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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오 국무장관의 방북과 비핵화 협상은 별다른 소득 없이 종료된 것으로 평가한다. 폼페오 장관은 비핵화 시간표를 포함한 전 분야에 진전이 있었으며 이를 위한 실무그룹(working group)을 구성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1, 2차 방북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했으며, 방북 직전 국무부가 강조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이하 ‘FFVD’)’나 신고와 검증 어느 것도 진일보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의 형식으로 미국의 신고와 검증 요구를 비난하고,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협상이 깨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폼페오 국무장관의 말과 달리 상황 악화를 시사한 것이다. 미국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있고, 이와는 반대로 북한은 이러한 미국을 공세적으로 압박하며 북한식 살라미 협상을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비핵화 협상은 지난 6개월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로 돌아온 듯하다. 이러한 상황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올바른 방향의 비핵화 협상을 제안하기 위해 △폼페오 방북을 평가하고,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분석하며, △ 향후 비핵화 협상을 전망해 본다.

폼페오 장관의 빈손 방북

폼페오 국무장관은 미국 육군사관학교 격인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와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하고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5선 하원의원으로서 승승장구한 탁월한 경력을 지닌 정치인이다.1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서도 나름 역량을 인정받았던 관료였다. 하지만 그는 탁월한 협상가는 아닌 듯하다. 북한의 전략적 의도를 오해했기에 발생한 실수 인지, 아니면 북한에게 속았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중국의 입김이 작용하여 북한의 입장이 변화했기 때문인지, 현재 폼페오 장관의 협상전략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폼페오 방북의 성과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당초 어떠한 목적에서 방북을 했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했는가를 보아야 한다. 이는 미국 현지 시간으로 7월 2일과 7월 3일 각각 이루어진 백악관과 국무부 대변인 브리핑2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을 종합해보면 폼페오 장관은 방북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고, △북측에 FFVD 원칙을 설득하며, △신고 및 검증과 관련된 논의의 진전을 위해 방북한 것이다. 하지만 폼페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했고, FFVD는 물론이고 신고, 검증과 관련한 어떠한 의미 있는 합의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폼페오 국무장관은 비핵화 논의를 위한 실무그룹 구성을 성과로 제시했다.3 하지만 그는 얼마 전만 해도 비핵화 협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에 기반하여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향식(top-down)” 방식의 장점을 강조하며 협상의 성공 가능성을 시사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고위급 회의가 진행되었음에도 북한의 비핵화를 담보할 제대로 된 후속 합의문을 만들어 내지 못했는데, 이를 실무회담으로 넘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협상만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다시 시작하는 격이다. 따라서 폼페오 장관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유해송환 역시 12일부터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본질적으로 비핵화와 직결된 문제는 아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미북간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몇 달 사이에 폼페오 장관의 말이 실현되지 못하거나 자주 바뀐다는데 있다.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도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인 상황인데,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폼페오 국무장관은 주요 협상 전후에 여러 차례의 입장 표명이 있었지만 이를 관철하지 못했다.

<표 1> 폼페오 국무장관의 주요 발언과 결과

표 1. 폼페오 국무장관의 주요 발언과 그 결과

북한 비핵화 검증 문제는 폼페오 장관의 언급과 달리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고, 시간표의 경우 2년의 시간표를 제시했다가 다시 시간표가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었다. 금번 방북과 관련한 김정은 위원장 면담 역시 백악관의 설명과 달리 처음부터 김정은 위원장 면담 계획이 없었다고 말했는데,4 과연 사실인지 의문이 든다. 협상의 최고 책임자가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하거나 말을 바꾸는 것은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고, 향후 비핵화 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된다.

북한의 진의가 드러난 외무성 대변인 담화

7월 7일 밤 조선중앙통신에서 발표된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의 내용은 향후 비핵화 협상의 험난할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자신의 의도대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판을 깨고 나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향후 협상 방향에 대한 북한의 속내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살라미 협상 전개 의지 피력

북한은 의제설정 및 협상 진행을 자신들이 주장해 온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로 진행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는 신고나 검증과 같이 비핵화 전반에 관한 원칙이 아니라 미사일 실험장 폐기와 같이 각각의 조치에 대해 보상을 받는 살라미 방식임을 분명히 했다.

