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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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4년 5개월 만에 개최된 이번 정상회의에서 한-일-중 3국은 ▲인적교류, ▲기후 변화 대응 등을 통한 지속가능발전, ▲경제·통상, ▲보건·고령화, ▲과학기술·디지털 전환, ▲재난 구호·안전 등 6대 분야에서의 협력 사업 발굴에 합의했고, 2025~2026년을 3국 간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하며, 문화, 관광, 교육 등의 분야에서 인적교류를 4,000만 명까지 증가시키기로 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3국은 항구적 역사와 무한한 미래를 공유하는 이웃국가로서 한-일-중 3국 협력의 잠재력을 확인하였고, 정상회의를 통한 협력의 재활성화 및 협력 복원의 모멘텀을 마련한 점을 높게 평가하였다.1 그러나 한-일-중 3국 협력 체제의 복원을 위한 가시적인 성과나 향후 한-일-중 3국이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수 있는 확신과 비전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역내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각국의 입장차가 분명히 드러났을 뿐 아니라, 제안된 협력 사업의 상당수가 과거에 이미 제안되었던 내용들로, 새롭거나 혁신적인 내용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한-일-중 3국이 협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각각 다른 의도와 목적, 그리고 계산을 가지고 정상회의에 참가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에 본 고는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국, 중국, 일본 각국의 의도와 목적, 그리고 계산 등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한국 외교에 주는 함의와 향후 과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한-일-중 회의에 대한 한국의 기대

한국 정부는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를 공식 발표하면서 “이번 정상회의는 한-일-중 세 나라가 3국 협력 체제를 완전히 복원하고 정상화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고, “3국 국민이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이고 실질적인 협력의 모멘텀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을 강조했다.2 이는 한국 정부가 이번 정상회의에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 이번 정상회의 개최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한-일-중 3국이 번갈아 의장국을 맡아 개최되는 한-일-중 정상회의는 2018년 일본 도쿄, 2019년 중국 청두에서 개최된 후 4년 5개월 동안 개최되지 못했다. 2020년도에 한국이 의장국으로 개최해야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한일관계 악화로 연기됐기 때문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중국이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정상회의 개최에 회의적인 시각이 나타나기도 했다.3 그런 점에서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하나의 외교성과로 평가될 수 있었다.

둘째,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와 3국 협력 모멘텀 확인이 동북아의 지정학적 긴장을 완화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심화,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미사일 도발, 탈중국 성향의 대만 라이칭더(賴清德) 신정부 취임과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 고조 가능성, 북러 군사밀착과 한-미-일 공조 강화로 역내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에 대한 우려도 나타났다. 그 가운데 한-일-중 3국은 북핵 문제, 대만 문제, 글로벌 공급망 등의 외교안보 이슈에 대해서 협력하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의 모습을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개최되는 한-일-중 정상회의는 3국 협력의 모멘텀을 확인함으로써 3국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신냉전 구도 형성에 대한 우려를 완화하고 지역 안정과 경제교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셋째, 이번 정상회의가 한중관계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대중 외교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2016년 사드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 내에 반중 정서가 확산했지만, 한국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는 경색된 한중관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고, 이것은 경기침체와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현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 결과는 한국 정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일-중 3국이 비록 이번 정상회의에서 협력 의지를 확인하기는 했지만, 북한 비핵화 등 외교안보 이슈에서 이견을 보이고 구체적인 협력사업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미중 전략경쟁구도 속에서 3국 협력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2. 한-일-중 회의에서 나타난 중국의 의도

2023년 11월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3국 정상회의를 위해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한-일-중 정상회의를 “상호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한다”는 한국, 일본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4 2024년 4월 10일 한-일-중 정상회의가 5월 26~27일에 개최될 것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5 공식 발표가 5월 23일이 되어서 나온 것도 정상회의의 의제 설정과 합의에 있어 한일과 중국 간의 의견차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미중 전략경쟁구도 속에서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등 지역 정세를 고려할 때, 중국이 한국 및 일본의 대외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중국이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에 참가한 의도는 무엇인가?

