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은 1월 25일(수), 제12회 <아산서평모임>을 개최했다. 주제도서는 안치운 교수(호서대 연극학과)의 《연극, 기억의 현상학》(책세상, 2016)이었다. 모임은 정수복 작가의 사회, 저자인 안 교수의 발제로 진행됐으며, 조만수 교수(충북대 불문학과), 이진아 교수(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가 지정 토론을 맡았다. 이날 모임에는 김형철 교수(연세대), 연세영 작가(한국문인협회), 이선민 기자(조선일보) 등 20명의 서평위원이 참석했다.
◈ 안치운 교수=“연극은 인문학적 앎과 어떻게 같은 자리에 놓일 수 있는가?”
안치운 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연극에 관한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글쓰기의 의의는 “오늘날 연극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마이너 예술의 의미를 사유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안 교수의 화두는 곧 “연극/글쓰기는 인문학적 앎, 즉 철학, 수사학(문학)과 어떻게 같은 자리에 놓일 수 있는가?”이다. 그는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연극이 교양으로서의 역할을 회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시민 연극’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연극을 공교육 교과과목으로 편성하는 방안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조만수 교수=”연극은 허구이면서 실제이고, 있으면서 다시 사라지는 것”
조만수 교수는 책 제목인 ‘연극, 기억의 현상학’의 의미에 주목했다. 그는 책의 목차로 미루어 보아(‘오류에서 진실로, 죽음에서 삶으로’, ‘죽음과 애도의 글쓰기’, ‘한국 현대 연극과 죽음의 언어’), “’기억의 현상학’이란 곧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망각과 사라짐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그러므로 모순적인 조합의 단어들이다. 죽음 자체가 사라짐이기 때문이다. (…) 죽음은 부재이다. 그런데 부재를 통해서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부재함은 마치 부활한 존재가 남긴 무덤과 같은 것이다. ‘그는 여기에 없다’는 것, 그것은 그의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 이진아 교수=”《연극, 기억의 현상학》은 기억과 애도에 관한 책”
이진아 교수는 안치운 교수가 저서에서 ‘죽음’뿐만 아니라 ‘기억’과 ‘애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안 교수에게 기억은 ‘연극의 출발점이자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그는 항상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그에 가 닿기 위해서 기원과 역사를 탐색한다. ‘연극은 무엇인가’하는 그 기원과 역사를 생각하며, ‘연극은 오늘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교수는 또한 안치운 교수의 글쓰기가 “떠난 자를 계속해서 기억하고 그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애도의 글쓰기와 같다고 덧붙였다.
◈ 자유토론
발제 및 지정토론 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김동하 교수(서강대)는 “안치운 교수의 ‘시민 연극’ 구상이 헤겔의 ‘시민 종교’ 구상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가 시민의 교양으로서 연극의 역할을 역설하는 것처럼, 헤겔 역시 사회문화적 기제로서 ‘종교’가 공적 시민 공동체의 윤리적 감정을 형성하는 데 정서적 원천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당시 독일에서의 종교와 달리,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연극은 안정적인 사회문화 기제로서 거의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치운 교수의 ‘시민 연극’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고 말했다.
서유경 교수(경희사이버대학)는 한나 아렌트의 개념을 빌어 정치와, 극장, 아고라를 설명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란 곧 언어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이며, 모든 공공장소는 ‘극장(theater)’으로 볼 수 있다. 말하는 자(배우)와 듣는 자(관객)의 소통이 곧 정치적 행위이며, 따라서 일상적인 삶과 연극의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선진 교수(한국외대)는 “안치운 교수에게 ‘연극’이란 존재 규명의 매개인 것 같다”며, “연극이 대중예술이 된다면 자연히 세속화, 상업화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을텐데, 이는 곧 연극이 존재론과 멀어지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제12회 <아산서평모임> 세부일정표, 발제문 및 토론문(첨부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