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외교안보 문제를 다루다 보면 당리당략이나 진보나 보수의 이념적 성향을 넘어선 초당적 합의와 접근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외교안보 문제에 초당적 합의가 어려운 나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 7월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관한 논란이 이러한 국내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우리처럼 안보 상황이 위중한 국가에서 안보 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으로 반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념적 성향과 관점 때문에 문제를 해석하는 것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 분석과 대안을 놓고 펼치는 치열한 논쟁은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어떤 결정이 내려지면 하나의 목소리가 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안보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특히 앞으로의 대선 과정에서도 외교안보 문제를 둘러싼 후보들 간 논쟁과 비난은 불 보듯 뻔하다. 선거 과정에서야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 이후에도 이러한 논쟁과 갈등이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안보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논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학계, 언론계, 정치권, 정부 측 인사들이 참여하는 정책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이념적, 당파적 갈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건전하고 활동적인 정책 커뮤니티는 구성원 각자의 전문성과 특성을 살려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내고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여 정책 추진을 원활하게 한다. 학자와 전문가 그리고 관료들이 함께 고민하며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소통과 통합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정책 커뮤니티가 있다. 정부 부처별로 자문위원을 두고 있고, 연구용역 발주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다. 또한 주요 국책 및 민간 연구소들도 다양한 학술회의를 통해 소통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미흡하고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자문회의가 자문을 하기보다는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는 홍보의 장이 되곤 한다.
실질적인 문제를 두고 참여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합의를 만들어 가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의견을 달리하고 논쟁을 벌일 수도 있지만 당국자와 학자, 전문가들은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는 관계에 있어야 한다. 정책 당국자들은 필요한 정보와 현황을 학자, 전문가와 공유하고, 이들의 의견을 들어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자와 전문가들은 현황을 잘 파악해, 현업에 갇혀 있는 관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 알려주어야 한다. 추상적이거나 원론적인 대안이 아닌 실질적으로 손에 잡히는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을 상호 보완하며 발전하는 상생의 관계, ‘정책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학자나 전문가들의 오류를 방지하고 상황과 문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구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유가 필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정부에 이를 기대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정부 어느 부서도 학자나 전문가들에게 정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 특히 미국에서는 정부와 민간의 정보 공유가 잘 이루어지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으며, 정책 대안 개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주요 계기 때마다 정부 당국자가 학자와 전문가들에게 현황을 정확히 설명하고, 보안 서약을 전제로 비밀에 대한 접근을 허용한다.
정부가 자문을 하거나 용역을 의뢰할 때 대상자들의 성향을 보는 것도 지양해야 할 사항이다. 정부가 입장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거나 용역을 의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가 ‘편 가르기’를 조장한다. ‘외교안보정책을 초당적으로 만들고 추진해야 한다’는 말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행태다. 정부는 성향과 입장이 다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거부하지 말고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입장 차이를 극복하지는 못해도 경청하고 존중하는 태도 그 자체만으로도 신뢰가 쌓이고 건전한 정책 커뮤니티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 본 글은 4월 11일자 동아광장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