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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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란 핵 협상이 4월 2일 잠정 타결됐다. 최종합의 시한인 6월 30일을 앞두고 미국과 이란 등 협상에 참여한 국가들이 세부 내용의 해석에 이견을 드러내지만 골격은 제시됐다. 이란이 원심분리기를 19,000기에서 6,104기로 1/3 감축하고, 향후 최소 15년 간 3.67% 이하로만 우라늄을 농축하며,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원자로의 설계를 변경하며, 15년간 신규 농축 시설을 건설하지 않으며, IAEA가 이란에서 핵 활동 사찰을 재개하며, 이란이 검증 할 수 있을 만큼 합의 사항을 제대로 준수할 경우 제재가 완화된다는 내용이다.1 이에 따라 당초 2~3개월이면 가능한 이란의 무기용 핵 물질 획득 시간이 1년으로 길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협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긍정적 의견은 ‘이란이 무기용 핵 물질 농축을 막아 잠재적 핵무기 보유국의 길을 차단하고 훼손된 비확산체제를 정상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을 꼽는다. 부정적 평가는 ‘이란의 핵 주권을 인정해 미국의 비확산 정책이 손상됐으며 이란의 핵무기 개발능력을 근원적으로 제거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누구도 승리를 일방 선언할 수 없으며 협상에 참여한 이란, 미국, 서방 모두 실리와 명분을 얻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절충안이라는 의미다.

바로 이 ‘절충됐다는 점’이 미국 의회에서 합의안을 뜨거운 현안으로 만들고 있다. 미-이란 최종합의를 의회가 검토한다고 규정한 S.615 법안이 미국 의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부정적 기류가 강한 의회가 이 법을 무기로 본격 검토하기 시작하면 합의안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현재 협상의 큰 줄기가 타결돼 국내외의 관심은 사실상 마지막 비확산 현안인 북한 핵으로 모인다. 일단 북한과 이란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 이란 핵 협상을 북한 핵 문제 해결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란과 달리 이미 핵무기를 제조해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이란 핵 타결과 관계없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며 대안도 없다는 우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큰 안보 위협인 북핵 문제 해결에 손을 놓을 수 없다. 이란 핵 협상을 타결로 이끈 구조를 면밀히 분석,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란 핵 협상을 주도한 P5+1과 같은 신뢰도 높은 국제적 합의체제(coalition)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 핵 문제, 한반도 비핵화를 동북아의 문제에서 글로벌 안보 아젠다로 확대해야 한다.

-미국에 북핵 해결을 위한 분명한 의지를 천명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한미 양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만큼 효과적이며 강력한 대북 압박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1. 이란의 핵 이력과 협상 과정

2002년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 보유 사실이 드러난 이후 핵 협상이 시작됐지만 이란에 허용될 원심분리기 수와 농축 범위를 둘러싼 대립으로 난항을 거듭했다. 유엔안보리는 2006년 12월 이후 2010년 6월까지 4차례 제재로 이란을 압박했고 P5+1은 이란에게 구체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강력 촉구했다.

2013년 11월 마침내 합의안이 나오는 듯했다. 내용은 ▲이란은 초기 단계에서 고농축 우라늄 농축 중단을 포함하는 합의 조치를 이행하고 ▲미국과 유럽은 이 조치를 지켜 본 뒤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정표가 지켜지면 6개월 뒤 최종 협상이 마무리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한인 2014년 7월 19일이 11월 24일, 2015년 3월 31일로 거듭 연기되다 2015년 4월 2일 마침내 타결안이 마련됐다.

난항을 거듭한 이유는 역시 이란에게 허용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수준과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시점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북한 핵 협상의 실패를 의식한 미국은 핵 능력 영구 제거에 초점을 맞췄고 이란은 평화적 핵 이용권으로 맞서며 농축 프로그램의 축소를 거부했다.

결국 이란이 농축 능력을 대폭 축소하기로 하고 P5+1 국가2도 핵 활동 제한 기간을 15년으로 완화시켜 절충안이 마련됨으로써 막바지 타결이 이뤄졌다.

2. ‘잠정’ 타결의 요인

1) 이란: 제재-경제난-내부 변화

2013년 6월 중도 성향의 로하니 대통령의 당선이 가장 큰 요인이다. 50.8%의 득표로 당선된 로하니의 등장은 중도 온건파의 부상을 의미했다. 2011년 경제 제재가 심화된 뒤 경제난이 가중되자 중산층과 젊은 세대가 만들어 낸 극적인 반전이었다.