1) 지역 협력을 강조하며 역내 미국 동맹체제의 이완 모색

중국 정부는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가 “3국 협력의 재개와 새로운 출발”임을 강조했다.6 미국의 대중 견제에 직면한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는 단순히 역내 국가인 한국, 일본과의 양자 및 삼자관계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전략적 의미가 있다.7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이완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인식하고,8 미국과의 양자동맹을 넘어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하는 한국과 일본에 대해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중국은 2023년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고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소위 ‘베팅’ 발언으로 윤석열 정부를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반간첩법과 대외관계법을 근거로 일본 기업인을 구금하거나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계기로 일본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가 회복되고 캠프 데이비드 회담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가시화되자 중국은 2023년도 8월 한국 및 일본 단체관광 허용, 10월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 등으로 한-일-중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23년 10월 24일 ‘신시대 중국의 주변국 외교정책 전망(新時代中國的周邊外交政策展望)’이 발표됐는데, 이를 통해서 중국 정부는 ‘아시아 세기(Asian Century)’를 재강조하고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 간의 단결과 협력을 촉구하며9 지역 협력을 통해서 지리적으로는 역외국가인 미국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중국의 한-일-중 정상회의 참석과 3국 협력 강조는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리창(李强) 중국 총리는 경제 및 무역 교류 심화, 산업과 공급망의 안정적 유지, 한-일-중 FTA 협상 재개, 과학기술협력 등을 강조했다.10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는 미중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서 중국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차기 미 행정부가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며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한국과 일본 내에서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한-일-중 3국의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경제적 이익 외에도 한-일-중 3국 간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대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더라도 중국과 완전히 각을 세울 수 없는 구도를 만들어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조절하려는 의도를 나타냈다.

2) 북한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되, 북-중-러 3각 연대에는 거리두기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일-중 3국의 입장차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기자 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는 ‘북한의 비핵화’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한반도와 평화의 안정이 한-일-중 3국의 공동이익임을 강조했지만, 리창 총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에 공감하면서도 북한이나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11 오히려 한-일-중 3국은 공동선언문에서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We reiterated positions on regional peace and stability,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abductions issue, respectively)”라고 명시하면서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정에 대한 각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12

2019년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명시된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We are committed to 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는13 문구와 비교할 때, 이것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을 삭제한 것에 그치지 않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공감대와 협력 토대를 후퇴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술한 기자회견 내용을 볼 때, 여기에는 중국의 적극적 주장이 반영됐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중국은 현재 한-일-중 협력을 모색하면서도 북한과의 우호 관계를 여전히 중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것임을 드러냈다. 북한과의 우호 관계가 미중관계에서 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3국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북-중-러 연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지난 9월 북러 정상회담 이후 북러 간의 군사밀착이 강화되면서 동북아 지역에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대립구도가 고착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중국은 북-중-러 연대는 서구 언론의 왜곡과 편견이라면서14 북-중-러 연대 형성에 대해서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15 현재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다양한 글로벌 이니셔티브와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다자협력을 확대하며 자국에 우호적인 대외환경을 조성하고자 하고 있다.16

중국이 지속적으로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북한 및 러시아와는 다른 입장이고 북-중-러 연대가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대해서 ‘난폭한 내정간섭’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17 곧바로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했는데, 중국의 입장에서 이 사건은 지역 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북한과는 달리 중국은 포용성을 가지고 역내 국가들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음을 국제 사회에 부각시키는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다. 동북아 내에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면 미국 주도로 강화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당위성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3) 대만 라이칭더 정부의 역내 협력 제한 모색

이번 한중 양자회담에 대한 각국의 보도자료는 대만 문제에 대해서 서로 다른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한국 측 보도자료에는 대만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중국 측 보도자료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며 이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고 발언했음을 명시했다.18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리창 총리가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 중 핵심이자 한계선임을 밝혔다고 명시했다.19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 직전인 5월 20일에 대만에서는 라이칭더 정부 취임식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공식적인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일본에서 일화(日華)의원간담회 소속 의원 31명이, 한국에서 한국-대만 의원친선협회장 등 국회의원 6명이 참석한 것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3월 서울에서 개최된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에서도 오드리 탕(Audrey Tang) 대만 행정원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의 녹화 영상이 송출됐고 이로 인해 한중 간 외교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5월 20일 라이칭더 정부 취임식을 둘러싼 3국 간의 갈등을 볼 때, 대만 문제에 대한 한중∙중일 간 입장차가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 공식 발표가 늦어진 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이 대만 문제를 지역의 평화와 안정 측면에서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대만 문제를 중국의 핵심이익이자 내정 문제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해 왔다. 한국 및 일본의 대만 관련 발언이나 교류 확대가 대만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국내 보도자료에 한국과 일본에게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고,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는 내용을 명시한 것은 중국과 대만 라이칭더 정부에 대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서 대만과의 통일을 주장해 온 시진핑 정부의 성과를 드러내는 한편, 한국 및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라이칭더 정부의 협력 의지를 사전에 제한하려는 것이다.

