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보수파 정권 생존위해
선거제도 교묘하게 이용
반미 부추겨 총선 압승했지만
허술한 감염병대처 시민 분노
지난 2월 이란 총선이 보수파의 압승, 개혁파의 참패로 끝났다. 전체 290석 가운데 보수파가 221석, 개혁파는 19석을 차지했다. 38석은 무소속, 5석은 소수종교에 돌아갔고, 7석은 4월 재선에서 결정된다. 바로 이전 선거 결과와는 확연히 다르다.
2016년 선거에서는 개혁파가 121석, 보수파는 83석을 얻었다. 무엇보다 당시 개혁파는 최대 격전지 테헤란의 전 의석을 휩쓸었다. 이번엔 보수파가 테헤란 의석을 싹쓸이했다. 이란 총선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경기다. 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해선 먼저 헌법수호위원회의 사전 자격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체제 수호가 목표인 헌법수호위원회는 보수파 법학자 12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절반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직접 고른 이슬람법학자 성직자다. 올해 자격심사에서 개혁 성향 후보지원자의 60%가 대거 탈락했다. 개혁파 현직의원의 4분의 3에 달하는 90여 명도 포함됐다. 개혁파 지지층은 즉각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다. 결국 올해 총선은 이란이슬람공화국 출범 이래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특히 테헤란의 투표율은 26%에 그쳤다. 최고지도자는 `적들의 코로나19 위협 과장` 탓으로 돌렸지만 당시만 해도 확산 정도가 심각하진 않았다. 이 발언은 이후 코로나19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보여주는 정부의 민낯으로 비난받았다.
운동장은 2016년 선거에서도 기울어져 있었다. 개혁파 후보지원자의 절반 이상이 보수파의 자격심사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변화를 바라는 시민의 기대가 불공정 선거에서 깜짝 승리를 이끌어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와 이란이 극적으로 타결한 핵합의를 지지하기 위해 도시 중산층과 청년·여성 유권자가 투표소로 집결하면서다. 밀려드는 이들 유권자로 투표소 마감이 5시간 더 연장됐다. 결국 개혁파가 테헤란을 석권했고 1년 뒤 대선에서도 개혁파 로하니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불공정 선거는 이란과 같은 선거 권위주의 정권의 생존 전략이다. 이제 세상은 단순히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로 나뉘지 않아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선거가 실시된다. 완벽히 공정하지 않으나 선거 경쟁이 허용되고 선출직 교체가 이뤄지기도 한다. 비민주 정권의 지배 엘리트가 영악해지면서 이런 하이브리드 정권이 전 세계에 다수 존재한다.
하이브리드 정권의 선거는 정당성 과시용이다. 물론 권력을 내어 줄 생각은 없다. 정권 생존의 판단이 설 경우에만 야권의 선거 참여를 허락하고 만일에 대비해 탄압 기재를 풀가동 중이다. 이란에선 성직자 그룹의 군 조직 혁명수비대가 시위대 강경진압에 늘 나서고 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이란 보수 지배연합의 자신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들의 반미 이슬람 구호는 식상해진 지 오래다. 핵심 지지층인 지방 보수 성향의 저소득층마저 경제파탄의 원인으로 성직자의 부정부패와 혁명수비대의 역내 프록시 조직 지원을 지목했다. 미국 탓만 하는 정권에 책임을 묻고 시위에 나섰다. 이때 미국의 공격으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사망했다. 새해 벽두 이란 내 강한 반미여론이 퍼졌다. 테헤란 거리는 선거 벽보가 아닌 순교자 솔레이마니 추모 포스터로 뒤덮였다. 권위주의 정권은 그래도 불안했던지 개혁파 후보지원자를 4년 전보다 더 탈락시켰다.
이번 총선은 지배연합 내 강경 보수파와 원리주의 보수파 간의 경합이었다. 혁명수비대 강경파가 성직자 원리주의파를 가볍게 이겼다. 갈리바프 혁명수비대 전 사령관은 테헤란에서 압도적 1위로 당선돼 내년 유력한 대선 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혁명수비대는 내부 숙청작업까지 마치고 강경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에 대한 당국의 무능한 대처로 시민의 공포와 분노가 커지고 있어 정권의 미래는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다. 시민들은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도 나쁘지만 우리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 본 글은 3월 24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