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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4일 기시다 총리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의사를 전격 표명했다. 그동안 재선에 의욕을 보여왔던 만큼 이러한 입장 선회는 갑작스러웠다.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로 인해 평소 같으면 조용했을 일본 오봉(한국의 추석과 유사한 명절) 기간에 나가타초(한국의 여의도, 즉 정계를 비유)의 시계는 빠르게 움직였다.

사실상 일본의 차기 총리를 뽑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현직 총리의 불출마 표명으로 후보군 난립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기시다 총리가 차기 총재 선거에 출마한다면 기시다 내각의 현직 각료 그리고 총리와 동일한 파벌의 정치인들이 출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의 불출마로 이러한 제약이 사라졌다. 기시다 총리 또한 불출마 표명을 하면서 “각료 중 총재 선거 출마를 고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각료 직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당당하게 토론해 달라”고 주문했다.

현재까지 차기 총재 선거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만 10여 명이다. 차기 총리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항상 1위를 놓치지 않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외무대신 출신들로 한국에도 얼굴이 알려져 있는 고노 다로 디지털담당상, 모테키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세대교체의 얼굴로 주목받는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대신, 여성 후보군인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 가미가와 요코 외무상, 노다 세이코 전 총무상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사이토 겐 경제산업상, 가토 가쓰노부 전 관방장관 등도 후보군이다.

 

킹메이커, 아소 부총재일까 스가 전 총리일까

다만, 총재 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선거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필요한 20명 이상의 추천인(의원) 확보가 관건이다. 기존까지의 총재 선거에서는 파벌을 중심으로 후보가 나왔고, 따라서 20명 이상의 추천인 확보가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파벌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거론되는 현 상황에서 20명의 추천인 확보는 각 후보가 넘어서야 할 첫 번째 고비가 됐다.

단순 계산해 현재 거론되는 10여 명의 후보 전원이 367명의 자민당 의원 중 20명의 추천을 받는 것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총재 선거에 나오면 5번째 도전이 되는 여론조사 1위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은 당내 인기가 높지 않아 20명의 추천인을 확보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이시바 전 간사장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총재 선거 이후에 바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의원 해산과 중의원 선거 때문이다. 통일교,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일본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자민당이 ‘쇄신’을 내세우며, 새로운 자민당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선거의 ‘얼굴’이 될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이시바 전 간사장은 독보적이다. 다만 당내 인기가 낮고 자민당 주류파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시바 전 간사장이 20명의 추천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처럼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인물들이 소위 ‘킹메이커’로 불리는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다. 정치자금 문제로 자민당 내 대다수의 파벌이 해체된 가운데, 유일하게 파벌을 해체하지 않은 아소파의 수장인 아소 다로가 누구를 지지하느냐 따라 수십 명의 표가 함께 움직일 수 있고, 무파벌이지만 폭넓은 연대 세력을 가진 스가 전 총리의 지지가 하나의 세력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현직 기시다 총리가 킹메이커로 등장해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자금 문제로 크게 비난받은 자민당이 대부분의 파벌을 해체한 가운데 기존의 파벌정치를 답습하는 모습을 상정하기는 어렵다. ‘쇄신’이 중요한 키워드가 된 이번 선거에서 기존과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에 대한 실망이 뒤이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중의원 선거의 패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기존의 역학구도와는 다른 새 정치 셈법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차원에서 ‘젊은 세대’와 ‘여성’ 후보군도 주목받는다. 물론 이들에게 기존의 자민당과 다른 느낌의 쇄신‘감’은 있으나, 실제로 이들이 자민당을 ‘쇄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이러한 모호함 속에 9월27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까지 한 달여 동안 나가타초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질 것으로 여겨진다.

‘포스트 기시다’ 후보군 난립 속에 아직 총재 선거의 후보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단하긴 어렵지만, 기시다 총리의 퇴진은 그간 우리 정부가 쌓아온 한일 정상 간 신뢰 그리고 한일 관계 진전에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 물론 여당인 자민당의 총재(곧 일본 총리)가 바뀐다 하더라도, 자민당의 대외정책 기본방침과 한국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새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한일 관계 변수

하지만 자민당 내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후보들의 역사인식과 강제징용 문제 등을 포함해 다양한 한일 갈등을 넘어서고자 한 양국 정부의 노력을 뒤집을 수 있는 발언과 행동들은 현재의 불안정한 한일 관계를 흔들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8월15일 현재 총재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고이즈미 신지로, 고바야시 다카유키 등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는데, 만약 새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한국의 큰 반대와 비난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기시다 총리가 퇴임 전인 9월초 방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과 자유로운 왕래는 양국 관계 진전에 분명 긍정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양국 정상의 강한 의지가 있었다. 이러한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변수의 등장 속에 우리 정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 본 글은 8월 25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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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