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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에 적극 참여한 아세안 국가들 … 큰 그림은 강대국 균형 맞추기
 
아세안은 약소국 모임이다.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강대국 경쟁 틈바구니에서 균형을 중시한다. 강대국 간 경쟁을 어떻게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 할지 잘 알고 있다. 이런 마인드와 전략은 단기간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강대국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교차해온 동남아에서 오랫동안 터득한 생존방식이다. 강대국 영향력이 늘 교차하는 점은 한반도와 꽤 닮아 있다.

아세안이 강대국 경쟁 속에서 자율성을 확대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대해 성찰하고 배워야 한다. 실상 몇몇 경우를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 스펙트럼 상 어딘가에서 자신들만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 전략 경쟁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강대국 경쟁은 그 사이에 끼인 국가에게 이익이 될 때도 있지만 전략적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가져오는 일이 더 많다. 평화보다는 갈등, 안정보다는 혼란, 연대보다는 분열, 기회보다는 위기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더 높다. 한국을 둘러싼 상황이 그러하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강대국 경쟁에서 명확하게 입장을 정한 소수 국가를 빼고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강대국 사이 불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중립적이고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그 중에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 즉 아세안의 절묘한 균형이 그럴듯한 전략으로 자주 거론된다.

◆경제적으로 큰 이익없어도 적극 참여해 = 2022년 5월 백악관은 오랫동안 뜸을 들였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의 출범을 알렸다. 미국 포함 인도-태평양 지역 14개 국가가 IPEF 협상에 참여한다는 내용이었다. 인태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반대로 중국의 힘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전략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Indo-Pacific Strategy)이다.

IPEF는 미국 인태전략의 경제적 도구로 미국은 이를 통해 미국 중심의 지역 경제질서를 새로 쓰고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억제하려 한다. 미국은 2023년 말 자국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 까지는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이다.

IPEF 협상 참여를 선언한 국가 중 절반인 7개국이 아세안 회원국이다.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는 초청 받지 못했다.

이 중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은 중국 중심 경제질서 형성을 막기 위해 미국이 추진했던 환태평양파트너십(Trans-Pacific Partnership, TPP)에서부터 10년 이상 미국과 함께 했다. 백악관은 중국의 경제력이 지배적인 아세안 지역에서 7개 국가가 대거 IPEF에 참여한 것에 고무된 듯 하다. 협상의 타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남았지만 아세안 국가가 많이 참여한 것 만으로도 초기 정책 추진의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이 아세안 국가의 참여를 환영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아세안 국가는 미-중 사이 중립적 세력이다. 강대국들은 아세안 국가를 자기 편으로 편입해 세를 불리려 한다. 아세안 국가들은 집토끼가 되기를 거부한다. 미국과 중국 어느 편에도 속하기를 꺼리는 동시에 양쪽 모두와 협력적 관계를 바란다.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는 동시에 미국에게도 같은 지원을 기대하며 미국을 유인한다.

미국과 안보 협력을 통해 중국의 잠재적 안보 위협을 관리하는 동시에 중국과 군사협력에도 문을 열어 놓는다. 미국은 다수 아세안 국가들의 IPEF 참여를 통해 경제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을 미국에 더 묶어 놓고 중국과 아세안 국가 사이 틈을 벌렸다고 본다.

IPEF 참여로 아세안이 당장 큰 경제적 혜택을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아세안에게 중국 못지 않은 무역 상대이고 중요한 수출시장이다. 그런데 IPEF는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IPEF는 아세안 국가의 미국 시장 접근 확대에 관해서 아무런 약속도 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노동, 기후변화, 부패, 투명성 관련 아세안 국가의 국내 개혁을 요구하는 부분은 많다. 아세안 국가들이 IPEF의 높은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국내적으로 저항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개혁을 해야만 한다.

이런 개혁을 위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공급망 이슈는 아세안과 중국의 경제관계를 위협할 수도 있다. IPEF의 지속가능성도 의문이다. 미국 의회 비준을 받는 자유무역협정과 달리 IPEF는 우회로를 택했고, 다음 미국 행정부에서 정책이 바뀌면 쉽게 사라질 수도 있는 이니셔티브다.

◆자신들 중심으로 국제관계 형성하려는 아센안중심성 = 여기까지만 보면 아세안의 IPEF 협상 참여에 따른 손익계산은 마이너스다. 그런데 전략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손익계산이 달라진다.

