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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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력이 배후에서 정보를 조작하거나 정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를 포섭하여 상대국의 선거나 정책 결정 또는 여론 형성 과정 등에 은밀하게 영향을 미치려 하는 악성 영향력 활동에 대한 대응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수호하고 국가안보를 굳건히 하는 데 중요하다. 최근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 FARA)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유사 법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법제는 아직도 형법상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등 주로 국가기밀 및 군사기밀을 보호하는 낡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행 법제에서 외부 세력의 악성 영향력 활동을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법령은 없으며,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간첩죄를 개정하고자 하는 형법 일부개정안과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어 심사 중이다. 간첩 행위는 국가안보라는 보호 법익을 생각할 때 그 행위자를 반드시 적국이나 반국가단체에 국한할 필요가 없으며, 해외로부터의 우리 국내정치 및 여론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외국대리인 등록제도를 운영하고 그 위반자를 처벌하는 해외 개입 범죄 관련 법을 신설하는 것은 변화된 국제 안보 환경에 대비하기 위하여 조속히 입법 처리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미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여 외국에서 활동하게 될 인사들은 그 국가에 등록해야 하고 그에 따른 평가를 받는 반면, 그러한 입법이 불비한 한국에서는 외국의 이익을 대변하여 활동하는 모든 행위자들이 그 진의와 배후를 숨긴 채 자유롭게 우리의 국가안보 및 국익에 반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소개된 여러 해외 입법례 및 법률안에 대한 검토를 참고하여 한국형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제정하고 간첩 행위를 규율하는 법령을 정비하여야 하며, 나아가 정보 관련 법제의 전반적인 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

 

1. 문제의식

 
근래 미국은 외국대리인등록법 적용을 강화하는 추세에 있고, 다른 국가들도 외세의 악성 영향력 활동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정책 결정 및 여론 형성 과정을 지켜내기 위해 유사한 법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존 알렌(John Allen) 전임 회장은 카타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관련 입장을 대변한 혐의를 FBI로부터 받고 2022년 6월 직을 사임한 바 있으나, 최종 기소에 이르지는 않았다.1 그러나 밥 메넨데스(Bob Menedez) 상원의원은 이집트 정부의 지원 수령과 관련하여 뇌물죄 및 FARA 위반 등 16개 범죄혐의로 2023년 9월 기소되어,2 2024년 7월 23일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8월 20일 의원직을 사퇴하였다.3 또한 2024년 7월 15일,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지한파 학자로 잘 알려진 수미 테리(Sue Mi Terry) 역시 FARA 위반 혐의로 기소 대배심을 거쳐 뉴욕주 법원에 기소되었다.4 이 글은 한국도 국내에서 일어나는 외세의 악성 영향력 활동(foreign malign influence operations)에 대응하기 위하여 유사한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입법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부실한 우리나라의 정보 관련 법제들 중에서도 특히, 최신의 해외 개입(foreign interference), 해외 정보 조작(foreign information manipulation) 혹은 악성 영향력 활동과 관련된 외국대리인등록법의 제정은 특히 시급한 입법 과제이다.

 

2. 외부세력의 악성 영향력 활동에 대한 대응

 
(1) ‘악성 영향력 활동’의 개념
 
외국 정부가 배후 조종하여 한국의 정치, 역사, 문화 등의 사실을 왜곡하는 뉴스나 인터넷 게시물 등을 작성하여 퍼뜨리거나, 외국 정부가 한국 공무원, 정치인, 기업가, 학자, 언론인이나 오피니언 리더 등 정치적 혹은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통해 한국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사회의 여론을 자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악성 영향력 활동’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미국은 해외 악성 영향(Foreign Malign Influence, FMI)을 “외국 정부가 공개적 혹은 은밀한 수단을 통해, (a)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혹은 미국 내 선거를 포함하여 미국 정부, 주 정부 또는 지방 정부의 기타 정책이나 활동, 혹은 (b) 미국 내 여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시하거나 대신 시키거나 실질적인 지원을 하여 수행되는 모든 적대적 노력”이라고 정의한다.5 이러한 FMI에는 악성 행위자들이 퍼뜨리는 허위조작정보와 선전(propaganda)이 포함되고, 악성 행위자들은 의도적으로 여론을 속이고 영향을 미치며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정책, 선거, 사회 문제 등에 영향을 미치며, 세계적인 사건에 대한 공포를 심기 위하여 허위조작정보를 사용한다고 본다. 요컨대, 외부세력이 합법적이고 투명한 방식이 아닌 은밀하고 강압적이거나 부패한 방식 등을 이용하여 대상 국가의 선거나 정책 및 여론 형성 등에 영향을 미치려 하는 모든 행위를 악성 영향력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국가 간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국제 관계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사이버 수단의 발전 등으로 인해 이러한 외세의 악성 영향력 활동에 대한 국가들의 경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2) 간첩죄의 적용가능성
 
