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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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그의 여섯 번째 육성 신년사를 통해 여태까지의 것보다 더 담대한 대남 제의를 내놓았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대화 제의나 사회ㆍ문화ㆍ체육교류 등에 대해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하던 북한이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성과적’) 개최를 희망하고 대표단 파견까지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체 신년사의 20% 이상을 남북관계 분야에 할애한 것 역시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에는 대남 유화 제스추어 이상의 많은 메시지와 함축성이 담겨있었다.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은 그 자신의 정치적 수사(修辭)와 사상이 정립되어가고 있음을 암시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자기존대(自己尊大)와 피상적 자신감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핵보유와 ‘핵능력 완성’을 넘어 핵무기의 실전배치를 추진하겠다는 변함없는 의지 역시 과시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신년사는 국제적 제재망 특히 한ㆍ미 공조 틈새를 공략하려는 절박감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어떤 면에서 평창올림픽에 대해 김정은이 던진 ‘덕담’(德談)은 선물을 가장한 부비트랩의 수(手)이기도 했다.

. 신년사 주요 내용과 함축성

1. 김정은 브랜드 수사(修辭)의 정립과 ‘김정은 사상’의 등장 가능성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가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김정일 시대와는 다소 결이 다른, 김정은 나름의 어법(語法)과 수사가 정립되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한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체제 모습에 관한 것이다. 김정일 시대 이 표현은 ‘강성대국’ 혹은 ‘강성국가’였다. 2013년 첫 신년사 때 12회나 언급되었던 이 단어는 그 이후 점차 횟수를 줄여가다가 2017년에는 ‘사회주의 강국’이라는 단어로 변경(5회 언급)되었다. 2018년의 경우, 이 단어는 1회 언급되었지만, 그 이외에도 ‘부강조국’, ‘전략국가’, ‘영웅조선’ 등의 표현이 새로 등장하였다. 향후 북한 매체의 활용도를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이상적 체제상에 대한 단어들이 더욱 풍부해졌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직접 언급은 2015년 이후와 마찬가지로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을 통해 선대(先代)를 언급한 횟수는 오히려 2017년에 비해 증가하였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자신의 시대가 완전히 개막된 만큼 굳이 선대의 후광에 기댈 이유가 없으며, 자신을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동렬의 최고지도자로 부각시키려는 김정은의 의도가 직접 언급의 자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의 치적을 되살리는 데 있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우회적으로 등장시키는 데에는 인색할 이유가 없다. ‘백두혈통’의 적자(嫡子)라는 이미지는 주체사상과 혁명가계론에 입각할 때 정치적 정통성상 포기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그 강조 횟수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던 ‘선군’이라는 단어는 이제 완전히 신년사에서 사라졌으며, 우회적인 언급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더 이상 군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하여 권력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김정은의 인식을 반영하는 동시에, 2015년 이후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對군 견제와 순치(馴致)의 결과이기도 하다. 당에 의한 전반적 통제 혹은 당의 영도라는 개념이 9회에 걸쳐 언급된 것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2. ‘병진정책’의 차질 없는 추진강조, 그러나 숨겨진 초조감

경제력과 핵능력을 동시 발전시키겠다는 ‘병진정책’에 대한 강조 역시 지속되었다. 김정은이 장황하게 나열한 경제부분 과제들은 모두 ‘병진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것들이며, 이를 통해 김정은은 선대(先代)와는 차별화된 자신의 치적으로서 경제발전과 핵능력 확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병진노선’이란 단어는 3회에 걸쳐 등장하였으며, ‘핵 무력’의 언급은 5회에 걸쳐 이루어짐으로써 2017년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양상을 보였다. 2016년에 공표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차질 없는 수행 역시 2회에 걸쳐 강조되었다. 2017년에 5회가 등장하였던 ‘자강력’ 혹은 ‘자력자강’이라는 단어는 1회 언급되는 데 그쳤는데,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가 건재하다는 자신감을 주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포석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은 이미 각종 경제 분야의 과제 제시에 있어 자립경제 개념이 강조된 만큼, 이 단어를 굳이 추가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2017년에만 4차례(#2356, # 2371, #2375, #2397)의 대북제재 결의안과 후속 제재에 직면한 북한의 초조감 역시 김정은 신년사에서 어쩔 수 없이 암시되었다. 2015년에 1차례를  제외하고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제재’라는 단어는 2017년 2차례, 2018년 신년사에서는 3회가 언급되었다.1   신년사 도처에서 김정은이 2017년 동안의 경제적 성과를 강조하고, 변함없는 성장을 다짐하였지만, ‘제재 압박’ 혹은 ‘제제와 봉쇄’라는 단어는 평양 역시 국제제재의 포위망이 옥죄어오고 있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제 더 이상 제재효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정은 자신이 “생존을 위협하는 제재와 봉쇄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라고 언급한 바 있다.