급진 강경파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 온건 개혁파 무사비가 맞선 2009년 대선 때도 반전의 가능성이 있었다. 중산층과 젊은 층은 무사비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부정 선거로 아흐마디네자드가 재선됐다. 최고 종교지도자 하메네이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란의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시민사회는 위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EU가 제재에 적극 동참하면서 이란 경제는 이후 5년 간 휘청거렸다. 제재로 원유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산업 다변화와 제조업 활성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고강도 제재의 충격이 중산층에 집중되면서 이란 내부의 정치적 갈등은 격화됐다. ‘아흐마디네자드의 실정으로 경제가 더 나빠졌다’는 여론이 팽배해지면서 위축돼 있던 온건파가 다시 부상했다. 제재는 이란 사회를 변화시켰고,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온건 정치 세력이 출현하는 계기가 됐다. 최고 종교지도자도 온건파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로하니 대통령도 당선됐다. 마침내 온건파 정부가 핵 협상 테이블에 앉는 환경이 조성됐다.

온건파 정부가 참여한 합의문에 대해 ‘이란이 더 많이 양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협상 대표단의 결정은 최고 종교지도자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하메네이의 양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자리프 외교장관은 협상 타결 직후 하메네이의 지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란이 물러설 수 있던 데는 서방이 백기투항을 강요하지 않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조건부로 허용, 핵 주권을 배려하는 모양을 만들어 준 것도 작용했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 조건, 시점 같은 실질적인 사항은 최종 합의 시안인 6월 30일까지 계속 논의되고 제재도 합의 실천 여부에 맞춰 점진적으로 완화될 예정이어서 상황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2) 온건 vs 온건

핵 협상이 본격화된 2013년 미국과 이란의 지도자가 온건한 인물이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였다. 로하니 대통령이 온건•실용파이며, 군사 조치보다 대화와 외교적 접근을 중시하는 오바마 대통령도 온건한 지도자로 평가된다.

두 지도자 모두에게 협상에 나설 국내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로하니 대통령은 지지층을 위해 필요했다. 집권 2기에 남길 유산을 의식한 오바마 대통령도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에 이어 이란과의 역사적 거래에 들어갈 차비를 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과격 시위대에 의한 미국 대사관 직원 인질 사태로 미국이 국교를 끊고 제재를 시작한 지 35여 년 만이었다.

‘온건한’ 두 지도자가 서신 교환, 통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란 온건파의 경제 회생, 미국의 ISIS 격퇴라는 이해관계도 맞물렸다. 오바마 정부는 2014년 8월 본격화 한 ISIS 격퇴전에서 이란의 역할을 확대하는 선까지 나갔다. 이란에게도 시아파를 주적으로 삼는 급진 수니파 테러단체 ISIS는 큰 위협이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지상군 파병을 적극 검토하며 이라크 정부군 훈련을 위해 군사고문단을 파견해놓은 상태다.

3) 단합된 국제사회(coalition)

이란 핵 협상의 중심은 미국과 이란이었지만 P5+1도 참여했다. 영국•프랑스•독일은 2003년부터 참여했다. 이들 유럽 국가의 관점은 미국과 달랐다. 미국의 입장은 ‘일체의 핵 활동 허용 불가’였지만 이들 나라의 노선은 현실적이었다. 미국과 달리 농축을 포함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허용하되 핵 비확산과 핵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하자는 논리였다. 또 대화를 통한 해결 기조를 유지하고 미국에도 이를 요구했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와 이스라엘에선 ‘뭘 모르는 접근을 한다. 자기의 경제적 이익만 도모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협상에 참여한 유럽 국가들 사이엔 ‘이란 핵을 방치할 수 없지만 대화로 해결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이 공감대는 2006년부터 P5+1이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 제안을 마련하는 토대가 됐다.

4) 미국의 의지

‘Some deal is better than no deal(협상하는 게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낫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취한 입장이다. 2002년부터 이란 핵 협상 국면을 주도한 미국은 향후 최소 15년간 이란이 핵무기 제조용 물질을 생산하지 못하게 해 잠재적 핵무기 보유국의 수를 제한할 수 있게 됐다. 오바마 정부가 성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09년 이란이 Fordow 지하 핵 시설을 개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는 강경 대응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하메네이가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자 오바마 대통령은 프랑스를 달래는 한편 러시아의 역할을 강화해 이란과의 협상에 성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이 국제 무역과 세계화에 참여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것을 기대한다.

