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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수교 60주년을 맞는 2025년은 조금은 특별한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2023년 3월,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관련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며 큰 전환을 이룬 한일 관계가 수교 60주년을 맞는 2025년을 계기로 큰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한일 수교 60주년 준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민간에서도 다양한 행사, 회의, 제언서 발간 등을 활발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비록 역사 문제 등 해결하지 못한 많은 과제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라인야후 사건, 사도광산 추도식 등 새로운 갈등 이슈들이 있었으나, 양국은 이러한 사안들을 최대한 관리하며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축포를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이었을까. 기대와 설렘으로 맞이할 2025년은 한일 양국의 ‘국내정치 불안정성’이라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닥쳤다.

시작은 2024년 8월 기시다 총리의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 선언이었다.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 속에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 등으로 고전하던 기시다 내각은 결국 퇴진했고, 이시바 내각이 새롭게 출범했다. 다행히 과거 한국을 이해하는 발언을 한 적 있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였기에 한국의 기대는 높았다.

 

불확실성 키우는 한일의 국내정치

하지만 그의 약한 당내 지지 기반과 낮은 국민적 지지율을 고려할 때 이시바 총리가 ‘물 컵의 반’을 채우며 한국의 기대에 부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욱이 2025년 여름은 참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지난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이시바 총리에게 소수 여당의 수장으로서의 책임은 막중하고, 다음 선거에서 또 한 번의 참패는 여당의 지위를 잃을 정도로 치명적일 것이다.

사실 이시바 내각이 참의원 선거 때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조차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만약 이시바 내각이 지속될 경우, 2015년 종전 70주년을 기념하며 발표된 아베 담화를 넘어선 80주년 담화를 낼 수 있을지도 주목해볼 만한 부분이다. 사죄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아베 담화는 일본 사회의 레거시로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한국의 국내정치 또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12월3일 계엄 사태 이후 한국 또한 국내적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의 상황을 예단하긴 어려우나 한일 양국의 국내정치적 변화에 따른 대외 정책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적어도 한일 관계 개선의 큰 변곡점을 마련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전 총리가 쌓아온 신뢰만큼 양국 정상 간에 신뢰를 다시 구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은 또 다른 변수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시했던 가치외교, 동맹국들과의 관계는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고, 실리 중심의 외교, 경제적 손익 계산이 우선시될 것이다. 한일 양국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과학, 기술, 문화, 인적 교류 등 많은 분야에서 한·미·일 협력의 실익을 입증해야 할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윤석열-기시다-바이든 세 정상이 이루어낸 캠프 데이비드 정신이 이어질지도 불확실하다. 본래 한·미·일 관계에서 가장 약한 고리(weakest link)로 불리는 한일 관계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한일 갈등 완화를 위한 미국의 중재 혹은 관여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처럼 양국의 국내정치적 불안정과 트럼프 시대의 새로운 한·미·일 관계라는 불확실성 속에 한일 관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한일 관계 개선과 발전에 대한 양국의 폭넓은 지향점이 있는 만큼 2025년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려는 노력은 이어지겠지만, 적어도 그 동력이 약해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렇게 낙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 한일 양국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광복·종전 80주년, 한일 수교 60주년의 무게

2025년은 한일 수교 60주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광복 80주년이자 종전 80주년이기도 하다. 전쟁의 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는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능력과 지속되는 도발에 위협받고 있다. 또한 가깝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멀리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충돌에 따른 직간접적 피해와 영향을 과소 평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최근에 일어난 북한의 참전은 한반도의 안보를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미·중 경쟁 과열 속 경제안보, 기술안보, 사이버 공간에서의 협력 등 새로운 분야 도전도 이어지고 있다.

즉 시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많은 우리 국민이 이러한 위협에 노출되며,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한일 협력은 더욱더 중요해졌다. 따라서 현재의 국내정치적 불안정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환갑(還甲)이 되는 ‘60’은 육십갑자(10간과 12지를 결합해 만든 60개 간지)의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한 주기의 완성이자,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담겨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60년간 한일 관계가 순탄했던 시기는 없었다. 양국은 갈등과 협력의 수많은 부침을 겪으며 현재까지 왔고,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그 추동력을 때로는 정부가, 때로는 민간이 이끌어왔다.

특히 정부 간 외교가 어려울 때 빛을 발휘한 건 민간 협력, 그리고 민과 관의 협력이었다. 정부 간 외교가 기능하기 어려워진 지금이야말로 양국의 가교가 될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혼란스러운 국내정치 속에 양국의 이익과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발전적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필요한 때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것을 유지·발전시켜 또 다른 60년을 준비하는, 좀 더 성숙한 한일 관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본 글은 12월 29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