 

3. 일본의 손익계산: 한-일-중 관계 속 한일 협력의 우위

본래 일본에게 있어 한-일-중 정상회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적극 추진하는 회의체는 아니다.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역사문제는 일본에게 편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이로 인해 한-일-중 정상회의에서는 항상 ‘한중 vs 일’의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9차 한-일-중 정상회의에서는 이와 같은 기존의 구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1) 기존 ‘한중(韓中) vs 일본(日本)’ 구도를 ‘한일(韓日) vs 중국(中國) ’ 구도로 변경

이번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까지 일본은 의장국인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노력에 대해 전면 지지하며,20 한-일-중 정상회의 조기 개최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와 같은 일본의 태도는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와 대조되었다. 과거 한-일-중 회의가 재개되기까지 5차(2012.5)에서 6차(2015.11)로 넘어가던 3년 6개월, 6차(2015.11)에서 7차(2019.12)로 넘어가던 4년여간 회의 개최에 주요 저해 요인이 한일갈등과 중일갈등으로 갈등의 핵심에 일본이 있었던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와 같은 일본의 한국 지지는 2023년 3월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 관련 해법 발표21 이후 두드러졌다.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개선되었고, 지난 한 해 동안에만 한일 양국은 7번의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외교, 안보, 경제,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22 민간에서의 교류도 활발해졌고, 양국은 협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에서 의장국인 한국을 뒷받침하며, 측면 지원하는 모습이 두드러진 것도 이와 같은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아가 다음 회(제10차) 의장국으로서 회의 개최에 대한 한국의 지지를 기대하고,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 역내 협력을 주도하려는 계산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2) 한-일-중 협력의 한계 노정 속 견고한 한일 및 한-미-일 협력 각인  

한-일-중 정상회의 기간에 발사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은 역설적으로 북한문제에 대한 한일의 입장이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한-일-중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5월 27일, 정찰위성을 발사할 계획(5월 27일 0시~6월 4일 0시 사이)을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IMO)에 통보하였는데,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 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발사를 감행할 경우 국제 사회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23 기시다 후미오 총리 또한 “발사하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24 밝히며 중지를 촉구했다. 반면, 리창 중국 총리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3국 정상회의가 끝난 후 이루어진 공동기자회견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북한 비핵화와 국제 사회의 단호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리창 총리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과 관련 측의 자제 및 사태 예방을 촉구했다.

이와 같은 중국의 태도는 북한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을 촉구하는 한국과 일본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문제 대응에 대한 한일의 일치된 입장을 재차 명확하게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한-일-중 정상회의가 끝난 뒤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개최된 (6.2) 샹그릴라 대화 계기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에서 한-미-일 3국은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우려를 표명함과 동시에 국제 사회의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을 언급했다.25 이처럼 한-미-일 안보협력의 균열을 모색하려 했던 중국에게 눈앞에서 벌어진 북한의 위협은 역설적으로 한일, 한-미-일 협력을 재확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한-일-중 협력은 역내 가장 민감한 북한문제를 핵심으로 다루는 견고한 한-미-일 협력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시켰다.

