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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 정치에 질풍노도가 몰아치고 있다. 그것을 잠재우려고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4년간 상당히 노력했지만 결국 미국 유권자들이 외면했고, 트럼프 2기가 시작됐다. 이제 트럼프 현상은 미국 정치사의 예외가 아니라 상수가 됐고, 국제 정치·경제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 속에 잘나가던 대도시 중심의 고학력 엘리트 계층과 이민자에 대한 러스트벨트의 저학력 백인 노동자, 중부 농민의 거센 분노와 반발이 트럼프의 승리를 몰고 왔다. 이미 최근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집권층이 교체되거나 극우 세력의 부상으로 크게 약화돼 왔는데,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닐 수 있고, 이는 집권층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트럼프의 승리로 미국 정치뿐 아니라 국제정치사 흐름도 크게 바뀌게 됐다. 미국 외교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고립주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에 그래왔던 것과 달리, 더 이상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수호할 리더 역할을 감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외교의 핵심 축이었던 동맹들과의 관계도 흔들리게 됐다. 무엇보다 나토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흔들려 유럽은 홀로서기를 해야 할 것이며, 한·미, 미·일 동맹도 불투명해지게 됐다.

이제 ‘민주주의’나 ‘자유’와 같은 가치가 아니라 단기적 경제 이익이 미국 외교를 주도할 것이다. 미국과 동맹국 간에 벌어질 틈새를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파고들어 그들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도 우려된다. 세계 민주주의의 롤모델이던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도 밝지 않다. 그것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민주주의 향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인데, 그 또한 걱정스럽다.

경제 면에서도 큰 파고가 예상된다. 트럼프는 지난 7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관세 인상을 주장하면서 19세기 말 보호무역주의자였던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를 언급했다. 공화당의 오랜 보호무역주의 전통으로의 회귀를 시사했다. 그는 대선 캠페인 중에 모든 수입품에 대해 20% 관세,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수많은 경제학자가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미국 소비자들에게 해가 된다고 주장했지만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다. 두려운 것은 1930년대 미국이 스무트-홀리 법안으로 관세를 대폭 인상했을 때 대부분의 상대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했고, 그것이 각국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을 낳아 전쟁으로 치달았던 경험을 반복할 가능성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무역 주도 개방경제는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1기 때도 트럼프의 말은 거셌지만 실제로 실행했던 것은 별로 과도하지 않았다며, 2기 때도 그럴 것이라고 위로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 정치 전문가들은 1기 때와 달리 지난 8년간 탄탄한 인맥과 경험을 쌓은 트럼프는 1기 때보다 훨씬 더 거칠 것 없이 원하는 바를 실행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트럼프의 리더십 스타일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대단히 거래적이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도 기본적으로 거래의 관점에서 벌어지는 게임으로 파악한다. 또한 그는 상당히 예측 불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중요한 정책 결정들이 즉흥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심지어 1기 때는 그와 맨 마지막에 이야기한 사람의 말대로 중요한 결정들이 이뤄졌다는 말들이 돈다. 셋째로 그는 리더들 개인 간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정책이나, 전략이나, 이념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그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명심하고 대미 외교를 펼쳐야 할 상황이다. 트럼프 1기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허버트 맥매스터는 최근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트럼프와 매우 가까웠던 아베 총리로부터 배우라고 권한다. 당시 미·일 간에도 무역 불균형 문제, 방위비 분담 문제 등 난제가 많았지만 “함께 일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놓고 모든 문제를 협의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에 권하고 싶은 점은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당선인을 만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양국 정상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좋은 관계’를 만들 때 한·미 간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방도가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거의 확실하다. 그 경우 적정 수준에서 요구를 들어주되 주한미군 주둔의 현상 유지와 기타 우리 측 외교 목표를 달성해야 할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 재개 가능성이 상당한데, 그 경우 한국의 안보 우려가 충분히 반영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정적 바이든의 작품이긴 하지만 한·미·일 3자 협력이 미국에 득이 됨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한·미 간 경제·기술·방산 협력이 미국에 득이 되고, 한국 대기업들의 투자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일자리를 얻고 있음을 알려야 할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우리 외교 스타일도 크게 변해야 할 때다.

 
* 본 글은 11월 7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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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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