“조미관계개선을 위한 다방면적인 교류를 실현할데 대한 문제와 조선반도에서의 평화체제구축을 위하여 우선 조선정전협정체결 65돐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발표할데 대한 문제, 비핵화 조치의 일환으로 ICBM의 생산중단을 물리적으로 확증하기 위하여 대출력 발동기 시험장을 폐기하는 문제, 미군유골발굴을 위한 실무협상을 조속히 시작할데 대한 문제 등 광범위한 행동조치들을 각기 동시적으로 취하는 문제를 토의할 것을 제기하였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의하면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제기한 의제는 6.12 정상회담 합의문에 있는 관계개선, 평화체제, 비핵화, 유해송환의 네 분야다. 그런데 관계개선과 유해송환은 별개로 놓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 분야로 볼 수 있는 평화체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종전선언인데 반해, 그에 북한이 내놓을 비핵화 조치는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뿐이다. 이는 각각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따로 협상하고 그때마다 보상을 받는 살라미 방식일 뿐이다.

만일 북한의 주장처럼 협상을 하다 보면 북한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북한은 동창리 발사대 폐기,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 폐기,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및 폐기, 농축 우라늄시설 가동 중단 및 폐기, 핵무기 저장소 폐기, 핵무기 생산공장 폐기, 핵무기 일부 폐기 및 반출, 핵물질 일부 폐기 및 반출, 미사일 주요 부품 폐기 및 반출 등 수 없는 협상카드가 있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협상 수단이 부족할뿐더러 그러한 수단이 바닥날 경우 북한에게 비핵화 조치를 중단할 명분만 제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외교적 차원에서는 북미수교, 경제적 차원에서는 제재해제 외에는 별다른 협상카드가 없다. 군사적 차원에서도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 상황에서 한미동맹과 관련하여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다음 조치로는 북한에 대한 감시 및 정찰 금지, 전략자산 철수, 주한미군 감축 정도뿐이다. 만일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한국과 미국은 이를 거부할 것이고 북한은 이를 명분으로 후속적인 비핵화 조치를 거부할 것이다.

살라미 방식 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핵화 시간이 끝없이 길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 사이 미국과 한국의 행정부 교체가 있을 것이고, 이러한 변화는 또 다시 북한에게 시간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살라미 전술은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서 수용할 수 없고 수용해서도 안 된다.

자기중심적이고 불균형적인 동시적 조치의 등가성

북한은 자신들의 비핵화 조치와 한미의 체제보장 조치를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불균형하게 접근하고 있다. 먼저 북한은 비핵화 선행조치로서 자랑했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보다 훨씬 값이 나가는 조치로 평가하고 있다. 그 결과 연합군사훈련 중단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상응하는 과거의 조치에 불과하며, 북한의 추가적인 비핵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측은 이번 회담에서 합동군사연습을 한 두 개 일시적으로 취소한 것을 큰 양보처럼 광고했지만 총 한자루 폐기하지 않고 모든 병력을 종전의 자기 위치에 그대로 두고 있는 상태에서 연습이라는 한 개 동작만을 일시적으로 중지한 것은 언제이건 임의의 순간에 다시 재개될 수 있는 극히 가역적인 조치로서 우리가 취한 핵시험장의 불가역적인 폭파폐기조치에 비하면 대비조차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북한이 제의한 종전선언과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맞바꾸는 제안 역시 북한이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이고 불균형적인 동시조치의 등가성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소위 3.18 엔진 또는 백두계열 엔진의 성공으로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 로켓 추진력을 확보한 상황이다. 따라서 별달리 쓸모가 없는 엔진실험장을 폐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미국이 그간 일관되게 요구해온 ‘의미 있는 비핵화 선행 조치 이후의 종전선언’과 등가성 있는 동시조치로 제기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 그리고 관련 시설을 ‘신고’한다면 종전선언에 합의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북한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종전선언을 북한이 7.27 정전협정 체결일로 제안한 것 역시 북한의 숨은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본다. 그간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피해왔다. 4.27 ‘판문점 선언’에는 금년 내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6.12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종전선언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조차 없다. 종전선언을 남북미 3자로 할지 중국의 요구를 수용해서 남북미중 4자로 할 것인지도 정해진 바가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종전선언에 적극적이었던 한국 정부 조차 그 목표 기한을 금년 내로 인식하며 형식과 시기를 유연하게 가져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5