3. ‘핵 강국’으로서의 자존감 극대화

2016년 제7차 당대회를 통해 ‘동방의 핵대국’으로서의 등장을 선언하였던 김정은의 자기존대는 2018년 신년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고, 오히려 그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김정은은 2017년 주요 성과로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의 성취”를 꼽았고, 여러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확고한 성공을 온 세상에 증명하였다“고 자평하였다. 또한, “각종 핵 운반 수단과 함께 ‘초강력 열의 무기’ 시험도 단행”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이 ‘수소탄’ 실험에 성공하였다는 점을 은연중에 과시하였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의하면 그 결과로서 이룩한 것이 ‘전략국가’이며, ‘책임 있는 핵 강국’인 것이다. 더 나아가 김정은은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미사일)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함으로써 핵무기의 양산 의지를 표명하였다.

북한의 ‘핵무력’에 대한 김정은의 자신감과 진전된 표현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2012년 4월의 헌법개정시 북한은 헌법 서문에 김정일이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바꿨다”고 명기했다. 또한, 2017년 11월 29일의 ‘화성-15호’ 발사 직후에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즉, 이미 자신들이 핵무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능력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선언한 이상 ‘핵보유국’ 지위를 반복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 주장의 신빙성을 저해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은 [목표로서의 핵보유 → 실험을 통한 핵능력 완성 → 실제 핵무기 확보 및 배치]의 논리에 따라 이제는 핵능력을 무기화하는 작업에 본격 매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북한은 2016년 이후 자신들이 ‘강대국’(dominant power)이며 미국, 중국 등의 강국들과 어깨를 겨루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미국의 ‘對테러전’(‘반테로전’)이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고 침략하려는 빌미라는 논거 역시 여기에서 나왔다. 2017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북한이 “우리 국가의 평화와 안전을 지켜낼 것이며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도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018년 신년사에서는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고 인류에게 핵 참화를 들씌우려는 제국주의 침략 세력과는 오직 정의의 힘으로 맞서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을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압박에 맞서는 정의의 전사로 포장한 것이다.

 4. 평창 카드를 활용한 한ㆍ미 공조의 틈새 공략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가 초미의 관심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이례적으로 유화적인 대남정책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통상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남북한 관계와 관련해서는 9~10개 문단에 걸친 언급을 하였으며, 이는 전체 신년사 분량의 16~17% 가량을 차지하였다. 2018년 신년사에서는 남북관계 관련 분량이 기존의 50% 가량 증가하였으며, 30분여의 연설시간에서 약 6분가량을 차지하였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언급도 1분여에 걸쳐 언급될 만큼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정은은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면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습니다”라고 언급하였다.

북한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각종 대화 제의에 묵살 혹은 무응답으로 일관해왔다는 점에서 김정은의 신년사에는 분명 고무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 틀림없다. 문제는 이것이 진정한 북한의 태도변화가 아닌 대남/대외 전략상의 평화공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파격적 제의는 2017년 하반기 이후 가중된 국제적 압력과 함께, 당분간 한반도에서의 긴장조성 행위를 자제하기를 바라는 국제여론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2017년 11월 13일(뉴욕 현지시각) UN총회에서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의 ‘휴전결의안’이 채택되었으며,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차원에서도 토마스 바흐(Thomas Bach) 위원장의 방북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또한, 12월 5일에는 제프리 펠트먼(Jeffrey D. Feldman) UN사무차장이 평양을 방문하여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 문제에 대해 북한측가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여건 하에서 어떠한 도발적 행위를 계속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즉, 김정은으로서는 당장 국제적 여론이나 환경 면에서 핵/미사일 능력 시위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고, 미국의 강경한 대북 정책의 변화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낯을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대화국면 전환을 고려했을 수 있는 것이다. 국제적 압박에 밀려서 대화의 장에 나오는 것보다는 자신의 대승적 결단으로 포장하여 대화에 나서는 것이 명분 면에서 훨씬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정은의 제안이 철저히 계산된 평화공세이며, 이것이 그동안 지속되어 온 한ㆍ미 공조의 틈새를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이 북한의 진정한 태도변화보다는 더 크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에 대한 ‘대표단’ 파견 용의만을 시사했을 뿐,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어떤 의지도 표명하지 않았으며, 핵/미사일 능력시위를 자제하겠다는 언급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북한의 대화국면 전환은 북한이 ‘핵강국’으로 등장한 현실을 인정하라는 대전제를 사실상 깔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이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강경한 대미 논조를 보인 것 역시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는 신년사 초반부터 강력한 대미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는 지난 6년간의 신년사와 비교하더라도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2  김정은은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 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라고 언급하였다. 2017년 중 트럼프 대통령과 워싱턴 정가가 북한의 미국 본토 혹은 영토에 대한 공격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기 시작한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최고수준의 위협이나 다름없는 것이다.3 