공직에 있거나 영향력을 가진 인사가 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혹은 외국 정부를 대신하여 그 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면서도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으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보통은 향응 및 접대나 경제적 이익 제공, 사치품을 받거나 해외연수 기회 제공, 비지니스상 이익 제공 등 다양한 대가 제공이 얽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대가 제공의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이보다 더 교묘하고 추적하기 힘든 수단이 활용될 수도 있다. 또한 외국 정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반역의 확신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미 테리는 2016년에서 2022년 사이 최소 세 차례 이상 미국 하원에서 미국 정부의 대 한국 정책에 관하여 증언하였는데, 사전 진실공개 서약(Truth in Testimony)을 통해 자신이 FARA를 인지하고 있으며 본인은 한국정부를 위하여 등록된 대리인이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이에 반해, 기소장에 따르면, 테리는 동 기간 내에 사실상 한국정부를 대변한 것이어서 의도적으로 미 의회로 하여금 그녀의 증언에 대하여 적절하게 평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수미 테리의 이러한 행위들은 미국법상으로는 FARA의 외국대리인 등록의무 위반죄에 해당하지만, 그 행위의 위법화를 통하여 지키려는 법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간첩죄 혹은 해외 개입 범죄의 그것이다. 그러나 아래에 살펴 볼 한국의 현행 법제에서 그러한 행위는 범죄에 포섭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법제상 해외 개입을 명목으로 한 범죄는 없다. 형법 제98조 간첩죄는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에 대한 포괄적 규정과 군사상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고, 국가보안법 제4조 역시 형법 제98조에 규정된 행위와 군사상 기밀 또는 국가기밀에 대한 탐지, 수집, 누설, 전달, 중개한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군사기밀보호법에서 군사기밀에 대한 탐지 누설 행위 등을 처벌하고 있고,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도 산업 기술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처벌하는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형법상 간첩죄의 경우 ‘적국’을 위하여 간첩 행위를 하는 것을 처벌하고 있는데, 적국이란 원칙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거나 전쟁 수행 중인 국가를 의미하고, 형법 제102조는 대한민국에 대하여 적대하는 외국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적국으로 간주하는 준적국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나, 간첩죄를 적국이나 반국가단체를 대상으로 한 간첩 행위로 국한하는 것은 간첩죄 본래의 보호 법익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지 않다. 간첩죄의 보호 법익이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국가안보의 위협이 반드시 적국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6 특히, 이러한 접근은 사이버 공간의 비대칭성을 이용하여 다양한 국가 및 비국가행위자들이 국가안보의 위협 세력으로 등장한 현재의 안보 환경에도 전혀 맞지 않다.

 
(3) 해외 개입 범죄의 도입 
 
유력 학자가 방송 출연이나 강연 및 언론 기고문, 서적, 논문 출판 등을 통해 특정 국가를 지속적으로 대변하고 옹호하는 행위도 해외 개입의 범주에서 의심받기도 한다. 전문가의 활동을 통해 그 명성과 권위를 빌려 정책 결정자나 일반 대중에게 의도된 정보를 제공하고 인식에 영향을 끼치려는 악성 영향력 활동을 펼치는 경우가 실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한때 사드(THAAD)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 조치 등 첨예한 외교 갈등에 대하여 일부 전문가들의 평가가 지나치게 중국에 편중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의심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실제 대변하고자 하는 국가와의 관계나 오고 간 대가를 증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는 의심에 그치고 말 것이다. 또한 학문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등 헌법상 중대한 기본권적 가치를 해칠 우려가 크기 때문에 해외 개입이나 외세의 악성 영향력 활동을 다루는 해외 법제에서도 그 대응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FARA를 연구기관이나 학술단체에 대해서도 적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부 유관 부처에 자문을 제공하는 등 협력 관계에 있는 전문가나 연구기관 인력들이 실제 외국 정부 인사들과 여러 경로로 잦은 접촉을 하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이는 원칙적으로 정상적인 공공외교나 교류의 일환이므로 외국대리인등록제도를 통해 누가 외국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여 활동하는지 보다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전문가 집단의 신뢰를 지켜준다고도 볼 수 있다.