만일 북한이 7.27 종전선언의 의지가 있다면 그 당사자가 되어야 할 한국과 중국에도 통보하여 3자 또는 4자 문제를 풀어야 한다. 동시에 종전선언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논의해야 한다. 아직 논의의 첫 걸음도 떼지 않은 상황에서 20일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없다. 미국이 원하는 신고나 검증에는 동의해주지 않으면서 종전선언을 7.27로 제안했다는 것은 북한 스스로 미국이 수용할 수 없을 것임을 알면서 협상안으로 던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자기중심적이고 불균형적인 동시조치 주장은 향후 비핵화 협상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필요 비핵화 협상을 깨기 위한 명분 쌓기

북한은 조속한 비핵화를 위한 신고와 검증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요구가 마치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정신에 위배되는 양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미국측은 싱가포르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과거 비핵화 협상 관행과 어긋난다. 2005년 합의된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은 북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원칙을, 그리고 후속 합의인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다루고 있다.6 그 이후 지난 십 여 년 간 핵능력을 고도화 해 온 북한이다. 이미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한 비핵화 의지를 운운하며 수 차례의 정상회담을 해 왔는데도 신고와 검증을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로 비난하고 있다면 과연 북한의 진의는 무엇인지 추가 설명이 필요 없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가 아니면 판을 깰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했다. 이번 협상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 조미고위급회담을 통하여 조미사이의 신뢰는 더 공고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확고부동했던 우리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한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

북한이 생각한 확고부동했던 비핵화 의지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지만 그나마 흔들릴 수 있다는 표현은 향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협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협상을 중단하기 위한 명분 쌓기로 보인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은 대변인 담화의 마지막 문단에도 한 번 더 강조된다.

“역풍이 불기 시작하면 조미양국에는 물론 세계평화와 안전을 바라는 국제사회에도 커다란 실망을 안겨줄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서로가 필경 다른 선택을 모색하게 되고 그것이 비극적인 결과에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아직도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판을 깨지는 않으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전제로 한 주장으로 보인다. 그 결과 향후 비핵화 협상은 상당한 난관에 봉착할 전망이다.

향후 비핵화 협상 전망

폼페오 국무장관 방북 직후 일본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개최되었다. 3국 외교수장들은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하면서도 북한의 비핵화 이행까지 제재를 유지할 것임을 밝혔다. 북한을 일단 대화의 틀에서 묶어두고 새로운 여건을 조성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대응책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압박 수단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어떠한 방식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지,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향후 비핵화 협상을 전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다. 그리고 북한이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어떻게 활용하고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향후 협상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핵문제는 미국에 있어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북핵은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위협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핵문제를 확실히 해결하기 위해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먼저 반출해 내는 초기적재(front loading) 방식이나 빠른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비핵화를 달성해야 위협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림 1> 미국에게 있어 북핵 문제의 의미와 과제

그림1. 미국에게 있어 북핵 문제의 의미와 과제

다음으로 북핵은 미국에게 비확산체제 유지라는 의미도 존재한다. 핵보유국으로서 비확산체제 유지에 책임이 있는 미국은 핵확산을 막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만 현재의 비확산체제 하에서는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동결과 이를 감시하는 수준만으로도 충분하다. 확산을 방지하면 족하기 때문이다. 이란 핵합의는 이러한 비확산의 관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끝으로 북핵은 미국에 있어 국내정치적 문제다.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을 해소한다는 명분에서 비핵화의 진전이 현 트럼프 행정부에게 정치적 선전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비핵화는 중요한 선거의 계기에 미국 행정부가 협상을 성공적이라고 주장할 만한 ‘정치적 선물’을 제공하면 족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금년 가을 미국 중간선거 맞춰 대륙간 탄도미사일 일부를 파기하거나 미국으로 보낸다면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과 무관하게 북한의 행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북한은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 조속한 비핵화와 조속한 관계개선 및 보통국가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해온 경제건설 노선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이다. 미국이 생각하는 안보위협을 충족시켜주는 관점에서 북한이 조기 비핵화에 합의하고 미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보상을 보다 이른 시기에 확보하는 것이다.