신년사 전반에 걸쳐 미국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도처에 등장한 것 역시 주로 후반부에 미국의 위협을 강조했던 예년의 신년사와 차별되는 부분이다. 물론, 김정은은 “침략적인 적대 세력이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나라나 위협도 핵으로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일정한 타협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는 미국에 대해 고강도의 위협성 발언을 내놓으면서도 미국의 선제적 군사대응을 불러올 수 있을 위험에 대해서는 안전장치를 단 것이다. 어떤 면에서 김정은의 대남 평화공세는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종료되는 3월 중순까지는 어떠한 대북 군사조치도 국제여론의 역풍(逆風)에 직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나름의 승부수라고 해석할 수 있다.

5. 한국 정부의 정책변화 촉구

김정은의 평창올림픽 관련 발언이 진정한 태도변화보다는 평화공세일 가능성이 더 큰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신년사가 우리 정부의 기존 정책변화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보수 정권이 무너지고 집권세력이 바뀌었으나 북남관계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남조선 당국은 온 겨레의 통일지향에 역행하여 미국의 대 조선 적대시 정책에 추종함으로써 정세를 험악한 지경에 몰아넣고…”라고 언급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였다. “비정상적인 상태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나라의 통일은 고사하고 외세가 강요하는 핵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 뒤에 등장한 것이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 필요성과 평창올림픽 대표단 참가 의사 표명이었다. 즉, 한국 정부가 한ㆍ미 공조에 기초한 대북정책과 국제제재의 동참이라는 기존 정책틀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남북관계 진전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의 행위들을 걷어 치워야 합니다”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우리 정부가 2017년 말 평창올림픽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해 한ㆍ미 군사훈련 연기를 검토할 수도 있다는 제안4 을 사실상 성에 차지 않는다고 거부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억제’ 공약의 연장선상에서 한반도 및 인근의 미군 전력 증강배치 역시 철회하여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 진정한 대화국면 조성은 가능할 것인가?

물론, 김정은의 대남 유화 제스추어가 평화공세의 성격을 띤 것이라고 해도 이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모든 국가와 체제에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목표와 선호하는 의제(agenda)가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목표는 대북제재와 관련된 국제공조 이완과 평양의 낯을 살려 줄 명분 확보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한ㆍ미 공조 약화라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틈새를 공략하려 할 것이며,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로서는 나름의 절묘한 수를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 이후 이를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어놓았으며, 통일부 장관 명의로 1월 9일 남북 고위급 당국자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실제적인 의도야 어떻든 간에 북한이 외형적으로라도 선의를 표현한 데 따른 대응으로서는 적절한 수순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북한의 실제 의도에 관계없이 우리의 지향점을 반영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외교력이요 협력능력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역시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 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1월 3일 오후 3시30분 판문점 연락채널을 다시 개통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남북 회담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5 

평양도 향후 대화국면이 조성될 경우 이를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도록 치밀한 준비를 할 것이다.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대응전략은 평창올림픽 참가와 한반도 긴장완화의 문제를 직ㆍ간접적으로 연계하는 것이다. 즉, 평창올림픽에서의 대표단 파견의 조건으로 한반도에서의 상호 긴장행위 자제를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긴장행위의 자제에는 대북 확성기 방송의 중단 및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 혹은 2018년 중 잠정 중지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경우 회담의 의제를 체육 분야로 국한하자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6  그러나 이는 이산가족 상봉 등 자신들에게 부담스러운 인도주의적 문제의 부각을 피하기 위한 수순일 가능성이 크며, 전반적인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 조치는 어떠한 차원에서든 거론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회담을 통해 정치ㆍ군사 의제를 언급하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다. 우리 측의 난색 표명으로 인해 회담이 결렬되고 대표단 파견이 무산될 경우, 한반도에서의 긴장 再고조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할 수 있으며, 북한의 빈약한 동계올림픽 능력의 노출이라는 부담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7  만일, 우리가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한ㆍ미 연합훈련 중단 등을 받아들일 경우에는 이를 계기로 한 한ㆍ미간의 이견을 유도할 수 있으며, ‘대표단’ 파견은 북한의 사정에 따라 임의로 규모와 수준을 조정할 수도 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을 전후하여 ‘평화적 우주개발’을 명목으로 위성발사를 시도하는 동시에, 이것은 한국에 대한 도발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미 북한은 2017년 말 자신들의 매체를 통해 이러한 주장을 내어놓은 바 있다. 기본적으로 장거리 미사일 기술과 인공위성을 위한 우주발사체 기술이 같은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위한 기술과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전반적인 북한의 평화공세 속에서 우리가 이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이며, 이에 대한 견해차가 한ㆍ미간의 균열을 불러올 위험도 있다. 한ㆍ미간 이견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이의 해석을 둘러싼 국내의 이념논쟁 역시 격화될 위험성이 있다. 북한으로서는 선물상자 속에 다중의 인계철선이 장착된 부비트랩을 함께 심어놓은 셈이다.

