜뉴스(fake news)가 판치면서 문제를 악화시켰다. 잘못된 정보들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팩트와 데이터를 믿을 수 없게 되자 탈진실(post-truth) 정치라는 개념도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국민이 양극화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였다. 방송인이자 억만장자인 그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 모든 선거 유세 연설들을 한 페이지로 축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상황은 나쁘다. 불공정한 무역협정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게 당하고 있고 미국의 운명은 외국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정경유착을 통해 일반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지갑만 두둑해졌다. 열심히 일해도 국민들의 삶은 나아질 수가 없다. 지난 15년 동안 무려 7만 개의 공장이 문을 닫았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반면, 복지급여로 사는 사람들은 편안하게 지낸다. 미국정부는 사방에 돈을 퍼주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는 (상당수가 테러리스트나 강간 범죄자들일 수도 있는) 멕시코 이민자들과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미국 국민의 혈세로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찬성하지 않으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엘리트들의 의제 때문에 미국 사회는 일그러지고 있다. 모든 소수 집단들에 영합하려는 그들의 정치 의제와 사고방식은 수백 만 미국인들이 오래도록 믿어왔던 가치를 훼손했다.

망가진 현실을 고치려면 제일 먼저 미국이 다른 나라와 무역하는 방식을 바꿔서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려면 우리는 공고한 국경과 강력한 군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의 우방국들은 미국의 관대함에 의존하지 말고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정치권 엘리트가 아닌 보통 국민들의 소망을 이루어 줄, 상식과 전통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정치문화이다.

이 문제를 정치인들이 해결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말라. 그들이 바로 문제다. 그들은 평범한 시민에게는 관심이 없고, 선거자금을 내놓는 사람들을 돕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막강한 이익집단에 맞서 싸울 외부자(outsider)만이 미국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시할 수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바로 이 스토리가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켰다. 이 스토리는 수백 만의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특히 지방에 사는 백인들과 서민층 모두에게 절대적인 공감을 끌어냈다. 미국정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이들, 구식 사고라며 무시당하고 위축되어 살아온 이들에게 트럼프는 공감대와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다.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는 《고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기(Strangers in Their Own Land)》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는 감성 후보다. 수십 년 동안 나왔던 모든 대선 후보들과 비교하면 트럼프는 정책 공약에 주력하기보다는 지지자들의 감성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부추기는 데 어느 누구보다 심혈을 기울인 후보이다.’6 트럼프의 연설들은 힘, 용기, 명료성, 국가적 자긍심, 개인적 자신감 등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배넌의 표현을 빌리자면 트럼프는 ‘비정치적인 일상의 어휘로 사람들의 본능적 감정을 자극하며 소통한다.’7 한마디로 트럼프에게는 모든 위대한 리더들이 그렇듯이 지지자들의 본능적 감성을 자극하여 감동을 주는 능력이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화법이 자신들과 같아서 좋아한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멸시, 독설적인 표현 모두가 지지자들에게 어필했다. 그의 발언에 대해서 주요 언론매체들이 거세게 비판하고, 공화당 지도부에서 그의 행동을 질책할 때마다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갔다. 엘리트들은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트럼프처럼 말하고 트럼프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인종, 성별, 타자성(otherness)의 문제는 미국인의 의식 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 미국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단지 문화적 가치가 다르고 소수의 집단을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느끼는 것이 옳다고 훈시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전문 엘리트들이 거주하는 대도시나 동·서부 해안 지역 국민들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세계관이 매우 낯설다. 그들은 트럼프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위대하기 때문에 다시 위대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글로벌화는 전 세계인에게 혜택을 가져다주었고, 미국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인종적·성적·이념적 차별이 없다. 트럼프가 만들고자 하는 미국은 결코 위대하지 않다. 오히려 수구적(reactionary)이고 위험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노동자층이 당면한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한다. 미국 중부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래의 경제 상황에 대해 비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도 2008년 금융 위기에서 회복하지 못한 마을이 많고,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절망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세대는 특히 불만이 많다. 이들은 채무 부담 때문에 부모 집에서 더 오래 얹혀살고, 결혼은 더 늦게 하고, 부모들에 비해 소득과 소비도 더 적다. 중년 및 노년층에게 이제 미국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낯선 곳이 되어 버렸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였던 미국 사회에 세속주의와 좌파 이념이 깊숙이 스며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국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수십 년간 가졌던 일자리를 잃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그들에게는 첨단산업이 요구하는 기술이 없다.

트럼프는 바로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과거 미국의 영화롭던 시대를 상기시키며 ‘미국을 우선시하고(America First),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고 공언하며 이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지도층과 전문가들은 일반 국민들과 단절되었지만 트럼프의 메시지는 지지자들을 열광시키며 희망을 주었다. 혹실드는 “트럼프가 계속 ‘운동’이라고 부르던 그의 선거 캠페인은 미국인들에게 강력한 항우울제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8

두 개의 미국이 존재한다. 하나는 엘리트와 전문가들이 사는 나라로서 글로벌화했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더 큰 상호연결성(interconnectivity)을 지향하는 미국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미국(the Other America)이 있다. 이 나라에 사는 국민들은 정체성을 상실했다. 외국인들 때문에, 첨단기술과 대기업들 때문에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고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두 개의 미국 구성원들은 이념적·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그리고 양쪽 모두 상대편에 대한 온정이 없다.

하지만 전문가의 미국(expert-America)과 다른 미국(Other America) 양쪽 모두 옳다. 문화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는 지구촌이 되어 간다. 이런 대변혁의 시대에 불편한 진실은 사람들이 뒤로 처지고 남겨진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전 지구적인 의제가 설정되는 과정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안위가 위협을 받게 되어도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새로운 체제를 거부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글로벌화는 분명히 장기적으로 좋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혜택이 편중되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가 나온다. 글로벌화한 된 체제에서 미국의 노동자층을 비롯한 패자들은 그들이 죽은 후에나 실현될, 어쩌면 그들은 원치도 않은 이상과 목표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패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배치되는 체제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로벌화가 전 세계에 많은 혜택을 가져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글로벌화가 지구적 정체성을 위하여 민족문화와 전통을 말살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가장 큰 수혜자인 엘리트들이 만들고 유지하는 체제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시각이 도널드 트럼프의 급부상을 가져온 포퓰리스트적 반격의 중심에 있다.

누구도 향후 4년간 미국의 행보를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전문가에 넌더리가 난’ 국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국제연맹이 실패로 돌아가자 세계는 다시 혼란과 전쟁의 회오리에 빠졌었다. 분명 전문가들과 엘리트들은 오만한 성향이 있다. 그렇지만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마이클 고브는 무서울 만큼 정확히 미래를 예견하였다. 전문가들과 대중이 함께하는 건전한 토론은 활기찬 민주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무조건 전문가들의 지식과 경험을 무시하면 결과는 폭정이 될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Ben Forney
Ben Forney

전략분석실

벤 포니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원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영문학 학사, 서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관심분야는 북한∙동아시아 정치, 한미 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