EU는 해외 개입을 “외국 국가급 행위자가 수행하거나 이를 대신하여 수행하는 활동 중 유럽연합의 주권, 가치 및 이익에 반하는 강압적이거나 은밀하며 기만적 또는 부패적인 활동”이라고 정의한다.7 EU는 개별 주권 국가는 아니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특히 러시아의 선거개입을 비롯한 전방위적인 악성 영향력 활동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도 역시, ‘해외 개입’이란 외국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정부 또는 비정부 행위자가 정치체제, 경제, 사회, 환경 또는 정보 공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은밀하고 불투명 또는 조작적인 성격의 국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8

호주는 해외 정보 조작을 따로 다루지 않고 해외 개입이라는 개념 아래 함께 규율하며, 간첩 활동과 더불어 해외 개입을 주요한 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다. 호주는 몇 차례 중국 공산당의 호주 정치에 대한 직간접적인 개입 사례를 겪어 오면서 국내 민주 정치 질서와 절차를 보호하기 위해 고심해 왔다.9 호주 정부에 따르면, 해외 개입은 외세(foreign power) 혹은 외세를 대신하여 수행되는 활동이 강압적이거나 부패하고 기만적이거나 은밀하게 호주의 주권, 가치 및 국익에 반할 때 발생하며, 외세가 호주 사회에 은밀하고 부적절하게 개입하여 그들의 전략적,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호주를 이용하려는 행위가 포함된다고 본다. 이러한 해외 개입은 호주 사회 전반에 걸쳐 개인, 정보 및 정부 기반시설, 산업, 학계, 미디어와 커뮤니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해외 개입은 첩보, 허위조작 정보 및 기타 형식의 악성 영향과 함께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해외 개입의 구체적인 개념이나 그에 대한 규율을 위한 법제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하에서는 미국의 FARA를 비롯한 유사 해외 법제를 살펴본다.

 

3. 외부세력의 악성 영향력 활동 규제를 위한 해외 법제

 
해외 개입을 규제하는 국내 법제를 마련하는 국가들은 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보통 로비(lobby) 활동의 존재를 인정해 오던 국가이다. 미국의 FARA는 1938년 처음 제정되었으며, 1942년 실효성 강화를 위해 미 국무부 소관에서 법무부로 변경되었다.10 FARA는 미국 내에서 외국 정부 및 기관(foreign principal)의 이익을 대변하는 홍보나 정치 활동을 하는 경우, 해당 개인이나 기관을 미 법무부에 등록하고 연간 예산, 경비, 활동 범위 및 외국 정부와의 관계 등을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 정부 및 기관을 대표하는 대리인이란 외국 정부 및 기관의 명령, 요청 또는 지시나 통제를 받으면서 대리인, 대표자, 직원 등의 역할을 하는 사람과 그 활동의 전부 또는 대부분이 외국 정부 및 기관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감독, 지시, 통제 재정적 지원 또는 보조금을 받고 이루어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영국, 독일, 호주 등의 국가들은 기존에 로비활동 규제에 대한 일반적인 법률이 제정되어 있어 그에 기하여 자국 및 외국기관의 대리인 로비 활동을 등록하고 규제하여 왔으나, 최근에는 외국 정부 및 기관의 활동을 제한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추세다. 영국은 외세(foreign power)의 지시에 따라 영국 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정치적 활동 내용을 등록하도록 하여 영국에 대한 외국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 내에 ‘외국영향등록제도(Foreign Influence Registration Scheme, FIRS)’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2024년 발효 예정이다. 이는 두 갈래 방식으로 설계돼 있는데, 첫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갈래(political influence tier)는 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영국 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는 활동을 수행하는 경우, 둘째, 강화된 규제가 필요한 갈래(enhanced tier)는 영국의 안전이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와 특정 외국 정부 및 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영국 내에서 수행하는 모든 활동에 대한 것이다.11