 

. 향후 대북정책에 대한 제언

평화공세를 역으로 활용할 경우, 북한을 스스로의 논리나 명분상 돌이키기 힘든 변화의 흐름으로 끌고 올 가능성 역시 충분히 존재한다. 이걸 만들어 나가는 것은 이제 우리 정부의 몫이며 능력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향후의 남북대화 및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해 우리 자신의 중심과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위협적인 대남 행위를 철회하지 않는 이상 신뢰성 있는 대응태세를 유지하는 한편, 국제제재에 성실히 동참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동시에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을 경우 중ㆍ장기적 협력이 확대ㆍ심화될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 역시 동시 표명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은 2017년 하반기 이후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주기적으로 고조되었음에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왔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분명히 평창올림픽의 ‘평화올림픽’화를 위해 더 없이 소중한 계기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변화의 기미를 보였다는 점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변할 까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대화 및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역시 그 자체가 최종적 목표가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그러기에 [북한의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의 긴장조성 자제 →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 → 평창올림픽 이후의 남북 교류ㆍ협력 확대와 대화채널 본격 가동] 등으로 기대수준을 여건에 따라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순간 오히려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둘째, 조만간 실시될 가능성이 있는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 관련 대화 역시 가능한 의제의 수준을 좁혀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가능한 정치ㆍ군사적 긴장완화와 평창 대표단 참가 문제를 연계하려 할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단계적ㆍ선별적 대응에 치중하는 것이 유리하다. 즉, 체육 분야에서부터 출발하여 여건에 따라 별도의 협의체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 문제, 한반도에서의 정치ㆍ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제반 조치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간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평창올림픽 그 자체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아니며, 그 매듭을 끊어낸다고 해서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설사 남북 고위급 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처음에는 제한된 의제에서 출발하여 차츰 의제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현 단계부터 북한의 비핵화 관련 대화(『6자회담』 등)를 재개하는 ‘입구요건’에 대한 우리의 구상, 그리고 평화체제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우리의 대안을 미국과 주변국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공감대를 확대해 나가려는 노력이 가속화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 자신의 단계적 비핵화 구상에 따르면 북한이 현 단계에서 어떤 추가적 조치(모라토리엄 + 동결 + 국제적 검증 등)를 취해야 본격적 대화에 진비할 수 있는지의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한ㆍ미간에는 인공위성 발사를 포함하여 향후 어떠한 북한의 행위를 약속 위반이나 도발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한 인식의 공유와 공통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2017년 이후 ‘제재’라는 단어가 언급된 가장 큰 이유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직접 겨냥한 안보리 결의안이 2016년 3월의 #2270호부터였던 점에서 연유한 것으로 판단된다.
  • 2. 그 동안의 신년사에서 북한이 초반에 미국을 언급한 경우 대부분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하였고, 그 행태에 대한 비난 역시 압력이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것이었다.
  • 3. 이미 핵단추가 자신의 책상위에 놓여있다고 주장하면서도 핵무기 ‘실전배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김정은의 주장은 자칫 모순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강한 목표의식의 표현일 수도 있다, 다만, 북한으로서는 “이미 미국을 타격할 핵 능력을 실제로 가지고 있으며, 향후 이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 4. 이 언급은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12월 19일 미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것이다. 『연합뉴스』, 2017년 12월 19일자.
  • 5.『연합뉴스』, 2018년 1월 3일자.
  • 6. 이는 김경성 남북체육교류이사장이 언급한 내용이다. 『연합뉴스』, 2018년 1월 3일자.
  • 7. 김정은이 ‘선수단’이 아닌, ‘대표단’이라는 표현을 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계올림픽과는 달리 북한의 경우 동계올림픽에서 국제적 수준을 갖춘 선수는 많지 않으며, 올림픽 기준을 통과한 피겨 선수단이나 일부 종목에 ‘와일드 카드’ 선수단을 파견한다고 해도 좋은 성적을 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정은은 고위급 방문단, 응원단, 선수단을 포괄하는 표현으로 ‘대표단’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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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