둘째,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깨는 것이다.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진행하다가 적정한 명분을 걸며 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핵무기 보유를 추구하는 것이 정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현실화 될 국제사회의 추가적인 압박은 북중관계의 공고화를 통해 극복해 나가려 들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발적 비확산을 통해 미국의 관련 우려를 자극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통해 파키스탄처럼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고자 할 것이다.

셋째, 비핵화의 진전도 후퇴도 아닌 상황이 장기화 되는 것이다. 북한은 조속한 비핵화를 반대하며 신고와 검증을 지속적으로 거부하지만 판을 깨지는 않고 실무회담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의 국내정치적 소요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비핵화를 천천히 진행할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다양한 비난 여론이 들끓겠지만, 중간선거를 앞둔 11월 이전에 북한 ICBM 일부를 미국에 반출해 준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2020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맞춰 핵탄두와 핵물질 일부를 미국으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에 트럼프 행정부의 동의를 이끌어 내고 제재를 해제 받는다면 북한으로서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북한은 핵능력을 보유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압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영 또는 묵인을 받는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보여준 북한의 태도로 향후 비핵화 협상을 정확히 전망하기에는 이르지만,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나타난 북한의 속내는 둘째 또는 셋째 시나리오로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맺음말

북한과의 대화는 필요한 일이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의 비핵화는 우리 정부가 추구해야 할 기본 정책 방향이다. 하지만 현재 북한이 보이고 있는 태도를 보면 비핵화 협상 전망은 불투명하다. 보다 이른 시기에 북한 비핵화 시간표나 신고와 검증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생각해 온 북한 비핵화는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이를 막기 위해 현 시점에서 한미 양국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업무는 다음과 같다.7

첫째, 한국의 역할을 중재자에서 중심적 당사자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연결하는 것만으로 북한 비핵화가 담보될 수 없다. 한국 스스로 비핵화 협상의 중심에 선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미측에 전달해야 한다. 필요 시에는 미국의 일관성 없는 정책도 한국이 교정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당사자의 관점에서 북한의 전략적 의도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고, 한미 공동의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종전선언을 갑자기 속도감 있게 들고 나온 것은 한미 양국간 틈을 벌리기 위한 협상 전술일수도 있다. 따라서 각각의 사안에 대한 한미 공동의 입장 조율을 통해 한 치의 빈틈도 없는 협상전략을 구비해야 한다.

둘째, 북한에 대한 압박 수단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 먼저 중국의 유엔 안보리 제재 이행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도록 촉구해야 한다. 만일 중국이 안보리 제재를 위반하며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간의 통상 갈등에 북한 문제를 포함시키도록 미국과 공조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국에게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통상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북한 핵문제를 함께 다룸으로써 중국의 부정적 역할을 차단해야 한다.

셋째, 한국 정부 또한 속도조절을 통해 스스로 대북제재 이행을 발목 잡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북한과의 민간교류는 확대하되 유엔 제재를 위반할 수 있는 경제협력 사업은 그 시기를 뒤로 미룸으로써 북한 비핵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삼가야 한다. 동시에 북핵 위협의 당사자로서 북한에 대해 비핵화 노력에 보다 성의를 보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

넷째,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공고히 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 문제가 장기전으로 접어들게 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이 경우 비핵화 협상의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북한을 압박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의 안보를 담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합군사훈련 시행 원칙을 조속히 구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틀에서 소규모 훈련을 진행하며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북한이 대화에 이탈할 경우 군사적인 압박이 전개될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의 군사력 강화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일부 유보한 것으로 전해지는 주요 무기체계 획득 사업을 다시 재개해야 하며, 남북간 군축 협상도 신중히 임해야 한다. 신뢰구축을 강조한 나머지 우리 군의 훈련이 유예되거나 취소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군사적 분야는 비핵화 진전과 속도를 맞춰야 하며, 의욕만으로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