이란 문제를 해결한 미국의 지도력은 ‘2차 핵 시대의 도래’ 가능성이 거론될 만큼 비확산체제가 흔들리는 시점에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란의 핵무장이 지역 및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그런 평가를 받을만하다. 미국의 원칙은 ‘global zero’지만 비현실적 목표라는 점에서 이란과의 합의를 차선의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은 위태로운 중동 정세도 관리해야 했다. 현재 이집트의 군부 정권은 불안정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새 왕정이 시작됐지만 역시 불안하다. 시리아는 거의 붕괴됐고 리비아는 약화됐다. 그 틈을 타고 IS는 발호한다. 온건파 정권이 주도하는 이란은 이 같은 정세를 안정시키는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대화할 수 있는 파트너’로 간주되는 로하니와 협력함으로써 현 정권의 입지를 강화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신뢰가 강화되면 이란과 새로운 형태의 파트너십을 추구할 수 있다.

3. 전망을 흐리는 불안 요소들

1) 합의안 자체의 문제

미-이란 합의는 절충안이라는 점에서 불안정하다. 이미 팩트 시트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충돌한다. 최종 합의 전부터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인다면 최종 합의 뒤 논란은 더 격렬해 질 수 있다.

또 이란의 경우 핵 협상과 같은 중대한 정책이 최고 종교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최종 결정된다. 이는 남은 협상 과정에서 뿐 아니라 협상 타결 이후에도 합의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미국: 의회, 특히 공화당의 불만

잠정 협상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가장 큰 불만은 비확산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점이다. 이란이 ‘평화적 이용’이란 명분으로 저농축 우라늄 농축 권리를 공식 인정받은 점이 가장 문제라고 본다. 미국의 원칙은 ‘zero tolerance(무관용)’인데 결국 이란에 예외를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의 다수파인 공화당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부분이다. 그간 미국은 기존 농축‧재처리 인정 국가 외에는 NO ENR (NO Enrichment & Reprocessing) 정책을 고수하며 농축 및 재처리를 막아왔고 우리나라도 한미원자력협력협정 등을 통해 농축 및 재처리가 불가능하게 해 놨다.

또 이란의 브레이크아웃3시간 을 늦추게 할 뿐 능력을 없애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맹방인 이스라엘의 안보 우려가 해소되지 못했다는 점도 비판의 포인트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여전히 이란의 핵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의심한다. 미국 의회의 강경파들은 그래서 협정의 앞길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법적 측면에서 보면 이란 핵 협상은 행정협약 (executive agreement)으로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다. 오바마 대통령과 이란의 로하니 대통령이 협정에 서명만 하면 된다. 행정협약 즉 협정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어 행정부는 역사적으로 조약 대신 협약을 선호해 왔다. 예를 들어 1977년~1996년 사이 미국이 체결한 조약은 300건 정도인데 행정협약은 4,000여 개다. 국제협상의 93%가 이런 협약이다.4 협약에는 여러 법적 제약이 있지만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다는 점이 행정부에겐 매력이다.5

의회는 이런 행정부의 생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 3월 9일 공화당 상원의원 47명은 이란 지도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핵 협상과 제재 완화의 최종 결정권은 의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3월 20일에는 하원의원 367명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란 제재 완화는 의회가 제시한 새로운 법안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협상이 이란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차단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한을 보냈다.6 동시에 하원과 상원에서는 이란 제재 강화와 합의 검토를 의무화하는 일련의 법안들을 준비했다.7 이중 상원의원 밥 코커와 로버트 메넨데스가 추진 중인 ‘이란 핵 합의 검토법’(S.615)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무효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S.615는 미 의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미-이란 핵 합의 협약의 법적 성격은 행정협정이 아니라 조약으로 전환된다. 협정의 운명은 의회가 결정하게 된다. 이란 협상 대표단은 당장은 오바마 행정부와 협의하지만 궁극적으론 ‘공화당이 다수인’ 미국 의회를 상대해야 한다는 점을 의식하고 최종 협상에 임해야한다. 잠정 합의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수정을 요구하거나 반대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6월 최종안이 나오기까지 협상 과정은 더 험해질 것이란 의미다.

3) 이란: 국내외 불안정으로 인한 부메랑 가능성

오바마 정부는 이란 핵 협상으로 중동의 정세가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란의 힘이 더 커짐으로써 정세는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핵 협상이 최종 타결돼 이란 경제가 회복되면 국내 정치에서 온건파의 입지는 더욱 강화되고 이슬람 혁명 수비대를 중심으로 한 강경 보수파의 입지는 약화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 회복의 덕으로 ‘주머니를 불린’ 군부 강경 보수 세력이 입지를 강화하면서 온건파를 흔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란 외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이를 큰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당장 수니파 리더이자 미국의 최대 동맹 아랍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일각에서는 이번 이란 핵 협상을 핵 확산금지의 실패로 규정하며 핵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란 핵 협상이 주변 정세를 더 불안하게 만들어 그 결과 합의 집행상황이 불안해지고 합의 자체의 운명이 흔들릴 수도 있다.