3) 글로벌 과제에 대한 일본의 역할 확대 재확인

한-일-중 정상회의 모두 발언에서 기시다 총리는 한-일-중 3국 협력의 의의와 3국 간의 협력과제를 언급함과 동시에, 지역 및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일본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구체적으로, 북한,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략, 중동 정세, 국제 경제질서 등에서의 협력에 대해 언급하며, 인간의 존엄과 법의 지배에 근거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 질서의 유지 및 강화가 불가결하다는 인식을 보였다.26

이와 같은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지난 4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미일정상회담에서 규정된 ‘미일 글로벌 파트너 관계’를 상기시킨다. 지난 4월 미일정상회담은 미일관계를 기존의 ‘동맹 보호(alliance protection)’에서 ‘동맹 투사(alliance projection)’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출발점이 되었다. ‘창(미국)’과 방패(일본)’로 역할이 구분되던 기존의 미일관계와 달리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보호를 받던 일본은 이제 미국과 함께 행동하는 동맹이 될 의지를 보였고, 이는 곧 ‘방패’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일본이 다양한 국제 사안에 대해 미국과 함께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며, 이는 곧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를 의미한다. 평화헌법의 제약과 실질적 무력 행사의 어려움 속에서 일본이 실제 할 수 있는 안보상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일본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낮아 보이는 사안들까지 자국의 입장을 표명하고,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향후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일본의 관여 가능성과 역할 확대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한 명분을 마련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4) 역사갈등에 치중되지 않는 한일관계로 전환 시도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 계기 개최된 한일 정상회의에서 양국은 지난 1년여간 셔틀외교 재개와 긴밀한 소통, 각 부처 간 대화 재개, 수소 및 자원 협력 대화 신설, 청년층 교류 확대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였고, 내년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관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사업을 준비해 나갈 것에 합의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 및 기시다 총리 방한(5.26) 이틀 전,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에서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대법원 판결관련 해법 발표를 계기로 설립된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기존 목표액 1억 엔을 넘어 2억 엔 이상을 기부했는데,27 이는 한국 정부의 해법을 지지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의 지원을 우회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가 명확하지 않은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한편,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는 최근 불거진 ‘라인야후(LINE-Yahoo) 사태’에 대한 양 정상의 발언에 관심이 모아졌다.28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외교관계와 별개 사안이고, 불필요한 현안이 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언급하였으며, 기시다 총리 또한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를 요구한 사안으로, 한일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초기 단계부터 잘 소통하면서 협력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긴밀히 소통해 나갈 예정”이라고 답했다.29 ‘라인야후 사태’는 현재 한일관계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양 정상의 발언으로 양국이 갈등 사안을 관리해 나가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역사 문제 등 갈등 사안에 매몰되어 논의의 장조차 마련되지 못했던 기존의 한일관계를 갈등 속에서도 협력을 논의하는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일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고, 보다 발전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논의를 하면서도 두 정상은 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 문제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문제, 대륙붕 문제 등 앞으로 다가올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는 역사 문제에 대한 회피, 경시, 혹은 망각으로 비춰져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양국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직면하지 않아 향후 다시 양국 갈등을 초래할 여지를 남겼다.

 

4. 정책적 고려사항

한-일-중 협력은 1997년 외환위기 해법을 찾는 자리였던 1999년 ‘ASEAN+3(한일중)’ 정상회의 당시 3국이 별도의 비공식 조찬 회동을 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2007년 3국 정상 간 회의 개최에 합의하였고, 다음 해인 2008년부터 3국만의 공식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이처럼 한-일-중 정상회의가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계기로 역내 경제적 협력을 위해 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북한문제, 대만문제 등 민감한 안보 분야에서의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중 3국의 지리적 근접성과 지정학적 연계성을 고려할 때, 한-일-중 협력은 북핵 문제, 미중갈등 속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구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틀로서 기능할 수 있다. 다만, 자국의 이익에 기반한 한-일-중 3국의 의도와 목적, 계산이 다른 만큼 한-일-중 3국 정상회의의 틀은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한국 정부는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간 고위급 외교 소통 채널을 확대하고 정례화해야 할 것이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중 양국은 한중 외교안보대화 및 한중 수출통제 대화체 신설, 한중 FTA 2단계 협상 재개, 한중 투자협력위원회 재개에 합의했다. 한중관계가 냉각되면서 한중 간의 고위급 대화채널이 단절되었고, 이것이 한중 상호 이해와 협력을 제한해 왔다. 그런 점에서 한중 간 다양한 고위급 대화체가 신설되고 재개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합의를 실제로 이행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한국과 중국이 2021년도에 한중 2+2 대화를 차관급으로 격상해 재개하기로 했지만 개최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중국은 한국 및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역내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대선 전에 한중관계를 어느 정도 개선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정부는 한중 간의 고위급 대화체를 확대하고 정례화해야 한다. 한중 양국이 다양한 현안에 대한 서로의 인식과 정책을 공유하며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쌓이지 않고 한중관계를 관리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닦아야 한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성과를 홍보하며 중국과 주변국에 한중관계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중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어 역내 역학 구도가 중국에 불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한중 FTA 2단계 협상 등을 거론하며 한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록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더라도 이를 계기로 경제 통상이나 과학기술, 환경문제 등 다양한 부분에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사안을 찾고 소기의 성과라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대내외에 한중관계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의 군사도발, 대만해협 내 군사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중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국민 간의 상호 감정은 물론, 지역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노력은 한미동맹에서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전선(戰線)에 대응해야 하는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면서도 미중 간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런 미국에게 한중관계의 회복이 과거와 같이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으로 가는 것이 아님을 전달하는 한편, 한국이 중국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 역내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

