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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 부분에서 주유와 제갈량의 대화 중 ‘군중무희언(軍中無戱言)’이란 말이 나온다. 생명이 오가는 군사적 사안에서는 농담이나 실없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현실의 국제정치에서도 말만 앞세우고 실질적 대비에 소홀하면 여지없이 위기에 빠진다.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ironclad)’ 방위와 확장억제 공약이 재확인됐다. 한·미·일 정상의 공동성명이 있은 후 북한은 17일 외무상 최선희 명의의 담화를 발표해 미국의 확장억제력 강화 발언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도박”이라고 주장하면서 1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18일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북한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미국 확장억제 조치의 실제 이행을 꺼린다는 방증이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 개발을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핵 집착에 따른 비용과 희생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을 절감토록 만들어야 한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한 분명한 억제와 보복 수단을 눈앞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확장억제 조치 강화와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의 안보 우려를 자극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 착시야말로 북한이 바라는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대비태세 강화를 위한 것이고, 확장억제 역시 북한 핵 위협 앞에서 신뢰할 수 있는 억제·대응 수단을 확보하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수단이 위협이라고 느낀다면 대화를 통해 적절한 해소책을 협의할 수 있지만, 북한이 택한 것은 대화 대신 도발과 긴장 고조였다.

확장억제 강화는 북한에 대해서만 유용한 카드가 아니다. 14일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자제하도록 중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적에 대해 북한의 ‘정당한 우려(legitimate concern)’를 존중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는 1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이 호응해 온다면 우리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잘 이행되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수사적 지지의 의미도 있지만, 북한의 호응이 가능하도록 유화 일변도의 양보적인 대북정책 방향을 구사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담대한 구상의 주요 논리는 핵 위협에 대한 억제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결국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대화만이 강조되는 역(逆)의 순서가 되면 결국 억제는 ‘희언’이 돼 버린다. 중국은 북한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으며 북한을 미·중 전략 경쟁의 카드로 쓰기를 바라지만, 북한 도발로 인해 미국의 확장억제 자산이 동북아 내에 강화돼 결과적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힘이 실리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즉 미국의 확장억제 조치가 실행에 옮겨지고 강화될수록 중국이 7차 핵실험 등의 도발이나 모험을 자제하도록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동기는 커진다.

이제 확장억제 강화가 조기에 구체화되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미국의 증강된 전략자산 전개를 시작으로 한·미·일 간 대북 정보 공유 강화, 그리고 눈에 보이는 확장억제 조치의 발전이 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북한이 18일 ICBM을 발사하자 우리 정부는 현 상황을 오판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한편 한·미·일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제는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 본 글은 11월 21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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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