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신행정부 동북아정책 관심
韓·日 갈등 해결에 개입 가능성
美·日 리더십 달라진 상황 대비
원칙·국익에 기반한 정책 필요
미(美) 대선으로 뜨거웠던 한 주가 지났다.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이제 우리의 관심은 바이든 신(新)행정부의 대외정책, 그중에서도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정책에 쏠려 있다. 이와 더불어 지난 수년간 경색되어 온 한·일관계에 미국의 관여 가능성 유무도 관심이 높아진다. 바이든 시대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이미 많은 전문가에 의해 언급된 바와 같이, 바이든 행정부는 가치와 동맹, 자유주의 국제질서, 그리고 다자협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이며, 동북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과의 긴밀한 연대,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점차 격화되는 미·중갈등 속 중국 견제와 세력 강화는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한·미·일 공조체제에서 한·일갈등은 미국으로서도 불편한 사안이자, 반드시 해결하고 싶은 과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한·일관계를 사실상 방관하고, 방치했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갈등해결을 위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우선순위는 높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미국 내의 인종·계층 갈등과 코로나19 대응 등 국내적으로 산적한 이슈 해결이 시급하며, 실무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 검토와 새로운 대외정책 수립까지 일정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일문제는 북한, 중국에 대한 정책과도 연계되므로, 이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 수립과 함께 신중하게 고려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에 직간접적인 관여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5년간 동 합의가 사실상 형해화되고 양국갈등이 더욱 격화된 현 상황에서 직접적이고, 적극적 개입을 하는 것은 보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대외전략과 외교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한·일관계와 한반도 문제, 동북아 지역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일본의 리더십이 교체된 만큼 달라진 상황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상대국의 정책변화에 따라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 및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박지원 국정원장의 방일 및 한·일 의원들의 상호방문 등 정치권의 움직임이 적지 않다. 그리고 지난 10일 박 원장의 방일 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정신을 되새긴 ‘문재인·스가 선언’ 구상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높게 평가되어야 하며, 이를 지속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정부의 책임 있는 인사들의 이와 같은 언동(言動)은 무척 고무적이며,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또한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의지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것이 현재의 한·일관계이다. 더욱이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1998년 당시의 시대적 상황, 양국 정상 간 신뢰와 상호인식, 양국의 대외전략 속 상대국의 위치설정 등을 생각해 볼 때, 현재는 어느 조건도 맞지 않아 현실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국가 간 갈등해결을 위해 상호 비전을 공유하며, 이상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현재 한·일 양국이 처한 현실은 그보다 더 엄중하다. 따라서 성과 도출을 위해 조급해하고, 서두르기보다는 좀 더 전략적이고, 좀 더 치밀해지며, 보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감성에 대한 호소보다는 원칙과 실리, 국익에 기반을 둔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의 갈등을 둘러싼 주변환경과 문제 해결을 위한 주요 행위자들이 달라졌다. 우리의 원칙을 명확히 하면서도 달라진 상황에 따른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민적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정책전환은 우리 국민조차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급함은 실수를 부른다.
* 본 글은 11월 13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