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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한국 방위산업(이하 방산)의 약진이 눈에 띈다. 2021년 73억달러(약 10조1346억원), 2022년 173억달러(약 24조176억원)에 이어 2023년 방산 수출 실적은 130억달러(약 18조479억원)에 이르렀다. 2023년 잠시 수출이 주춤했으나 이는 수출입은행의 대출 한계로 인해 폴란드 2차 계약이 지연된 탓이었다. 2차 계약이 마무리되고 추가적인 수출이 뒤따른다면 올해는 150억달러(약 20조8245억원) 이상, 호황일 경우 200억달러(약 27조7660억원)까지도 가능하다고 정부는 전망한다. 1970년대 방산에 발 디딘 지 50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방산을 일궈낸 것이다.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선택

우리 방산은 1960년대 말 극심한 안보 불안에서 그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하며 부족한 병력을 감당하기 위해 주한미군 7사단을 동원하고자 했다. 당시 주한미군의 육군은 8군 산하에 2사단과 7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계획은 주한미군 지상 전력의 절반을 빼내 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군 파병이 결정돼 8년 8개월 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이 파병됐다. 파병 기간 북한의 도발은 정점에 달해 1968년부터 1·21 청와대 기습 사건, 푸에블로호 납북, 울진·삼척 무장 공비 사건, 미 EC-121 정찰기 격추 등 전쟁을 방불케 하는 공격이 이어졌다.

우리 지원에도 미국은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아시아의 방어는 아시아가 스스로 책임지라며 1970년 5월 미 7사단의 철수를 통보했다. 당장 안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선택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기를 스스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소총조차 만들지 못했던 게 당시 수준이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1971년 11월 번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기본 병기 긴급 시제’ 사업을 지시했다. 쓰고 있던 M1 개런드, M1 카빈 등 소총부터 역설계하라는 것이었다. 불과 한 달 만에 개발진은 대통령 앞에 시제품을 내놓았다. 이런 불굴의 정신을 바탕으로 소총에서 야포로, 야포에서 미사일로 국산 무기 개발은 점차 심화됐다. 단순히 정신력뿐만 아니라 산업적 준비도 필요했다. 방산을 위해서는 철강·금속 산업을 위시한 중화학공업이 필수였는데, 일제 시절부터 공업 기반은 대부분 북한 지역에 집중됐다. 산업 기반이 취약했던 한국은 중화학공업부터 육성해야만 했다. 경제성장과 방산 육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대기업에 각 분야를 맡기면서 방산을 키워내는 전례 없는 산업화에 나섰다. 전차를 만들기로 한 현대가 열차 산업을, 전자제품을 만들던 금성이 레이더와 미사일을 맡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요컨대 미국에 버려질 미래를 두려워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산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당연히 자주국방의 꿈은 전차나 미사일에 그치지 않고, 핵 개발까지 이어졌다. 계륵과도 같았던 동방의 소국이 갑자기 핵무장까지 추진할 정도로 성장하자 미국의 셈법은 바뀌었다. 당장이라도 동맹을 해체할 듯했던 지미 카터 행정부는 도리어 한미연합사를 만들며 동맹을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물론 이러한 결정에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미군 리더십의 반발과 일본의 우려 등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중화학공업을 성장시키고 든든한 방산을 갖춘 한국을 동맹으로 남겨두는 것이 자국 국익에 도움 된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방산의 약진

한국 방산의 성장을 거론하면서 드는 대표적인 사례는 폴란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안보 위협에 노출된 폴란드는 단기간 내 현대적인 기계화 전력을 갖추고자 했다. 미국은 납기 지연으로 인해, 독일은 이미 무너진 양산 체계로 인해 폴란드를 제시간에 신속히 무장시킬 수 없었다.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전혀 손색없는 성능을 갖춘 무기를 제시간에 제공할 수 있는 한국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됐다. 단일 판매로 K-2 전차 980대와 K-9 자주포 624문, FA-50 48기를 구매하는 거대한 계약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내에서도 유례가 없다.