4. 이란 핵 타결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의 모델이 될 수 있나

1) 적용 가능한 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란 합의를 계기로 6자회담 참가국 사이에 ‘이제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는 심리적•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돼 북핵 문제 해결의 새로운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북한과 협상하거나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될 것이다.

이란이 핵 관련 핵심 조치를 완료하는 대로 제재를 중지하기로 한 합의는 ‘조치 대 조치’라는 분명한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어서 북한이 다시 비핵화 협상에 나올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을 활용해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할 새로운 동기가 생긴 셈이다.

2) 제한 요소

북한과 이란의 상황이 달라 이란 핵 협상을 북한 핵 문제 해결의 모델로 적용할 수 없다는 평가가 주류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① 정치‧경제 구조의 차이

이란과 북한의 국내 정치‧경제 구조는 매우 다르다. 이란은 중산층과 시민사회가 존재하는 나라여서 제한적이나마 자유롭고 의미 있는 선거가 작동한다. 또 사회와 경제가 외부 세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핵 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이런 체제에선 제재가 중산층과 시민사회를 동요시키고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유가가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은 제재의 고통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정권을 이끄는 이란의 중도 온건파 집권 세력과 최고 종교지도자에겐 핵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인센티브가 존재한다.

반면 북한은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된 국가다. 주민에 아랑곳 않는 부자 세습 독재와 폐쇄 경제로 인해 제재가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북한의 경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와8 당장 협상에 나설 이유도 약하다. 무엇보다 김정은과 지배 엘리트들에겐 핵 협상이 아닌 핵 보유와 이를 통한 대미•대남 협박이 더욱 큰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이란에겐 협상이 중요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② 협상 목표의 차이 : 비확산 vs 비핵화

북한은 이미 3차에 걸쳐 핵 실험을 했고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주장한다. 이란은 반대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보유할 의사도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미국 입장에서 이란과의 협상 목표는 핵무장화로 접어드는 길을 차단하는 ‘비확산’이지만 북한의 경우는 핵 시설과 핵무기를 해체하는 ‘비핵화’가 목표다. 비확산이 목표인 이란보다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북한과의 협상이 훨씬 어렵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미루어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양보 할 의사가 없고 핵무기 보유가 정권의 raison d’etat(레종데타•국가이성)인 북한도 이런 요구를 거부할 것이다.

③ 협상 주체의 차이 : 이란과 P5+1 vs 북한과 5개국

2003년 이후 미국은 북한과의 공식 대화를 6자 회담이라는 다자간의 체제 틀 안에서 진행해 왔다. 여기서 핵심 국가들은 중국, 미국, 북한, 그리고 한국이다. 이 국가들의 이해관계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중국은 비핵화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안정에 방점을 둔다. 미국은 비핵화보다 비확산에 치중하는 인상을 준다. 러시아는 열의가 없다. 일본은 비핵화보다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매달린다. 동상이몽이다.

이란 핵 협상에 P5+1이 참여했지만 이들 국가들은 사전에 이해관계를 정리했다. 그렇다면 6자회담에서도 미국과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북한에 대한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는 한 협상이 성공하긴 어렵다.

5.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이란 핵 문제와 북한 핵 문제의 역사와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함의를 찾기가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상이한 협상, 환경, 주체를 분석하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있다.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 강력한 국제적 합의체(coalition)가 정비돼야하며 이를 위해 새로운 다자간 논의 체제의 구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란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관련국 사이엔 ‘사태가 심각하므로 방치할 수 없으며 해결해야 한다’는 최소한 목표가 있었다. 북한 핵문제는 그렇지 않다. 이해가 엇갈린다. 6자회담 참가국의 이해를 정리하고 북한을 제외한 5개 국가가 제재와 협상안에 대해 동일한 태도를 갖게 되지 않으면 북핵 문제 해결의 전진은 어렵다.

