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상대로 이란 핵(核) 합의에서 탈퇴했다. 핵 합의 당사국인 독일·영국·프랑스가 만류했지만, 트럼프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기존 합의는 파기하고, 이란을 더 압박해서 포괄적이고 영속적인 진짜 합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번 결정이 미국은 말로만 위협하지 않으며 자신이 약속한 것은 지킨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준다고 밝혔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북한과 부적절한 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게 미국의 메시지라고 했다.
미국의 탈퇴는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담판을 통해 이뤄내려는 핵 합의 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다. 이란 핵 합의를 재앙적이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한 미국이 그보다 못한 합의를 북한과 할 리는 만무하다. 북핵 위협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더 강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아래와 같이 이란 핵 합의의 5가지 결함을 제거한 ‘진짜 핵 합의’를 북한과 체결하고자 할 것이다.
첫째, 트럼프는 이란 핵 합의가 시한(15년)이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 해법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북한과는 한시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한번 체결하면 영속적으로 유지되는 합의를 추진할 것이다. 볼턴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PVID)를 언급하는 배경에는 이런 문제 인식이 깔려 있다.
둘째, 핵 합의가 이란에 농축 기술 등 핵 개발 잠재력을 유지하도록 허용한 것도 문제로 본다. 따라서 미국이 원하는 진짜 합의는 핵무기 능력뿐 아니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능력까지 함께 제거하는 것이다. 군사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평화적인 원자력 능력도 제거해야만 불가역적인 핵 폐기가 달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볼턴은 북한과의 진짜 핵 합의를 거론하며 남북한이 1992년 비핵화 공동선언에서 재처리와 농축 시설을 갖지 않기로 한 약속을 하나의 사례로 들었다.
셋째, 핵탄두뿐 아니라 운반 수단인 탄도미사일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북한과의 핵 합의에 탄도미사일 폐기를 반드시 포함시킬 것이다.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한국·일본을 사정권에 두는 단·중거리 탄도미사일의 폐기는 물론, 북한이 위성 발사를 구실로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도 차단하려 할 것이다.
넷째, 이란 핵 합의는 합의 위반을 예방하고 위반 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규정도 미흡하다고 비판한다. 핵 합의 당사국들은 물론 IAEA도 이란이 핵 합의를 준수한다고 보는 반면,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례도 많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북한은 만성적인 합의 위반 국가’라는 인식과 북한에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결의를 고려할 때, 미국은 북한에 대한 고강도의 사찰을 요구할 것이다. 북한 전역에 대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는, 성역 없는 사찰을 요구하면서 북한의 호응 여부를 핵 폐기에 대한 진정성의 기준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다섯째, 핵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시리아와 테러 집단을 지원하면서 중동의 불안정을 야기한다고 미국은 비판한다. 따라서 북한과의 핵 합의도 경제가 나아진 북한이 대남 도발을 계속하거나 이란·시리아 등과 군사 협력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아울러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개발에 북한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화학 및 세균무기 폐기와 확산 금지도 북한과의 진짜 합의에 중요한 조건이 될 전망이다.
* 본 글은 05월 10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