매년 싱가포르 소재 동남아연구소(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ISEAS)는 아세안 국가 여론주도층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아세안 국가들의 다양한 생각을 읽는 바로미터다. 2022년 동남아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영향이 큰 국가를 묻는 질문에 76.7%가 중국이라고 답했다. 미국을 꼽은 응답자는 10%가 안된다. 전략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를 물었을 때도 54.4%가 중국이라고 답한 반면 미국이라는 응답은 30% 이하다. 아세안 국가들은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아세안 지역에서 가장 크다고 인식한다.

반면 응답자 64.4%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 대해서는 68.1%가 긍정적이다. 전략적으로도 76.4%의 사람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반면 62.6%는 미국의 전략적 영향력 확대를 긍정적으로 본다. 아세안 지역에서 전략적으로,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크지만 이에 대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영향력은 중국에 비해 작은데 더 커질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다. 현재 아세안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은 불균형적이고, 미국의 아세안 지역에 대한 관여가 확대되어 중국의 영향력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경제적으로 큰 이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7개의 아세안 국가가 IPEF 협상에 참여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IPEF 협상 참여를 통해 미국이 아세안 지역에 더 많이 관여하게 하려는 것이다. 미국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세안 이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이다. 강대국간 힘의 균형이 생기면 아세안 국가들의 자율적 공간과 강대국에 대한 협상력은 커진다.

팽팽한 균형을 이룬 강대국들은 저마다 아세안 국가의 지지를 얻어 힘의 균형을 깨려할 것이고 아세안 국가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아세안 국가는 강대국에 대해서 더 많은 지원과 양보를 얻어 낼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아세안은 자신들이 지역 국제관계 중심축이라는 아세안중심성(ASEAN Centrality)도 주장한다. 미국,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을 포함한 아세안 주변국들이 모두 이 개념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한국이 배워야 할 아세안의 전략적 균형 = 아세안의 전략적 마인드와 균형 전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세안은 약소국 모임이다.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강대국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균형을 중시한다. 강대국 간 경쟁을 어떻게 활용해 이익을 극대화 할지 잘 알고 있다.

이런 마인드와 전략은 단기간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강대국의 영향력이 끊임없이 교차해온 동남아에서 오랫동안 터득한 생존방식이다. 강대국 영향력이 늘 교차하는 점은 한반도와 꽤 닮아 있다. 물론 우리는 분단된 한반도라는 특수한 변수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아세안이 강대국 경쟁 속에서 자율성을 확대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대해 성찰하고 배워야 한다. 실상 몇몇 경우를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 스펙트럼 상 어딘가에서 자신들만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린 국가는 몇 개 안된다는 점도 곱씹어볼 점이다.

아세안 국가와 전략적 관계 맺기도 중요하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한 대안으로, 그리고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제적 의존을 탈피하는 전략으로 동남아를 중시하는 신남방정책을 펼쳤다. 아세안이 미중에 대해 가지는 협상력은 한국이 강대국 경쟁의 파고를 넘는데 도움이 된다. 아세안과 한국이 강대국에 대해 가지는 강점을 합하면 작지 않은 힘이 된다. 서로에게 전략적으로 힘이 될 수 있다. 아세안과 한국은 딱 들어 맞는 퍼즐 조각처럼 서로 주고 받을 게 많다. 아세안은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발전 경험을 필요로 한다. 한국은 아세안의 전략적 마인드를 배워야 한다.

한국이 강대국 중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균형을 잡는다면 아세안도 한국을 위협적이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협력 파트너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아세안과 협력을 통해 한반도와 강대국 일변도의 대외정책을 넘어 더 큰 세상을 봐야 한다.

 
* 본 글은 1월 20일자 내일신문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이재현
이재현

지역연구센터 ; 출판홍보실

이재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학사, 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이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외교통상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외교안보연구소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남아 정치,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협력 등이며, 비전통 안보와 인간 안보, 오세아니아와 서남아 지역에 대한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Transnational Natural Disasters and Environmental Issues in East Asia: Current Situation and the Way Forwards in the perspective of Regional Cooperation" (2011), “전환기 아세안의 생존전략: 현실주의와 제도주의의 중층적 적용과 그 한계“ (2012), 『동아시아공동체: 동향과 전망』(공저, 아산정책연구원, 2014), “미-중-동남아의 남중국해 삼국지” (2015), “인도-퍼시픽, 새로운 전략 공간의 등장”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