이란 핵 협상에 참여한 나라 가운데 세 나라가 6자회담에도 참여하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다. 협상 초기에 미국은 중국, 러시아가 자국 이해에 매몰돼 이란을 충분히 압박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가졌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는 한 목소리에 합류했다. 그 경험을 6자회담에도 적용할 수 있게 중국과 러시아에 촉구해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아주 필요하다. 중국이 특히 포인트다. 이란 문제 해결에서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수입을 현격히 줄이는 방식으로도 기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과감한 지원을 미국과 연대해 중국에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6자회담의 격을 이란 회담처럼 ‘P5+1’체제 수준으로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의 6자회담을 ‘6자회담+α’의 구조로 확대하는 것이다. stake holder를 늘리는 것인데 그 대상으론 EU가 좋다. EU를 포함시키면 아래에서 언급할 북한문제의 국제화에 도움이 되며 실익도 따른다. 유조선 운송보험을 독점하는 유럽은 이를 활용해 이란의 원유 수출에 타격을 입혔다. 그 경험을 북핵 문제 해결에도 적용할 수 있다. 회담의 격을 높이는 것은 아래에서 언급할 북한 핵 문제의 글로벌 아젠다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를 동북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글로벌 안보 아젠다로 키워야 한다. 북한 문제는 NPT의 근본을 흔드는 문제이며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는 글로벌 안보를 훼손한다. ‘북한이 핵무기 몇 개를 가졌다고 뭘 할 수 있나. 북한 핵은 관리가 가능하다’, ‘이란은 석유도 있고, 이스라엘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이 나섰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패배적 관점에 머물면 안 된다. 우리가 주도해 이 문제를 글로벌 안보 아젠다로 키워야 하며 이런 의지를 과시해야 한다.

*미국에 북한 핵 해결을 위한 의지 확립을 촉구해야 한다. 미국의 북한 비핵화 의지는 의심을 받는다. ‘선의의 무시’, ‘전략적 모호성’이란 정책 기조가 결국은 북한이 핵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며 해결 가능성을 점점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북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적극 천명하고 구체적인 움직임에 속도를 내야 한다.

곧 대선 국면에 접어드는 미국이 당장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북핵 문제는 그렇게 방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관심이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북한 핵 문제가 ‘미국 대통령의 관심 아젠다’가 되도록 미국에 촉구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만큼 북한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강력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란은 경제가 흔들려서 협상에 나왔다. 경제 제재는 북한 체제와 경제가 외부와 단절돼 있어 큰 효과가 없다. 현재의 고통도 ‘견딜만한’ 수준일 수 있다. 경제 압박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게 드러났다.

이제는 북한이 ‘안보가 흔들려’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핵•경제 병진’이 잘못된 계산이며 핵 보유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만드는 반(反)병진정책을 가시화해야 한다.

북한과의 핵 협상은 비핵화가 목표이기 때문에 비확산이 주된 목표였던 이란 핵 협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한 전략과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복귀시킬 수 있는 효과적이며 강력한 제재가 취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양국의 제재는 북한을 크게 아프게 만들지 못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북한에도 명분을 줄 수 있는 협상안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마련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2007년 미국은 페르시아만에 항공모함을 파견할 만큼 이란을 강하게 압박했었다. 북한이 비핵화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미국이 군사적 압박 강도를 높이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방법이 정해지면 우리도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의 대북 압박을 위해 강한 군대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하며 고고도방어미사일(Thaad•사드)배치에도 전향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중국에게도 북한 제재를 강화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특히 4차 핵 실험을 할 경우, 북한이 큰 대가를 치를 것임을 강력히 경고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방법이 국내를 갈등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국내에는 북한과의 협상을 둘러싸고 “잘못된 행동에 보상하면 안 된다”, “협상은 북한 체제를 연장해줄 뿐이다”, “북한에 이익 되는 것은 하면 안 된다”, “대화만이 출구다”라는 주장이 혼재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경우 여론이 쪼개져 국력 소모가 심화된다. 강력한 압박을 하기 전에 국론을 통일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박지영
박지영

외교안보센터

박지영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과학기술정책센터 선임연구위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핵공학 학사와 석사,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핵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정책학 석사학위도 취득하였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재직하였으며 R&D 타당성조사 센터장을 역임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핵정책, 근거중심 과학기술정책, 과학기술과 안보정책 등이다.

J. James Kim
J. James Kim

지역연구센터

J. James Kim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지역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Columbia University 국제대학원 겸임 강사이다. Cornell University에서 노사관계 학사와 석사학위를 마치고 Columbia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California State Polytechnic University, Pomona의 조교수(2008-12)와 랜드연구소의 Summer 연구원(2003-2004)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연구 분야는 비교민주주의 제도, 무역, 방법론, 공공정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