독일의 「로비등록법」(Lobbyregistergesetz)은 독일 연방의회 및 연방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활동하는 경우, 투명성 보장을 위해 재무 상황과 조직 규모를 포함한 정보 등을 연방의회에 등록하도록 규정한다.12 호주는 ‘해외개입’이라는 개념하에 해외 정보 조작을 비롯하여 다양한 외세의 악성 영향력 활동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다. 해외 개입 범죄는 호주의 연방형법에 기해 강력한 처벌을 받을뿐 아니라,13 호주 내에서 외국 정부 및 기관을 대신하여 호주 국내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등록하여 외국 영향력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외국영향투명성제도법」(Foreign Influence Transparency Scheme Act, FITS)을 두고 있다.14 이밖에도 EU는 개별 국가는 아니지만, EU의 정책 결정 및 법률 제정과 수행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과 개인의 활동을 공개하여 로비 활동의 투명성을 증진하기 위하여 ‘투명성 등록부제도(Transparency Register)’를 두고 있다.15 등록을 통해 로비 주체와 투입 예산이 공개되면 EU 시민 및 기타 이해관계자 그룹이 관련 로비 활동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한다. 2022년 기준 이익 단체, 비정부 기구, 연구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등 약 12,000개 조직이 등록되어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아예 로비와 로비스트, 로비 활동에 대한 법규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로비와 로비스트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고, 외국의 영향을 한국 정치나 정책, 사회에 미치기 위하여 활동하는 한국인(자연인과 법인 포함)이나 외국인 및 외국 기업, 단체의 존재를 정의하기 어렵다. 특히 이러한 영향 활동이 악의적이나 음성적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현행 안보 관련 법규상의 두루뭉술한 서술로 얼마나 정교하고 은밀한 해외 개입을 포섭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한국에서 로비 제도 합법화에 대한 논의는 수십 년간 이어져 왔으나 법제화되지 않고 있다. 해외 정보 조작이나 악성 영향력 활동을 정의하고 규율하는 법제가 미비한 상황에서 현재 우리는 합법적이고 투명한 외세의 영향과 은밀하고 불법적인 해외 개입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법적 상황에 놓여 있다.

 

4. 국내 법안 발의 현황 및 분석

 
(1)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 및 형법 일부개정안 발의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은 2023년 6월 15일 최재형 의원 대표 발의로 추진되었다가 2024년 5월 29일부로 제21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에 따라 폐기되었다.16 이 법은 2023년 중국 비밀 경찰 사건 이후 추진되었으며,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 등에 외국 당사자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는 외국대리인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외국대리인의 건전한 활동을 보장하는 한편,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국가 안전보장을 도모하고자 제안되었다. 이어 2024년 7월 30일 최수진 의원의 대표발의로 동일한 법률안이 다시 제22대 현 국회에서 발의되었다.17

2024년 7월 23일 기준, 제22대 현 국회에서 박선원 의원을 대표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어 심사 중이다.18 제안 이유에서 적국을 위한 간첩죄와는 별개로 외국 등을 위한 간첩죄를 신설하고, 국내외 정책 관련 사항 또는 외교적 관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간첩죄의 범위에 포함하는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해 간첩 행위를 엄중하게 처벌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과 자구 조정 등은 관련 위원회에서 다룰 것이므로 현 단계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이하에서는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의 일부 조항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2)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 검토
 
제21대와 제22대에 발의된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은 동일하다. 법률안 제5조는 외국대리인의 등록 의무를 면제하는 사유를 열거하고 있는데, 우선 “종교, 학문, 예술 또는 과학적 연구와 관련된 활동에만 종사하는 사람(제5조 제4호)”에 대해서는 등록 의무를 면제하여, 미국의 FARA와는 달리, 연구기관이나 학술단체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으려는 입법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영향력 활동을 감시하는 한 연구기관의 차이나 인덱스에 따르면, 한국 학계에 대한 중국의 악성 영향력 활동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19 여러 학자와 전문가 집단이 중국 정부의 직간접적 영향력 공작 아래 놓일 수 있다는 뜻이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미국은 동맹인 한국 정부를 위해 등록 없이 대리인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수미 테리를 기소하고 핸들러인 국정원 직원들과 한국 공무원들을 공개했다. 연구기관이나 학술단체 등에 대해 등록 의무를 면제한다면 다른 대응 수단이 마련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

