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화하며 한동안 멈춰 섰던 북핵 협상 시계(時計)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합의는 없어 보이지만 북·미 양측 모두 만남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이 취소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협상 테이블에 놓인 다양한 카드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한국 안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만큼 냉철한 대응이 요구된다.
현재까지 이슈가 된 북한 비핵화 조치는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참관, 영변 핵시설 폐기, 핵 활동 동결, 장거리미사일 폐기 등이다.
미국 측 상응 조치로는 인도적 지원, 원유 공급량 확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철도·도로 연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 논의 약속 등이 직간접으로 언급된 바 있다. 이들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큰 거래, 작은 거래, 또는 나쁜 거래가 모두 가능하다. 큰 거래는 북한의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맞교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철저한 신고·검증·폐기를 수용하고, 미국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과 같은 경제적 보상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시료 채취가 포함되어 북한의 무기급 핵물질을 추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대신, 북한의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기 위해 대북 제재의 예외를 일부 인정하며 경제성장의 `맛`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합의하기만 한다면 비핵화에 커다란 진전이다.
작은 거래는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거부하고 미국도 최소한의 보상만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이 이미 했어야 할 핵 활동 동결만을 약속하고 미국은 인도적 지원이나 연락사무소 설치만 합의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북한은 핵 관련 시설 참관을 추가할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검증에는 끝내 반대하고, 그 결과 미국 역시 다른 신뢰 구축 조치에 합의하지만 대북 제재 완화는 거부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측 희망과는 거리가 있지만 판을 깨지 않는 수준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다만 비핵화 진전 속도가 느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에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나쁜 거래는 북한이 미국에만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하고 미국은 북한에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한이 핵 활동 동결만으로는 경제 제재 완화를 얻어내기 어려워지자 장거리미사일(ICBM) 폐기를 새롭게 제안하고, 외교적 성과가 시급한 미국 행정부가 그간의 태도를 바꿔 북한이 요구하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를 수용하는 것이다.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환영을 받겠지만, 북한 핵시설에 대한 철저한 신고·검증은 배제되고 그 결과 북한 핵능력 제거는 더욱 어렵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에는 나쁜 합의가 된다.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한 협상 행보를 보이는 북한으로서는 `히든카드`가 될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핵 위협이 여전하고 제재가 완화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에는 악몽과 같은 합의다.
몇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봤지만 협상 방향은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한국에는 큰 거래가 바람직하고 나쁜 거래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 방침이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핵 문제의 당사자로서 정부는 나쁜 거래에 대한 반대 의견을 미국과 북한에 알리고 큰 거래로 방향을 틀 것을 촉구해야 한다. 제3자 관점에서 대화만 촉진하려 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우리 국민과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입게 된다. 누구를 위한 협상인가? 정부가 답해야 한다.
* 본 글은 1월 24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