셋째,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북핵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북-중-러 연대와 역내 신냉전 구도 형성을 통해서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고려할 때, 북한은 한중 및 한-일-중 협력의 강화를 자신의 대외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한일은 물론 중국에 대한 비난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전향적 태도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북한의 반발과 비난은 중국에게 정치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중국은 한국, 일본 등 역내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회복을 모색할 뿐 아니라 ‘책임 있는 대국’을 내세우며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중국과 북한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고 북한의 군사도발 및 추가 핵실험이 지역 불안정성을 높이고 역내 경제협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임을 중국에게 계속 전달하는 한편, 중국이 이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북중관계의 균열을 모색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과 책임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재개된 한-일-중 3국 협력의 모멘텀을 이어가되, ‘한중vs일’ 혹은 ‘한일vs중’ 등 대립 구도가 형성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 일본의 한국 지지와 뒷받침은 지난 해 3월 한국 정부의 대법원 판결 관련 강제징용 문제 해법안 마련에서 기인한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 정부의 해결책이 완전하지 못하고, 대다수의 한국인들의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견고하지 못한 기반은 양국관계를 다시 흔들 수 있는 불안정성을 내포하며, 불안정한 한일관계는 한-일-중 협력, 한-미-일 협력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양자 관계에 의존하거나, 혹은 양자협력 구도에 기반하지 않는 3국 협력의 틀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일-중 3국 협력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발신하는 동시에, 실질적 이익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한국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역사 직시의 기반 위에 세워야 한다는 원칙으로 2025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준비해야 한다.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한일 두 정상은 현재의 양국 갈등을 관리하면서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2025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언급하며 내년을 준비해 나가기로 약속하였다. 이와 같은 양국 정상의 발언은 2025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을 상기시키며, 다가올 2025년을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역사문제에 대한 직시없이 역사 외 분야에서의 협력만을 강조하는 것은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한일관계에 있어 역사 문제에만 매몰되어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이 중단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지만, 이에 대한 회피와 망각 또한 지양해야 할 것이다. 2025년을 ‘한일관계 재도약의 해’로 삼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양국 협력을 추진하는 동시에, 상흔의 역사를 보듬을 수 있는 기억, 추도, 화해의 움직임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역사에 대한 직시를 기반으로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한국은 일본의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그동안 한일, 한중, 중일 등 양국관계가 악화되면 개최되지 않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다시 마련된 협력의 모멘텀을 적극 활용하여 정상회의 정례화 노력을 지속해야 하고, 협력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계획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일-중 정상회의가 역내 대립구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틀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협력의 성과를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별첨】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 현황 및 합의문서 (1차-9차)

【별첨】 한-일-중 정상회의 개최 현황 및 합의문서 (1차-9차)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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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이동규

지역연구센터, 대외협력실

이동규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이다. 한국외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정치 전공으로 국제지역학석사 학위를, 중국 칭화대학(淸華大學)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중국정치외교, 한중관계, 동북아안보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일대일로: 보건 실크로드와 디지털 실크로드의 확장과 그 함의”, “중국공산당의 정치개혁은 퇴보하는가: 시진핑 시기 당내 민주의 변화와 지속성”, “중국공산당의 이데올로기 전략으로 본 시진핑 사상”, “냉전시기 한중관계의 발전요인과 특수성: 1972-1992년을 중심으로”, “개혁개방 이후 마르크스주의 중국화 연구” 등이 있다.

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