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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4일,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불거진 한일 갈등은 양국 정부 간에는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주요 7개국(G7) 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한일 외교장관 약식회담에서 이 문제가 양국 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 이제까지의 양국 협력의 긍정적 모멘텀을 유지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격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분노하는 한국, 그런 한국 이해 못 하는 일본

한국 사회에는 이번 사도광산 추도식에 조금의 성의도 보이지 않은 일본에 대한 실망감이 넘쳐난다. 또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의 부족함을 메우고, 한일 간 역사 문제를 한층 성숙하게 가져갈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망쳐버린 일본에 대한 분노도 상당하다.

한국의 실망과 분노가 이렇게 큰데 일본은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한국이 요청했던 대로 일본 정부 차원에서 정무관급 인사를 보냈고, 추도사에 ‘한반도 출신 노동자’(일본식 표현)에 대한 애도도 표시했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식이다. 일본 정부 대표로 이쿠이나 정무관을 보낸 것은 해당 정무관의 업무 영역이라는 것이고, 2년 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교도통신의 보도가 있었으나 오보였던 것으로 정정 기사까지 나왔으니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추도식에 불참한 한국 측에 유감을 표명하고, 한국이 과잉 반응한다는 외무성 관계자의 발언도 나왔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한국의 반일병이 도졌다는 사설까지 냈다.

정말 그런가.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 대표는 세계유산위원회의 심의에 대해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 특히, ‘한반도 출신 노동자’를 성실하게 기억하고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과 전시 시설 등을 강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매년 추도식을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를 대표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4개월여 만에 지자체와 민간 차원에서 개최하는 추도식에 일본 정부 대표는 ‘인사’하러 왔다. 그리고 ‘추도사’도 아닌 ‘인사말’을 읽었다. 더군다나 인사말에 담긴 내용은 지난 7월 유네스코에서 발표된 내용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때 발표된 “가혹한 환경에서 부과된 의무로 위반 시 징역과 수감, 벌금이 부과되는 등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사실상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내용들은 사라졌다.

이쿠이나 정무관의 인사말 속 희생자들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고는 하나, 멀리 타국 땅에 와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전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안타까운 노동자”로 전락했다. 지난 7월 발표 당시, 일본 정부 대표가 언급한 “위험한 사고로 사망하고, 한 달 평균 28일을 일하는 고된 노동에 도망치다 잡히면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던 조선인들”은 4개월 후 다른 일본 정부 대표에 의해 사도광산의 빛나는 역사를 만들어준 사람들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이번 일본 정부 대표의 인사말 어디에도 지난 7월 당시 발표된 당시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대로 나타내는 표현은 없었다. 사죄나 반성도 없었다. 그저 그들의 노고에 대한 경의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애도만 있었을 뿐이다. 또 당시 광산 채굴업무에 동원된 사람이 조선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동원된 무숙인(無宿人·체포된 주소 불명의 사람 가운데 부랑자, 노숙인에 준하는 표현)과 국권침탈을 당하고 강제동원된 조선인을 동일하게 취급하며 왜 1500명에 가까운 조선인이 일본에서 고통받았는지 알 수 없게 문제를 희석시켜 버렸다.

더욱이 인사말의 마지막은 니가타현과 한국의 핼러윈 축제를 언급하며 한일 문화교류로 이어진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의식의 흐름은 글을 쓴 사람도, 읽은 사람도 사도광산의 역사도, 이번 추도식의 의미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추도식에 임하면서 이러한 기본적 사실조차 몰랐다면 ‘직무유기’고, 알면서도 이런 글을 썼다면 ‘무능’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현재의 한일 소통에 대한 반성과 개선 필요

지난 7월 일본 정부 대표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스스로 약속했던 △일본 정부의 추도식 개최도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성실한 기억도 △지난 4개월간 전시 시설 개선이나 강화 노력도 찾기 어려웠다. 이제 한국은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고, 향후 일본이 다른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희망할 때 한국의 동의를 얻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은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데 대해 한일 모두의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 한국의 추도식 불참 이유가 이쿠이나 정무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모아지며 언론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에 대한 진실 공방을 벌였고, 본질은 사라져 버렸다.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을 보면 한일 외교 당국 간 소통도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듯하다. 추도식 관련 업무의 담당부서가 바뀌며 한일 관계의 민감성을 감안해 충분히 소통했어야 할 외교부도 내부 소통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 차원의 소통이 어렵다면, 민관 혹은 민간 차원에서의 발신도 충분해야 했으나 이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현재의 한일 관계가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 많은 회의가 재개되고, 많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나 정작 해야 할 민감한 부분까지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어쩌면 현재의 좋은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다며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는 피하고, 밝고 즐거운 이야기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역사 문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혹은 어차피 똑같은 이야기만 할 것이라는 안일하고 무책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아가 한국은 일본에 충분히 알렸는가. 일본은 충분히 알려고 노력했는가. 그리고 양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설명할 책임을 다했는가. 지금이라도 진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상처만 남은 반쪽짜리 추도식이었지만, 이를 반면교사 삼아 다음 추도식은 부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양국 정부의 진심과 성의가 담긴 온전한 추도식이 되길 바란다.

 
* 본 글은 11월 30일자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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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최은미

지역연구센터

최은미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방문연구원, 외교부 연구원,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연구분야는 일본정치외교, 한일관계, 동북아다자협력 등이다. 국가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