한국 방산이 성공한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이나 유럽 무기에 뒤지지 않는 첨단 성능이다. 늘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다 보니 실전적이면서도 최첨단 무기를 한국군이 요구했고, 이에 더해 반도체 등 민간 첨단 기술의 성숙에 따라 기술력이 축적되며 저렴해졌다. 둘째, 규모의 경제로 인해 가성비와 신속한 납기 준수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50만 명의 대규모 병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얼마 없다. 대군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양산 체제를 갖추다 보니 가격이 내려가고 신속한 생산이 가능했다. 셋째, 도입국의 면허 생산에 관대하다는 점이다. 방산 역량을 보유하고자 하는 국가에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한국 방산이 약진하며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까지 달갑지 않아 하는 듯한 눈초리다. 유럽 국가는 자국의 내수 시장을 빼앗겼다는 인식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산과 한국산 무기 구매로 유럽 방산 발전이 방해받아 유럽의 주권과 자율성이 흔들린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내에서는 EU의 무기를 사용하도록 하는 방산 블록화 움직임이 시작됐다. 현재 20%에 불과한 유럽산 무기 채용을 2035년까지 60%로 높이도록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호황일 때 위기를 준비하라

이에 대한 대응은 크게 세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우선은 차세대 K방산 제품을 준비하는 것이다. 현재 판매 중인 무기 체계는 우리가 20년 전에 개발했던 제품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열기가 점차 식을수록 판매가 요원해진다. 미래 전의 방향성을 열어줄 인공지능(AI) 무기 체계, 특히 드론과 AI가 결합한 자율 무기 체계(LAWS)와 유무인 복합 체계(MUM-T)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현재 국방 혁신 4.0으로 유무인 복합 체계를 미래 병력 부족의 대안으로 보고 힘차게 준비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마스터플랜과 관련 산업 진흥 촉진으로 중화학공업을 일으켰듯이, 또다시 방산으로 AI와 드론 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안은 국제 공동 개발이다. 앞으로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도 자국 방산 기업을 키우겠다면서 시장을 닫으려고 할 것이다. 굳이 우리도 과도하게 수출을 위한 생산 설비를 더욱 늘렸다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료 후에 쓸데없는 유휴 자산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지금도 하청을 최대한 늘리며 기존의 고객국과 생산 협력 체제를 갖춰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추후 해당국이나 역내의 방산 블록이 형성됐을 경우, 공동 개발로 돌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무기 수출은 그저 판매가 아니라는 점이다. 방산 수출이 가능하다는 것은 수출입국 사이가 무기를 사고팔 만큼 친하다는 뜻이다. 무기는 단순히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용국 간 기술 교류는 물론 전술 교류까지도 가능하다. 따라서 방산 협력이 아닌 국방 협력으로 승화시켜 한국과 상대국 간의 신뢰를 높인다면 이는 국방 협력으로 발전하며, 대한민국 유사시 파병국을 늘릴 수단이 될 수 있다.

최근 필자는 우리 국방부가 호주 정부와 실시한 방산 협력 콘퍼런스에 패널 자격으로 참여한 바 있다. 여기서 호주가 방산에서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호주 같은 국가야말로 단순히 유사 입장국이 아니라, 서로 동맹에 준해 협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전략적으로 미국보다 오히려 더 좋은 파트너 국가일 수 있다. 그리고 호주와 한국의 군사 협력은 K방산으로 더욱 결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콘퍼런스를 통해 확인했다. 교훈은 명백하다. K방산은 단순히 무기 판매 수단이 아니라 우리 국방의 외연을 넓히는 훌륭한 수단이다.

* 본 글은 7월 29일자 이코노미조선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양욱
양욱

외교안보센터

양욱 박사는 군사전략과 무기체계 전문가로서 20여년간 방산업계와 민간군사기업 등에서 활동해왔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군사기업 중 하나였던 인텔엣지주식회사를 창립하여 운용했다. 회사를 떠난 이후에는 TV와 뉴스매체를 통해 다양한 군사이슈와 국제분쟁 등을 해설해왔으며, 무기체계와 군사사에 관한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국방대학교에서 군사전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안보포럼의 연구위원이자 WMD 센터장으로 북한의 군사전략과 WMD 무기체계를 분석해왔고,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국가안보실, 국방부, 합참, 방사청, 육/해/공군 등의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북한의 군사동향과 현대전쟁에 관한 연구를 계속 중으로, 한남대학교 국방전략대학원,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군사혁신론과 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며 각 군과 정부에 자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