동조 제6호는 “대한민국 국방에 중요한 동맹국가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국가안전보장 또는 국방상의 협력을 증진하고 대한민국의 국내, 대외 정책과 상충의도가 없는 활동만을 영위하는 사람”을 외국대리인의 등록 의무 면제자로 들고 있는데, 이는 군사동맹인 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문으로서 굳이 따로 법문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첫째, 조문의 내용에 충실히 따른 자는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외세의 악성 영향력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없어 굳이 면제의 필요가 없고, 둘째, 법문에서부터 특정 동맹국 대리인만을 지목하여 면제 사유를 부여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로 이해될 수 있어 입법 정책상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부당한 해외 개입에 대응하고자 하는 법률안의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굳이 법률 단계에서부터 특정 국가만을 염두에 둔 규정을 별도로 두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셋째, 더욱이 동조 제7호에서는 일반적인 외국대리인 등록 면제 사유를 규정하고 있으므로,20 구체적인 사례에서 제7호를 적용하거나 집행 단계에서 실질적인 판단을 통해 제6호에 해당하는 사람을 거르면 될 일이다. 다시 말해, 제6호는 불필요한 중복 규정이므로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 제정 시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결론

 
해외에서 투명하고 정당한 영향력 활동을 통해 우리 정책을 알리고 그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이끌어내거나, 한국의 역사와 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켜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고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공공외교를 통해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은 국제 관계에서 정상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며 각국의 법제 내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 최근 미국 FARA에 기해 한국 정부의 외국대리인으로 등록했다고 알려진 한국 우주항공청 R&D를 총괄하는 존 리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이 그 예이다.21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활용하려면 외국의 악성 영향력 활동에 대한 경계 역시 동시에 수반되어야 하므로 한국형 외국대리인등록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이나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및 기타 다른 국가 정부에 포섭되어 활동 중인 공무원, 정치인, 학자, 저명 인사, 인플루언서 등 한국인들이 얼마나 있는지 우리는 현재 가늠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경력이나 전문성으로 포장하고 사상의 자유 및 학문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실은 타국 정부를 위한 대가성 행위들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 중 일부는 또 아예 자신의 행위가 타국 정부의 배후 조종을 받는 것임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외세의 악성 영향력 활동에 대응하는 것은 그만큼 명확한 경계를 긋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만큼 명백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외국대리인이 의심되는 인사들에 대해서도 외국 정부로부터 받은 자금이나 향응, 그들의 네트워크를 추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즉, 외국대리인등록법은 정보 수집 법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설사 한국 당국이 그런 인물들을 예의 주시하고 추적하여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확신의 단계에 있다 할지라도, 그걸 공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처벌 법령이 없으면 손을 쓸 수가 없다. 결국, 한국 사회는 외세의 개입이나 악성 영향력 공작 및 간첩 행위로부터 안전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정보 활동은 동맹과 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국가를 상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교섭과 조정은 그 후의 일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대통령실을 도청했다는 의혹에 대하여 ‘선의’와 ‘악의’를 논함으로써 스스로 교섭력을 약화시킨 바 있다.22 실제 미국 정부는 스노든 사건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독일 수상을 비롯한 여러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의 수장에 대한 상시 도청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이 폭로된 바도 있다.23

정보 실패를 비난하기 이전에 그 영역에서 충분한 법제적 뒷받침이 되고 있는지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전통적인 첩보(espionage) 영역에 해당하는 휴민트를 비롯한 외국대리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해외 정보 수집을 뒷받침하는 법제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뒤처져 있다.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뿐 아니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2010년대 후반부터 여러 국가들은 꾸준히 정보 관련 법제를 업데이트하고 수정해 왔다. 외국대리인등록법을 조속히 가다듬어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후 관련된 정보 관련 법률들도 정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보 관련 법제는 인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만큼, 헌법상 법률 유보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도록 법률 단에서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24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신소현
신소현

외교안보센터

신소현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외교안보센터의 연구위원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정보보호 기술을 비롯한 신기술 (인공지능, 우주기술, 양자컴퓨팅 등)의 발전으로 생겨난 새로운 공간인 사이버 공간과 우주 공간과 관련된 각 국제법 분야의 변화와 발전이다. 무력충돌, 군사, 무기, 사이버첩보 등의 전통안보 뿐만 아니라 경제, 재난, 환경 등 새로운 비전통 안보분야들을 국제 및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관련 국제 및 국내규범의 형성과 변화 및 정책적 이슈들을 융합적으로 연구한다. 세종연구소 사이버안보센터 창립 멤버였으며 사이버안보포럼을 조직한 바 있고, 고려대학교 정보보호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최신 저작으로는 “사이버공간에서 국가의 적대적 허위조작정보 작전에 대한 규율”, “우주안보와 국제법”, “사이버 억지와 미국의 선제적 방어전략의 국제법적 검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